예술가의
한 마디

글렌 굴드
우주로 연결된 음악
신동에서 스타 피아니스트가 된 그의 음악은 수백억 킬로미터를 날아
미지의 존재에게 전해지길 기다리고 있다.
그는 반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우주를 유영하는 그의 음악은 길이 남아 경이로움과 평온함을 구축하고 있다.

1977년 8월과 9월 미국 플로리다주의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차례로 발사된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와 2호. 올해로 47년째 쉼 없이 우주를 여행 중인 형제 탐사선은 지금까지 인류가 쏘아 올린 우주 비행체 중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떠난 최고령 탐사선이기도 하다. 현재 1호는 태양계를 벗어나 239억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을 여행 중이며, 지난 8월 초 소식을 전해온 2호는 태양계로부터 199억 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다.
특히 최근 신호가 끊겼다 재개된 2호는 우주의 역사를 밝히며 경이로운 여행을 이어가고 있다. 두 탐사선은 우주 탐사 임무와 함께 지구의 존재를 외계 생명체에게 알릴 목적으로 제작한 일종의 타임캡슐, 보이저 골든 레코드Voyager Golden Record: THE SOUNDS OF EARTH 탑재로도 큰 화제를 모았다. 칼 세이건이 제안했다고 알려진 이 레코드에는 각계각층의 전문가가 엄선한 지구의 소리가 담겼다. 번쩍이는 음반 모양을 한 골든 레코드에는 55개 국어(한국어 포함)의 인사와 지구를 나타내는 이미지 그리고 사람들이 즐겨 듣는 음악도 실렸다.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 호주 원주민 노래 ‘샛별Morning Star’,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 아리아’,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중 ‘희생의 춤’,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중 1악장 등이 미지의 존재를 위해 지구를 대표하는 음악으로 선택됐다. 특히 골든 레코드에 실린 총 31가지 소리 중 유일하게 실린 피아노 독주곡이 있으니, 바로 20세기 인기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1966년에 연주한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2권의 ‘프렐류드와 푸가 C장조’다. 이는 당시 글렌 굴드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사건이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난 글렌 굴드Glenn Herbert Gould, 1932~1982는 글보다 악보를 먼저 익힌 음악 신동이다. 하지만 그의 부모는 부러 나서서 아들에게 음악을 교육하지 않았다. 그저 아들이 평범하게 자라길 바랐다. 하지만 감추려야 감출 수 없었던 그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본 그의 부모는 아들을 헌신적으로 지원했다. 음악을 전공한 어머니의 영향도 있었지만, 분명 글렌 굴드는 남다른 음악적 성장을 이뤄나갔다. 그는 10세에 토론도 왕립 음악원에 입학, 작곡과 음악 이론 그리고 피아노를 집중적으로 배웠다. 이후 15세에 캐나다에서 공식 데뷔했고, 반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피아니스트이자 음악가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중간에 그는 대중 연주회를 중단하기도 했지만,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심지어 캐나다 정부는 글렌 굴드를 캐나다의 큰 위인으로 기린다. 그가 쓰던 피아노 CD318과 그가 연주 때마다 사용하던 등받이 의자, 그가 메모한 작은 종이 한 장까지 박물관에 소장할 정도다.

1955년 청년 굴드는 캐나다를 떠나 미국 워싱턴과 뉴욕에서 차례로 데뷔했다. 20세기의 스타 피아니스트로 커리어를 쌓은 그는 바흐의 ‘파르티타 G장조’, 베베른의 『변주곡집』 등 평범하지 않은 레퍼토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평소 무인도에 혼자 남아도 바흐만 연주할 수 있다면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바흐를 존경한 만큼, 그가 남긴 앨범 중 가장 유명한 음반 두 장 역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The Goldberg Variations」이다. 1956년의 데뷔 앨범으로 한차례 발표하고, 25년 후인 1981년 유작 앨범으로 한 번 더 녹음했을 정도로 바흐의 작품을 아꼈다. 특히 데뷔 앨범의 경우 당시 약 4년간 4만 장이 팔리면서 한 해 평균 1만 장, 한 달간 1천 장에 가까운 판매 기록을 올렸다. 그 인기는 지속적으로 이어졌고, 1982년 그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180만 장 이상이 팔리면서 클래식 음반계의 이목을 끌었다.

그가 이토록 뜨거운 사랑을 받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로 그의 글과 말을 꼽을 수도 있을 거다. 그는 주변 사람에게 피아니스트가 아니었다면 작가가 됐을 것이라고 종종 말했다. 그래서인지 그가 남긴 글·편지·인터뷰 등의 내용과 문체는 상당히 섬세하다. 그는 화려하며 수사적 표현을 즐겨 썼다. 1962년 그가 쓴 글 일부를 소개한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피아노를 친다.”라는 말도 남겼다. 마음이 동하는 연주는 그가 즐겨 앉던 연주 의자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등받이가 있는 낡은 의자에 기대앉아 연주하는 걸 즐겼다. 이 의자는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것이다. 기존의 다리를 4인치씩 톱으로 잘라 개조한 접이식 의자다. 피아노용 표준 의자보다 6인치 낮은 높이였고,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어디든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다. 또 그는 오른쪽 다리 위로 왼쪽 다리를 올려 꼰 채 페달을 밟는 다소 예의 바르지 못한 연주 자세로도 유명했다. 게다가 피아노를 연주할 때 허밍하길 즐겼는데, 이러한 점도 그의 연주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다.

어느 누구보다 예술과 음악에 대해 철학적인 사고와 고집 있는 신념을 갖고 있었던 글렌 굴드. 그를 인터뷰한 기자들은 “굴드의 예리한 재치, 예의 바른 태도, 마력, 허세 없는 소탈함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라는 증언을 남겼다. 다림질도 안 한 헐렁한 양복을 입고 무대에 올랐던 피아니스트의 말과 행동, 그리고 그가 남긴 음악이 한데 어우러져 글렌 굴드라는 세계를 이루었음에 고개를 끄덕인다.
얼마 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보이저 1·2호가 남은 60퍼센트의 연료가 다 떨어질 때까지 임무를 수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주 저 너머의 4만 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흐른 미래의 누군가가 글렌 굴드가 연주한 바흐의 아름다운 선율을 듣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분명 그들 또한 우리와 마찬가지로 글렌 굴드의 마법에 빠질 것이 분명할 테다!

※ 참고 자료
『Partita for Glenn Gould』(2010) Georges Leroux 저, McGill-Queen's University Press 펴냄
캐나다도서관아카이브(www.collectionscanada.gc.ca)
스타인웨이앤선스(www.steinway.com)

글. 정은주 음악 칼럼니스트. 서양 음악가들의 음악 외(外)적 이야기를 발굴해 소개하며 산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 『발칙한 예술가들』(추명희·정은주 공저), 『나를 위한 예술가의 인생 수업』을 썼다. 현재 예술의전당·세종문화회관 월간지, 『월간 조선』 등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부산mbc <안희성의 가정 음악실>에 출연하고 있다.

일러스트. romantic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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