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을
주는 곳

의정부 미술도서관&음악도서관
감각으로 탐미耽美하는 공간
“아름답다.” 우리는 마음이 동하는 예술(적인 무엇)을 마주할 때면 감탄해 이렇게 말한다.
‘아름답다’란 말의 어원 중에는 ‘나답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탐미耽美란 곧 나의 취향을 알아가고,
나다움을 만들어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 아름다운 공간 두 곳을 소개한다.
미술과 음악. 예술로 가득한 공간을 거닐며 만나게 될 ‘나’는 어떤 모습일까.

시선을 사로잡는 감각의 향연
의정부미술도서관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두 눈에 밀려드는 풍경에 와 하고 잠시 멈춰 섰다. 건물 천장 끝까지 시원하게 트인 로비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창문, 쏟아지는 햇살, 팔레트처럼 새하얀 공간을 물들인 색색의 책들. 미술도서관의 첫인상은 그러했다.
의정부미술도서관은 국내 최초의 미술 전문 공공도서관으로, 2019년 개관한 이래 이제는 어엿한 지역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건축·사진·회화·시·만화 등 9천여 권의 예술 관련 국내 도서와 3천여 권의 해외 도서 소장, 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 관장 및 하와이 호놀룰루미술관을 비롯한 개인 및 단체가 기증한 6천여 권의 자료에 이르기까지 온갖 미술·예술 도서를 이곳에서 볼 수 있다. 1층은 국내외 예술 자료를 모아둔 ‘아트그라운드Art Ground’, 2층은 어린이 및 모든 계층을 아우르는 컬렉션을 갖춘 ‘제너럴그라운드General Ground’, 3층은 기증 존과 입주 작가의 창작 행위를 엿볼 수 있는 오픈스튜디오, 그 밖에 강연·체험·전시공간으로 두루 활용할 수 있는 ‘멀티그라운드Multi Ground’로 구성되어 있다.

아트그라운드 입구에는 거대한 책 한 권이 방문객을 맞이하는데, 바로 이곳의 대표 희귀 소장품인 ‘호크니 빅북Hockney: A Bigger Book’이다. 영국의 현대미술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한정판 에디션으로, 전 세계에 오직 9천 부만 제작된 작품이다. 이 밖에도 국내외 전시 도록을 비롯해 고화질 컬러 인쇄본으로 만나는 예술 작품은 책장을 넘기는 내내 눈을 즐겁게 한다. 도서관이라면 흔히 열 맞춰 도열한 책장에 책이 빽빽하게 꽂혀 있는 광경을 떠올릴 수 있는데, 이곳의 1, 2층 공간은 기존의 열람실 구조에서 벗어나 책 표지가 보이는 정면 서가를 놓았다. 책을 마치 작품처럼 전시했다는 인상을 주면서 책등만 보이던 기존 배치 방식보다도 훨씬 더 책에 눈길을 가게 한다.
누군가 원형 계단에 서서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도서관을 둘러보는 동안 이처럼 로비를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는 사람이 심심찮게 보였다. 미술도서관은 아름다운 공간 설계로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테이블과 의자를 중심으로 책장이 회오리치듯 둘러쳐져 있는 1층 공간은 SNS에 ‘의정부미술도서관’을 검색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대표 이미지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벽과 칸막이를 최소로 사용하고 곡선미와 개방감을 살린 오픈 스페이스Open Space 구조가 특징이다. 책을 보는 공간도 저마다 특색이 있다. 책장 사이에서 홀로, 창가 자리의 테이블에 둘러앉아, 또는 여럿이 함께 쓰는 바 형식의 자리 등 위치뿐만 아니라 의자의 생김새도 다양해 원하는 자리를 고르는 재미가 있다.
미술도서관은 연결·융합·성장·발상을 아이덴티티로 내세우는바, 이러한 방향성은 건축과 인테리어, 소장 자료 및 프로그램 등 도서관 운영 전반에 녹아들었다. 단절된 공간에서 한정된 독서 경험만을 제공하던 기존의 도서관에서 나아가, 우연한 만남과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영감이 샘솟는 열린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선율 타고 흐르는 감각의 확장
의정부음악도서관

