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보기하나

한국 크로스오버 음악
아무도 모르는
한국 음악의 내일
개항 이후 유입된 음악은 우리 전통음악을 비주류로 만들었고, 어느덧 한국의 음악가들은 그것들과의 결합을 통해 숙성된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창조하고 있다. 장르와 분야를 넘나드는 크로스오버의 어제와 오늘을 반추해 본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검색해 본다. 검색어는 크로스오버. 음악계의 크로스오버를 다룬 기사는 1981년 1월 14일 『조선일보』의 「美 재즈…퓨전과 크로스오버系 强勢」가 처음이다. 그 뒤로도 크로스오버에 대한 기사를 찾을 수 있지만, 모두 영미권의 팝 음악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 전통음악과 결합한 크로스오버 음악 소식은 7년 뒤인 1988년 9월 13일에야 찾을 수 있다. 「東·西 가락 합쳐진 흥의 도가니」라는 『매일경제』 기사다. <한강 국제 재즈 페스티벌> 후기인데, “박윤초의 창, 이선옥의 춤(禪), 이생강의 대금과 유복성의 타악기 및 시나위 합주, 김덕수패 사물놀이 등은 우리 가락의 신명과 재즈의 신명을 조화시킨 새로운 흥의 가락을 연출해 냈으며 모던재즈, 쿨재즈, 크로스오버 재즈, 스탠더드 재즈 등 여러 형태의 재즈 음악은 관중들을 열광케 했다.”고 보도했다. 기사로 미루어 우리가 아는 크로스오버 음악이 분명하다. 대형 페스티벌 무대에서 크로스오버 공연을 수행했을 정도라면 이런 스타일의 공연이 처음일 리 없다. 이미 여러 번 해본 것이다.

1988년 9월 1일 <한강 국제 재즈 페스티벌> ⓒ연합뉴스

주류에서 비주류로

사실 한국인이 즐겨 듣는 음악은 근대화 이후 계속 변했다. 개항 이후 일본과 영미권을 통해 들어온 서구의 음악은 일본과 서구의 생활방식이 맞물려 한국인의 문화를 완전히 바꾸었다. 한국의 전통음악은 소수만 사랑하는 음악이 되고, 그 자리를 서구 고전음악 클래식과 영미권의 팝, 일본에서 건너온 트로트가 대체했다. 1973년 3월 3일 『조선일보』 기사에 의하면 MBC FM에서 방송하는 음악의 경우 클래식이 45.36%, 포퓰러 36.11%, 국악-민요 2.32%, 가요 5.56%, 교양 기타가 10.65%라고 한다. 40년 전에도 한국 전통음악은 변방의 음악이었다.
이런 현상에 딴지 건 것은 일군의 지식인과 음악인들이었다. 소수만 전통음악을 사랑하고, 이국의 음악이 주류가 되는 현실을 견디지 못한 이들, 전통음악의 멋과 맛과 정신을 소중하게 생각한 이들이다. 민족주의적이거나 민중주의적 태도다. 전통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면 부러 전통의 가치를 지키거나 알릴 필요 없을 텐데, 6·25전쟁 이후의 사회가 급속히 서구화한 덕분임을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크로스오버의 불길이 금세 활활 타오르지는 않았다. 전통이 수세에 몰려 있을 때, 방어하는 이들 가운데 다수는 전통을 있는 그대로 지키려는 쪽에 가까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현재의 시점에 맞춰 전통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 이런 때일수록 전통을 있는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더 많았다. 전통음악계보다 대중음악 쪽에서 먼저 크로스오버를 시도한 이유다.

서유석 3집 「타박네」 표지. 오리지널 버전으로 2019년 재발매. ⓒ(주)리듬온

크로스오버의 파도

1960년대 말부터 등장한 포크뮤지션 중에는 영미권의 포크가 그러했듯 한국의 포크도 한국인의 삶과 문화를 노래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서유석과 양병집은 구전민요 ‘타박네’와 ‘진주낭군’을 포크 음악으로 되살렸다. 두 뮤지션만의 돌발 행동이 아니었다. 양희은과 최양숙이 부른 ‘세노야’의 노랫말은 뱃사공의 민요에서 왔다. 백순진 또한 1972년 창작 국악포크송 ‘딩동댕 지난 여름’을 발표했다. 이들이 뿌린 씨앗은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 후 한국 대중음악계에서는 크로스오버의 열매들이 꾸준히 맺혔다.
밴드 사랑과 평화는 1978년 첫 음반에서 베토벤의 ‘운명’과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를 밴드 편성으로 연주했다. ‘베에토벤의 운명’ ‘아베마리아’라는 제목으로 선보인 곡은 록과 클래식이 만날 수 있음을 보여준 놀라운 사례였다.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도전을 한국에서 가장 먼저 감행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 경우는 아니었다. 영미권에서 시작한 크로스오버의 파도가 흘러 흘러 한국까지 닿은 여파였다.
영미권에서는 1960년대 말부터 서구 밖의 음악을 본격적으로 흡수했다. 자신들의 문화만으로는 답을 찾을 수 없다는 자성의 결과였다. 비틀스가 1967년에 발표한 명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들어보면 스와르만달·시타르·타블라·탐부라 같은 인도 악기를 활용한 곡이 있다. ‘Within You Without You’다. 이 곡은 바이올린과 첼로 연주까지 더했다. ‘She’s Leaving Home’에서도 클래시컬한 현악 연주를 확인할 수 있다. 밴드 음악에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었던 도전이었다. 그즈음 영국의 밴드 무디 블루스 또한 런던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함께 「Days of Future Passed」 음반을 완성했는데, 이 음반은 음반 전체를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에서 악상을 빌려 만들었다. 명실상부한 크로스오버였다.

