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스밍

아티스트의 플레이리스트
국악 에미넘, 최예림의 그 노래
입이 떡 벌어졌다. 탄성이 터져 나왔다. 최예림의 무대를 본 심사위원들의 반응이다. 시청자 대다수도 똑같이 경탄했을 듯하다. 최예림은 지난해 방송된 JTBC 국악 오디션 ‘풍류대장’ 첫 무대에서 미국 래퍼 에미넘(Eminem)의 ‘Lose Yourself’ 반주에 맞춰 박력 넘치는 판소리를 선보여 많은 이를 매혹했다. 힙합을 전통음악의 언어로 멋들어지게 소화한 공연이었다.
JTBC 국악 오디션 ‘풍류대장’에서 힙합과 판소리의 멋진 조화를 보여준 최예림 ⓒ어트랙트엠

가야금과 판소리를 전공한 최예림은 여러 국악 경연에서 상을 거머쥔 실력자다. 하지만 그가 지은 ‘Lose Yourself’ 가사에 따르면 현실은 설 무대가 없으며, 트로트 가수를 할 뻔했다고 한다. 울분에 찬 톤으로 국악계의 혹독한 사정, 지금껏 겪은 서러운 일들을 토로하니 감동이 진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의 퍼포먼스로 최예림에게는 ‘국악 에미넘’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하지만 인상적인 모습은 이로 그치지 않았다. 라틴 팝, 일렉트로닉 댄스음악 등에 판소리를 차지게 접목했고, 뮤지컬을 닮은 연출로 국악의 색다른 멋을 전하기도 했다. 최예림은 ‘풍류대장’을 통해 ‘팔색조 매력’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활동을 보여줬다.

이쯤 되니 그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궁금해졌다. 음악을 폭넓게 들을 것 같았다. 최예림의 플레이리스트로 음악 취향과 곡에 얽힌 그녀의 사연을 살펴본다.

김윤아 ‘길’

이 노래를 꼽으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당시 너무 좋아했던 곡이었어요. 음악에 대한 고민도 많고, 자신감이 떨어졌을 때 이 곡을 들었어요. 3년 뒤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허탈한 마음이 컸을 때에도 이 곡을 듣고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 노래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드시나요?

“가르쳐 줘 내 가려진 두려움 / 이 길이 끝나면 다른 길이 있는지” “세상 어딘가 저 길 가장 구석에 / 갈 길을 잃은 나를 찾아야만 해” 이 가사가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제가 갈 방향을 누군가 제시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결국에는 모든 건 내가 선택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이 가사가 제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어요.

‘풍류대장’에서 자우림의 노래를 부르신 적이 있어요. 자우림도 좋아하시나요?

자우림, 김윤아 님을 정말 좋아해요. ‘마왕’은 제 아빠 이야기 같아서 노래를 만들고 부를 때 너무 슬펐어요. 김윤아 님 노래 중에서는 ‘봄날은 간다’를 좋아하는데요, 가사 하나하나가 깊게 와닿아요. 지나간 순간은 되돌릴 수 없기에 아련하기도 하고, 행복한 추억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Sarah McLachlan ‘Angel’

이 노래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요?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저를 토닥토닥 다독여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힘든 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음의 평안이 필요할 때 항상 이 노래를 들어요. 그리고 제가 석양을 좋아하는데요, 세라 매클라클런 님의 목소리가 석양처럼 느껴져서 좋아해요.

예림 님이 생각하시는 이 노래의 매력은 뭔가요?

편안함이에요. 저는 스스로 마음을 괴롭히는 편이에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글을 쓰거나 영화를 보곤 하는데요, 가장 좋은 방법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음악을 듣는 것 같아요. 편안함을 주는 음악이 바로 이 노래예요.

세라 매클라클런의 노래 중에 또 좋아하시는 노래가 있다면?

‘아디아(Adia)’도 좋아해요.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부른 곡이지만 저는 노래의 의미보다는 첫 소절을 부르는 톤에 반해 버렸어요. 정말 이유 없이 좋아요! (웃음) 아, 저는 음악을 들을 때 보컬 톤이랑 선율에 먼저 집중하거든요. 그런 습관 때문에 첫 소절이 가슴에 확 박히지 않았나 싶어요.

David Guetta featuring Sia ‘Titanium’

이 노래를 선택하신 이유는요?

이 노래를 들으면 속이 뻥 뚫려요. 저는 겁도 많고 소심하고 늘 걱정이 많아요. ‘티타늄(Titanium)’은 그런 불안한 마음을 다잡아줘요. 시아 님의 힘 있는 목소리가 노래를 잘 살려줬다고 생각해요. 드라이브할 때면 이 노래를 꼭 들어요.

예림 님은 ‘Titanium’에서 어떤 부분을 가장 좋아하시나요?

“난 쓰러지지 않아 난 티타늄이니까” 이 가사를 가장 좋아해요. 긴장되는 순간을 극복해야 할 때 도움이 돼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생각하지도 못한 오해가 생겨서 속상할 때,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감정을 낭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요, 그런 일이 닥쳤을 때 이 노래를 들어요. 음악이 가진 힘을 새삼 실감하게 돼요.

평소 이런 일렉트로닉 댄스음악도 즐겨 들으시나요? 어떤 아티스트를 좋아하는지 궁금합니다.

