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장
인터뷰

국립극장 신임 극장장 박인건
·창·통으로 새 시대를 열다
한동안 공석이던 국립중앙극장(이하 국립극장) 극장장이 선임되어 면모를 드러냈다.
주인공은 대구오페라하우스 대표이사를 지낸 박인건 극장장이다.
예술 행정을 넘어 예술경영을 강조하는 박인건 극장장의 취임은 국립극장에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예고한다.
그가 이끌 국립극장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2023년 3월, 취임 다음 날 그를 만났다.

박인건 신임 극장장. 그는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기획부장, 세종문화회관 공연기획부장을 거쳐 경기아트센터 사장, KBS교향악단 사장, 대구오페라하우스 대표이사 등 예술경영에 30년 이상을 매진해 온 전문가다. 탁월한 기획가이자 실천가이기도 한 그는 그동안 다양한 공연문화예술 현장에서 활동해 온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국립극장의 위상을 높이고 기관의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전통예술의 재창조와 세계적 확산을 담당하는 핵심 기관인 국립극장. 신임 국립극장장 박인건은 어떤 시선으로 국립극장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지 궁금했다.

취임 소감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개인적으로는 또 한 번 열정을 쏟으며 일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 매우 기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비어 있던 극장장 자리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 것에 대해 얼마나 주시하는 사람이 많겠습니까. 따라서 기쁘면서 막중한 책임감을 동시에 느낍니다. 기관장이 없던 기간에도 국립극장이 잘 운영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자리에 앉았으니 더욱 잘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국립극장의 신임 극장장으로 최종 임용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1987년 예술의전당이 재단법인으로 첫 출범할 때부터 13년간 근무했습니다. 이후 세종문화회관이 재단법인을 만든다고 요청이 와서 공연기획부장으로 실무를 진두지휘했습니다. 충무아트홀이 개관할 때는 초대 사장을 맡았고, 경기아트센터가 민간으로 전환될 때도 4년간 정착을 주도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가 경험하고 주도한 예술 행정이 대한민국 공연장이 나아갈 길과 궤를 같이한다고 생각합니다. 극장장의 미션은 명확합니다. 예술단에는 문화를 창달할 폭넓은 권한과 책임을 주고, 하드웨어를 수준 높게 조성해 극장을 살아 있는 공간,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가는 장소로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에 국립극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뤄나가는 숙제가 있습니다. 저 역시 판소리 다섯 마당을 소재로 공연을 기획해 본 사람입니다. 당시 아무리 소중한 전통예술이라 해도 현대적인 변화 없이는 외면받는다는 혹독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이후 경기아트센터에 있을 때 예전 교훈을 바탕으로 조흥동 당시 경기도립무용단장에게 태권도를 이용한 현대적 공연을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아이디어를 낸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물이 <태권무무 달하>였고, 큰 성공을 거두었죠. 작은 예입니다만, 좋은 아이디어를 함께 고민하고 행정과 경영 측면에서 목표하는 바를 실행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데 제가 어느 정도 경험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까지 인상 깊게 보신 국립극장의 공연 또는 프로그램이 궁금합니다.

과거 국립무용단과 국립국악관현악단 공연을 자주 접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던 기관에도 관련 예술단체가 있었으니 업무상 당연한 일이었죠. 최근에는 대관 공연인 오페라 <박하사탕>을 봤는데, 역시 오페라하우스 대표로서 관심 사항이었고요. 이외에도 감명 깊은 프로그램이 많지만, 개인적으로 크게 주목한 것은 해오름극장의 리노베이션입니다. 굉장히 쾌적한 공간으로 변신해 말 그대로 국립극장에 걸맞은 하드웨어를 갖췄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욱 현대적이고 세계적인 소프트웨어를 접목하면 상당한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국립극장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술이 예술 자체를 넘어 산업으로 발돋움한 지 오래입니다. 국립극장은 우리 전통을 발전시켜야 하는 매우 엄중한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전통예술은 그 나름의 가치를 보존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하고 무궁무진한 변화의 가능성이 잠재한다고 봅니다. 최근 <정년이>라는 작품이 히트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바로 컬래버레이션에 있지 않겠어요. 이처럼 많은 현대예술이 저 앞으로 달려나가는 상황에서 우리도 전통의 보존이라는 울타리 안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시도하고 비틀어봐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액션’에 있습니다. 접시 몇 개를 깨뜨리더라도 행동을 보여야 깨끗하게 정리가 되듯이,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신 접시를 깬 것에 대한 책임은 극장장이 지는 겁니다. 그래서 조금 미진하더라도 변화의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에 몸담고 계셨던 단체와 국립극장의 다른 점이 있을까요?

