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국립국악관현악단 ‘역동과 동력’
*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관현악시리즈 Ⅲ <역동과 동력>은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됐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동·서양 경계를 넘어선 비르투오소
국립국악관현악단이 동·서양 비르투오소와 함께 오롯이 음악과 연주자의 기량에 집중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했다.

2021-2022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시즌 프로그램을 보면 런던이나 파리 소재 오케스트라의 시즌 브로슈어를 쥘 때 느낌처럼 포맷과 구성이 정돈되어 있다. 전년도 9월에 시작해 이듬해 6월 마감하는 시즌제 구성부터 국제 공연 시장의 제작 사이클과 동조화됐다. 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에 해당하는 ‘관현악시리즈’, 마티네 형식의 ‘정오의 음악회’, 관객 타깃이 분명한 신년 음악회와 윈터 콘서트, 특별 공연 성격의 어린이 음악회와 ‘조선팝’을 포용한 청소년 음악회로 시즌이 끝나면, 여름 오프 시즌에 접어드는 스케줄 역시 서구 저명 오케스트라와 동일하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시즌 활동의 핵심은 네 차례 열리는 관현악시리즈다. 지난해 9월 ‘천년의 노래, REBIRTH’를 시작으로 11월 ‘2021 리컴포즈’, 올해 3월 25일 ‘역동과 동력’, 6월 15일 ‘황홀경’이 해오름극장에서 열린다. 개별 공연마다 각각의 특색으로 반짝거린다. 시리즈 첫 공연은 해오름극장 재개관을 축하하는 의미의 위촉 작품으로 채워졌고, 11월 공연은 컨템퍼러리 맥락으로 이미 서양음악 공연 규격에서도 실력을 입증한 지휘자 최수열, 작곡가 김택수·김백찬, 가객 박민희가 등장했다.

‘역동과 동력’은 기존 클래식 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의 익숙한 포맷과 빼닮았다. 김성진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이 전후반 90분 공연을 지휘한다. 클래식에선 전반부 기악 협주곡, 후반부 교향곡 연주를 통해 주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작곡가의 존재감이 부각된다면, ‘역동과 동력’은 공연 전반에 걸쳐 협연자에 힘을 주었다. 이번 공연의 핵심 키워드는 기악과 성악에서 독보적 기량의 연주가를 칭하는 ‘비르투오소(virtuoso)’다.

도널드 워맥, 작곡가 호아킨 로드리고, 이고운, 기타 협연자 박규희 ⓒHo Chang (왼쪽부터)

첫 곡 도널드 워맥의 ‘서광(Emerging Light)’은 서곡 개념이다. 워맥은 버지니아 태생으로 대학에서 작곡·음악이론·철학을 전공했고, 한국과 일본 유학을 통해 동아시아 악기 기반의 작품 40여 편이 아카이브에 있다. 일본에선 도쿄 메트로폴리탄 심포니·일본음악집단과 한국에선 KBS국악관현악단·창원시립예술단과 협업했고, 2016년 가야금 협주곡 ‘흩어진 리듬’으로 국립국악관현악단과 연을 맺었다. 어둠으로 상징되는 고난이 지속되다 빛이 서서히 들며 환희로 변화하는 과정은 작곡가가 견지하는 포스트 미니멀리즘 성향 그대로다. ‘서광’은 2020-2021 시즌 2021 이음 음악제-관현악시리즈Ⅳ ‘상생의 숲’ 공연으로 첫선을 보였고, 이번 연주는 레퍼토리 재공연에 해당한다.

이어지는 곡은 스페인 작곡가 호아킨 로드리고(1901~1999)의 ‘아랑후에스(Concierto de Aranjuez)’ 기타 협주곡이다. 스페인 발렌시아 출생의 로드리고는 어려서 디프테리아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었으나 프랑스 유학에서 작곡가 폴 뒤카(1865~1935)를 사사하면서 서유럽과 라틴 음악의 이상적인 조화를 꾀했다. 아랑후에스는 마드리드주 남부에 위치한 고도다. 1939년, 작곡가는 2악장 규격을 의도했으나 고전적인 3악장 형식으로 출판됐다. 당시는 스페인 내전으로 아랑후에스에 피해가 극심했고 로드리고는 지역의 평화를 작품에 투영하고자 했다. 1악장은 고전주의 성향의 전형적인 기타 협주곡 형태를 취한다. 2악장은 애수를 가득 담은 아름다운 기타 선율을 오케스트라가 적절한 볼륨의 총주로 뒷받침하고, 가벼운 터치로 쓰여진 궁정의 춤이 3악장으로 붙는다. 1980년대 KBS ‘토요명화’ 오프닝 음악으로 유명한 테마가 2악장에 반복된다. 마일스 데이비스, 칙 코리아처럼 재즈계 거장들이 오마주했다. 보통 클래식 기타 음량이 작아 기타에 마이크를 놓거나 오케스트라 음량을 낮출 지시가 지휘자에게 부여된다. 2019년 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 Ι ‘3분 관현악’으로 재치와 감각을 인정받은 이고운이 편곡을 맡았다.

