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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 ②

국립창극단 <절창Ⅲ>
‘소리의 이상향’을 꿈꾸다
여기, 닿을 수 없는 ‘소리의 이상향’을 향해 걸어가는 두 사람이 있다. 뜻하지 않은 계기로 소리를 시작했고,
지금은 전통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각자 다른 위치에 서 있는 두 사람이다.
국립창극단 <절창Ⅲ>의 주인공인 소리꾼 이광복, 안이호다.

세 번째 시리즈 맞아 확장 시도하는 ‘절창’

젊은 소리꾼의 참신한 소리판을 내세운 국립창극단 ‘절창’ 시리즈가 세 번째 무대를 맞아 새로운 변신과 확장을 시도한다.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한정됐던 출연자의 경계를 허문다. 국립창극단 작품에서 다양한 역할로 존재감을 알려온 단원 이광복, 그리고 ‘범 내려온다’ 열풍을 일으킨 밴드 이날치의 보컬인 소리꾼 안이호가 함께 무대에 오른다. 국립창극단을 대표하는 젊은 소리꾼, 그리고 판소리의 매력을 전 세계에 알려온 또 한 명의 소리꾼이 만나 색다른 소리의 합을 예고한다.

가장 먼저 출연이 결정된 이는 이광복이었다. 이광복은 국립창극단 소속이 아닌 소리꾼과 함께 무대를 꾸미게 된 배경에 대해 “국립창극단 내부에서 ‘절창’ 시리즈를 장기적으로 이어가기 위해선 출연진의 확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라며 “좋은 소리꾼을 관객에게 소개하고 협업을 통한 시너지를 보여주고자 했다.”라고 설명했다. 함께할 소리꾼에 대한 국립창극단과 이광복의 선택은 일치했다. 안이호였다.

“제가요?” 국립창극단으로부터 <절창Ⅲ> 출연 제안을 받은 안이호가 꺼낸 첫마디였다. ‘절창’ 시리즈는 국립창극단 단원들만 출연하는 무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안이호가 국립창극단의 제안을 수락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제목에 끌렸다. ‘절창’의 사전적 의미는 ‘뛰어나게 잘 부름, 또는 그런 노래’. 소리꾼으로서 매력적인 제목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40대 소리꾼에게 판소리를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무대는 흔치 않다. 안이호는 “저희 두 사람의 나이대(40대)는 소리꾼으로서 어떤 반열에 오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파릇파릇하다고도 할 수 없는 어정쩡한 시기”라며 “이런 소리꾼들에게 깊이 있는 소리를 드러낼 기회라는 점이 좋았다.”라고 말했다.

소리꾼 안이호

한계 뛰어넘은 소리 본연의 무대 예고

세 번째 시리즈를 맞은 만큼 이번 <절창Ⅲ>는 앞선 두 번의 공연과는 차별화된 무대를 예고한다. 제목 그대로 소리 본연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창작진도 변화가 생겼다. <절창Ⅰ>과 <절창Ⅱ>를 이끈 연출가 남인우 대신 연극 <월화> <신에 관한 두 가지 담론> <올모스트 메인> 등으로 극적이고 섬세한 연출을 보여준 연출가 이치민이 합류했다. 악기 구성 또한 소리가 최대한 돋보일 수 있도록 최소화했다. “해설이나 토크 콘서트 같은 형식을 지양하고 소리꾼의 목소리에 더 집중할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라는 게 이광복과 안이호의 설명이다.

공연의 큰 축은 이광복이 부르는 ‘심청가’, 그리고 안이호가 부르는 ‘수궁가’다. 이야기는 ‘심청가’의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대목으로 시작한다. 심청이 물에 빠져 다다른 곳은 바로 용궁. 그곳에서 심청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별주부를 만난다. 안이호에 따르면 “별주부와 심청이 본인들이 뒤집어쓴, 혹은 선택한 굴레에서 스스로 벗어나려는 과정”이다.

관객으로선 ‘심청가’와 ‘수궁가’가 뒤섞여 만들어낼 새로운 이야기에 궁금증이 생긴다. 그러나 두 소리꾼은 이번 공연에서 서사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이광복은 “심청과 별주부가 각각 원하는 것이 있듯, 소리꾼도 소리의 이상향을 찾는다는 점에서 닮은 점이 있다.”라며 “주어진 상황에서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안이호 또한 “이번 <절창Ⅲ>는 ‘심청가’와 ‘수궁가’를 통해 두 소리꾼이 이상향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라고 수긍했다.

