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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 코로나 시대, 예술이 관객을 만나는 법
시대가 예술에 묻다
아직 끝을 알 수 없는 팬데믹 상황 속에서 예술계는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변화를 경험 중이다. 특히 예술가의 생존 문제와 더불어 예술이 시민에게 위로와 도전, 즐거움이자 필연적 동행자로 존재해야 한다는 담론 또한 떠오르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예술계가 직면한 사회 가치 갭의 문제

팬데믹으로 인한 예술계의 가장 큰 변화는 디지털화다. 수많은 예술 콘텐츠가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제공되면서 거리와 시간, 경제적 여건을 넘어 많은 이들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됐다. 예술 작업의 디지털화와 비대면 콘텐츠의 향유 방식은 팬데믹 이전부터 준비해 오거나 머뭇거리던 숙제가 본격적으로 가속한 계기가 됐다. NFT 시장과 결합하면서 사치재로서의 예술작품 시장이 확대되는 양상이며, 메타버스의 가상공간과 이에 접목되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의 기술은 ‘예술 작업과 향유 감각의 확장’의 기대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으로 기술의 발전은 창작을 대신하는 딥 러닝 기반 인공지능의 출현으로도 이어져 예술가들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올해 초 유네스코(UNESCO)에서는 문화예술 분야 창작 인력들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 구축에 정부가 나설 것을 제안하는 보고서를 편찬했다. 특히 팬데믹을 기점으로 빠르게 디지털화된 예술 콘텐츠와 온라인 플랫폼은 정작 이를 창작하고 실현하고 기획하는 예술계가 기획과 창작을 지속할 수 있는 매출을 발생시키지 못하는 ‘스트리밍 가치 갭(gap)’의 문제를 가져왔다고 짚으며, 이에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과제를 제시했다.
가치와 메시지를 발생시키는 데에 능한 예술가들에 대한 인정과 보상이 타당하게 이뤄지지 않는 건 비단 스트리밍에서만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공연을 올리는 데 있어서도 그 가치 보상의 천장이 매우 낮은 점을 미루어 볼 때, 예술에 ‘사회 가치 갭’이 존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술계가 관객을 만나는 법에 대해 묻는 이 글의 서론이 장황하게 길어진 이유는 그 접근의 시작점을 그 ‘가치 갭’의 문제에서 찾아보기 위해서다. 예술계의 관람객에 대한 고민은 종종 작품 혹은 공연이 개발하는 시장의 접근으로 발전된다. 이는 예술경영이 예술계의 발전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예술의 가치를 거래적 재화 가치로 환산하는 단순 상업화를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요셉 보이스(Joseph Beuys)가 “예술이 곧 자본이다”라는 말로 사회를 재구성하는 데에 가장 근간이 될 수 있는 예술이 지닌 본질적 가치를 강조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충분히 인지되거나 그러한 맥락의 경험과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부진한 듯하다.

문화예술 분야 창·제작 인력들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 구축에 정부가 나설 것을 제안하는 유네스코의 보고서 ⓒUNESCO

사회의 지각변동과 재구성이 역동적으로 일어나는 현시대에 예술계를 이루는 예술기관이나 단체의 변화가 필요하다. 예술의 사회적 위치와 행위자들과의 관계를 티켓 구매자(및 잠재 구매자) 대상의 기술적 접근에 국한하기보다는 예술계가 관계 맺어야 할 관객을 시민으로 치환하고, 지역사회와 관계 맺는 맥락과 방식을 다각화하며 대상을 점차 확대해갈 것을 전제해야 한다. 이는 예술 활동이 가치를 발현시키는 데에 공연과 전시, 작품의 결과를 넘어 그에 근간이 되는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과정, 메시지, 동력 등을 관객과 지역사회가 경험하도록 관계 맺어주는 방식을 고안하고 실천함으로써, 시민들이 비가시적 요소들의 실체를 경험하고 이를 매개로 예술기관과 관계 맺는 접근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시장구조와 맞물려 구성된 예술 분야의 생태계에서 예술가(단체), 기획자, 공연장, 예술기관 등 창작과 생산, 매개(유통)의 영역에 있는 행위자들이 우리 사회에 예술(가)의 존재를 어떤 구체적 실천의 전환으로 사회와 상호작용하고 발현 가치를 정의하며 사회적 필요에 동행해 나갈지에 대한 공동의 고민과 실천을 촉발하는 주체로서 역할을 살펴보자는 제안이다. 그 촉발제로 우리 예술계 현장에서 관객을 바라보고 관계하는 접근으로 세 가지 질의를 던지며 관련 사례를 공유해 본다.

첫 번째 질문. 관객과 관련된 구체적 실천과 의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시작점이 분명한가?

