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셀럽

소설가 정유정
장르의 경계를 허물다
작가로 활동하기 전 간호사로 5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직원으로 9년 근무했지만, 그는 결국 어린 시절 꿈이었던 소설가가 되었다. 2007년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괴물처럼 등장한 정유정 작가는 그 후 출간하는 책마다 큰 인기를 끌며 ‘정유정 신드롬’을 일으켰다.
정유정 작가 ⓒ안상미

최선을 다해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던 그는 『내 심장을 쏴라』(2009), 『7년의 밤』(2011), 『28』(2013) 등 여러 편의 소설을 썼고, 바람대로 많은 사랑을 받는 이야기꾼으로 자리매김했다. 『내 심장을 쏴라』는 2015년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이후 2018년, 『7년의 밤』도 영화화되었다. 영화화 당시 정유정 작가는 “영화는 소설과 완전히 다른 장르이기 때문에, 감독은 감독만의 예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작인 소설을 가지고 과연 어떤 이야기로 만들어낼지 궁금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 표지(왼쪽) ⓒ은행나무 , 뮤지컬 <종의 기원> 포스터(오른쪽). ⓒ뷰티풀웨이

12월, 『종의 기원』을 뮤지컬로 만나다

『7년의 밤』 영화화 이후 4년 만에 정유정 작가의 작품 『종의 기원』(2016)이 12월, 뮤지컬로 찾아온다. 『종의 기원』은 평범했던 한 청년이 살인자로 태어나는 과정을 그린 악인의 탄생기로, 미지의 세계가 아닌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어 독자를 매혹한 작품이라 뮤지컬이라는 장르에서 어떤 세계관을 가진 이야기로 탄생할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정유정 작가는 두 편의 영화처럼 이번 뮤지컬에도 작품화 과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정확하게 선을 그었다. 진행 과정에 대한 소식을 어깨너머로 듣거나 원작자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보내준 대본이나 극본을 받아보기도 했지만 작가 입장에서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다.
“이번 뮤지컬 <종의 기원> 대본도 극작가에 대한 경외와 존중의 마음으로 읽었어요. 마지막 부분의 여운이 길고 꽤 강렬했던 터라 원작 못지않은 독창적이고 멋진 작품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소설로 큰 인기를 얻어 뮤지컬로까지 재탄생되는 『종의 기원』을 집필하면서 꽤 많은 고비를 넘겼다고 했다. 작품을 이어 쓰는 게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고. “작품 속 유진이 성인이 된 후 첫 살인을 저지르는 부분이었어요. 오로지 쾌감을 위해 저지르는 첫 살인이자, 내면의 악이 점화되는 순간이죠. 그 순간의 심리와 감정이 어떤 것인지 상상하고 표현하기가 너무 막막해서 이 장면에만 일주일 이상의 시간이 걸렸어요. 폭우가 쏟아지는 밤, 급류가 흐르는 강변, 진홍빛 우산을 움켜쥐고 두려움에 떨면서 걷는 여자, 멀리서 울리는 술주정꾼의 노랫소리… 이 모든 것은 유진을 돌이킬 수 없는 순간으로 유혹하는 장치들입니다. ”
정유정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틀어서 『종의 기원』의 이 장면을 묘사하는 것이 가장 난도가 높은 작업이었다고 말한다. 책에서는 ‘국경을 넘었다’라는 문장으로 이 점화의 순간을 은유했다. 이어 정유정 작가는 “소설에선 극단적 상황으로 설정되었지만, 평범했던 사람의 일상에서도 의도치 않게, 혹은 원치 않게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 버리는 순간이 훅 닥쳐온다”면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선택 혹은 행동을 저질러 버릴 수도 있는 순간이자, 나 자신조차 존재하는 줄 몰랐던 내 안의 ‘나’가 튀어나오는 순간”이라고 덧붙인다.
우리 안에서 울리는 불안한 팡파르를 들으면서 이 장면을 봐주길 바란다는 정유정 작가의 말처럼, 아마도 뮤지컬 무대에서는 다양한 무대장치와 조명, 음악을 통해 관객의 몰입감을 극대화하지 않을까 싶다.

