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짓언어

몸짓언어의 확장, 국립무용단 송설·송지영과의 대화
기본을 딛고 새로움으로
국립무용단 무용수들은 매일 아침을 ‘국립기본’으로 시작한다. 발레에 바가노바 혹은 체케티 메소드가 있다면,
한국춤에는 ‘기본’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신무용을 주창한 송범 선생이 다듬은 국립기본은 전통춤의 아성을
간직하는 동시에, 판이 아니라 극장 무대에 서야 하는 무용수들에게 꼭 맞는 ‘기본’으로 자리 잡았다.
굿거리장단으로 시작되는 기본은 무용수에게 규율이자 그 위에 새로운 것들을 쌓기 위한 기반이 돼왔다.
그리하여 한국춤의 몸짓에 깃든 이야기를 되새겨 보고자 국립기본에서 그 흔적을 찾았다.
팔다리부터 손과 발, 허리, 어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호흡에 이르기까지 차근차근 짚어본다.

안무, 몸짓으로 관객에게 다가가는 법

드러내기는 쉬워도 말로 다듬고 글로 적기 어려운 것이 움직임이다. 춤을 언어로 삼은 이들과 대화하다 보면 풍성한 표정과 너른 움직임이 귀에 쏙쏙, 눈에 콕콕 박힌다. 그래서 생생하게 봐야 하고, 직접 경험할 수 있다면 더 좋은 것이 ‘춤’이다. 글로 적은 ‘몸짓언어’의 세계가 더욱 가깝게 느껴지도록 1년간 한 장의 그림을 만들어준 국립무용단 송설·송지영 단원과 만났다.
마침 두 사람과 정소연 단원이 공동 안무한 <2022 무용극 호동>의 막이 오른 날이었다. 단체의 역사를 기념하는 작품으로 많은 기대를 모으기도 했지만, 이 작품은 두 사람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주어진 움직임을 토대로 나의 춤을 구현하는 무용수에서, 그러한 움직임의 의미를 구상하는 안무가의 역할로 발돋움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까지 다양한 무대를 위한 크고 작은 소품작을 만들어왔지만, 장편 길이의 전막 작품을 다루는 건 흔치 않은 기회다. 대본 혹은 주제를 바탕으로 음악을 선정하고 움직임을 구성하는 안무 과정과 다른 점도 있었을 터. 표현을 위한 몸짓과 그 언어가 한 시간 넘는 길이의 작품으로 공연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

송지영의 길쭉한 목선과 팔다리는 유려하게 춤추며 움직임의 파도를 일으킨다.

송지영 우선 장면 구성을 위한 동작 소스(source)를 만들었어요. 주어진 대본의 내용을 보고, 그에 어울리는 동작을 여러 가지로 구성했죠. 이번 작품은 단원 세 사람이 공동으로 안무를 맡았기 때문에, 각자 안무한 움직임을 보고 서로 조합하는 시간도 필요했어요. 그러고는 그 안무를 단원들에게 제시하고 익힐 수 있도록 했죠.
송설 한국춤은 대형 작품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아요. 오히려 발레는 좀 더 나을 거예요. 테크닉 면에서 틀린 부분, 다른 모습을 짚어내고 동일하게 맞추면 되니까요. 하지만 한국춤은 대부분 곡선을 그리는 움직임이기 때문에 어떤 것이 맞고 어떤 것은 틀리다고 (혹은 다르다고) 단정할 수 없어요. 그저 무용수 개개인의 스타일이 다른 거니까요.
송지영 그것이 한국춤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에요.

개성과 스타일. ‘몸짓언어’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가장 모호하고 난해한 지점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춤에서 일종의 메소드처럼 제시되고 전승되는 기본 움직임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실제 춤으로 펼쳐지는 움직임의 형태는 무궁무진한데, 팔을 감는 동작만 하더라도 그 박자와 속도, 높이, 변형 형태, 그리고 결정적으로 무용수의 춤선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송설 우리 무용단에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무용수가 함께하고 있어요. 같은 안무를 소화하더라도 그 결과물은 무척 다양하게 나타나죠. 그 모습들이 밸런스를 맞춰서 전체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결과가 국립무용단의 춤 색깔이 될 것이고요.