초기 스페도 타입의 남자 하프 연주가. 2007-2300 B.C(왼쪽).
이레나 오초즈카(Irena Ochodzka)가 진공청소기로 재현한
초기 스페도 타입의 남자 하프 연주가(오른쪽).) ⓒJ. Paul Getty Museum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의 ‘천문학자’, 1668(왼쪽).
줌하겐-크라우제(Zumhagen-Krause)와
그녀의 남편이 탁자, 담요, 지구본으로 재현한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천문학자’(오른쪽). ⓒJ. Paul Getty Museum

예술기관이나 예술가가 관계 맺고자 하는 관객 혹은 시민을 대면하는 데에 있어서 지속하고자 하는 예술 활동의 중심에 놓인 목적성은 무엇인가. 예술경영 분야가 전문화되면서 ‘관객 개발’이라는 용어가 종종 사용된다. 사실 이 용어의 개념의 폭은 관계마케팅, 교육을 모두 아우르고 있지만, 그 행위의 주체가 공급자·창작자에 중심을 두고 있어 최근에는 많은 기관들이 예술 참여(participation)나 인게이지먼트(engagement)라는 용어로 그 중심점을 관객이나 시민으로 이동시키며 상호적 관계를 형성해 가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관객이나 시민과 관계를 맺는 그 시작점에서 예술의 목적성에 대해 맥락 있게 설명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이 지각은 ‘전석 매진’을 중요 가치 지표로만 두기에는 지금 사회에 예술가들의 활동이 관계 맺어야 할 중요한 대상과 이유가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점과 이 시대 시민들이 더 이상 엘리트 예술 그 자체의 계승과 수월성만을 중심에 둔 가치만으로는 기관의 실천적 움직임의 유동성과 지지의 타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반드시 숙고해 볼 가치가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뮤지엄들이 인력의 해고와 폐관을 결정했을 때 게티 뮤지엄(J. Paul Getty Museum)이 관객들에게 트위터로 날린 명화의 일상용품으로의 창의적 리메이크 활동 제안은 팬데믹 시기 예술과 예술기관이 시민들에게 줄 수 있는 창의적 영감과 그로 인한 시민들 간의 연대를 느끼게 해주었다. 이러한 실천의 가능성과 의사결정의 시작은 기관의 분명한 목적성과 가치에서 비롯될 수 있다. 특히, 팬데믹 시대가 남기고 있는 사회 곳곳의 잔흔에 필수적 역할자로서 예술가·단체·기관 스스로의 가치와 존재 방식을 스스로 정의해 보는 기점에서 필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두 번째 질문. 관객들은 감응하고 있는가?

예술계 종사자에게 관객의 감응이 이뤄지는 과정은 사실 블랙박스와도 같다. 그 프로세스를 체계화하려는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지만 관객의 다양성과 모호함은 늘 도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에 대해, 관객의 경험에 대해 궁금해하고 알아가려는 노력은 예술계에 주어진 중요한 과제다.
사회의 안전망과 보살핌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현시대에 있어, 그 삶을 영위하는 관객들에게 감응이 필요한 연결점을 예술로 어떻게 제공할 수 있을지의 기획이 요구되고 있다. 따라서 예술계는 예술과 관객의 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관객이 속한 사회, 사회가 속한 시대, 이를 둘러싼 변화와 동태에 대한 이해와 공감으로 관객을 바라볼 수 있는 질문을 해나가야 한다.
뉴욕의 샤샤마(ChaShaMa)*는 지역의 빈 건물이나 공간 활용을 제안하며 예술가들의 활동 기반과 지역사회와의 매개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단체다. 예술가들이 창작하고 공연이나 전시하는 공간을 마련하는 의미도 있지만, 지역사회로 깊숙이 들어가 예술을 경험하는 공간과 순간을 일상의 영역 안으로 위치시킨다는 데에서 또한 의미가 있다. 그 과정에서 컨서버토리(conservatory)에서 훈련된 예술가들이 박스에서 나와 지역사회와 감응하는 새로운 감각을 열어주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창작의 공간, 프리젠팅(presenting)의 공간, 연결의 공간, 그리고 레지던시(샤노스-ChaNorth)로 구분하여 주된 목적성을 부여하고 있는데,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연결의 공간뿐 아니라 프리젠팅과 창작의 공간 프로그램에서도 창작자가 지역의 시민들과 예술적 감응에 있어서 기존의 방법에서 벗어나 전환적 시각과 경험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네트워킹을 매개하거나 창작과 재현의 장소성을 지역사회 내에서 다각화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한국에서 예술가들을 주로 길러내고 있는 예술대학 과정에서 우리 미래 예술가들은 사회와의 감응력을 학습하고 실천하는 기회를 얻고 있는지, 사회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은 관객의 감응을 자신의 역할이자 영감으로 가져가고 있는지 함께 살펴보며 공동의 탐색을 본격화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샤샤마 : 1995년 뉴욕에 설립된 비영리 예술 단체.

