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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 ①

국립창극단 <절창Ⅰ·Ⅱ>
완창을 넘어 절창의 시대로
드라마도 숏폼이 인기를 끄는 시대, 판소리도 예외일 수 없다.
주제별로 짜인 판은 편집의 미를 보여주며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판소리 ‘판’의 새 시대가 열렸다.

하이라이트만 모아 지루함 없이 편집한 <절창Ⅰ>
: 김준수 & 유태평양의 ‘수궁가’

판소리 ‘수궁가’, 누구나 알지만 제대로 아는 이는 드물다. 흔히 알고 있는 전래동화 ‘토끼와 자라’ 이야기가 ‘수궁가’와 같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궁가’는 전체 길이가 3~4시간 정도 소요된다. 일반인이 완창으로 듣기에는 부담스러운 길이다. 토끼와 자라, 각종 물고기와 들짐승이 등장하는 우화寓話이니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재미있을 소리인데 의외로 판소리 ‘수궁가’의 벽은 높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소리를 재미있게 소개해 줄 수 있을까 하여, 전래동화인 자라와 토끼의 이야기 위에 눈대목만 짜깁기해 듣는 방안을 고민해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꿈꿔 왔던 그 실체를 <절창Ⅰ>에서 만났다. 하이라이트만을 모아 지루함 없이 편집한 ‘수궁가’, 그 덕에 이야기의 진행 속도는 빨라졌고 집중도는 높아졌다.
<절창>의 무대와 조명은 간결해 힘이 있다. 반주 악기는 다양하지만 절제돼 있다. 북을 기본으로 삼고, 강조가 필요한 시점에만 악기가 사용된다. 시각적 효과의 최소화, 악기 반주의 최소화는 소리를 음미할 여력을 남겨준다.
‘수궁가’를 노래한 두 소리꾼은 각기 개성이 있다. 김준수의 소리에는 강한 심지가 있고, 유태평양의 소리에는 편안함과 깊이가 있다. 차이만큼이나 공통점이 많은 목소리를 가졌으므로 두 사람이 같이 부를 때 어울림이 좋다. 스승은 다르지만 유성준제 수궁가라는 공통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소릿제가 다르지 않다. 그래서 두 사람 모두 자신감이 넘치고, 소릿결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어린 시절부터 갈고닦아 노련해진 기교와 섬세한 표현, 젊고 건강한 성대에서 두려움 없이 뻗어 나오는 시원한 소리가 주는 즐거움은 공연의 매 순간을 희열로 가득 채워줄 것이다. 물론 무대와 관객의 집중력을 휘어잡는 두 사람의 스타성도 빼놓을 수 없다.

2021 국립창극단 <절창Ⅰ>, 김준수
2021 국립창극단 <절창Ⅰ>, 유태평양

비교 감상의 즐거움 보여준 <절창Ⅱ>
: 민은경 & 이소연의 ‘춘향가’와 ‘적벽가’

춘향가와 적벽가를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가? 적벽가는 조선 후기 양반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던 소리이며, 춘향가는 음악적 다양성과 짜임새로 가장 높이 평가받아 온 소리다. 쟁쟁한 두 작품을 붙인 이 공연은 당연하게도 대결 구도로 펼쳐진다. ‘군사설움타령’과 ‘이별가’, ‘적벽화전’과 ‘사랑가’, ‘쑥대머리’와 ‘새타령’ 등 적벽가와 춘향가의 눈대목이 적절하게 대비를 이룬다.
적벽가에서 계면조로 가장 유명한 대목은 ‘군사설움타령’이며, 춘향가의 대표 계면 대목이 ‘이별가’다. 군사들의 사연과 서러움, 그리고 춘향과 이도령의 절절한 이별이 슬픔을 겨루는 꼴이다. 불이 번지는 배에서 무수한 군사가 죽어가는 적벽화전의 다급하고 숨 막히는 대목의 긴장은 이도령과 춘향의 불같은 사랑으로 이어지며 한층 편안해진다. 그리고 판소리 역사상 가장 많은 120만 장의 음반 판매고를 올린 임방울의 ‘쑥대머리’ 대목(춘향가)과 이동백 덕분에 대중의 인기를 끌었던 ‘새타령’ 대목(적벽가)이 대비를 이루어 불린다.
공연은 적벽가의 ‘도원결의’로 시작했고, 마무리는 춘향가의 ‘어사출두’와 적벽가의 ‘화용도(조조 패주 대목)’가 담당했다. 적벽가와 춘향가도 결국 삶을 노래한 것이고,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해석은 두 소리꾼이 같이 부른 마지막 곡 ‘사철가’와 잘 어우러진다. 이야기의 공통점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두 소릿제를 감정의 대비로 연결하고 우리의 이야기로 끌어냈으니 주제성이 분명하고 짜임새가 좋다.
<절창Ⅱ>에서는 두 소리꾼의 소리도 자연스럽게 대결 구도를 보여준다. 대결 구도가 소리꾼들에게는 힘든 일이겠으나 관객에게는 두 배의 호사다. 판소리의 독창적 특성으로 지목되는 발성의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한 음색 구사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명의 소리꾼이 낼 수 있는 소리의 다양성은 한계가 있다. 절창 공연은 두 소리꾼을 등장시킴으로써 관객이 다양한 음색과 표현을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이소연의 카랑카랑하고 깨끗한 상청과 민은경의 짙고 강한 표현이 이루는 대비를 즐기는 대신, 무시무시한 대결의 장에 나선 두 소리꾼에게 아낌없는 응원의 추임새를 던져주길 바란다.

