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국립창극단 <심청가>
소리로 그리는 감동-창극
2023년 9월 국립창극단의 창극 <심청가>가 돌아온다.
9월 26일부터 10월 1일까지 추석 연휴 동안 관객에게 감동과 힐링을 선사해 줄 채비를 하고 있다.

<심청가>는 2018년 4월 초연하고 2019년 6월 재연된 작품으로, 판소리의 음악적 매력을 잘 드러낸 명품 창극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지난 몇 년간 다양한 실험적 작품과 해외 원작의 번안 창극을 선보이던 국립창극단이 다시 전통 창극의 미학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으로 재공연 무대를 마련한다. 올해는 4년 동안 더욱 깊어진 소리와 연기가 더욱 큰 감동을 전해주리라 생각된다.

판소리의 온전한 감동

연출은 맡은 손진책은 전통극을 기반으로 한 연극과 마당놀이, 창극 등을 만들어온 우리나라 대표 연출가다. 그간 그가 만든 마당놀이 작품이 세대를 넘어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우리 민족의 신명과 흥을 극적으로 완벽히 소화해 냈기 때문이다. 전통을 넘어 현대를 창조하는 탁월한 역량을 가진 연출가이기에 그가 연출한 작품은 믿고 보게 되는 힘이 있다. 하지만 이 <심청가>는 그간 그의 연출과는 달리 전통 판소리의 힘으로 끌고 가는, 매우 특별한 창극으로 기억된다. 창극의 본질이 음악의 힘에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심청가>에서는 판소리가 주는 묵직한 감동과 매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작창을 맡은 안숙선 명창은 지난해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이 시대 명창으로 꼽힌다. 국립창극단원으로 활동하며 최다 완창 기록을 세우기도 했으며, 판소리 다섯 바탕을 모두 섭렵한 국창이다. 이번 <심청가>는 안숙선 명창이 사사한 강산제 심청가를 바탕으로 하며, 5~6시간 분량의 ‘심청가’를 2시간여의 창극으로 압축시키면서도 소리를 따라 서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특징이다.

  • 연출 손진책
  • 작창 안숙선

명배우의 성장

창극이 판소리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진 음악극인 만큼 가장 중요한 요건 중 하나가 단원이 지닌 판소리 기량이다. 판소리는 수십 년간 공력을 쌓아야 명창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고도의 전문 예술이므로 그간 창극의 주인공들은 소리 실력을 남김없이 보여주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는 젊은 소리꾼보다는 연륜 있는 중견 명창이 춘향이나 심청 역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창극 <심청가>에서는 젊은 소리꾼에게 주인공을 맡김으로써 창극의 미래를 다진다. 창극 <심청가>도 이와 맥을 같이하는 작품이다. 초연에 이어 이번 캐스팅 역시 어린 심청은 민은경, 황후 심청은 이소연, 심봉사는 유태평양이 소화한다. 이는 배우들의 성장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심봉사 역을 맡은 유태평양은 극 중 심봉사의 처절한 심정을 절묘하게 표현함으로써 연기와 소리가 혼연일체가 되는 명배우의 자질을 보여준바, 올해도 몰입감 있는 연기를 펼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어린 심청 역을 맡은 민은경은 작은 체구지만 다부진 소리를 뿜어내면서 소리에 빠져들게 한다. 특히 어린 심청이 연기하는 대목은 인당수 빠지는 대목과 같이 비극적인 소리 대목이 많기 때문에 심청의 슬픔을 함께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도창은 판소리가 무대 위의 극으로 전환될 때 등장인물이 소화하지 못하는 지문과 해설을 소리로 전달해 주는 배우를 말한다. 올해는 안숙선과 유수정의 뒤를 이어 김금미 명창이 도창으로 극을 이끌어간다. 창극 <심청가>에서는 도창의 역할이 매우 크다. 배경이나 인물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서 배우가 일일이 설명하지 못하는 사건·사고·심정 등을 이리저리 넘나들며 도창이 해결하기 때문. 도창자는 극 중 그림자처럼 전지적으로 극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도창자의 존재는 판소리로부터 파생된 창극이 갖는 고유한 특성에서 비롯된다. 인물이 소화할 수 있는 대목이 있는가 하면, 서사의 시작과 끝에서 내레이션으로 표현되는 중요한 소리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창극에서 도창자의 소리를 주역의 소리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긴다. 도창으로 출연하는 김금미의 소리를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하지만 창극은 조역들의 활약이 있어야만 비로소 완성된다. 초연부터 함께해 온 국립창극단원이 빚어내는 합창과 연기, 서로 합을 맞추며 만들어가는 수많은 무대를 빼놓을 수 없다. 인당수로 가는 동안 배 위의 정경을 만들어내는 선원의 모습, 심봉사와 함께 방아타령을 부르며 활기차게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아낙네들, 심황후와 심봉사의 해후를 축하하며 함께 눈을 뜨는 맹인 잔치 광경에서 배우들은 일사불란하게 무대를 장악하고 소리에 연기를 더한다. 미니멀한 무대를 이리 놓고 저리 놓으며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들의 활약상을 눈여겨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심청과 심봉사의 인생에 박수 보내며

우리가 익히 아는 ‘심청가’ 스토리는 창극을 통해 다시 우리 인생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그것은 심봉사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심청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심봉사로 말할 것 같으면 착한 아내 덕에 편히 살다 자식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결국 아내를 산후병으로 잃고, 이제 좀 살 만해지니 다시 눈을 뜨고 싶은 욕심으로 딸을 잃는 욕망의 존재다. 좌절과 실패, 슬픔 속에서도 주어진 목숨을 살다 보면 웃을 일이 생기고, 행복한 결말도 보게 되니 결코 낙심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만 같다.
심청은 세속적인 심봉사에 비하면 너무도 고고하고 신성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비극적 존재다. 제물이 되는 심청의 마음 자체가 과거의 업보를 씻는 해결의 열쇠가 되므로 이 비극은 예정된 운명이다. 심청이 먹은 마음, 곧 아버지 눈을 뜨게 하려는 효심은 개인적인 것을 넘어서 미약한 인간을 구원하는 데로 나아간다. 인당수에 빠짐으로써 신성하고 고귀한 존재로 비약飛躍하고, 황후가 돼 천하 맹인을 구원하는 존재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타적 공생 정신이 세상을 살린다는 메시지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심청가’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어렵고 고단한 현실, 심청과 같이 미약한 존재가 나랏님도 못 살리는 백성을 먹이고 치료했다고 노래 부르며, 함께 잘살아야 함을 역설한 것은 아닐까. 심청과 심봉사가 들려주는 소리에 울고 웃으며 곁에 있는 가족의 소중함과 이 사회의 나약함을 같이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한다.

글. 최혜진 고전문학과 판소리, 전통예술을 주전공으로 공부하고 있다. 현재 목원대학교 기초교양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판소리학회장, 문화재청 무형문화재 전문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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