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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SPAF 샤요 국립무용극장 <익스트림 바디>
치밀하게 감각하는 극한의 신체
2021년에 초연한 후 현재까지 프랑스 전역 및 영국·독일·스페인·이탈리아 등에서 공연된 작품이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다. ‘경계 없는 질문들’이라는 슬로건 아래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해외 초청 프로그램으로 소개될 예정(10월 6~7일)이다.

현대무용 안무가이자 프랑스 샤요 국립무용극장 예술감독이기도 한 라시드 우람단Rachid Ouramdane의 <익스트림 바디>는 고공 줄타기, 암벽등반, 신체 곡예 등 자신의 신체를 극단적 방식으로 공중에 내던지는 사람들과 그들이 이루는 세계를 시적으로 은유한다. 이 작품은 자칫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 이들의 행위가 과감성보다는 치밀한 섬세함에서 비롯된다는 점, 이들을 더 높은 곳으로 견인하는 것이 다름 아닌 두려움과 유약함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며 이 극한의 신체가 놓인 생의 한가운데로 관객을 초대한다.

안무가 라시드 우람단

춤 너머에서 안무가 되는 몸

안무가 라시드 우람단은 다양한 방식으로 무용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안무의 지평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대표적 예술가 중 한 사람이다. 그에게 안무란 단순히 춤 동작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춤 너머에서 자신의 존재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자의 움직임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와 시선을 결정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의 초기작부터 최근 작품에 이르기까지, 라시드는 무용수·배우·뮤지션과 같은 전문 예술인뿐만 아니라, 복싱 챔피언(<De Arbitre à Zébra>, 2001), 청소년(<Surface de réparation>, 2007), 고문 피해자(<Des témoins ordinaires>, 2009), 기후재난 이주민(<Sfumato>, 2012), 난민 아동(<Franchir la nuit>, 2018), 곡예사(<Möbius>, 2019)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인물들을 조명해 왔고, 실제 인물을 무대 위에 올려 오로지 그 몸을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는 움직임을 바라보게 만들곤 했다. 그 몸이 발생시키는 움직임을 통해 그들이 속한 사회와 직면한 상황, 그들 스스로 선택했거나 혹은 그들이 받아들인 삶의 방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렇듯 그는 한 세계를 응시함으로써 안무의 경계를 유연하게 확장하고 이동시키는 창작 작업을 지속해 왔다.

안무가의 앞선 작품 중 다수가 사회적·정치적 이슈와 강력하게 결부된 존재를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면, <익스트림 바디>는 ‘공중’이라는 비일상적 공간에서 생을 다른 방식으로 감각하는 존재를 관객 앞에 세운다. 땅이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는 절벽 사이에 줄을 매달아 걸고 그 위를 걷는 하이라이너Highliner나, 바위에 파인 작은 홈에 손을 끼워가며 높은 암벽을 오르는 클라이머, 두세 사람이 일렬로 탑을 쌓은 어깨 위에서 점프를 해 공중에서 몸을 여러 번 회전시키는 아크로바트 등 이 작품의 출연자들은 땅에서 발을 떼어내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몸을 더 높은 곳에 놓을수록, 더 오래 버텨낼수록, 더 어려운 동작을 수행할수록, 그리고 불가능에 가까워질수록 자기 존재의 유일성을 획득해 낸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 혹은 서커스를 하는 사람들이 자기 존재를 명확히 드러내기 위해 죽음의 위험을 감수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이들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을 정확하고 예민하게 컨트롤함으로써 위험으로부터, 특히 죽음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낸다. 죽음을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맹렬하게 삶을 향해 몸을 던진다. 라시드는 대범함과 과감함을 상징하던 신체가 실은 극도로 섬세한 감각을 사용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이번에는 안무의 경계를 공중으로 높이 밀어 올린다.

