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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 시연회>
소리를 짓는 사람
소리는 소리꾼의 몸을 통해 시간을 살아낸다. 소리가 지나온 억겁의 시간은 소리꾼의 몸에 켜켜이 쌓이며 몸에서 몸으로 이동하고, 그렇게 기록되고 전수된다. 새로이 소리를 짓는 일에도 소리의 시간이 쌓여온 소리꾼의 몸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몸으로 기꺼이 소리를 짓는 사람을, 우리는 작창가라고 한다.

<작창가 프로젝트>는 동시대 창작 판소리를 창·제작해 오며 작창의 중요성을 거듭 확인함과 동시에 작창가의 부재를 경험하기도 한 국립창극단이 신진 작창가를 발굴하고 양성하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다. 12월 10~11일 <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 시연회>를 앞두고 프로젝트에서 소리를 짓고 있는 사람들, 장서윤·유태평양·서의철·박정수 네 사람을 만나 작창가가 되기 위해 이들이 벼려온 시간과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장서윤·유태평양·서의철·박정수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네 사람 모두 소리꾼이라는 공통점이 있기는 하지만, 각자가 현재까지 그려온 삶의 궤적만큼이나 <작창가 프로젝트>에 지원하게 된 이유나 동기 또한 다를 것 같아요. 기대한 바도 제각기 다를 테고요.

유태평양 국립창극단에 소속돼 있다 보니 작창이라는 분야를 상대적으로 많이 경험할 수 있었어요. 작창은 국악인에게도 그 정의나 직업군에 대한 인식이 정립되지 않은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작창 경험이 있는 소리꾼이 작창을 맡는 방식으로 이어져 왔죠. 제게 작창은, 본 적은 있으나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고, 궁금해서 알고 싶은 것이었어요. 그런데 때마침 이 프로젝트 공고를 보게 된 거예요. 작창에 대한 개념이 일반 대중에까지 확산되고 정립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함께 생겼고요.
박정수 아주 어릴 때부터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악상을 쳐보고 곡을 짓는 등 작창의 영역을 경험해 온 것 같아요. 하지만 동시에 막연하기도 했죠. 개인적으로 작년 이맘때부터 본격적으로 작창 작업을 시작했어요. 작창을 통해 제 음악 세계를 넓히고 싶었고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동경해 오던 곳에서 걸출한 선생님들께 마음껏 작창을 배울 기회를 가질 수 있겠다 싶어 주저 없이 지원했어요.
서의철 작창을 할 때 제가 소리를 배우면서 체득하고 몸에 새겨온 것들을 각 상황에 순발력 있게 응용하면서 요구에 부응하려 하죠. 작창가는 소리꾼과는 다른 면모와 방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창가 프로젝트>에서 제가 쌓아온 작창의 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하게 됐어요.
장서윤 대학원에 입학할 즈음에 국립창극단에서 인턴을 병행하고 있었는데, 그때 창극단에서 올린 창작 판소리 공연을 보며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그때 자연스럽게 작창을 시작하게 됐고요. 스스로 계속 작창에 대한 질문이 이어져서 대학원 논문도 작창에 대해 썼어요. 논문을 작성하며 작창의 어법이나 공식이 존재한다는 걸 거듭 확인하게 됐고 점점 더 작창의 세계가 흥미로워졌어요. 제가 지금까지 해온 작업은 스스로 이야기를 쓰고, 노래를 짓고, 노래하며 연행까지 하는 1인극 창작 판소리였어요. 하지만 창극에는 배우가 여럿 등장하고 노래의 조합도 다양하죠.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제가 지금까지 해오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창가 역할에 집중해 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옹처>를 창작한 작창가 장서윤과 작가 김민정

작창가들이 1인 창작 판소리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는 건 ‘김민정(덴동어미 화전가)·김민정(옹처)·이철희(게우사)·김풍년(강릉 서캐타령)’, 네 명의 작가가 작창가 1명과 짝을 이뤄 이야기 개발 단계부터 함께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작가와 이야기를 다루는 과정은 어땠나요?

