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선율

‘지지대’가 꼽은 황호준의 ‘이슬의 시간’
이슬의 첫 반짝임
“… 햇살이 아직 능선 너머에 머무를 무렵, 풀잎이 내어준 어깨에 조심스레 내려앉으니 비로소 모든 만물이 깨어날 준비를 시작한다…” 황호준 작곡가의 ‘이슬의 시간’ 악보 첫 장에 적혀 있는 글귀다. 밤을 지나며 생겨난 작은 이슬에 주목하는 이 음악은 ‘지지대(홍지혜·신지희·김대곤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부르는 애칭)’가 처음으로 무대에 오른 각별한 순간을 함께한 곡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원 김대곤(대금), 홍지혜(피리·생황), 신지희(거문고)

오늘 소개해 주실 곡은 황호준 작곡가의 국악관현악 ‘이슬의 시간’입니다. 어떤 곡인가요?

홍지혜 제목처럼 이슬이 맺히는 모든 과정을 세심히 표현하는 곡이에요. 새벽녘의 분위기와 나뭇잎에 맺힌 이슬, 그리고 서서히 밝아오는 해와 함께 사라지는 그 찰나의 시간을 곡으로 담으셨다고 들었어요. 서사시처럼 다가오는 음악이에요.
신지희 맞아요. 저는 ‘이슬의 시간’이 국악관현악으로 서정성과 아름다움을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곡이라고 생각해요. 정적인 음악이 가진 매력, 그리고 국악관현악만의 결을 살리는 음악이에요. 편성도 최대한 특수악기를 배제하거나 최소화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김대곤 지난달에 소개한 ‘청산’이 저희가 각자 서로 좋아해 온 관현악곡이라면, ‘이슬의 시간’은 지지대로서 함께 연습하고 무대에 올린 첫 곡이에요. 입단 후에 처음으로 함께 연주한 곡 중 하나라 저희에게도 의미가 있어요. 또 기승전결이나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흐름도 좋은 곡이에요.

지지대가 중요한 찰나라고 여기는 77부터 81마디 총보

곡이 묘사하는 이슬의 시간처럼, 중요한 찰나라고 느낀 부분은 어디였나요?

신지희 저희가 ‘중요한 찰나’라고 생각한 부분은 마디 77부터 81까지인데, 여기를 기점으로 정말 만물이 깨어나는 것 같아요.
홍지혜 앞부분에서는 이슬이 맺혀가는 과정이 서정적으로 그려진다면, 여기서는 대금 솔로로 이슬이 맺히는 순간을 그리고, 다음에 이슬이 활동하는 듯한 부분이 굿거리·자진모리장단으로 연주돼요.
김대곤 그 흐름을 무대연출로 보여준 적도 있어요. 국립국악관현악단 <소소 음악회>에서 이 곡을 연주할 때, 초반에는 조명의 밝기가 새벽처럼 어두웠다가 점점 밝기를 높여 새벽부터 아침이 되는 과정을 멋있게 표현했어요.

혼란스럽게 몰아치다가 메인 선율이 연주되는 부분 총보

이슬이 맺히는 순간 말고도 또 인상적이었던 곳이 있을까요?

김대곤 후반부에, 박자가 혼란스럽게 몰아치다가 메인 멜로디가 연주되는 클라이맥스 부분이 있어요.
신지희 악보에 쓰인 시를 보면 서로 다른 두 세상이 이어진다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가 딱 그 부분이지 않을까 싶어요. 혼란스러움이 이어지다가 여기서 다 같이 연주하거든요.
홍지혜 주제 멜로디가 앞부분에서 조금씩 나오다가 다 같이 완전히 등장하는 게 딱 이 부분이에요. 태평소도 같이요. 그래서 더더욱 감성적으로 다가오죠.

