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하나

국립국악관현악단 <오케스트라 이음>
서로의 음이 쌓여 만든 짜릿함
“연주자로 홀로 빛날 수도 있지만, 함께했을 때의 감동과 쾌감을 잊을 수 없더라고요.
이음 활동을 통해 앙상블 속에서 빛날 수 있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됐어요.”
(국립국악관현악단 인턴 단원 김다현)

2021년 ‘오케스트라 이음’ 1기로 활동한 김다현(해금). 국립국악관현악단과의 만남은 그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기억은 선명했다. “잘 갖춰진 시스템 안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자유롭게 음악하는 분위기가 너무나 좋았다”라고 한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그는 “한 달의 시간이 찰나의 순간처럼 느껴질 만큼 아쉬웠다”라고 밝혔다. 여름날 함께한 ‘성장의 기억’은 그를 국립국악관현악단으로 돌아오게 했다. 김다현은 올해 악단의 인턴 단원이 됐다.
“그때의 경험이 이어져 악단의 한 부분으로 더 큰 풀에서 호흡을 맞출 수 있게 된 것이 제겐 너무나 특별하게 느껴져요.” (김다현)
올해도 오케스트라 이음이 돌아왔다. 어느덧 3년 차. ‘가치 만드는 국립극장’의 일환으로 진행 중인 <2023 오케스트라 이음>은 국악관현악단 연주자를 꿈꾸는 청년 음악인을 발굴, 육성한다. 일찌감치 입소문이 났다. 올해 경쟁률은 2.5대 1. ‘이음’을 거쳐 간 단원들도 고향을 찾듯 이곳을 다시 두드린다. 3회차 오케스트라에 2번 이상 참여한 단원이 16명이나 된다.

여미순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직무대리는 “영상 오디션을 통해 파트별로 심사했다”라며 “실력 우선주의로 뽑되, 학교별로 골고루 선발할 수 있도록 했다”라고 말했다. 엄격하게 선발한 미래세대 음악가 60여 명은 이음과 함께 ‘내일의 비전’을 써 내려가고 있다.

미리보기 버전의 심화학교

‘오케스트라 이음’은 일종의 국악관현악 사관학교다. 이것만으로 온전한 커리큘럼이다. 과정으로 치면 ‘국악관현악 심화반’쯤 된다. 지난 7월부터 두 달간 진행한 프로그램이 알차다. 잘못된 신체 사용으로 야기된 통증 극복을 위한 신체 훈련 워크숍(알렉산더 테크닉)은 물론 악단의 지도단원들과 함께하는 수업을 통해 국악관현악의 모든 것을 배운다. 국악 전공자에게 ‘꿈의 직장’으로 꼽히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미리보기 버전’이기도 하다.
강주희(피리) 지도단원은 “1회 때만 해도 악보를 읽는 작업이 주를 이뤘는데 회를 거듭하며 파트별 수업을 통해 음악에 대한 해석을 강화했고, 이제는 합주로 나아가기 위해 친밀감을 높이는 훈련 프로그램까지 마련했다”라고 말했다. <2023 오케스트라 이음>의 특별한 점은 국립국악관현악의 레퍼토리를 고스란히 소화한다는 점이다. 여 감독은 “오케스트라 이음은 우리가 가진 노하우, 다른 무대에서 연주하는 곡이 아닌, 위촉 초연한 우리만의 곡으로 후배를 위해 재능 기부를 한다는 소명 의식을 가지고 기획됐다”라고 말했다. 학교에선 접하기 어려운 수준 높은 레퍼토리를 공부하고, 연주자로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올해는 홍민웅 작곡가의 ‘화류동풍’, 도널드 워맥의 ‘서광’, 최성환의 ‘아리랑 환상곡’, 김대성의 통일을 위한 ‘반달 환상곡’, 박범훈의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가기게’에 도전한다. 여 감독은 “어려울지라도, 이를 통해 음악적 표현과 악상에 대해 마스터할 수 있는 곡을 숙고해 골랐다”라며 “특히 올 초 신작인 ‘가기게’처럼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 같은 신선함을 만날 수 있는 곡으로 선별했다”라고 귀띔했다.

각각의 곡은 다양한 연주 형태를 마주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악단의 하모니를 느낄 수 있는 ‘아리랑’, ‘악보 그대로’ 표현해야 하는 ‘서광’, 우리의 전통과 구음을 같이 들려주며 하나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가기게’ 등으로 균형을 맞췄다. 오케스트라 이음 단원은 이 곡을 두 달간 갈고닦은 뒤, 관객과 만난다.(9월 9일, 해오름극장)
“이음을 거쳐간 이들은 우리 악단만의 우수 레퍼토리를 경험하며 음악적으로 성장하고, 관현악이 이런 것이라는 점을 체감하게 돼요. 이 과정을 통해 오케스트라 이음의 멤버였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여미순, 강주희)

