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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만한 크리에이터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최규석
우리의 친구 둘리를 패러디할 때부터 그의 펜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세상을 향해 노골적인 질문을 던지는 최규석의 시선은 ‘지옥’을 거쳐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최규석 작가는 데뷔 이래 날카로운 질문이 담긴 작품을 통해 대한민국의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창비

어떤 이들은 출발부터 존재감이 확고하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처럼, 가만히 있어도 반드시 뚫고 비어져 나오는 주머니 속 송곳처럼. 만화가 최규석이 그랬다. 서울문화사 신인만화공모전 성인지 부문 금상을 받으며 데뷔했고, 군 제대 후 2002년 동아LG국제만화페스티벌 극화 부문에서 ‘콜라맨’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공모전으로 화려하게 출발한 작가들 대다수가 잊히는 것과 달리 최규석은 송곳처럼 이내 존재감을 드러냈다. 2003년 ‘영점프’에 게재한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이하 ‘슬픈 오마주’)가 그 시작.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친근하게 여기는 김수정 작가의 만화 ‘아기 공룡 둘리’를 21세기 대한민국으로 불러낸 ‘슬픈 오마주’는 손가락이 프레스기에 잘려 마법을 쓰지 못하는 이주노동자 둘리와 도우너를 생체실험 연구소에 팔아넘기는 철수를 등장시키며 경악에 가까운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21세기를 이끌 우수인재 대통령상’에 선정되고, 독자만화대상 신인상을 받은 것은 물론, 이듬해 ‘슬픈 오마주’가 단편 모음집으로 출간되며 대한민국 만화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그가 그해의 발견으로 떠오른 것은 당연하다. ‘21세기를 이끌 우수인재’라는 상의 타이틀은 촌스러웠지만 결과적으로 최규석은 그 타이틀에 어울리는 작가가 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공개돼 넷플릭스 TV쇼 부문 11일간 1위를 기록한 ‘지옥’은 그의 명성을 전 세계로 확산시켰으니까.

최규석은 어떻게 ‘지옥’에 뛰어들었나

‘지옥’은 생각보다 연원이 오래된 작품이다. 넷플릭스 드라마로 만들어지기 한참 전인 2003년, 연상호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처음 등장했고, 이어 ‘파트2’를 붙여 2006년 ‘지옥: 두 개의 삶’이라는 중편 DVD로 출시되었다. 굉장히 그로테스크하고 암울한 이야기였으나 설정과 전개가 발칙하고 신선해 여러 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았던 작품. 그러나 ‘지옥’이 지금의 ‘지옥’이 되기까지는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러야 했고, 연상호 감독의 ‘깐부’, 최규석 작가가 함께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영화 ‘부산행’으로 뜬 연상호 감독은 2019년, 과거 시리즈 제작을 염두에 뒀던 ‘지옥’을 네이버 웹툰으로 다시 불러들였다. 연상호 감독과 최규석 작가가 스토리를 공동 집필하고, 그 내용을 최규석이 그리는 시스템이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연상호 감독의 작품에서 최규석 작가의 이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름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돼지의 왕’ ‘사이비’ ‘서울역’ 등 많은 작품에서 최규석 작가가 캐릭터 디자인을 해왔고, 연상호 감독의 아이러니한 웃음이 담긴 블랙코미디 단편 ‘사랑은 단백질’ 또한 최규석 작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
재밌게도 ‘지옥’을 공동 작업하게 된 것은 절친한 사이였던 두 친구가 결혼하고 각자의 삶으로 바빠지다 보니 함께할 시간이 적어지며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란다. 맥주를 마시던 두 사람이 “우리가 같이 작업하면 자주 보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나누며 의기투합해 처음 함께한 것이 웹툰 ‘지옥’이 된 것이다. 같은 대학 동문으로 20여 년을 알고 지낸 친구 사이지만 본격적인 공동 작업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연상호가 특징적 사건으로 이야기를 치고 나간다면, 최규석은 캐릭터의 내적 감정을 중요시하며 은근히 의견 충돌도 많았다고. 오래 함께한 시간 덕분일까, 닮은 듯 다른 작품 스타일의 시너지 덕분일까, 1년간 연재된 웹툰 ‘지옥’은 마니아층은 물론 크리에이터들의 구미를 당기더니 단행본 발매와 넷플릭스 시리즈 제작을 확정지었다. 넷플릭스 시리즈에서 최규석 작가는 아예 연상호와 공동으로 각본을 담당했다. 사실 최규석 작가나 연상호 감독 모두 ‘지옥’의 성공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지나치게 염세적이고 어두운 디스토피아물이 대중적으로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결과는 대성공.

