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한 마디

펠릭스 클리저
맨발의 호르니스트, 세상을 울리다
리하르트 바그너는 “앞을 볼 수 없는 화가를 상상할 수 있는가?
하지만 베토벤이 귀머거리였다는 사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라는 문장을 남겼다.
실제 베토벤의 음악에 청력 상실은 장애가 되지 못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20대 중반 이후 청력을 잃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음악 세계에 집중했다. 베토벤에게 음악이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했다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베토벤이 그랬듯, 겉으로 보이는 장애쯤은 별것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현존하는 예술가가 있다.

독일 괴팅겐 출신의 호르니스트 펠릭스 클리저Felix Klieser, 1991~는 맨발의 호르니스트로 불린다. 구두를 벗고 맨발로 악기를 연주하기 때문이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두 팔이 없었다. 호른 연주가 불가능한 신체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세계 최정상의 호르니스트로 손꼽힌다. 그는 호른을 배우기 위해 팔 대신 다리를 사용했다. 두 손이 하던 일을 두 발이 하면 그뿐인 상황으로 받아들였다. 왼손이 하던 일을 왼발이 하고, 오른손이 하던 일은 특별 제작한 스탠드와 오른발이 대신한다. 베토벤의 청력 장애처럼 그에게도 두 팔이 없는 것은 별문제가 아니었다.

다섯 살 때 처음 들어본 호른의 소리가 좋았던 그는 부모를 졸랐다. 두 팔이 없는 어린아이가 어떻게 호른을 배울 수 있느냐는 말 대신 그의 부모는 방법을 찾았다. 마치 그들의 두 팔 없는 소중한 아들이 세계적인 호르니스트가 될지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가진 편견의 벽은 무척 높았고, 호른 대신 차라리 실로폰을 배우라는 주변의 훈수도 참 많이 들었다. 심지어 동네의 음악 학교에서는 그의 입학을 꺼렸다. 하지만 독일에서도 명망 있는 예술대학으로 손꼽히는 하노버 예술대학은 어린 소년의 음악성을 반겼다. 그는 이 학교에서 17세가 될 때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그는 독일 국립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단원 활동(2008~2011), 독일의 젊은 음악가를 위한 콩쿠르 우승(2014), 레오나드 번스타인 어워드 수상 등 차근차근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데뷔 앨범 <몽상>(2013)에 이어 여러 음반을 발표했고, 에세이집 『풋 노츠』(2014)를 출간하는 등 세상과 소통하려 부지런히 걷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2주에 한 번꼴로 유럽의 크고 작은 도시에서 협연과 독주 무대에 오른다. 또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그의 호른이 귀여운 ‘알렉스’로 변신한 피드가 꽤 많다. 호른에 동그란 인형 눈을 장식하고, 시기에 따라 산타클로스나 유령 혹은 토끼 등 귀엽게 꾸며 보는 이를 웃음 짓게 한다.

음악을 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타고난 그의 음악성이 기적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선에 대해 그는 ‘독일의 소리’ 방송과 인터뷰하면서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다. “내 재능을 과대평가하지 말아주세요. 난 하루에 8시간씩 연습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성실한 자세와 단호한 결심이 밑바탕에 있었다는 방증이다. 그는 “내가 이루지 못할 일은 없다고 믿습니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는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요.”라고도 했다. 이제 펠릭스 클리저라는 이름은 1퍼센트의 재능과 99퍼센트의 노력이 만든 결과로 기억해야 한다.

펠릭스 클리저가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영국 기반 단체 ‘한 손의 악기 재단’은 두 팔을 모두 사용할 수 없지만, 음악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을 돕는다. 그저 자신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한순간일지라도 긍정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하다는 그의 말이 참 아름답다.

4월 국립극장에서 봄날의 햇살 같은 음악회가 열린다. 음악가를 꿈꾸는 장애, 비장애 청소년 음악가들이 뷰티플마인드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함께 무대에 오른다. 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베토벤, 두 팔이 없는 펠릭스 클리저처럼 그저 음악을 사랑하는 어린 음악가들이 자신만의 음악을 찾아가는 모습에 따듯한 박수를 보낸다. 언젠가 그들의 음악이 또 다른 어린 음악가들이 성장하는 길에 함께하길 바란다.

※ 참고 자료
· 펠릭스 클리저 홈페이지(https://felixklieser.de)
· BBC 인터뷰 “발가락으로 프렌치 호른을 연주하는 남자” 에디터 엠마 트레이시, 2014년 7월 30일 자
  (www.bbc.com/news/blogs-ouch-28541455)
· ‘독일의 소리’ 방송 인터뷰 “독일 음악상 거머쥔 두 팔 없는 호른 연주자” 에디터 릭 풀케르, 2016년 2월 3일 자
  (www.dw.com/en/horn-player-without-arms-wins-top-german-music-prize/a-19025050)

글. 정은주 음악 칼럼니스트. 서양 음악가들의 음악 외(外)적 이야기를 발굴해 소개하며 산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 『발칙한 예술가들』(추명희·정은주 공저), 『나를 위한 예술가의 인생 수업』을 썼다. 현재 예술의전당·세종문화회관 월간지, 『월간 조선』 등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부산mbc <안희성의 가정 음악실>에 출연하고 있다.

일러스트. romantic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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