서로 만나 숙성한 음악

기실 대중음악의 역사는 끝없는 크로스오버의 연속이다. 하나의 존재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결합과 수정이 필수다. 문화에 무성수정은 없다. 록·블루스·재즈·포크·힙합을 비롯한 거의 모든 대중음악 장르는 다른 장르를 만나고 흡수하면서 현재의 어법을 완성했다. 지금도 다른 장르를 빨아들이면서 변화하고 있다. 가지지 못한 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방식으로 조합하면서 확장하는 일은 보편적이다. 그래서 1970년대에 핑크 플로이드·딥 퍼플·프로콜 하럼은 오케스트라와 함께 만든 프로그레시브 록 음반을 발표했다. 재즈에서는 1967년경 마일스 데이비스가 재즈와 록을 버무려 퓨전 재즈라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리턴 투 포에버,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 웨더 리포트가 시도한 크로스오버는 록·클래식·월드뮤직·펑크를 접합했다. 월드뮤직이라는 이름으로 뒤늦게 등장한 다른 지역의 음악은 서구 대중음악에 새로운 발상과 에너지를 들이부었다. 서구의 음악 또한 서구 밖 음악을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 스카, 레게를 비롯한 대표적인 월드뮤직 장르들은 전통/민속 음악과 현대/서구 음악이 만나 숙성한 음악이다. 한국의 크로스오버 음악도 마찬가지다.
서구의 음악 어법과 장르가 일상이 돼버렸을 때는 전통과 역사를 강조하는 일만으로 대중을 설득하기 어렵다. 예술은 캠페인과 다르다. 당위적인 주장만으로 감동받을 수 없다. 계속 변화하는 것이 문화의 원리기에 더더욱 그렇다. 갈수록 전통이 낯설어지는 이들을 전통으로 인도하기 위해 크로스오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전통을 박제하지 않기 위해서도 크로스오버하는 게 효과적이다. 다른 음악과 잘 섞일 수 있다면 풍부하고 자유롭다는 의미이니 장점일 뿐 단점이 될 수 없다.

2016년 <여우락 페스티벌> 중 이희문과 프렐류드의 <한국남자>
2017년 <여우락 페스티벌> 중 블랙스트링의 <Blue Shade>

거침없는 도전과 실험

1970년대 말부터 퓨전, 국악가요 등의 이름으로 현재의 음악을 접합한 음악가들이 늘어가면서 전통음악을 좀 더 자주 가까이할 수 있게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덕수·김태곤·김영동·송창식·정태춘 같은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노래하고 연주하면서 흐름은 선명해졌다. 민족음악연구회, 한국민족음악인협회처럼 전통을 클래식과 대중음악으로 이으며, 이 땅에서 어떤 음악을 어떻게 만들고 펼쳐야 하는지 함께 고민한 이들의 역할이 컸다. 슬기둥·공명·푸리·상상을 비롯해 젊은 전통음악인들이 결성한 팀들은 더 큰 걸음을 내디뎠다. 과감하게 악기를 도입하거나 개량했고, 다른 장르와의 충돌도 서슴지 않았다. 1990년대 다시 불어온 전통에 대한 관심은 음악계의 크로스오버를 풀무질했다. 전통음악을 대학에서 전공할 수 있는 학과가 늘어나고, 관련 축제가 많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2020년 <여우락 페스티벌> 중 김준수·정재일·이아람의 <삼합>
2020년 <여우락 페스티벌> 중 악단광칠의 <인생 꽃 같네>

전통음악보다 대중음악이 더 친숙한 세대는 도전과 실험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은 논버벌 퍼포먼스를 향해 몰려가기도 하고, 발라드 음악에 경도되기도 했다. 외국의 음악을 번안하는 정도로 만족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행히 새로운 길을 고민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조력자들의 이해도 깊어지면서 손색없는 당대의 크로스오버 음악이 등장했다. 고래야·니어 이스트 쿼텟·동양고주파·두번째 달·블랙스트링·신노이·악단광칠·이날치·이희문·잠비나이·정재일 등이 맨 앞에 섰다. 그들의 무대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았다. 나라 안팎에서 한국 음악에 주목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온라인을 통해 손쉽게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게 됐으며, 이 같은 변화를 알아차린 이들이 뒤를 따르면서 지금 한국의 크로스오버는 어느 때보다 융성해졌다. 그렇지 않았다면 TV에서 주목했을 리 없다. 한국의 크로스오버는 아직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내일은 아무도 모른다.

글. 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 음악만큼 빵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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