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다섯

주운숙의 동초제 ‘흥보가’
낭중지추의 소리꾼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있다.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남을 이르는 말이다.
타고난 재능의 소리꾼이 들려주는 소리는 어떠할까.

숨길 수 없는 재능

주운숙 명창은 1940~1950년대 호남을 중심으로 판소리와 창극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주광득(1915~1960) 명창의 막내딸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녀는 19세기 중반 ‘적벽가’와 ‘심청가’로 명성이 자자했던 주덕기 명창, 그리고 그의 아들로 ‘심청가’를 빼어나게 잘했던 주상환 명창의 후예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판소리 가문’의 명창이다. 그러나 그녀는 어린 시절 판소리의 길을 가지 않았다. 아버지와 헤어져 살면서 예술가의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배고픈지 일찌감치 알았기 때문이다. 예술과 인연을 맺기보다는 평범한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며 사는 것이 꿈이었다. 담양과 구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여성농악단을 하는 언니가 불러 서울에 갔을 때도 국악에는 큰 흥미가 없었다. 언니의 권유로 무용과 가야금을 배워보긴 했지만, 이보다는 돈을 벌어서 엄마를 편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열아홉 살에 대구로 갔다. 일자리를 찾아서다. 그곳에서 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고, 원하던 대로 가정을 꾸려 평범한 주부의 삶을 살았다.
판소리와 인연이 시작된 것은 서른세 살 무렵이었다. 친구들과 취미로 민요를 배울 생각으로 대구의 이명희(1946~2019) 명창이 운영하는 전수소를 찾아갔고, 그곳에서 ‘흥보가’를 배웠다. 이명희 명창은 주운숙에게 민요만 배우기에는 아까운 목이라고 하며 소리를 해볼 것을 권유했다. 대구를 찾았던 이명희의 스승 김소희 명창도 주운숙의 소리를 칭찬하며 그 재능을 높이 샀다. ‘낭중지추’. 빼어난 재능이 드러난 것이다. 주운숙은 소리를 제대로 배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전주의 이일주 명창을 찾아 본격적으로 동초제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주운숙의 학습 능력은 대단했다. 10여 년 동안 매주 토요일 새벽차를 타고 전주에 가서 일요일에 돌아오는 일정으로 동초제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를 차례로 학습했다. 장거리를 오가며 배운 정성도 정성이지만 흡수 능력도 뛰어났다. 엄격하고 까다로운 이일주 명창에게 잘 받는다는 칭찬을 곧잘 들었다. 스스로 소리가 되지 않는 듯해 스승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가르쳐주는 대로 쏙쏙 받아들였다. 무섭게 성장한 그녀는 1996년 제22회 전주대사습놀이에서 명창부 대통령상을 거머쥐었다. 그녀의 나이 마흔넷, 서른세 살에 소리를 시작해 11년 만이었다. 주운숙은 그저 운이 좋았다고 이야기했지만, 필자는 주머니 속의 재능은 감출 수도 없거니와, 그녀 역시 더는 감추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구·경북 판소리 전파의 주춧돌

현재 주운숙은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예능 보유자다. 대구 지역의 유일한 판소리 보유자이자, 경상도 지역에서도 유일하다. 기실 판소리는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명창을 배출하고 화려하게 꽃피운 예술이다. 하여 여전히 전라도를 중심으로 전승과 연행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이후 판소리가 대중문화로서 매력을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발산하는 지금, 지역별로 판소리가 고르게 발전해야 함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1992년 ‘주운숙판소리연구소’를 설립해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10대의 어린 제자들을 먹이고 재워가며 판소리를 가르쳤고, 대구·경북 지역에서 판소리 완창 발표회는 물론 창극 공연 등을 두루 하며 지역 판소리의 전승과 발전에 힘을 썼다. 특히 창극 공연을 많이 했는데, 제자들이 판소리를 배울 때 아니리(판소리 중에 노래 없이 이야기하듯 엮어가는 사설)를 어려워했기 때문이다. 판소리 아니리는 전라도 사투리를 그대로 쓰고 있어 타 지역 사람에게는 낯설 수 있다. 그래서 창극 공연을 통해 제자들이 자연스럽게 소리와 말씨의 조화를 이루며 공부하고, 관객은 극적 요소가 담긴 창극으로 판소리의 매력과 재미를 느낄 수 있길 바란 것이다.
그의 바람은 다행히 잘 이루어졌다. 창극을 하면서 아니리가 안정되니 소리와의 연결도 자연스러워져 제자들의 판소리 완성도가 높아졌다. 창극에 대한 지역민의 흥미도 그녀에게 힘을 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지역사회에서 판소리와 창극 무대가 많지는 않았다. 실력 있는 제자들이 활동할 무대가 많지 않은 것은 참 속상한 일이다. 대구·경북에서도 제자들의 무대가 많아지는 것이 명창의 바람이다. 그 바람이 실현될 때를 기대하며 명창은 여전히 열심히 제자를 길러내고 명창이 몸담은 곳의 판소리 전승에 노력할 것이다.