서의철 이번에 저희에게 주어진 이야기 대다수가 유실된 판소리 일곱 바탕에 해당돼요. 국립창극단은 이 이야기들을 복원하고 이를 동시대 감각으로 만들어내는 것에 정체성을 두고 있잖아요. 다만, 작가나 작창가의 스타일 혹은 주안점에 따라 작품을 현대화하거나 소재만 사용하고 완전히 개작하기도 하죠. 저의 경우, 『게우사』처럼 발견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은 이야기를 만나서 무척 반가웠어요.
유태평양 이전에는 작창을 하더라도 3~4분 내외의 짧은 노래를 만드는 것에 그쳤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긴 서사가 있는 30분 이상 길이의 판소리 작창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저는 온전히 작창의 역할에 집중하기 위해 이야기와 관련된 모든 것을 작가에게 맡겼죠. 반면, 대본에서 노래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주고받았고, 공들여 가사를 썼어요. 대본을 작창의 근간으로 삼되, 대본과 작창의 역할은 완벽하게 나눠보려 한 거죠.
장서윤 저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데다가 주제도 명확한 『옹고집타령』의 작창을 맡았어요. 작가와 인물들을 새롭게 조명해 보고, 그 인물을 현대 사회에 가져다 놓는 가정을 해보면서 지금 우리가 어떤 부분에 공감하게 되는지 이야기를 나눴죠. 작가가 대본 중 가사에 해당하는 부분을 유연하게 열어주어서 소리에 붙이기 좋은 가사로 바꾸는 작업을 편하게 했어요. 예전에는 작창가가 작가의 역할을 함께하는 식이었다면, 최근 들어서는 이렇게 작가와 작창가의 역할이 명확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박정수 저는 작금의 사태를 담아낼 수 있으면서 동시에 사람들이 위로받을 수 있는 이야기이길 원했거든요. 멘토링을 받으며 그 이야기가 『덴동어미 화전가』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됐고요. 작품을 보는 사람들에게 온기와 용기를 전달하고 싶었거든요. 스토리 구성·각색·소리와 관련된 부분 등 전 과정을 작가와 함께했어요. 무엇보다 이 작품에 깊이 빠져들려고 시간과 마음을 많이 들였어요. 제가 진심으로 동화돼야 작창 작업도 비로소 시작되더라고요.

<강릉 서캐타령>을 창작한 작가 김풍년과 작창가 유태평양

작창은 결국 대본의 이야기가 관객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쓰고 구성해야 하는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그 가운데에서 작창가 고유의 스타일이나 특징이 드러나게 되잖아요. 이번 작업에서 지키고자 한 본인만의 스타일이 있거나, 새롭게 발견한 것이 있나요?

유태평양 <강릉 서캐타령>은 이야기 자체가 조금 꼬이고 비틀어져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음악이나 가사는 직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야기가 어렵다면, 음악이 그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줘야 해요. 그래서 판소리의 느낌을 담아내되 대중음악의 구성을 빌려오고 그 스타일을 가미하기도 했어요. 반복 어구가 자주 드러나고, 한 번 들으면 바로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중독성 강한 멜로디를 사용한 것도 이 때문이에요. 일반적으로 작창을 할 때는 노래로만 멜로디를 만든다고 하는데, 저는 컴퓨터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다양한 소스를 삽입하기도 했어요. 이런 것들이 음악적 분위기를 풍성하게 해줄 거예요.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나가면서 돌림노래처럼 따라 부르는 단 하나의 노래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음악을 기억할 수 있다면, 작품 또한 기억할 수 있게 되는 거잖아요.
박정수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있다면, 저의 작창 스타일에 앞서 내게 주어진 이야기가 무엇인지 잘 들여다보고 그 이야기에 꼭 들어맞는 음악을 입히려 해요. 판소리에서는 ‘이면을 따라간다’고 말해요. 이면을 따라가면 실패할 확률도 적어지죠.
서의철 저는 제 소리를 듣자마자 관객이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판소리는 그 소리를 부르는 사람에게 기대어 해석될 수도 있지만, 듣는 사람의 생각이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음악으로 보편적 주제를 인지시키되, 관객에게 해석이나 상상의 여백을 함께 열어주고 싶은 것이 저의 바람 중 하나예요.
장서윤 지금까지 저는 늘 혼자 작업해 왔어요. 그래서 최대한 실험적이고 제 스타일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개성 강한 노래를 만들 수 있었죠. 그런데 이번에는 이 작품을 연행하는 배우가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상기했어요. 작품의 주제와 결이 맞는 노래를 만들면서도, 이 역할을 수행할 배우에게 어울릴 노래일지, 극 중 인물을 돋보일 수 있는 노래일지 스스로 많은 질문을 했어요. 그만큼 이야기나 배우를 관찰하고 생각하는 시도를 많이 했어요. 그럼에도 제 음악 스타일은 자연스럽게 묻어나올 거라고 믿어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오랜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 있다면 바로 첫 문장, 첫 문단을 완성하는 일인 것 같아요. 그 한 문장이 전체 글을 순식간에 힘 있게 끌고 가는 경험을 자주 하기도 하거든요. 작창가분들은 이번 작업에서 그런 순간이 있으셨나요? 이 작업을 견인해 나갈 거라 믿게 된 첫 곡은 뭐였나요?