세 번째 질문. 변화의 주체(agent)로서 사회에 집합적인 변화를 형성하고 있는가?

관객을 넘어 시민과의 관계를 능동적으로 매개하는 데에 있어 예술계의 공공성에 기반한 책임성이 질의될 수 있어야 한다. 예술작품 자체의 의미 생성과 전달에서 나아가 이 시대에 구체적 이슈에 대한 목소리를 반영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소외의 문제, 젠더 이슈, 장애인의 권리 문제, 기후변화 문제 등 사회적 이슈에 예술가(들)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집합적인 변화를 형성해 가는가? 예술가의 창작이나 프로젝트의 기획은 물론 공공 영역에서 운영되는 아트센터의 기획과 실천은 어떤 관점을 반영하고 있는가?

도자 작업을 하던 시카고의 티에스터 게이츠는 2009년도에 자신의 지역사회에서 도체스터 프로젝트(Dorchester Projects)를 시작으로 사회적 실천 설치 예술가로 작가적 정체성을 형성해 왔다. ⓒStephen Wilkes Photography
영국 서펜타인 파빌리온 2022년도 선정 예술가 티에스터 게이츠가 고안한 블랙채플
ⓒ2022 Theaster Gates Studio

티에스터 게이츠(Theaster Gates)의 사례를 살펴 보자. 그는 버려진 가옥을 하나씩 사들여 직접 고쳐서 지역사회의 문화공간이자 주민들이 참여하는 프로젝트를 실천하고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를 탐색하며 예술 공간과 시간을 형성해 온 그는 도시계획과 액티비즘(activism)에도 관여하고 있다. 티에스터 게이츠는 영국의 현대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대표적인 갤러리 중 하나인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ies)로부터 시대를 선도하는 작가로 선정된 바 있는데, 이는 동시대 예술가의 작업에 있어서 지역사회의 관계성의 가치가 중요하게 고려된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예르바 부에나 아트센터(Yerba Buena Center for the Arts)를 이끄는 대표이사 데보라 컬리난(Deborah Cullinan) 역시 관객과의 관계를 여타 예술기관에 비해 월등히 진보적으로 이끄는 경우다. 그녀는 21세기 동시대 아트센터란 지역사회에 통합될 수 있는 실천을 만들 수 있어야 하며, 예술을 물이나 교통과 같이 주민들의 건강과 활기 있는 삶에 필수적인 인프라로 형성해 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비전으로 아트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아트센터를 예술 장르들의 공간으로 정의하기보다 문화 촉매자로 정의 지역사회의 정치, 문화, 예술, 기술, 소속감의 주제를 질의하며 지역사회의 다양한 시민들을 연결하고 참여시킨다. 첨단의 현대 예술을 창작 및 공유하고, 게임 판도를 바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인큐베이션(incubation)하며, 우리 시대에 긴급한 질문을 공유하는 데에 헌신하고, 여러 분야와 지역사회들의 사람들을 연결하고 모아내며 변화와 정책의 이동을 창출하는 시민들의 연합을 이끄는 플랫폼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예술계와 관객의 관계에 대한 접근을 논하기에 짧은 지면이지만 질의로서 대화를 촉발하는 데에 의미를 두고자 한다. 예술가들의 생존과 회복에 대한 논의와 대책이 중요하게 모색되어야 할 시기인 것은 자명하다. 이와 함께 예술계와 사회와의 관계 맺기와 가치 갭에 대한 논의 및 실천 역시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예술과 사회 간의 관계를 시장논리로만 접근한다면, 예술의 가치가 충분히 발현되기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오랜 시간을 통해 확인해 왔다. 예술계가 관객을 정의하고 그 관계를 형성함에 있어 전환적 관점과 실천을 구성해 가려면, 공공 영역의 예술단체나 기관은 물론 예술을 통해 사회와 소통해 가는 예술가들과 기획자, 행정가, 후원자들 모두의 의무와 역할이 필요할 것이다. 예술 활동이 우리 사회에서 소수의 사치재나 기호재에 머물거나 복지적 차원에서 유통해야 하는 재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이에게 필수적인 존재로 다각적인 관계를 형성해 가는 데에 필요한 고민과 아이디어의 공유, 그리고 풍요로운 상상이 곳곳에서 시작되길 바라본다.

글. 서지혜 인컬쳐컨설팅 대표. 예술과 예술가가 사람들의 삶에 새롭게 열어놓을 수 있는 변화의 가능성을 상상하고 매개하는 데에 관심을 갖고 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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