선악의 분명한 대립, 골계미가 넘치는 소리

이번 <완창판소리>에서 주운숙 명창이 들려줄 소리는 동초제 ‘흥보가’이다. 주운숙은 이일주 명창에게 동초제 판소리 세 바탕을 학습했고, 이후 신영희 명창에게 만정제 ‘춘향가’를 배워 네 바탕의 소리를 완성했다. 대구의 이명희 명창을 비롯해 좋은 스승을 여럿 만났지만, 그녀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은 이일주 명창이고, 중심 소리 역시 동초제다. 그는 인터뷰하는 동안 “동초제는 동초제의 맛이 있다.”라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아마도 그 ‘맛’은 김연수가 신재효본을 바탕으로 송만갑·유성준·김창룡·이동백·정정열 등 당대 명창의 소리 가운데 좋은 부분을 취사선택하고, 필요할 경우 새로운 선율을 짜 넣으며 만든 나름의 특색일 것이다. 김연수는 판소리의 극적 성격, 정확한 사설, 다양한 붙임새를 추구한다는 판소리관을 바탕으로 사설은 물론 음악적 구성에서도 창조성이 강한 소리를 만들었다.
‘흥보가’의 경우엔, 흥보와 놀보의 대립적 인간성, 권선징악의 주제 의식, 작품 전반을 아우르는 해학과 골계미를 강조했다. 이를테면 여타의 바디에서 보기 어려운 흥보의 착한 행동, 품팔이 등의 내용을 담아 흥보의 선함과 부지런함을 드러냈고, 놀보 박을 일곱 통으로 구성해 그의 징치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또한 흥보 자식이 29명이나 된다는 것, 멍석에다 구멍을 낸 옷을 입혀 자식을 키운다는 것 등으로 해학성은 물론 가난의 비극을 웃음으로 승화하는 골계미를 드러냈다.
주운숙은 이번 공연에서 놀보가 제비를 잡으러 나가는 부분까지 부를 예정이다. 놀보 박타는 대목을 들을 수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흥보가의 하이라이트인 ‘흥보 박타는 대목’, 해학 가득한 ‘화초장 대목’, 쫓겨나는 흥보의 슬픔이 가득한 ‘흥보 비는 대목’, 추석날 가난한 흥보 가족의 눈물을 담은 ‘가난타령’ ‘신세타령’ 등을 주목해 들으면 좋을 듯하다. 주운숙은 타고난 목구성과 수리성의 소유자로 통성 위주의 소리를 하는 명창으로 알려졌다. 김석배는 그녀의 소리에 대해 “들을수록 깊은 맛이 있고, 자주 들어도 물리지 않는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녀의 멋스러운 발림 또한 유명한 만큼 깊은 소리와 기품 있는 발림으로 표현될 ‘흥보가’를 기대해 본다. 이번 무대의 고수는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상임 단원인 조용복이, 해설과 사회는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유영대가 맡는다.

※ 참고자료
김석배, 『명창 주덕기 가문의 소리꾼들』, 박이정, 2022.
김예진, 「동초제 <흥보가> ‘박타령’ 이면 연구 : 이일주 소리를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7.
정충권, 「동초제 <흥보가>의 구성과 특징」,『문학지료연구』28, 한국문학치료학회, 2013.

글. 송소라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20세기 창극의 음반, 방송화 양상과 창극사적 의미」(2017)로 박사 논문을 제출하고 판소리와 창극 관련한 연구를 꾸준히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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