“‘절창’이라는 말 자체가 이상향이라고 생각해요. 닿고 싶어도 닿을 수 없는 소리의 경지니까요. 그런데도 그 이상향에 닿기 위해 계속해서 뻗어 보이는 손끝에서 드러나는 감동이 있을 겁니다.” (안이호)

“연출가님이 무대에서 저희가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해야 관객이 희열을 느낄 거래요.(웃음) 실제로 소리를 질러대는 대목이 많아서 노래가 끝나기 전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어디까지 소리의 한계를 뿜어낼 수 있을지, 제가 할 수 있는 소리의 최대치를 보여주는 무대가 될 거예요.” (이광복)

소리꾼 이광복

도배집·꽃집 아들에서 소리꾼으로의 도약

이광복과 안이호가 한 무대에 같이 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 그러나 두 사람은 10대 때부터 서로 알고 지낸 막역한 사이다. 이광복은 안이호가 1990년대 후반 인기 TV 프로그램의 한 코너였던 ‘영파워 가슴을 열어라’에 출연한 모습으로 그를 처음 만났다. 당시 국악고 진학을 꿈꾸고 있던 이광복은 TV를 통해 국악고에 재학 중이던 안이호를 알게 됐고, 알음알음 수소문해 안이호와 만나게 됐다. 안이호 또한 김수연 명창의 제자 중 키 크고 훤칠한 소리꾼이 있다는 이야기에 이광복에 대한 궁금증을 키워왔던 터. 그렇게 형·동생으로 지내온 두 사람은 2015년 개봉한 영화 <도리화가>에서 배우(이광복)와 판소리 지도(안이호)로 만나기도 했다.

두 사람이 판소리를 시작한 계기도 비슷하다. 부모님 또는 친척이 국악을 전공해 자연스럽게 국악인의 길을 선택했다는 익숙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 그렇다. 안이호는 도배 가게를 운영하던 아버지가 우연히 김영자 명창의 집을 도배해 준 것이 계기가 돼 판소리를 접하게 됐다. 이광복은 꽃집을 하던 ‘국악 애호가’ 아버지를 통해 민요를 배우기 시작했고, 아버지가 김수연 명창의 학원에 꽃을 배달한 것이 계기가 돼 판소리까지 배우게 됐다. 두 사람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소리를 하고 있었다.”라며 웃었다.

국립창극단 내부와 외부에서 서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며 소리꾼으로서 크고 작은 자극을 주고받고 있다. 이광복은 “창극단 안에 있으면서도 늘 새로운 음악을 고민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안이호 형의 활동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나만의 음악을 표출할 수 있을지 숙고한다.”라고 말했다. 안이호는 “국립창극단은 (소리의) 기둥을 잡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봐온 스승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가는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에 소리꾼으로서 늘 든든하다.”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이번 공연은 서로 다른 색깔을 지닌 두 소리꾼의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무대라는 점에서 관심이 쏠린다. 안이호는 “광복이의 소리는 어릴 때부터 섬세해서 좋았다.”라며 “광복이의 소리가 가진 예민함을 쫓아가면 공연을 훨씬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광복은 “안이호는 ‘소리꾼’이라는 말답게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는 힘이 있다.”라며 “이광복의 섬세한 소리와 안이호의 우직하면서도 남성적인 목소리를 비교해서 듣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절창Ⅲ>를 통해 소리꾼으로서 한 단계 도약하고자 합니다. 마흔 살이 된 만큼 이제는 제 소리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소리꾼으로서 제가 지켜야 할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내적으로도 꽉 찬 소리꾼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이광복)

“국립극장을 통해 선언 아닌 선언을 하려고 해요. 절창에 다가가려는 꿈을 가진 사람으로 마지막까지 손끝을 뻗으며 살아가겠다는 것을요. 소리꾼으로서 저의 이 손끝이 향하는 곳까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나아갈 테니 관객도 저와 같이 가줄 것을 기대하면서 약속하고자 합니다.” (안이호)

글. 장병호 이데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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