단단한 질감을 가진 송설의 몸짓은 부드러운 곡선을 타고 관객에게 전해진다.

몸짓이 언어가 되고, 관객에게 가닿기까지

이들이 만들어가는 언어로서 몸짓의 가능성은 그 시작과 끝을 단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지닌다. 그리고 그 언어는 완성된 작품으로 보이느냐, 연습실에서 홀로 즐기며 추는 움직임이냐, 또 영상 콘텐츠의 매체가 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결과로 도출된다. 하나의 양식으로 규정되지 않고 시대에 따라, 대중의 니즈에 따라 다양한 매력을 가진 춤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것은, 전통과 기본을 간직한 한국춤이기에 가능한 산물이다.

송설 오랫동안 예술고등학교에서 친구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제 딴에 ‘이상한 짓’을 많이 시켜요. 정해진 대로 춤추는 게 아니라, 거꾸로 달려본다든지 하는 것들이요. 고등학생이니까 이미 기본은 많이 배웠거든요. 다양한 걸 시도하게 해서 내 춤을 만들어가도록 하는 거예요. 다행히 이 친구들이 열린 마음으로 여러 시도를 같이 해주고 있죠. 고정된 동작으로만 이야기한다면 (한국춤의 동시대성은) 풀 수 없는 문제인 것 같아요.
송지영 춤을 추게 될 마지막 장소. 그러니까 춤을 만들고, 연습하고, 그리고 결국은 누군가에 보이게 될 마지막 종착지가 있잖아요. 그걸 상상하면서 움직임을, 춤을, 몸짓언어를 만들어요. 그건 무대일 수도 있고, 하물며 학교 수업에 나가서 아이들에게 시범을 하는 순간일 수도 있는데, 그런 장면을 상상하고 그려나가게 되는 것 같아요. 춤이 완성될 그 장소성에서 안무의 영감을 받기도 하고요.

동갑내기 두 사람은 자신만의 몸짓언어로 현재의 관객과 만나고자 꾸준한 도전과 실험을 해나가고 있다.

같고도 다르게, 오늘로 이어진 국립무용단

올해로 입단 11년 차, 1985년생 동갑내기 두 사람은 이제 어느덧 무용단의 중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국립무용단 60년 역사의 현재를 견인하는 이들은 국립무용단을 무엇보다도 대중이 먼저 인정하는 단체로 만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예술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동시대 관객들이 즐기고, 좋아하고, 호응하는 무대를 선보이겠다는 것이다.

송설 춤을 통해서, 또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에요’라고 지속해서 보여주고 있어요. 고전과 전통을 가지고 현재의 관객과 만나는 지점을 꾸준히 찾고 있고요. 물론 아직 그 지점을 완전히 찾았다고 할 수는 없어요. 우리는 ‘국립무용단이 이러한 작업을 하고 있어요’ 하는 걸 작품으로 보여주는 거예요. 일반 관객, 대중을 자주 생각하게 돼요. 많은 관객이 국립무용단을 좋아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게 저희의 목표라고 할 수 있겠네요.

국립무용단 무용수들은 매일 아침을 ‘국립기본’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전통과 역사를 기억하는 토대이자 차곡차곡 쌓여 새로운 움직임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본이 된다. 신체 부위를 매개로 삼아 한국춤의 언어, 움직임의 언어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 ‘몸짓언어’ 시리즈는 생생한 움직임을 담은 사진과 무용수의 표현을 풀어쓴 글로 그 무대를 관심 있게 바라보는 이들과 만나고자 노력했다. 송설·송지영 단원의 이야기처럼 국립무용단은 아주 보통의 관객과 가까운 눈을 맞추고 함께 호흡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나갈 것이다.

자문. 국립무용단 훈련장 장현수
무용. 국립무용단 송설·송지영
사진. 전강인
글. 김태희 춤으로 시작해 전통예술·연극·시각예술까지 범위를 넓혀가며 예술을 글과 책으로 엮어내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발레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무용이론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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