‘지옥’ 중 한 컷. ‘지옥’은 독특한 시각으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 작품이다. 네이버 웹툰 제공

남들이 외면하는 낮은 곳을 향한 시선

‘지옥’의 성공은 안 그래도 ‘네임드 작가’였던 최규석에게 월드클래스급 명성을 안겨주었지만, 최규석 작품을 사랑하던 독자에게 ‘지옥’의 최규석은 다소 다른 결로 보일 수 있다. ‘지옥’은 사회비판적 요소를 포함한 디스토피아물이면서 코즈믹 호러(인간이 대적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공포)물이기에 자연 판타지 요소가 강할뿐더러, 압도적인 암울함이 작품을 지배한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에게 기이한 존재가 지옥행을 선고하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그린 ‘지옥’은 최규석이 그려냈던, 땅에 발붙이고 사는 사람들의 세계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간 최규석 작가의 시선은 ‘슬픈 오마주’를 비롯해 ‘습지생태보고서’ ‘대한민국 원주민’ ‘100℃’ 그리고 ‘송곳’에 이르기까지 올곧이 현실에 천착해 있었다. 비만 오면 물이 새는 반지하 자취방에서 생활하는 대학생들의 궁상스러운 삶(습지생태보고서), 작가 자신과 가족들의 경험담을 모델로 한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의 척박한 삶(대한민국 원주민), 정규직과 비정규직 직장인들의 갈등 및 노동시장의 부조리(송곳) 등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남들이 외면하는 낮은 곳, 외진 곳을 최규석 작가는 예리하게 포착해 냈다.
한국 사회에서 터부시되던 노동 문제를 전면으로 다룬 ‘송곳’은 최규석 작품의 특징을 집대성한 명작. 대형 마트에서 벌어진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송곳’은 출판 만화를 중심으로 작업하던 최규석의 웹툰 도전작이기도 했다. 2013년 12월부터 2017년 8월까지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된 ‘송곳’은 10~20대 취향의 작품이 즐비한 웹툰 세계에서 진지한 시선으로 현실을 포착한 사회비판물이 통용될 수 있음을 확인시킨 작품이자 웹툰 시장의 저변을 넓히는 데 한몫한 작품이다. “당신들은 안 그럴 거라고 장담하지 마.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라고 차가운 현실을 짚으면서도 “가장 앞에서 가장 날카로웠다가 가장 먼저 부서져 버리고 마는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분명 하나쯤 뚫고 나온다”며 현실의 온도를 1도 정도 높일 수 있는 희망을 던지는 ‘송곳’을 어떻게 외면할까. 다음 웹툰에서 연재된 윤태호 작가의 ‘미생’이 회사 내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직장인들의 애환과 분투를 사실적이고도 따스하게 그려냈다면, ‘송곳’은 그들이 일하는 터전과 그 터전을 담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질문을 날카롭게 던지고 구질구질하고 비감한 현실을 노골적으로 그리면서도 한 줄기 웃음과 터럭 같은 희망을 잊지 않는 최규석 작가의 특징을 잘 담아내어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송곳’의 한 장면. 한국 사회에서 터부시되던 노동 문제를 전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창비

터닝 포인트 ‘지옥’ 이후 그려낼 세계

‘지옥’의 성공 이후 최규석 작가의 행보에 대한 세간의 궁금증은 날로 커지고 있다. 전 세계 팬들이 손꼽아 기다릴 ‘지옥’ 시즌2에 대해서는 연상호 감독이 최규석 작가와 함께 웹툰 ‘지옥’처럼 만화로 먼저 작업하기로 이야기를 나눈 상태라고 밝혔고, 최규석 본인은 한 유튜브 채널에서 “짤막한 30화짜리 웹툰을 연상호 감독과 공동 작업으로 준비하고 있다”며 ‘미친 목사가 나오는 스릴러’라고 또 다른 차기작에 대한 힌트를 전해 팬들의 기대를 모았다. ‘지옥’ 시즌2가 되든 또 다른 차기작이 되든 당분간 ‘연니버스(연상호+유니버스)’에서는 최규석의 디테일이 빠지지 않을 전망이다. 또한 최규석 작가 스스로도 ‘지옥’이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다고 말한 바 있어 향후 그가 그릴 작품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기대하게 된다. 다른 사람과 함께 공동 작업을 하든 홀로 작업을 하든 최규석의 시선과 펜이 쉬이 무뎌지거나 상업적 성공을 향해 타협할 것 같진 않다. 모두가 세상이 좋아졌다고 외치던 와중에도 여전히 생계를 위해 매일을 버티다 코너에 몰리는 사람이 있다고 ‘슬픈 오마주’ ‘습지생태보고서’ ‘송곳’ 등을 통해 꾸준히 그려왔던 그의 전력을 알고, 사고로 튀겨진 자신의 아들 ‘닭돌이’를 배달하러 온 치킨집 사장 ‘닭’의 이야기로 웃음과 페이소스를 동시에 던졌던 그의 재기가 새록하기 때문이다. 잡은 펜 끝으로 언제나 세상을 뒤흔들었던 최규석 작가. 주머니에 담겨 있어도 뚫고 나오는 ‘낭중지추(囊中之錐)’는 어쩌면 이제부터가 시작일지도 모른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의 예고편 ⓒ넷플릭스
글.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영화·여행·문화예술 매거진에서 일하며 글을 써왔고, 지금도 대중문화 전반에 대해 글 쓰며 먹고산다. ‘비즈한국’과 ‘아이즈(ize)’ 등에 고정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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