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무용단

(재)국립극장진흥재단 ‘통통 발이발이 춤추는 꼬마안무가’
함께 만든 가능성의 힘
‘불금’이 사라졌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매주 토요일 달콤한 늦잠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모든 피곤함이 사라질 정도의 행복으로 한껏 충전했기 때문입니다. (재)국립극장진흥재단이 기획하고 국립무용단이 진행한 어린이 예술교육 프로그램 <통통 발이발이 ‘춤추는 꼬마안무가’>(이하, ‘춤추는 꼬마안무가’)를 통해서입니다. 문화예술교육의 가치와 중요성을 확인해 준, 부모로서 아이에게 무엇을 주는 것이 최선일지 각성하게 만든, 이 프로그램의 여정을 공유합니다.

‘춤추는 꼬마안무가’를 처음 접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 봅니다. 6월 여름 어느 밤, 딸아이를 재우려고 한 침대에 누워 도란도란 수다를 떨다가 우연히 (재)국립극장진흥재단 소셜미디어 채널에서 꼬마안무가 수강생 모집 안내문과 국립무용단원이 직접 출연한 자기소개 지원 예시 동영상을 봤습니다. 한국무용은 물론 어떤 춤도 배운 적 없는 아이가 단박에 “엄마 나 이거 꼭 하고 싶어!”라며 지원 의지를 강력하게 밝혔습니다. 안내문에 상세하게 적힌 커리큘럼이 아이 마음에 쏙 들었던 모양입니다. 올해 초등학교 3학년으로 열 살인 딸은 유치원 졸업식도, 초등학교 입학식도, 생생하게 기억할 연령대부터 그 흔한 단체생활 한 번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코로나19 세대입니다. 초등학교 1~2학년생은 학교도 매일 가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문화예술교육 기회도 적었습니다. 그런 딸의 취미는 엄마가 틀어놓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맞춰 거실을 무대 삼아 과일 박스 포장용 고운 천을 허리와 어깨에 두르고 제 흥대로 춤을 추는 것입니다. 부모 눈에만 귀여운 몸부림이었죠. 이런 성향이어서 국립무용단의 춤추는 꼬마안무가 커리큘럼이 아이의 마음을 확 사로잡았던 것 같습니다.

통통 발이발이 ‘춤추는 꼬마안무가’, 7월 교육 현장 ⓒ스튜디오 것

총 18회에 걸쳐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한국무용을 기반으로 놀이를 통해 설화·그림·역사·인물 등을 배우고 이를 창작무로 표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무용을 배워본 적 없는 아이지만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경험하고 싶어 했습니다. 일반적인 교육 시스템에서 볼 수 없었던 창의적이고 종합적인 구성은 엄마인 제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기존의 예술교육이 기술적이고 전문적인 습득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이 프로그램은 세부 내용부터 확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수강생 아이들이 또래와 함께 다양한 감각을 일깨우고, 능동적으로 상상하며, 이를 주체적으로 표현하면서,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고, 건강한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이 분명하게 그려졌습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지원 영상을 촬영하던 순간부터 수료식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지금까지 계속 선명해졌습니다. 딸은 직접 선택한 ‘범 내려온다’와 ‘리베르 탱고’에 맞춰 즉흥적으로 춤을 추고 간략한 자기소개를 담아 지원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지원 영상 제작부터도 수업인 것 같습니다.