우뚝 솟은 아파트 단지를 지나 나무가 울창한 산책로를 걷다 보니 음악도서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문을 통과하자 바깥의 더운 공기를 밀어내는 시원한 공기와 함께 뉴에이지 선율이 귓가를 스쳤다. 예상을 뒤엎는 이 아름다운 반전. 음악도서관은 미술도서관에 이은 의정부의 예술 전문 공공도서관으로 2021년 개관했다. 음악 관련 도서 1만 2천여 권을 비롯해 CD·LP·악보 등 비도서와 디지털 콘텐츠 1만 5천여 점 등 폭넓은 자료를 갖추고 있다. 특히 힙합, 재즈, 블루스, R&B 등과 같은 블랙 뮤직Black Music을 기본 테마로 설정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미군 부대가 있던 의정부시는 군사도시라는 국한된 이미지에서 탈피하고자, <블랙뮤직페스티벌>과 <의정부음악극축제>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등 음악적 문화 자산을 마련하는 데 힘써 왔다. 음악도서관은 이러한 의정부의 지역 정체성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이를 보여주듯 도서관 외벽과 내부 층계에는 화려한 그라피티가 그려져 있고, 페스티벌과 관련된 앨범을 큐레이션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녹음이 비치는 통창 앞 피아노와 이를 중심으로 경계 없이 펼쳐진 서가와 독서 공간. 이러한 오픈 스테이지Open Stage 구조는 평상시에는 책을 읽는 공간으로, 때로는 소규모 공연장으로 변모해 도서관에서의 공간 경험을 확장한다. 또한 한낮에도 은은한 조도를 유지하며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독서와 음악감상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1층이 누구나 음악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라면, 중층과 3층은 본격 음악 애호가를 위한 곳이다. 크게 A부터 G 섹션까지는 음악 장르, M 섹션은 악보로 구성되어 있고, 그 안에서 악기나 국가 등에 따라 더 상세하게 분류되어 있다. 국내 도서관은 도서 자료를 효율적으로 분류하기 위해 대개 ‘한국십진분류법’을 따르지만, 이곳에서 확보한 음악 자료를 정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이에 음악도서관은 분류표를 직접 개발해 지금의 방식으로 자료를 구분하게 되었다.
3층은 음악도서관의 하이라이트인 음악감상 공간이다. 아래층에서 흐르던 음악은 사라지고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복도를 지나 다다른 곳은 ‘뮤직홀’. 입구에 붙은 선곡표를 보니 미국의 뮤지컬 작곡가 콜 포터Cole Porter의 음악이었다. 누가 연주하는 걸까. 살짝 열린 문틈으로 들여다본 곳에는 피아노 건반이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 피아노는 바로 음악도서관의 명물로, 피아노의 대명사인 스타인웨이Steinway&Sons 제품이다. 밝고 화려한 음색과 더불어 자동 연주 기능까지 갖춰 억대 몸값을 자랑한다. 뮤직홀에서는 매일 1시간씩 피아노의 자동 연주와 더불어 공연을 열거나 음악영화를 상영하기도 한다.
곳곳엔 헤드폰을 쓰고 자기만의 음악 세계에 푹 빠진 모습의 사람들이 있었다. 음악도서관에서는 폭넓은 장르를 접할 수 있음은 물론 LP·CD·스트리밍 등 다양한 매체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고급 음향 장비로 양질의 음원을 감상할 수 있는 오디오룸과 작곡 작업을 위한 스튜디오가 마련되어 있으며, 음반과 악보도 대여 가능하다. ‘음악’이라는 주제로 독서는 기본, 고품격 감상부터 창작에 이르기까지 입문자와 마니아를 두루 아우르는 공감각적 체험을 제공한다.
도서관에서 산책을 한다면 이상할까. 광활한 공간 내에서 당장 무엇이 내게 맞는지 찾지 못한다면 어떤가. 그저 찬찬히 거닐며 이곳을 관찰하는 거다. 어느 틈엔가 느슨해진 마음결에 한 문장, 한 점, 한 곡 혹은 한 장면이 스며들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켜켜이 쌓이면 그 또한 아름다울 테다.

의정부시도서관 바로가기 https://www.uilib.go.kr
취재. 편집부 사진. 김성재 SSSAUN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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