2022 국립창극단 <절창Ⅱ>, 이소연
2022 국립창극단 <절창Ⅱ>, 민은경

변화 주도할 ‘절창’을 기대하며

지겨운 입시 준비 생활을 끝내고 대학에 입학한 후 소설에 빠져 지냈던 시절이 있다. 단편과 장편을 오가던 어느 날 판소리 사설집이 눈에 띄어 신재효의 판소리 다섯 바탕집을 읽게 됐다. 국악과에 입학했으니 판소리의 내용을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소설을 읽던 호흡에서 보는 판소리 사설은 너무나 이상하고 괴이했다. 클라이맥스에 도달해 갈등이 해결되면 이야기는 끝나는 것이 소설의 특징이었으나 판소리는 끝나질 않고 뒷이야기가 계속됐다. 이야기 곳곳에서 연결은 부자연스럽고 논리적이지 않았다. 그것이 판소리의 특징인 ‘장면의 극대화’ ‘부분의 독자성’ ‘뒤풀이의 존재’라는 선학들의 논의를 읽고서도 뭔가 의문이 남았다. 왜 다를까?
판소리의 공연 형태는 계속해서 변해 왔다. 아마 처음에는 ‘판’이라 불린 마당 형태였을 것이고, 19세기에는 양반을 위한 방 안이었을 것이며, 20세기에는 무대 위로 올라왔다. 마당의 판소리는 음량이 커야 했고, 방 안의 판소리는 섬세해야 했다. 그리고 무대 위의 판소리는 입체창과 창극의 형태로 새로운 공연 환경에 적응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적어도 20세기 초반까지 판소리는 대목 창(주요 눈대목을 골라 부르는 것)으로 공연됐다. 그래서 사설 전체가 논리적으로 연결될 필요가 적었다. 오히려 노래할 대목이 과장될수록 훨씬 흥미로울 수 있었다. 음악은 문학보다도 감정 몰입이 더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이야기의 전개를 잠시 멈추고 해당 장면과 느낌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줘야 한다. 그래서 문학으로서의 판소리는 이상하지만, 음악으로서의 판소리는 재미있다.
20세기 중반 완창이라는 것이 시도된 것은 생존 위기에 처한 판소리계의 과장된 몸부림이었다고 생각된다. 판소리의 대단함, 그리고 소리꾼의 뛰어남을 긴 시간의 공연으로 입증받으려 했고, 판소리 애호가들 역시 인내심과 충성심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그러나 냉철하게 생각해 보면 판소리처럼 온몸을 사용해 전력으로 노래해야 하는 공연을 장장 6~7시간 지속한다는 것은 소리꾼에게 얼마나 힘든 일일까? 정말 그 시간을 온전히 집중해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또 청중 역시 그 긴 시간을 오롯이 행복하게 즐길 수 있을까?
공연이 2시간을 넘어서지 않는 것은 인간의 생리현상 때문이고, 학교 수업 시간이 40~50분인 이유는 집중력의 한계 때문이다. 현대인의 집중력은 줄어들고 있고. 드라마도 주요 장면만 편집해 놓은 유튜브의 몰아보기를 넘어서 숏폼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제 판소리도 양적 팽창의 최고봉인 완창을 넘어 질적 팽창의 최고봉인 절창으로 나아갈 때다. 이야기의 흐름을 끊지 않되 지루함 없이 소리를 편집해 연결한 수궁가, 주제별로 비교 관점을 제시해 준 적벽가와 춘향가의 절창 공연은 판소리의 하이라이트만을 재미있게 편집한 친절한 몰아보기다. 21세기의 관객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 ‘절창’의 시대를 환영한다.

글. 김혜정 경인교육대학교 교수. 한국음악을 감성뿐 아니라 논리와 객관적 증거를 기반으로 설명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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