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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 ‘왕자, 호동’
오페라로 깨어난 호동의 서사
새 옷으로 갈아입은 ‘왕자, 호동’이 60년 만에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다. 우리 오페라의 성장과 내일의 지향을 담은, 또 하나의 출발점에 선 국립오페라단의 무대에 주목해 보자

1962년 태동한 대한민국 국립오페라단의 창단 기념공연은 장일남 작곡, 고봉인 대본의 우리 오페라 ‘왕자, 호동’이었다. 이후 60년의 세월이 흐른 2022년에 다시금 오페라 ‘왕자, 호동’의 무대가 국립극장에서 펼쳐지는 것은 여러모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왕자, 호동’의 초연 무대가 당시 명동 국립극장이었기 때문이다.

광복 직후인 1948년 1월, 한국인에 의한 첫 번째 오페라 ‘춘희(라 트라비아타)’가 시공관에서 열흘간 공연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전에 한국에 오페라가 소개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40년 일본의 후지와라 오페라단이 중국 하얼빈 오케스트라와 함께 서울 부민관에서 오페라 ‘카르멘’을 공연한 것이 첫 번째 전막 오페라 공연으로 알려져 있고, 그 밖에는 성악가들의 독창회에서 오페라 아리아가 간간이 연주된 것이 전부였다 할 수 있다. 따라서 테너 이인선에 의해 공연된 오페라 ‘춘희’는 한국인이 제작하고 한국인 성악가가 무대에 선 첫 오페라다.

동아일보 1962년 4월 13일 자 국립오페라단 오페라 ‘왕자 호동’ 광고

1948년 첫 오페라가 공연된 뒤 1950년에는 한국어로 창작된 우리 오페라가 탄생한다. 현제명 작곡, 이서구 대본의 오페라 ‘춘향전’은 한국에서 공연된 첫 한국 오페라로 평가된다. 1950년 5월 공연된 ‘춘향전’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처럼 ‘오페라’라는 서구의 낯선 종합음악극은 도입 초반 한국인에게 많은 관심을 끌었고, 한국어 오페라도 빠르게 등장했다. 그러나 6.25전쟁 발발 등 잇따른 사회 혼란과 국가 위기로 인해 그 관심은 이어지지 못했다. 성악가와 음악인들이 오페라를 지속해 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당시 한국 사회에 오페라를 안착시킨다는 것은 개인적인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1962년 명동의 시공관이 국립극장으로 거듭나면서 국립극장 산하에 국립극단·국립오페라단·국립국극단(국립창극단 전신)·국립무용단 등의 전속단체가 생겼다. 국립극단은 1950년 창단되었지만 다른 단체들은 국립극장 재개관과 함께 설립된 것이다. 이 시기 여러 예술 분야 중에서 국립단체로 오페라단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일제강점기부터 명맥을 이어온 연극이나 무용, 국극과는 달리 오페라는 국내에서 공연된 지 10년이 조금 넘은 이국의 예술이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소수의 예술인들이 가까스로 유지해 오던 오페라가 국가적 지원을 받으며 공연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은 한국 오페라 발전의 중요한 분기점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국립오페라단은 공모를 통해 ‘왕자, 호동’을 창단 작품으로 선정했다. 국립오페라단이 역사적인 창단 공연을 한국에서 창작된 오페라로 선택한 것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무모하고도 과감한 결정이었다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오페라 예술에 대한 경험치가 부족한 상황인 데다 특히 그간 공연된 한국 오페라는 현제명의 ‘춘향전’ 이후, 1952년 김대현의 ‘콩쥐팥쥐’, 1954년 현제명의 ‘왕자, 호동’ 등 서너 편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 오페라가 창단 작품이 된 것은 자생적 오페라 발전을 향한 국립오페라단의 지향이 담겨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작곡가 장일남은 우리에게 현대음악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작곡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비목’ 같은 명작을 남겼음에도 본인이 가곡의 작곡가보다는 오페라 작곡가로 불리기를 소망했다고 한다. 그는 ‘왕자, 호동’ 이후에도 1966년 ‘춘향전’, 1988년 ‘불타는 탑’ 등의 오페라를 발표하면서 우리 오페라 음악사에 큰 획을 긋는 작곡가로 남았다. 유치진의 5막 희곡 ‘자명고’(1947)를 3막으로 각색한 오페라 대본은 시인 고봉인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가 인천 출신의 시인이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정보를 찾아보기 어렵다. 오페라를 대할 때 우리는 음악을 담당하는 작곡가에 대해서는 많은 비중을 두지만 상대적으로 대본가에 대해서는 관심을 덜 두는 편이다. 그러나 오페라는 줄거리와 가사가 있는 음악극인 만큼 오페라 대본은 음악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이 작품의 대본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연구가 필요한 점이 후학들의 숙제로 남는다.

