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고전여행

판소리 열두바탕을 찾아서
새라는 존재에 대한 재발견
‘장끼전’의 주인공인 꿩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텃새 중 하나다. 빛깔이 알록달록하고 높은 소리로 우는 수컷을 ‘장끼’, 몸 전체가 흑갈색이며 낮은 소리로 우는 암컷을 ‘까투리’라고 한다. ‘장끼전’에서는 다양한 새들이 마치 우리 인간처럼 사고하고 행동한다. 과연 우리는 언제부터 새들을 앞세워 인간의 이야기를 하게 됐을까?

‘장끼전’은 판소리 열두바탕 중 하나지만 창을 잃어버린 소리다. 명창 염계달과 한송학이 ‘장끼타령’을 잘 불렀다고 하는데, 이들이 철종과 고종 대에 활약하던 인물이라는 점을 봐서는 19세기 후반까지는 판소리로 불렸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소설이나 가사, 민요나 민담으로서만 그 이야기가 전해진다.

닭, 꿩 그리고 봉황은 원래 하나였다

새, 즉 조류는 소나 말과 같은 가축만큼이나 인간과 가까운 존재다. 조류 중에서도 특히나 우리와 가장 친숙한 존재가 바로 ‘닭’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예부터 인간사의 다양한 모습이나 행위를 닭에 비유해 왔다.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다’라거나 ‘계륵 같은 존재’라거나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한다’든지 하는 말들이 대표적이다. 오늘 우리가 다룰 ‘장끼전’의 주인공 꿩도 본디 닭과 한통속이다. 우리말에 ‘꿩 대신 닭’이라는 표현도 있지만, 꿩은 생물학적으로도 ‘닭목 꿩과’로 분류된다.
상상 속의 새 ‘봉황’ 역시 그 원형은 꿩과 마찬가지로 야생 닭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옛날 은·주나라 때에 봉황을 그린 그림들을 보면 그것이 마치 닭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봉황은 새들의 왕으로서 모든 새의 장점을 흡수한 초월적 존재로서 상상되기 때문에 ‘기러기의 머리에, 제비의 턱에 닭의 부리를 지닌’ 복합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처럼 새 중에서는 닭처럼 사람들에게 길들며 우리 가까이에 머무르는 것들도 있지만, 봉황처럼 신적인 존재로 숭배되는 것들도 있다. 그러나 닭과 꿩, 그리고 신성한 새 봉황이 사실은 하나의 근원을 가진 존재라는 점에서 우리는 새라는 존재가 본질적으로 다양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문학 속 새의 다양한 모습