잠들 듯, 피아니시모로 작게 연주하는 부분의 각 파트보 (왼쪽부터 피리·대금·거문고)

각 악기군을 연주하면서 특별히 와닿은 부분이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홍지혜 곡이 감성적인 멜로디 중심이다 보니 피리 파트도 포근한 톤으로 연주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중에서도 마지막에 정말 잠들 듯이 피아니시모로 연주한 부분이 있는데, 소리를 숨으로, 공기로 채워 넣는 듯한 느낌이어서 개인적으로는 여기가 제일 인상 깊어요.
김대곤 저는 그 부분에서 잠들 듯이 연주하는 걸 아니까, 앞에서 좀 더 극적으로 연주하고 점점 작게 연주했어요. 이 부분은 마음으로 울면서, 최대한 감정을 끌어내며 연주해요.
신지희 거문고와 해금, 소아쟁이 같은 선율을 연주하는 부분이 있어요. 이 곡에서 거문고는 대체로 눈에 띄는 선율을 연주하기보다는 베이스 역할을 많이 하지만, 이 부분에서만큼은 감성을 자극하는 선율을 들려줘요.

지난달에 소개해 주신 ‘청산’이 고전이었다면, ‘이슬의 시간’은 어떤 곡일까요?

신지희 서정적인 멜로디가 주를 이루고, 작곡가의 이야기를 덧대서 만든 곡이다 보니 스토리가 있어서 대중이 접하기 편한 국악관현악곡이지 않나 싶어요.
홍지혜 감수성이 풍부하고 멜로디가 들리는 음악, 공감되는 음악이 레퍼토리로 자리를 잘 잡아가는 것 같아요.
김대곤 실험적인 곡을 연주하면 재미도 있고 정말 좋지만, 이렇게 마음으로 연주하게 되는 곡이 오래 남는 것 같아요.
홍지혜 ‘청산’이 고전이라면 ‘이슬의 시간’은 낭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세 분께서 생각하는 국악관현악의 멋은 무엇인가요?

김대곤 장단이야말로 서양 관현악과 국악관현악의 차이를 보여주는 부분 같아요. 단순히 박자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특유의 강약이 있고, 또 3+2+3+2박이 혼합된 10박 형태처럼 많이 나오거든요. 그런 게 확실히 국악관현악에서만 즐길 수 있는 부분이지 않을까 싶어요.
홍지혜 저도 완벽하게 동의해요. 현대음악에서 리듬을 복잡하게 꼬아서 작곡한 곡도 많지만, 국악관현악처럼 장단을 다채롭게 쓰는 곡은 드물어요. 또 저희가 박자를 잘 세잖아요. 13/16, 7/16 이런 것처럼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장단을 들려주는 게 진짜 국악관현악만의 매력인 것 같아요.
신지희 저도 딱 하고 싶던 말이었어요. (웃음) 또 국악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보통은 단재비가 많잖아요. 하지만 국악관현악에는 그런 풍류 음악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웅장함이 있어요. 수많은 연주가가 무대 위에서 함께 쏟아내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고요.

국립국악관현악단원 김대곤
국립국악관현악단원 홍지혜·신지희

관객으로서도 말씀해 주신 내용에 공감이 됩니다. 입단 2년 차 단원으로서,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미래에 어떤 기대를 걸고 계신가요?

김대곤 저희가 들어왔으니 잘되지 않을까요? (웃음) 지지대가 앞으로 좋은 활약을 했으면 좋겠어요.
신지희 저도요. 요즘은 여러 매체에서 국악 스타가 많이 배출되고 있잖아요. 국립창극단에서도 이미 스타들이 많이 생겼죠. 그래서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도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인물이 나와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여러모로 국악에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데 이 흐름을 잘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홍지혜 맞아요. 그리고 저희가 서로 이렇게 지지하면서 잘 활동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K컬처가 굉장히 유행인데, 그 흐름에 힘입어 국악관현악도 대중의 이목을 끌었으면 좋겠어요. 마니아층이 더 생기면 좋겠고요.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김대곤 앞으로 긴 시간을 함께할 텐데,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홍지혜 더불어 초심을 잃지 않고, 연주자로서 서로 채찍질하면서 가야죠. 저희 모두 좋은 중견 연주자가 될 수 있도록요.
신지희 선의의 경쟁도 해가면서,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함께 발전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글. 신예슬 비평가, 헤테로포니 동인. 음악학을 공부했고, 『음악의 사물들』을 썼다. 종종 기획자, 드라마투르기, 편집자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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