통통 발이발이 ‘춤추는 꼬마 안무가’, 소품을 활용해 수업하는 모습 ⓒ스튜디오 것

운 좋게 수강생으로 선정돼 맞이한 첫 수업일 7월 23일. 설레는 마음에 새벽같이 일어난 아이는 “애들이 다 무용을 잘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으로 국립극장 연습실에 들어섰습니다. 딸처럼 서먹해하던 이십여 명의 1~4학년 아이들은 국립무용단 선생님들의 눈맞춤에 금세 놀이를 즐기며 연습실을 뛰어다녔습니다. 무용만 할 것 같은, 길쭉길쭉한 몸 선을 지닌 단원들이 아이 한명 한명을 놓치지 않고 이끌면서 어려운 내용도 어찌나 쉽게 가르치는지 참 신기합니다. 노란색 단체 티셔츠, 가방, 물통, 그리고 맛있는 간식까지 받은 아이들은 단 한 번의 수업만으로도 경계심을 누그러뜨렸고 함께하는 시간이 거듭될수록 제법 한 팀 같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즐겁게만 보이던 딸의 첫 수업 후 반응은 의외였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재미있는데, 이렇게 해서 내가 진짜 무슨 작품을 만들 수 있단 말이야?”라고 의구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성과물 도출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교육 방식이 익숙한 아이로서는 이렇게 마냥 놀면서 길지 않은 18회의 수업을 통해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느껴졌나 봅니다. 딸은 그렇게 걱정하면서도 매번 즐겁게 놀았습니다. 어떤 날은 고분벽화 속 무용수를 찾아 그 옆에 자신이 좋아하는 강아지와 고양이 그림을 그렸고, 어느 수업에서는 이순신 장군과 왜적이 싸우는 모습을 같은 모둠 아이들과 춤으로 표현했습니다. 연습실을 누비며 손끝과 발끝까지 자신의 몸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상대방의 소리와 움직임에 집중했습니다. 생애 첫 무대의상을 직접 만들어 입고, 전문 분장사에게 작품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설명한 후 분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국립무용단 <2022 무용극 호동>을 단체 관람한 후 백스테이지 투어까지 마치고 돌아온 아이는 “우리가 배운 한국무용 ‘봉황’ 동작 말고는 다 현대무용 같았어. 그런데 호동은 왜 자결했을까”라며 그 나름 진지하고 귀여운 감상평을 말했습니다. 매주 금요일이면 다음 날의 수업 내용을 물었고, 단 한 번의 가족 나들이도 거부한 채 토요일 수업에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통통 발이발이 ‘춤추는 꼬마 안무가’, 모둠 발표 모습 ⓒ스튜디오 것

그렇게 아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무엇인가를 차곡차곡 쌓아갔습니다. 자연스럽게 한국무용과 전통음악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며 문화의 다양성을 인식했습니다. 자신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수업 후에는 새롭게 발견한 강점을 자랑하며 성취감을 만끽했고, 어떤 날에는 팀원의 생각을 떠올리며 좋았다 칭찬하면서 힘을 합쳐 함께 나아가는 협력의 즐거움을 맛봤습니다. 11월 26일 연습실에서 수료식 겸 작은 발표회로 이뤄질 마지막 수업을 떠올리며 “계속 배울 방법이 진짜 없는 거야?”라고 되묻습니다. 엄마인 저도 아쉬운데, 아이는 오죽할까요. 제가 영원히 ‘불금’과 주말 늦잠을 되찾지 못하더라도(현실이 되면 많이 힘들겠지만…), 코로나19 세대로 누리지 못했던 또래와의 대면 활동과 학교·학원에서는 경험할 수 없던 창작 수업의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엄마 우리 이제는 진짜 무엇이든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이제 아이는 말합니다. ‘불가능’할 것 같다고 한 일을 ‘가능’하다고. ‘내가’ 아닌 ‘우리’가, ‘무엇’이 아닌 ‘무엇이든’을 말합니다. 그 모습을 오롯이 봐온 엄마로서 국립극장진흥재단의 ‘춤추는 꼬마안무가’는 ‘예술을 위한 교육’이 아닌 ‘예술을 통한 전인교육’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입시 지옥에 떠밀려 가기 전에 부모와 아이가 함께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찾고, 그 방향을 선택할 힘을 기르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참 고맙고, 간절하게 바라봅니다. 이런 수업이 좋은 교육 모델이 돼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의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려봅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마주할 힘겨운 어느 날에 ‘함께 가능케 한 경험’이 다시 일어서는 힘이 되는 순간을.

글. 류설아 프리랜서 기자, 제47회 한국기자상을 수상하고 저서로 『행복한 마을혁명』 등을 펴냈다. 경기도 용인에서 문화예술 공간 아트스페이스 어비움을 운영하며 자유로운 글쓰기와 육아를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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