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스밍

아티스트의 플레이리스트
여기 우리를 매혹하는 또 다른 음악
국악인과 전통음악 애호가들의 축제 <여우락 페스티벌>이 3년 만에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국립극장이 주최하는 <여우락 페스티벌>은 2010년 시작된 이래 국악계의 대표적인 대규모 축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2020년에는 무관중 온라인 중계로 진행됐으며, 지난해에는 객석에 거리두기를 적용했다. 이제 엔데믹 국면에 접어들면서 드디어 기존 형태로 콘서트를 즐길 수 있게 됐다.
7월 1일 국악 일렉트로닉 퓨전 그룹 무토(MUTO)의 무대로 개막하는 제13회 <여우락 페스티벌>에는 23일까지 박다울·임용주·서도밴드·지혜리 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아티스트가 출연할 예정이다. 여기에 리마이더스×달음·팎×이일우·차승민×장진아·공명×이디오테이프 등 <여우락 페스티벌> 특유의 합동 무대도 마련돼 볼거리가 더욱 풍성하다.
페스티벌에 가기 전 예습은 당연한 일. 출연자들이 어떤 레퍼토리를 준비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대표곡을 들어본다면 기대감이 한층 커지지 않을까 싶다. 여기 우리를 매혹할 음악이 있다.
박다울 ‘거문장난감’ 고수가 만든 독창적인 댄스음악

거문고 연주자 박다울을 얘기할 때 JTBC <슈퍼밴드>에서 펼친 퍼포먼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슈퍼밴드> 두 번째 시즌에 출전한 그는 1차 경연에서 참신한 무대를 선보여 동료 참가자들과 시청자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실시간으로 악기의 소리나 음성 등을 녹음하고 이를 차례차례 재생해 반주를 만드는 장비 ‘루프 스테이션’을 활용해 색다른 곡을 들려준 것이다. 대중음악계에서는 라이브 루핑 공연을 종종 접할 수 있지만, 국악인이 하니 특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같은 해 정식 싱글앨범으로 출시된 그날의 곡 ‘거문장난감’은 그야말로 한국적 댄스음악이라 할 만하다. 술대와 손으로 현을 뜯고, 거문고 여기저기를 두드리며 완성한 반주는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이다. 서구 대중음악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다. 박다울의 지혜로운 작법과 독창적인 연주로 이룬, 우리 전통악기의 색을 시원하게 드러낸 댄스음악이었다.
실험 음악으로 규정할 수 있는 ‘거문장난감’은 프로그레시브 음악의 성격도 띤다. 리듬·멜로디·템포에 변화를 줌으로써 복잡한 구조를 연출한다. 하지만 마무리에는 곡의 시작부터 중반까지 나왔던 주제를 배치해 듣는 이는 정돈된 느낌을 받게 된다. 까다로우면서도 어렵게 다가오지 않는 이상한 곡이다.

밤 새 Baum Sae ‘여름’ 머릿속에 각인되는 서늘한 소리들

솔로로, 혹은 어떤 그룹의 멤버로 명성을 떨친 뮤지션들이 결성한 팀을 ‘슈퍼그룹’이라고 한다. 드러머 서수진, 거문고 연주자 황진아, 소리꾼 김보림이 의기투합한 ‘밤 새 Baum Sae’ 역시 슈퍼그룹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마땅하다. 서수진은 2015년부터 꾸준히 작품 활동을 벌이며 아방가르드 재즈를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했고, 황진아 역시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전위적 스타일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왔다. 다섯 살에 판소리를 시작한 김보림은 아직 개인 앨범은 없지만, 음악극 <카산드라>, 셰익스피어 소리극 <헤이 논 노니!> 등에 출연하며 재능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2020년 출시된 ‘밤 새 Baum Sae’의 첫 미니 앨범 「Embrace」의 타이틀곡 ‘여름’은 세 실력자의 근사한 조화를 힘차게 보여준다. 노래는 김보림의 보컬로 문을 연다. ‘하’ 소리를 짧게 끊어서 반복하는 보컬은 다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무더운 여름날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 숲속에 들어와 찬 공기를 들이켜는 기분이 든다. 다른 형태의 루프를 번갈아 가는 거문고 연주와 불규칙한 드럼 연주는 기괴함과 혼란스러움을 가중한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왜곡을 가한 김보림의 소리가 재차 오묘함을 키운다. 세 명이 한마음으로 야릇함이라는 농지를 경작한다. 노래가 끝나고 나면 ‘내가 뭘 들은 거지?’ 하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하지만 각 파트가 머릿속에 맴돌 듯하다.