새벽, 고양이, 운동은 창작자로서의 루틴

작가마다 창작이 잘되는 환경은 다르다. 정유정 작가는 백색소음을 안 좋아할뿐더러 누군가 주위에 있으면 집중이 안 되기 때문에 주로 집에서 집필한다. 하지만 이런 예민함에도 예외는 있다. 그가 글을 쓰고 있으면 함께 사는 고양이들이 몰려와 발밑에 있거나, 노트북 뒤에 누워 방해를 하기도 한다. 소설 작업에 들어가면 루틴대로 생활하는데 새벽 3시에 일어나 이어폰을 꽂고 메탈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며 고양이와 놀아준다. 대략 새벽 4시부터 소설을 쓰고 아침을 먹은 후 12시 정도에 그날의 작업을 끝낸다. 그 시간에는 이야기의 진도가 잘 나가서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아침에 썼던 이야기를 고친다. 그리고 오후 5시쯤부터는 미련 없이 노트북을 덮고 운동을 하러 간다. 운동은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데 작가로서 체력이 없으면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2~3년씩 붙잡고 오래 글을 써야 하는 장편소설의 특성상 체력은 생명과도 같다. 그래서 정유정 작가는 기초체력을 다지기 위해 매일 2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고.
“저녁 8시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은 후 씻고 맥주 한잔을 마셔요. 그렇게 하루를 마감하는 거죠. 이 생활을 2년 이상 반복하면 소설이 나오고, 소설이 나오면 두세 달 정도 홍보를 하기 시작해요.” 정유정 작가는 데뷔하기 전부터 이 루틴을 고수했고, 지금까지 약 20년 동안 지켜오고 있다.

정유정 작가 ⓒ조용호

이야기와 세계를 일인칭으로 경험하게 하는 소설의 힘

어느 뇌과학자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이야기 예술(연극, 영화, 뮤지컬, 애니메이션 등) 중에서 인간의 뇌가 능동적으로 환각 모형을 구축하는 분야는 ‘문학’뿐이라고 한다. 그럼으로써 그 이야기와 세계를 일인칭으로 경험해 낸다. 단단한 이야기의 힘을 가진 작품이 어떤 식으로든 변화하면서 동시대와 교감하며 살아남는 이유다. 정유정 작가가 생각하는 문학이나 소설의 힘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작가뿐 아니라 독자 역시 이야기에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간여할 수 있는 상상력을 제공하고 자극하는 것, 문학의 힘은 바로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 양쪽 귀 사이에 걸린 둥근 물체, 흔히들 ‘머리’라고 부르는 내면의 우주에서부터 저 수억 광년 떨어진 광활한 우주 공간까지 생생하게 은유해 낼 수 있는 것도 문학뿐입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문학을 이야기 예술의 ‘가이아’라 믿고 있습니다.”

정유정 작가는 『완전한 행복』(2021) 출간 이후 틈틈이 국내 독자들과 만나고 해외 초청 행사를 다니면서 1년을 보냈다.
“이때가 가장 마음이 편안한 시간이죠. 준비 과정이 끝나고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막막해서 울고 싶어질 테지만요. 그래서 지금 이 시간을 온전히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어느덧 2022년의 마지막 달로 접어든 12월. 저마다의 공간에서 연말을 맞을 ‘월간 국립극장’ 독자분들에게 인사를 부탁했다.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 언제라고 기약할 순 없겠지만, 모쪼록 다시 만날 때까지 저를 잊지 마시고 기다려주세요! 사랑합니다.”
건강하고 다부진 미소로 새 소설을 안고 우리를 찾아올 정유정 작가를 기다린다.

글. 김호이 중학생 때부터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을 인터뷰하며 지금까지 4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현재 아주경제신문 객원기자와 인터뷰 전문 콘텐츠 회사 ‘김호이의 사람들’의 발로 뛰는 CEO로 활동하고 있으며 『인생은 호이처럼』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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