기타 협연자 박규희는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기초 음악 교육을 받았다. 도쿄음악대학(Tokyo College of Music), 빈 국립음악예술대학교(University for Music and Performing Arts Vienna)를 거쳤고 하인츠베르크 콩쿠르, 리히텐슈타인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국제 무대에 이름을 각인했다. 일본 주요 오케스트라 협연 경력을 바탕으로 한국과 대만의 주요 기타 페스티벌에 초청됐고 국내에서 활발한 협업 활동에 나선다. 일본 콜럼비아 레코드를 통해 클래식 기타의 가장 핵심적인 레퍼토리인 스페인 작품들을 섭렵했고, 로드리고 작품 전반에 정통한 실력을 입증했다.

성금연 ⓒ김수남 기념사업회, 이정호, 지순자 (왼쪽부터)

성금연(1923~1986)류 가야금산조 협주곡은 이정호 편곡으로 지순자가 가야금 협연을 맡는다. 성금연은 일제강점기 안기옥에게 가야금산조를 배웠고 광복 전에는 조선성악연구회, 독립 후에는 여성국극동지사에 들어가 연주 활동을 펼쳤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에 들어가 제1악장으로 봉직했고, ‘새가락별곡’ ‘추상’ 같은 가야금곡 작곡에 역량을 보였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창립자 지영희(1909~1979)의 부인으로, 지영희의 친족 외에도 황병주·이재숙을 문하에 뒀다.

지순자는 모친이 창안한 성금연류의 산조 원형을 지키는 노력을 연주와 교육을 통해 이었고 2017년 본인의 여식 최스칼렛의 장단에 맞춰 국악방송 레이블에서 ‘지순자의 가야금 병창’을 레코딩했다. ‘지영희 민속음악연구회장’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국가무형문화재 가야금산조 및 병창 전수자 평가발표회 우수상 수상 경력이 있다. 여타 산조 기반 가야금 협주곡과 구별되는 다양한 조의 변화와 다채로운 기교, 종지 형태의 독특함에서 지순자만의 고급 테크닉을 감상할 수 있다.

작곡가 황병기, 작곡가 손다혜, 하피스트 황세희 (왼쪽부터)

황병기 작곡 ‘춘설’ 주제에 의한 하프 협주곡은 김희조·손다혜 편곡으로 황세희가 하프 협연을 맡았다. 황병기는 일찍이 1970년대 ‘침향무’에서 서역(西域)의 특성과 향토의 조화를 각종 악기의 연주 가능성을 참작해 조화시키는 데 능했다. 범패를 염두에 두고 가야금 조현을 새롭게 시도하고 류트나 하프 기교가 떠오르는 각종 핑거링과 비브라토를 가야금에 적용했다. 정적인 선율에서 흥겨움을 더해 환희로 이어지는 패턴에서 활 대신 손가락으로 퉁기는 발현악기의 테크닉은 가야금과 하프에 공통으로 요구된다. ‘춘설’ 주제에 의한 하프 협주곡은 우아하고 단아한 기존 클래식 하프 협주곡이 요구하는 어휘와 기교가 맥락을 같이한다. 눈 내리는 풍경이 공감각적으로 관객 피부에 닿을 수 있도록 하프의 스트링에서 감칠맛을 내는 방식은 가야금에서 차용했다. 하프의 페달을 쓰는 부산한 움직임이 줄어든 대신, 3~4개 음을 아르페지오로 진행하거나 양손으로 협화음을 조성하고, 연접한 음을 정밀한 시간 차를 두어 뜯는 다음화음 기법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히나스테라가 남미에서 하프 협주곡의 가능성을 새롭게 봤다면 황병기는 발현악기의 현대적 함의를 동아시아에서 새롭게 조명한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하피스트 황세희는 2014년 라이언 앤드 힐리 어워드(LYON & HEALY Award) 수상으로 국제 무대에 두각을 나타냈고 하피데이 앙상블, 듀오 피다 활동으로 체임버 뮤지션으로 영역을 구축했다. 같은 조에서 이명 동음을 요구하는 황병기의 다양한 메커니즘을 황세희는 하프에 붙은 두 개의 포셰트(fourchette)를 밀면서 음높이를 조절하는 능숙한 기교로 흡족히 소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공연 피날레는 정대석이 자작, 편곡 자연(自演)하는 거문고 협주곡 ‘고구려의 여운’이다. 고대 고구려의 기백이 거문고 중주로 형상화된 작품으로 정대석은 기존 구성에 인트로를 가미하고 생황과 타악기를 추가한 개작 편곡 버전으로 이번 공연을 준비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원 오경자를 비롯해 정누리·김준영·주윤정·유연정·이선화 등 실력파 거문고 연주자들이 정대석의 작품 세계에 함께한다. ‘역동과 동력’ 공연 주인공은 초절기교가 빛나는 협연자이나, 시즌 성공의 관건은 결국 국립국악관현악단원의 탄탄한 기량과 앙상블임을 증명할 프로그램 구성이다.

정대석, 국립관현악단 오경자, 정누리, 김준영, 주윤정, 유연정, 이선화 (왼쪽부터)
글. 한정호 영국 시티대학교에서 문화정책과 매니지먼트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정책 자문과 아티스트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를 맡고 있다. 국립무용단 자문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정책소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월간 국립극장> 구독신청 <월간 국립극장> 과월호 보기
닫기

월간지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 구독 신청

뉴스레터 구독은 홈페이지 회원 가입 시 신청 가능하며, 다양한 국립극장 소식을 함께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또는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편리하게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회원가입 시 이메일 수신 동의 필요 (기존회원인 경우 회원정보수정 > 고객서비스 > 메일링 수신 동의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