서도밴드 ‘뱃노래’ 별칭에 걸맞은 매력적인 퓨전

지난해는 국악계에, 국악인들에게 꽤 의미 있는 해였다. MBN <조선판스타>, JTBC <풍류대장 - 힙합 소리꾼들의 전쟁> 등 국악을 소재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두 편이나 편성됐다. 둘은 그리 많지 않은 숫자다. 하지만 그동안 국악인들이 주인공이 되는 방송이 턱없이 적었기에 ‘이나’라는 보조사를 당연히 쓸 수밖에 없다. 두 프로그램 모두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해도 국악인들에게는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서도를 중심으로 한 서도밴드도 <풍류대장>을 통해 자신들을 널리 알릴 수 있었다.
서도밴드는 지난해 낸 데뷔 미니 앨범 「Moon:Disentangle」에 경기민요 ‘뱃노래’를 팝 록으로 해석해 담았다. 곡의 처음과 끝부분에 나지막이 울리는 전기기타 연주는 마치 모스부호 소리처럼 들려서 신비감과 비장함을 발산한다. 또한 행진 악대 스타일의 드럼 연주로 강건한 기운을, 돌림노래 방식의 코러스로 몽환적인 느낌을 내비친다.
서도의 목소리는 맑은 편이지만 가창은 적당히 구성지다. 이 대비되는 면모는 대중음악과 전통음악을 자연스럽게 잇는 다리 구실을 한다. 또한 서도밴드는 국악기를 두지 않고 대중음악의 문법으로 곡을 만든다. 이러한 사항으로 청취자들은 편안하게 국악을 즐길 수 있다. 서도밴드가 명명한 ‘조선팝의 창시자’라는 별칭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달음 ‘탈(TAL)’ 두 현악기가 표현하는 초탈의 과정

이름이 매우 역동적이다. ‘한달음’ ‘달음박질’ 같은 단어의 토대가 되는 ‘달음’은 ‘달리는 일’ ‘어떤 행동의 여세를 몰아 계속함’이라는 뜻이다. 이름에 깃든 추진력 덕분일까? 가야금 연주자 하수연과 거문고 연주자 황혜영으로 이뤄진 달음은 2018년 팀 결성 후 여러 무대에 서며 빠른 속도로 인지도를 높였다. 그 결과 국악방송이 추천한 국악인들로 구성된 컴필레이션 앨범 「2019 새로운 국악의 세계 아우름 소리」에도 이름을 올렸다. 성실한 달리기가 결실을 봤다.
이들의 이름에는 ‘다름’의 의미도 있다.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두 현악기의 매력을 보여주겠다는 취지다. 작년에 발표한 첫 번째 정규 앨범 제목도 그래서 「Similar & Different」라고 지었다. 다른 악기를 추가하지 않고 온전히 두 악기가 곡들을 이끌어서 앨범을 들으면 다름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1집의 타이틀곡 ‘탈(TAL)’도 동음이의어의 활용을 기반으로 했다. 달음은 ‘탈춤’ ‘탈나다’ ‘해탈하다’에서 탈을 가져와 ‘탈이 난 세상?해탈?승화’ 이렇게 3장으로 곡을 꾸몄다. 가야금과 거문고는 각각 또랑또랑한 음색과 묵직한 톤으로 대조를 이루며 불협, 엉망의 상태를 그린다. 이후에는 템포를 늦춰 이 어수선함이 가라앉고 있음을 얘기하고, 다시 점차 소리의 강도를 높여 번뇌에서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나타낸다. 또한 곡은 가야금의 현과 거문고의 현을 받치는 괘를 글리산도 방식으로 연주하는 것으로 불안과 충돌을 묘사한다. 5분 20여 초의 러닝타임을 알차게 썼다.

상흠 ‘서울시나위’ 중독성 강한 21세기 각설이타령

1980년대 후반에 MBC에서 <서울 시나위>라는 드라마를 방영한 적이 있다. 정확하게는 1989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방송됐다. 박상원과 변우민 등이 주연한 이 드라마는 어쩌다 인연을 맺게 된 두 남자와 한 여자가 낡은 지프차를 타고 전국을 돌며 이런저런 일을 겪는 내용을 담고 있다. 뻔한 로맨스가 아니라 로드무비의 성격을 띤 드라마라서 각별했다.
국악 싱어송라이터 상흠이 2020년에 발표한 두 번째 미니 앨범 「마주한 거울」의 타이틀곡 ‘서울시나위’ 또한 그 드라마만큼 별나다. 이 노래는 민요 ‘각설이타령’을 펑크와 스카, 트로트의 성분을 섞은 록으로 풀이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4집의 ‘Yo! Taiji’를 이런 식으로 구성한 바 있어서 그 곡을 아는 이라면 익숙하게 느껴질 듯하다. 상흠을 비롯한 세션 연주자들이 설계한 반주는 넘실거리는 리듬, 구수한 톤으로 ‘각설이타령’ 특유의 흥을 증대해서 나타낸다. 가사가 영어인 점은 ‘서울시나위’를 더욱 재미있게 만든다. ‘각설이’는 ‘코리안 집시’로, ‘또 왔네’는 ‘히어 위 컴’으로, ‘들어간다’는 ‘메리 고 라운드’로 표현했다. 익히 아는 한국어 가사가 아니라서 우스운데, 신기하게도 이질감이 들지 않는다. 여기에 노래는 반복이라는 고성능 무기로 중독성을 내뿜는다. 노래를 다 듣고 나면 “얼씨구 씨구 메리 고 라운드”가 자신도 모르게 입에 붙어 있을 것이다.

글. 한동윤 대중음악평론가. 세태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예술가를 향한 애정이 깃든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힙합은 어떻게 힙하게 됐을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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