극장 허공에 펼쳐진 세계와 삶을 증언하는 목소리들

<익스트림 바디>는 극장의 무대 위로 허공의 세계를 옮겨온다. 하얀 무대 벽면에는 클라이밍 홀드가 가득 설치되어 있고, 그 벽면 앞 공중에는 줄 하나가 길게 무대를 가로질러 걸려 있다. 벽을 오르고, 줄을 타고, 공중에서 솟아올랐다가 회전하며 내려오는 사람들을 바라보기 위해 관객은 평소보다 더 높이 시선을 들어올려야 한다. 그럼에도 극장의 높이는 제한적이므로 실제로 이 ‘익스트림 바디’가 위치하는 곳을 상상하기는 역부족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안무가는 이들의 실제 무대인 산등성이나 절벽 위, 암벽의 이미지를 종종 무대 위 벽면에 투사한다. 이 영상들과 함께 극장은 한순간에 숲이 되고, 절벽이 된다. 그리고 관객은 어느새 극장 너머의 공간으로 자신을 이동시킨다.

공연의 첫 장면은 하이라이너인 나단 폴랭Nathan Paulin이 멀리 산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는 모습이 담긴 영상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내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제게 줄을 탄다는 건 마치 비행을 하는 것과도 같아요. 바람에 흔들리는 가느다란 줄 위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백 퍼센트로 주의를 기울여야 하죠.” 이어지는 나단의 이야기는 더욱 놀라운 발견을 하게 만든다. 일종의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은 순간을 살아내기 위해 자신을 둘러싼 공기의 질감이나 바람의 세기,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의 신체 또한 섬세하게 변화시킬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더불어 익스트림 스포츠를 하는 사람들은 겁이 없다는 식의 통속적인 인식을 역전시킨다. 자신이 올라선 곳의 환경을 민감하게 감각하는 것, 자신 스스로를 온전히 다스리는 데에 가장 크게 기인하는 것이 다름 아닌 두려움이라고 고백하기 때문이다. 세찬 바람에 몸을 기대어 앞으로 한 발씩 나아가는 나단의 모습이 찍힌 영상 앞으로, 실제 나단이 무대 위 줄을 걷기 시작한다. 이제 관객은 나단이 두려움을 딛고 드높은 곳에 선 모습을, 한계를 넘어 나아가는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뒤이어 등장하는 여성 곡예사는 다른 이의 몸을 딛고 설 때 느끼는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를 직면한 순간을 고백하고, 클라이밍 챔피언인 니나 카프레즈Nina Caprez는 공포를 여러 층위로 나누고, 그것들을 잘 컨트롤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을 살아 나갈 힘을 얻는다고 증언한다.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집중력을 발휘하고,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것들을 치밀하게 감각하며 균형을 잡는다는 이들의 이야기는 어느새 우리 삶을 은유한다. 무대 위, 줄에 올라섰던 나단과 벽을 오르던 니나, 서로의 몸을 들어 올려주던 아크로바트 등 여덟 명의 몸이 서로를 향한다. 상공과 암벽 위, 땅 위에 있던 이 존재들은 서로 손을 잡고 한 세계를 이루며 시적인 움직임을 그려낸다. 이들이 보여주는 움직임이 우리 삶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이 극한의 신체를 통해 우리 삶을 반추하게 된다는 점에서 깊은 위안을 얻는다.

“한계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나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라고 말하는 나단처럼, 라시드 또한 무용의 경계나 한계를 부러 지목하거나 정의 내리지 않는다. 무용은 자신의 한계나 경계가 어딘지도 모른 채 그곳을 넘나든다. 그저 선연히 한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을 그려낼 뿐인 것이다.

지난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라시드 우람단이 곡예 단체인 컴퍼니XY와 협업한 작품 <뫼비우스>를 초청한 바 있다. 라시드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몸을 넘어 서로의 몸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서커스 기예자들을 만났고, 이를 계기로 <익스트림 바디>를 구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익스트림 스포츠는 앞으로 한동안 그의 창작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리옹오페라발레단과 스위스 제네바발레단의 의뢰를 받은 작품에도 아크로바트, 익스트림 스포츠 선수들이 함께하고, 현재도 이를 심화시킨 형태의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기도 하다. 어쩌면 <익스트림 바디>는 그에게 그저 시작에 불과한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글. 박다솔 평론·드라마투르그·번역·기록작가로 예술 현장에서 활동하며, 연극·무용·서커스·거리예술 등에 관해 쓰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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