선배·일타 강사·상담사·의사…‘1인 4역’의 멘토

국립국악단관현악단 지도단원들은 이 과정에서 1인 4역을 해낸다. 같은 길을 앞서 걸어간 선배이자, 정답 노트를 적어주는 일타 강사이며, ‘진로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사이자 ‘직업병’을 고쳐주는 의사가 되기도 한다.
음악적 역량 강화를 위한 수업은 기본이다. 국악관현악은 서양의 오케스트라와는 다르다. 악단의 큰 틀을 만들고 이끄는 것은 지휘자이나, 국악관현악은 각 파트 단원의 역량이 중요하다. 박경민·강주희 지도단원은 “배우가 연기하기 전 캐릭터를 연구하는 것처럼 작곡가의 의도와 해석을 먼저 분석해 곡에 대한 큰 틀을 잡은 뒤 세부적인 그림을 그린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악보가 담지 못한 민속악적 표현을 비롯해 하나의 음으로도 수십 가지의 소리를 내는 복잡다단한 음악의 세계를 콕콕 집어 설명해 준다.
“악보에선 보이지 않는 이면의 해석을 파악하는 과정을 가져요. 그 배움이 관현악을 연주할 때뿐만 아니라, 다른 창작곡을 연주할 때도 적용돼 연주자로 성장할 기회를 만들어요.” (강주희)
저마다의 언어를 가지면서도, 통일된 소리를 만들어가는 지도단원의 ‘관현악 레슨’은 자타 공인 ‘톱 클래스’다. 여 감독은 “어디에도 없는 커리큘럼의 관현악 레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대학의 한 과목으로 있어도 될 만큼 소중한 수업”이라며 자부심을 내비쳤다.

오케스트라 이음에선 음악 너머의 것도 함께 배우고 나눈다. “악보를 보는 것부터 연주자로서의 태도와 몸짓, 걸음걸이와 눈빛 하나, 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르는 모든 것”을 전한다. 박경민 단원은 때때로 ‘명의’로 변신한다. 가끔 점쟁이 같기도 하다. 대금을 든 자세만 봐도 어딘가 아픈지 간파하기 때문이다. 그는 “악기를 들었을 때 어느 한 사람이 어깨가 들리거나 내려가 비주얼적으로 틀어져 있으면 음악적으로 불안정하게 느껴진다”라며 “자세부터 트레이닝하면 음악도 나아진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된다”라고 말했다.
국악관현악을 연주하며 배우는 가장 큰 가치는 ‘조화’다. 함께 호흡하며 소리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나를 양보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법을 알게 된다.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하나가 되는 법”(강주희)을 깨우쳐 나간다. 박경민 단원은 “오케스트라 이음에 모인 학생은 모두 개인 기량이 뛰어나다”라며 “그 안에서 나의 소리를 죽이고 누군가를 뒷받침하는 방법과 호흡을 배우며 음악으로 소통하는 즐거움을 만나게 된다”라고 했다. 단원에게도 깊이 와닿는 가르침이다. 이음 1기 출신 김다현은 “처음 만난 단원과 서로 소리를 맞춰가야 하는 점이 새삼 인상적이었다”라며 “합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의견을 나누고, 서로 배울 점도 찾으며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라고 했다.

<2022 오케스트라 이음>

선순환 만든 이음의 가치…‘함께 꾸는 꿈’

해마다 무수히 많은 국악 전공자가 쏟아지지만, 이들을 품어낼 환경은 빈약하다. 지역마다 악단은 존재하나, 신입 단원을 뽑는 곳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 이음은 ‘직업훈련소’처럼 경쟁력 있는 연주자를 키워냈다.
1994~2004년생까지, 꿈을 꾸면서도 ‘불안한 미래’의 청춘들이 이곳에서 길을 찾았다. “음표를 읽는 것은 물론 삶과 음악에 대한 코칭”(박경민)을 하는 든든한 멘토와 함께다. ‘같이 만드는 음악’을 통해 마주한 짜릿한 감동은 저마다의 내일에 확신을 새겼다.
여 감독은 “10여 분짜리 국악관현악을 연주하는 동안 잠깐 튀는 나의 파트는 몇십 초뿐이지만, 서로의 음이 쌓이면서 다가오는 감동은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다”라고 했다. 그 감정이 오케스트라 이음을 거친 단원에게도 뿌리내려, 오케스트라 이음 1기 출신의 다수는 각 지역 국악관현악단에 입단해 연주자의 길을 가고 있다. 이음을 거쳐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인턴 단원으로 지원해 합격한 참가자도 5명이나 된다.
“지도단원들이 국악관현악에 대한 노하우를 아낌없이 내주고, 수준 높은 곡들을 배워 훌륭히 소화해 낸 단원들이 만든 결과라고 봐요. 미래의 음악가를 발굴해 육성하고, 다시 우리의 연주자로 받아들이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는 거죠.” (여미순)

오케스트라 이음을 거쳐 간 학생에게도 이 경험이 값지다. 이음을 거쳐 국립국악관현악단 인턴 단원이 된 송송이(피리)는 “단체 소속이 아니면 연주 기회가 흔치 않은 관현악을 연주하면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것이 큰 도움이 됐다”라고 말했다. 짧지만 굵게 이뤄지는 촘촘한 교육과정을 거치니 악단에 적응하는 시간도 절약된다. 김다현은 “오케스트라 이음에서 경험한 곡을 인턴 생활을 하면서 다시 만나니, 2년 전 나의 연주와 지금의 연주를 비교할 수 있고, 한 단계 더 깊은 고민을 하면서 연주할 수 있게 됐다”라고 했다.
오케스트라 이음이 그리는 미래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여 감독은 “10회 정도 유지되면,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력과 견줄 만한 오케스트라 이음이 나올 것”이라는 청사진을 그리기도 했다.
“국악관현악은 잘 차려진 한정식이에요. 정성스럽게 만든 여러 음식을 입안에 넣어 조물조물 씹어야 그 맛을 알죠. 오케스트라 이음을 통해 미래세대 음악가에게 관현악이 좋은 음악이라는 경험을 만들어주고자 했어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보유한 고급 인력의 멘토링이 자라나는 새싹에게 이어져 한정식에 대한 그리움이 생기듯 국악관현악을 그리워하고, 훌륭한 연주자로 나아가면 좋겠어요.” (여미순)

글. 고승희 헤럴드경제 문화부 기자.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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