잘 알려진 대로 오페라 ‘왕자, 호동’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기록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설화는 우리에게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라는 제목으로 더 유명하다. 약 2000년 전 ‘자명고’라는 신기(神器)를 둘러싸고 사랑과 희생, 애국과 배신이 펼쳐지는 격정의 드라마다. 고구려 왕자인 호동과 낙랑국의 공주는 혼인으로 맺어진다. 낙랑공주는 호동을 진심으로 사랑해 조국까지 배신하지만 호동왕자는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위한 도구로 공주를 이용한다. 이 이야기에는 남녀 간 사랑뿐 아니라 스스로 울리는 북이라는 기이한 존재, 신기 쟁탈의 모티프, 두 나라의 전쟁 등등 고대 설화의 문화 원형적 요소가 가득하다. 우리 오페라는 초기부터 고전 설화나 민담 등을 주요 소재로 삼았기에 이 작품은 매력적인 선택지였을 것이다. 특히 비극으로 끝나는 이 극적인 이야기가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던지 장일남의 작품 이전에 현제명 작곡의 오페라가 있었고, 이후 1969년 다시 김달성 작곡으로 ‘자명고’가 초연되었다.

1962년 4월 13일부터 19일까지 초연된 ‘왕자, 호동’은 성악가 오현명이 연출을 맡았고, 이남수가 지휘하는 KBS교향악단과 합창단·국립무용단이 함께 참여했다고 한다. 타이틀롤인 호동왕자 역할은 테너 안형일·이우근이, 공주 역할은 소프라노 김복희·황영금이 노래했는데 이 당시 공연에 출연한 성악가 대부분이 국립오페라단 소속 단원이었다.
국립오페라단이 이번 3월 창단 60주년 기념공연으로 ‘왕자, 호동’을 다시 무대에 올리기까지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초연의 영상 기록도 없는 데다 이후 한 번도 재공연된 사례가 없어 참고할 만한 자료가 그만큼 적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이 오페라의 초연 악보가 장일남이 재직했던 한양대학교와 국립극장에 온전히 남아 있어 음악적 재현에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한승원은 주로 뮤지컬 분야에서 활동한 연출가다. 이 작품이 참고할 선례가 드물다는 것은 어쩌면 좋은 방향으로 작용할지 모른다. 그가 프로덕션 미팅에서 밝힌 대로 “현재에 고전을 의미 있게 복원하는 것이 좋은 선택일지, 미래의 60년을 내다보는 작품을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관객으로서는 그 지점이 흥미로운 감상 포인트가 될 듯하다. 한승원 연출가와 더불어 음악 자문을 맡은 전예은 작곡가, 여자경 지휘자 모두 지난해 국립오페라단의 서정 오페라 ‘브람스’ 초연에서 함께 작업했기 때문에 좋은 호흡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1962년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10달러(약 12만 원)였다. 2020년 GNI는 약 3만 2,960달러 (약 3,953만 원)에 달한다. 2022년의 대한민국 오페라 무대도 1962년과는 비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다. 특히 인적 인프라는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했다. 그 과정에는 국립오페라단의 역할이 지대했다고 본다. 국립오페라단을 발판으로 수많은 성악가·연출가·작곡가가 발굴되고 커나갔다. 이번에 공연될 오페라 ‘왕자, 호동’은 국립오페라단의 시작점이자 새로운 60년을 향한 각오라고 할 수 있다. 올해 국립오페라단의 라인업 중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작품이다.

* 참고문헌 한상우 ‘한국오페라 50주년 기념 한국오페라 50년사’, 세종출판사, 1998.
주성혜 ‘국립오페라단 40년사 ? 오페라무대로 걸어나온 한국’, 국립오페라단, 2002.
손수연 ‘한국 창작오페라 소재의 특징 분석과 전개양상에 관한 연구’, 문화콘텐츠연구, 2015.
글. 손수연 오페라평론가이자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화예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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