우리 문학 속에서 새가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정말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그중 하나는 ‘신성한 새’에 관한 신화들이다. 특히 동아시아 신화의 세계에서 발해만 일대와 중국 동부 해안 지역을 근거지로 한 동이계 종족은 조류를 숭배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 역시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새처럼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난생설화를 가진 영웅들의 이야기에 익숙하다. 새에 대한 숭배는 고구려 무사들이 모자에 새의 깃을 꽂는 조우삽관의 습속이 있었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 닭 그림이 복을 부른다고 여겨, 새해가 밝으면 대문에 그것을 붙여두기도 했다. 오늘날 청와대에서도 대통령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봉황을 선택하고 있다.
새는 종종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로 그려지기도 한다. 판소리 ‘흥보가’에서 박씨를 물고 와 은혜를 갚는 제비가 가장 대표적일 것이다. 설화 속 ‘은혜 갚은 까치’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뱀으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선비를 위해 머리로 종을 들이받아 소리를 울리게 했다는 이야기다. 이 유형의 이야기에서는 까치 외에도 꿩이나 백로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 고소설에는 새들이 송사를 벌이는 유형의 이야기도 꽤 존재한다. ‘까치전’은 까치와 비둘기의 다툼 끝에 까치가 죽자 비둘기가 보라매 군수에게 끌려가 조사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그런데 비둘기가 섬동지·구진·앵무에게 뇌물을 먹이고 거짓 증언을 하게 했고, 이후 암행어사 난춘이 할미새를 통해 까치의 억울함을 밝히고 엄벌한다는 이야기다. 비슷하게 ‘황새결송’에서는 꾀꼬리·뻐꾸기·따오기가 서로 소리를 잘한다고 다투다가 황새를 찾아가 송사하는 이야기인데, 이때에도 따오기가 황새에게 뇌물을 주어 소리가 최상이라 판결이 난다.
‘장끼전’은 위의 어떤 유형에도 속하지 않는 독특한 서사를 가진다. 이 이야기는 장끼 가족이 굶주림에 지쳐 혹시나 어디 떨어져 있을 콩알을 찾아 목숨을 걸고 길을 나서면서 시작된다. 장끼 부부가 배고픔에 쓰러질 때쯤 떡하니 눈앞에 나타난 콩알을 발견한 장끼와 까투리가 설왕설래를 벌이는데, 장끼와 까투리가 이 콩알을 보고 전혀 다른 해석을 하기 때문이다. 까투리는 전날 밤에 꾼 꿈을 흉몽으로 해석해 장끼가 콩을 먹지 못하게 만류하나, 장끼는 그 꿈을 장원급제해 입신양명할 꿈이라 해석하고는 자신의 행동에 제동을 거는 까투리를 거칠게 타박한다. 장끼는 까투리가 콩알을 먹지 말라고 간곡하게 부탁할수록 그녀에게 폭력적인 언행을 쏟아낸다. 그러나 결국은 까투리의 염려처럼 장끼는 덫에 걸려 죽고 만다. 이런 점에서 장끼는 사리 분별을 못 하는 무능한 가장으로, 또 반대로 까투리는 권력욕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주체적 인물로 해석된다.

과부가 된 까투리가 선택한 길

‘장끼전’은 민담·서사민요·판소리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 온 만큼 장끼가 죽고 난 후 과부가 된 까투리가 걸어갈 수 있는 삶의 선택지 또한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장끼의 죽음 이후 까투리 앞에 놓인 첫 번째 선택지는 수절하는 것이다. 장끼는 까투리에게 수절해 정렬부인이 되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까투리는 “장씨 가문에는 개가법이 없다”라고 하며 다른 새들의 청혼을 거절하고 혼자 여생을 살아가는 길을 선택한다.
‘장끼전’의 수많은 이본 속에서는 까투리가 다른 누군가와 재혼해 삶을 이어나가는 길을 걷는다. 이때 까투리의 재혼 상대로 자주 등장하는 의외의 새가 오리다. 강화도 지역에서 전승되는 ‘까투리와 오리의 결혼’이라는 민담은 대표적으로 오리가 까투리에게 청혼 후 함께 살게 된다는 결말을 담고 있다. 드물게 까투리가 오리와 재혼한 후에 오리의 첩인 비둘기 때문에 싸움이 나는 경우도 있는데(충남대본 이는 아마도 ‘까치전’과 같은 송사형 고소설의 영향이 아닐까 한다. 그 외 서사민요 ‘꿩노래’에서는 특이하게 노루가 까투리에게 청혼해 까투리를 업고 가는 것으로 끝이 나기도 한다.
까투리가 또 다른 장끼를 만나 재혼해 그 나름의 삶을 다시 이어나가는 경우도 많다. 그중에서도 ‘화충전’은 새로 만난 장끼와 지리산에서 이름난 전국 기생과 팔도의 장끼 수천이 모인 가운데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고, 갑자년 칠월칠석날에 쌍무지개를 타고 오색구름에 싸여 승천하는 결말을 담고 있기도 하다.
개가를 택한 까투리는 자신의 성적 욕망을 긍정하고 삶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주체성을 확보한 존재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당대의 열녀 이데올로기와 정면으로 맞서면서 당대 사회의 모순성을 폭로하는 까투리의 당당한 모습은 사람이 주인공인 이야기 중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다. 이것이 비록 소리는 잃었지만 ‘장끼전’의 이야기까지 잃을 수는 없게 만드는 매력이다.

글. 이채은 판소리 연행의 의미화를 몸의 관점에서 살핀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전을 통해 현재의 삶을 바꿀 수 있기를 희망하며 글을 읽고 쓰고 있다.
그림. 윤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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