유태평양 저도 첫 곡을 만드는 데 굉장히 고민이 많았어요. 노래도 결국 스토리와 밀접하게 닿아 있는 거라, 그 첫 곡을 써내기까지 저 스스로 텍스트에 적힌 다양한 감정을 소화하고 이해하는 데에 시간을 쏟았어요. 첫 곡을 쓰고 보니 뒤에 흘러가는 테마나 분위기가 잡혔고, 이후는 수월하게 흘러가더라고요. 첫 곡 이후로는 순서에 구애하지 않고 곡을 만들었어요.
박정수 우선 작품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 이후에, 어떤 곡에 힘이 들어가야 하는지, 악기 구성이나 분위기 등을 배치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저는 대략적인 전체 계획을 먼저 수립하고 그다음에 첫 곡을 쓰기 시작했어요. 첫 곡은 단 두 줄로 이뤄진 곡이었는데, 여덟 시간을 꼼짝없이 매달려 있었는데도 곡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겨우 완성한 뒤에 다른 곡들을 써나갈 수 있었는데, 대본의 2/3 지점에 왔을 때 다시 첫 곡으로 돌아가 수정을 했거든요? 그런데 두 시간 만에 수정이 되더라고요. (웃음) 대략 하루에 한 곡 정도씩 작업한 것 같은데, 대본을 충분히 보고 준비 기간이 여유롭게 주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장서윤 마찬가지예요. 저도 첫 곡을 쓰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텍스트를 소화해 내는 시간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서의철 저는 쉽게 부술 수 있는 곳을 먼저 부수는 편이에요. 소설을 읽을 때도 빨리 읽히는 부분과 더디게 읽히는 부분이 있잖아요? 이야기의 큰 흐름과 굴곡이 인지된 상태에서 비교적 쉽게 만질 수 있는 부분을 먼저 건드리고, 그 앞뒤로 손을 뻗어나가요. 피드백도 적극적으로 받고요.

<게우사>를 창작한 작가 이철희와 작창가 서의철(왼쪽), <덴동어미 화전 노래>를 창작한 작창가 박정수와 작가 김민정(오른쪽)

한 해를 이 프로젝트와 함께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순간, 새로운 인식을 획득하게 된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일까요?

서의철 만약 이런 작업을 저 스스로 했다면 작업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려웠을 거예요. 지금은 작창가로서 배우의 모습을 바라보며 새로운 발견을 할 때가 많아요. 제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는 장면을 볼 때도 재미있고, 제 해석보다도 배우의 해석이 좋은 순간을 마주하게 되기도 하고요. 가장 좋았던 순간이라면, 멘토링을 받는 거였어요. 작창계의 선두 격인 한승석·이자람 선생님께 제 곡을 들려드릴 때마다 무척 떨리고 긴장되었지만, 그 자체로도 너무 좋았어요.
장서윤 멘토링 시간이 굉장히 긴장되지만,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이전에는 작창법에 대해 공부하거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전혀 없었어요. 내가 익힌 언어로 드디어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긴 거예요. 상대로부터 타당한 문법이 제시되고, 첨삭을 받고, 그래서 감각되는 통쾌함이 너무 좋았어요.
박정수 작창 멘토링도 무척 즐거웠지만, 배삼식·고선웅 선생님께 받은 대본 멘토링 시간도 참 귀했어요. <덴동어미 화전가> 대본 작업을 할 때 작가와 거의 같이 살다시피 하며 대본을 붙잡고 있었는데, 두 선생님으로부터 대본을 미시적이고 거시적으로 보는 시선과 이야기를 감미하는 눈을 얻게 된 것 같아요. 멘토링 시간에 작창가 네 명이 함께한 것도 흥미로웠어요. 하나의 인풋이 네 개의 아웃풋으로 도출되는 게 참 재미있었거든요.
장서윤 작창가가 모여 있을 때 발생하는 시너지가 정말 큰 것 같아요. 서로를 자기 작품에 필요한 집단지성처럼 사용하기도 하고요. (웃음) 다 같이 있을 때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는 순간이 많았어요. 위안을 얻고, 의지가 되기도 하고요.

이 프로젝트가 ‘신진’이라는 단어를 달고 있는 만큼, 작창가분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을 관객으로서 잘 쫓아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양하고 흥미로운 작업을 이어나가 줄 것이란 믿음도 있고요. 마지막으로, 이 프로젝트 이후 향후 계획이나 바람이 있다면요?

유태평양 <작창가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창작자로서의 행보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시도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요. 멘토링을 받을 때 ‘제3자의 눈을 가져라.’라는 말을 흥미롭게 들었어요. 제 작업 안에서도 다른 방식을 시도하고, 관객을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을 더 찾아보고 싶어요.
서의철 아주 원대한 포부를 밝히자면, 언젠가는 작창가 협회를 만들고 싶어요. (일동 웃음) 혼자서 작창을 하던 때와는 달리, 지금은 작창가 동료들이 생겼잖아요. 작창가라는 발돋움을 하고, 그 초석이 다져진 기분이에요. 든든해요.
박정수 꾸준히, 지치지 않고 오래 작창을 하며 소리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소리를 짓는 일은 너무 어렵고 또 어려워요. 하지만 그 지난한 시간을 지나 곡을 완성했을 때의 희열이 너무 커서 중단할 수 없어요. 배워나가며, 넓고 깊어질 세계를 기대하며, 오래오래 작창을 하고 싶어요.
장서윤 해가 거듭될수록, 작창에 대한 열정과 형태는 다른 방식으로 변화하며 자라나는 것 같아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작창가라는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덕분에 새로운 마음을 얻는 시간이기도 했고요. 소리꾼으로, 장착가로 두 역할을 모두 열심히 수행하며 관객을 만나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글. 박다솔 연극·무용·서커스 등 공연예술 장르에서 평론·드라마투르기·번역·기록작가로 글을 쓴다. 현재 무용 전문 웹진 『춤in』의 편집위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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