저는 35년간 대부분 재단에 몸을 담았습니다. 국립극장은 문화체육관광부에 속해 있는 국립기관이면서 책임운영기관이라는 점에서 확실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우선은 이사회를 거치지 않고 직접적인 지원을 받기 때문에 행정적으로는 수월한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경영 차원에서 접근했을 때는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구조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초대권이 있어도 볼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외면하는 시대입니다. 제가 예술경영을 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공연으로 무조건 흑자를 내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단순한 행정을 넘어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추구하는 경영 차원에서 접근해야만 그 가치와 수준을 높이고, 예술적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국립극장은 다른 문화예술 관련 기관과 비교해 ‘전통에 기반한 현대성’이라는 분명한 목표와 정체성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엄청난 경쟁력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예술경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립극장이 지금보다 발전하기 위해 선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요?

항상 고민하는 것은 접근성입니다. 도로가 넓지 않고 전철역은 떨어져 있고 버스 노선과 배차 간격도 좋은 편이 아닙니다. 관객에게 어느 정도 부담감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예를 통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가령 어떤 기관이 도심에서 조금 벗어나 있더라도 유용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면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아울러 많은 사람이 자주 찾게 되면서 지하철역이 생기고 노선과 배차가 늘어나는 사례가 꽤 있습니다. 누군가는 사람들이 찾아와야 프로그램도 활성화되고 교통도 좋아지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이건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싸움이죠. 저는 일단 주어진 조건 안에서 공연 시간을 확대하고, 공연 외에도 유치원생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을 계획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우선 최선을 다해보려 합니다.

이외에도 어떤 계획과 비전이 있는지 간단히 말씀 부탁드립니다.

극장 가동률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방안이 있겠지만, 가장 손쉬운 접근으로는 내외부 작품의 공연 횟수를 늘려서 더 많은 사람이 국립극장을 찾고 다양한 공연을 폭넓게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선은 그렇게 접근해 보려고 합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출발점에서 구성원들한테 바라는 점이 있으면 무엇입니까.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이지훈 작가의 책 이름이기도 한 ‘혼창통魂創通’입니다. 혼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의지를 갖고 도모하고 실행하는 것, 창은 말 그대로 창조에 대한 고통, 인내력입니다. 통은 당연히 소통하는 것이고요. 그러니까 혼창통이란 의지력과 인내력을 갖고 서로 소통하며 만들어나가자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혼창통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면 결국 행동과 실천입니다. 결과를 두려워하지 말고 시도해 보는 것. 거기에서 변화가 시작됩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함께 행동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나가길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국립극장을 찾아주시는 관객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다면요?

삶에서 쉼표만큼 중요한 게 없습니다. 그 쉼표 가운데 하나가 문화를 즐기는 행위입니다. 가끔은 멋진 옷을 꺼내 입고 공연장을 방문하시길 권합니다. 더구나 국립극장은 여러분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입니다. 그러니 적어도 1년에 한두 번은 찾아오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국립극장에서 전통예술과 공연을 즐기며 일상에서 멋과 여유를 가지는 것은 건강에도 좋고, 내 세금에 대한 권리도 찾을 수 있고, 무엇보다 인생의 쉼표를 찾는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글. 김영우 25년째 인터뷰, 칼럼, 사사 집필 등을 업으로 삼아온 글 노동자이자 매달 10여 권의 책을 읽으며 사는 독서가. 책방 ‘북유럽’ 대표. 지은 책으로 『제가 해보니 나름 할 만합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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