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배움

창극아카데미
극장 중심으로 구현되는 청소년의 무대
맥(脈). 사물 따위가 서로 이어져 있는 관계나 연관을 뜻하는 단어로, 기운이나 힘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 창극의 기운과 힘이 내일로 이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청소년, 직접 무대에 서다

‘청소년극(Theatre for Young)’은 ‘청소년 관객’을 위한 공연을 뜻한다. 청소년들이 직접 무대에 서는 공연을 영어권에서는 ‘유스 시어터(Youth Theatre)’로 구별해 지칭한다. 10대 초반에서 후반의 청소년들이 만들어내는 창극아카데미의 수료공연(이하 수료공연)이 여기에 해당한다. 청소년 배우들에 의한 공연은 전 세계적으로 더욱 반향이 커지고 있다. 전문 창작진의 협업으로 미학적 완성도를 갖추면서도 청소년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소년 배우가 전문 예술가는 아니다. 본인의 감각에 집중하는 과정보다 기술적 수련에 치중하게 된다면, 혹은 다각적인 공연 경험보다 개인의 연기 역량을 측정하는 것이 중요하게 된다면 예술교육으로서의 가치에 손상이 간다. 어떻게 해야 예술교육 본연의 성취를 지키면서 무대에 오를 수 있을까? 수료공연은 이러한 물음에 대해 꾸준히 응답해 온 작업이었다.

미래의 창극을 만들어가는 현재의 주인공들

안숙선 명창은 창극아카데미 창설 취지를 이렇게 말했다. “창극의 역사는 짧고 여러 시행착오도 있었고 성취도 있었지만, 미래 창극은 미래 세대가 직접 만들 것이니 창극아카데미를 통해 지금 당장 그것을 만들어보자.” 이는 청소년들이 창극을 오롯이 즐길 때 일어날 일에 대한 예견이다.
누구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의미를 곱씹어 보고자 할 때 예술은 그 도구가 되어준다. 청소년은 자신의 삶에도 관심이 많으며 예술을 편견 없이 수용하거나 자신과 연결해 조망하는 데에도 탁월하다. 창극은 이야기·음악·움직임 등 다양한 표현 요소를 총체적 극 구조로 펼쳐내는 장르다. 청소년 개개인이 자신과 세상을 견주어가며 바라보게 하고 주관적 경험을 객관화하며 객관적 형식을 주관적으로 포용하게 하는 데에 매우 적절하고도 강력한 예술 형식이다.
판소리를 익히는 청소년들은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준다. 쉽게 지치지 않으며 재미있어한다. 전통음악을 배웠는지 여부는 상관없다. 마치 이런 어려운 과제가 던져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귀를 활짝 열고 차곡차곡 익혀나간다. 때로는 한자어로 된 어려운 단어를 소화하는 데도 거침이 없다. 수강생들에게는 자부심과 자기 고양의 구체적인 자원이 마련되는 순간이며, 판소리 다섯 바탕의 창고지기가 있다면 그의 수명이 늘어나는 순간일 것이다.
원본이 있는 이야기든 새로 창작한 이야기든, 대본에서 가장 크게 고려하는 것은 이야기의 새로움과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는 형식이다. 새롭고 흥미로우며 공감이 된다는 평가를 수강생들로부터 듣지 못한다면 충분치 않은 것이다. 대본만이 아니다. 연출도 음악도 안무도 마찬가지다. 유스 시어터의 가장 큰 미덕은 배우 본인이 가장 잘 아는,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 마음껏 할 때 나오기 때문이다.
창극아카데미는 첫 만남에서 공연까지 대개 12회차 과정으로 구성된다. 물론 소리를 익히는 작업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대본 속 이야기를 체화하고, 또 생각과 뜻에 맞춰 보강하는 과정에도 오랜 시간 공을 들인다. 캐스팅은 한참 후에 진행되는데 공연 경험이 배역 수행에만 집중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역할은 고르고 적절하게 분배해 서로 의지하는 구조를 만든다. 무대 위에서 거둘 성취 목표를 다소 높게 잡고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연극놀이·음악·움직임 예술 강사들 모두 긴밀히 협조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열두 번의 만남으로는 언제나 모자라다. 심화반의 수료공연이 진행되는 달오름극장을 답사하고 나면 여기에 어떻게 서냐며 수강생들의 염려가 커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폭발적인 성장의 순간을 꼭 보여준다. 늘 실수는 있고,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공연 후 그들에게 스스로 만족하느냐고 물으면 당당하게 “그렇다”라고 할 만큼, 그들은 우리 기대보다 멀리, 높이 가곤 한다. 깊이 몰입하고 크게 성취해 내는 것, 유스 시어터만의 각별함인 듯하다.

전문적이고 안정적인 공연 시스템의 힘

다른 곳에서의 유스 시어터를 생각해 보면 이러한 높은 성취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국립극장 자체에도 비결이 담겨 있다. 수료공연의 러닝타임은 30~40분으로 짧지만 대개 15명이 넘는 출연진과 라이브 연주자 4인이 무대에 선다. 무대·음향·조명·영상 등이 동원된다. 적절하고도 유기적이려면 전문가들의 최선을 다한 협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극장 소속의 전문 스태프들이 참여하며 이곳에서 올라가는 다른 공연의 경우와 조금도 다를 바 없이 협력한다. 수강생은 아마추어 배우들이다. 그러나 각 분야의 기술진은 똑같이 진지하고, 똑같이 체계적으로 준비하며 똑같이, 아니 어쩌면 더 공들여 무대를 만들어낸다. 일련의 과정을 세밀하게 준비해 엮어내는 기획 파트 역시 가시적 성과를 과정의 가치 앞에 두지 않는다. 이는 국립극장의 전문적 공연 제작 시스템 속에서 창극아카데미가 조직되기 때문이다.
유스 시어터는 커다란 잠재력과 필연적 확장성을 가지고 있다. 새롭고 매력적인 창극 공연도 계속해서 만들어질 것이다. 국립극장의 이 당연하지만 빛나는 노력은 수료공연에, 즉 창극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스스로 자부심을 갖기를 바란다. 다른 극장들이 부러워하고 탐내어 부지런히 따라 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우리 사회에서 예술의 본질을 다양한 방식으로 향유하는 기회는 더욱 넓어질 것이다. 우리 고유의 예술로부터 뻗어 나온 가치 있는 것들이 더 풍성하게 넘실댈 것이다.

글. 최여림 달과아이 극단 상임연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공연과 전통예술을 기반으로 한 장르의 공연에 발을 딛고 있다. 2016년부터 창극아카데미 입문반과 심화반의 수료공연 연출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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