데이비드 게타 님 다음으로 영국 그룹 네로(NERO)를 즐겨 들어요. 세련된 덥스텝, 일렉트로닉 느낌이 너무 좋아요. 강한 전자음에 몸을 맡긴 채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르는 걸 꼭 해보고 싶어요. 언젠가 꼭이요! (웃음)

드라이브하실 때면 ‘Titanium’을 듣는다고 하셨는데요, 드라이브하실 때 자주 듣는 다른 노래가 있을까요?

요즘은 이매진 드래건스(Imagine Dragons)의 ‘워리어스(Warriors)’랑 유리스믹스(Eurythmics)의 ‘스윗 드림즈(Sweet Dreams)’ 이 두 노래가 빠지지 않아요. 에너지가 넘치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저한테 강한 기운을 줘요. 또 제가 ‘풍류대장’에서 부르고 싶었던 노래들이기도 했어요. 이 노래들을 저만의 스타일로 불러보겠다는 계획도 있고, 이런 곡을 만들고 싶은 꿈이 있어서 요즘 무한 반복으로 듣고 있어요.

Ludovico Einaudi ‘Una mattina’
*Title: Una Mattina
*Composer: Ludovico Einaudi
*Artist: Ludovico Einaudi
*Original Publisher: Chester Music Limited.

이 곡을 꼽으신 이유는요?

프랑스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을 감명 깊게 봤어요. 건강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드리스라는 청년이 사고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된 필립이라는 백만장자의 집에 간병인으로 들어가게 돼요. 둘은 점차 그 어떤 선입견 없이 아껴주는 관계로 발전해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상대방을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따뜻한 마음을 이 곡이 잘 전달해 준 것 같아요. 영화를 볼 때 에이나우디의 ‘우나 마티나(Una mattina)’ 선율이 마치 ‘그래 다 알아, 괜찮아’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어요. 영화를 본 뒤로는 고민이 많거나 글을 쓸 때 이 곡을 듣곤 해요.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작품 중에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저는 ‘플라이(Fly)’를 추천하고 싶어요. 이 곡은 인간이 잉태되는 단계부터 태어나서 한 생명체로 지구에 머물다가 나이가 들고 죽어서 사라지는 일생을 표현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 걸 생각하면 ‘어떤 시련도 결국에는 다 지나가고 사라진다’ 이런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돼요. 그래서 저는 ‘아픔을 가슴에 담아두지 말자’ 이런 해석으로 ‘Fly’를 들어요.

고민이 많을 때 ‘Una mattina’를 듣는다고 하셨는데요, 심란할 때 듣는 음악이 또 있나요?

저는 엄마와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왜 세상에는 영원한 게 없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럴 때 음악이 주는 위로가 컸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에 들었던 음악을 들으면 그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곤 하잖아요. 엄마가 그리울 때면 은희 님의 ‘고향 생각’을 들어요. 심란할 때, 마음을 비우고 싶을 때에는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님의 음악이랑 드뷔시 ‘달빛(Clair de lune)’을 가장 많이 들어요.

Andrea Bocelli ‘Quizas, Quizas, Quizas’

이 곡은 어떻게 좋아하게 되셨나요?

홍콩 영화 ‘화양연화’를 보고 이 노래에 빠지게 됐어요.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Quizas, Quizas, Quizas)’가 사운드트랙으로 쓰였거든요. 그러다가 어느 날 우연히 안드레아 보첼리 님이 이탈리아 해변에서 ‘Quizas, Quizas, Quizas’를 부르는 영상을 보게 됐는데, ‘숨멎’의 감정을 느꼈어요. 안드레아 보첼리 님의 목소리를 너무 좋아하기도 하고, 야외에서 아름다운 석양이 지는 시간에 연출된 무대랑 그 무대를 행복한 표정으로 즐기는 관객들이 환상적으로 다가왔어요. 그 영상을 보면서 제 인생의 동반자는 음악을 사랑하고, 이런 아름다운 곳에서 와인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예림 님에게 이 노래는 사랑에 대한 설렘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평소 즐겨 들으시는 사랑 노래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저는 사랑에 대한 설렘이 확실히 있어요. (웃음) 막상 공개하려니 부끄럽네요. 브라이언 맥나이트(Brian Mcknight) 님의 ‘어나더 유(Another You)’를 좋아해요. 정말 ‘쏘 스윗’ 해요. 어릴 때 엄마가 “예림아, 너는 나중에 어떤 남자랑 결혼하고 싶어?”라고 물어보시면 “음악이랑 영화를 좋아하고,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 나랑 이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남자라면 좋겠어!” 이렇게 대답하곤 했어요. ‘Another You’를 들으면서 이상형에 대한 꿈을 키웠던 것 같네요.

예림 님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불러주고 싶은 노래가 있을까요?

‘Another You’를 좋아하니까 이걸 한국어 가사를 붙여서 불러주고 싶어요. 그리고… (웃음) 엄마가 살아 계실 때 아빠한테 불러주시던 현숙 님의 ‘월화수목금토일’을 귀엽게 불러주고 싶어요.

글. 한동윤 대중음악평론가. 세태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예술가를 향한 애정이 깃든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힙합은 어떻게 힙하게 됐을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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