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여우락 페스티벌>_잠재된 에너지
음악을 만드는 힘을 찾아서
우리를 음악하게 만드는 힘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음악을 끊임없이 확장하는 힘은 무엇인가.
음악 안에 잠재한 에너지를 찾아가는 네 편의 공연.

리마이더스×달음, 천지윤×상흠, 밤 새 Baum Sae, 지혜리 오케스트라까지, 이번 <여우락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네 팀의 음악가는 그들 안에 ‘잠재된 에너지’를 찾아나간다. 그것은 연주자에게 체화된 섬세한 신체감각이기도, 그들이 음악을 통해 꿈꿔 오던 환상이기도, 그들이 가려 하는 음악적 장소이기도, 그리고 음악에 국한되지 않는 근원적인 음양의 공존이기도 하다. 음악가 각자가 동력으로 여겨온 것들은 서로 다르지만, 이들이 만남과 관찰, 교환을 통해 어떤 힘을 찾아 나서려 한다는 것만큼은 동일하다.

손의 감각, 귀의 감각 리마이더스×달음 <네 개의 점(點)>

만지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화시키는 미다스(Midas)의 손. 그리스 로마 신화 속에 등장하는 이 존재를 다시 불러낸 ‘리마이더스(Remidas)’는 시나위 정신으로부터 출발한 창작을 이어가고 있는 거문고·가야금 듀오다. 이들은 즉흥성에서 발현되는 음색과 주법을 개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연주자 중심의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그들의 음악은 자연스러운 손의 움직임으로부터 비롯된 듯한 음형, 연주가의 몸에 누적된 시간 감각, 정교하게 가다듬어진 손으로 구현할 수 있는 소리 등 특히 ‘손의 감각’을 선연히 드러낸다는 인상을 준다.
‘달음(Dal:um)’ 또한 거문고·가야금 듀오지만 리마이더스와는 사뭇 다른 감각을 선사한다. 달음은 그들이 만든 소리가 얼마나 풍성한 음향과 잔향을 만들어내는지, 울려 퍼지는 그 소리의 질은 어떠한지, 소리의 있음과 없음의 경계는 어디인지 등, 소리의 존재를 상세히 듣게 한다. 물론 달음의 음악도 때론 빠르게 달려 나가듯 흐름을 이끌고 가지만, 그들의 음악을 들을 때 나는 대체로 소리를 들으며 시간과 동행한다는 느낌을 받아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들의 음악을 ‘귀의 감각’을 극대화하는 음악으로 이해해 왔다.
이번 공연 <네 개의 점(點)>은 리마이더스와 달음이 어떤 식으로 각자의 음악을 쌓아가고 있는지 교차해 볼 수 있는 장이다. 거문고·가야금 듀오라는 공통점으로 묶여 있지만, 이는 반대로 이 두 팀이 얼마나 다채롭고 고유한 음악을 만들어왔는지에 더욱 주목하게 만든다. ‘네 개의 점’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그 만남은 무슨 감각을 선사할지, 그 점의 모임으로부터 우리는 어떤 성좌를 발견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꿈속으로 풍덩 천지윤×상흠 <비몽사몽(Lucid dream)>

꿈속에서의 강렬한 모험, 화려하기 그지없는 부귀영화로 가득 찬 삶, 각별한 인연과 사랑 등. 천지윤과 상흠의 <비몽사몽(Lucid dream)>은 오랜 시간 널리 사랑받아 온 몽자류 소설, 김만중의 『구운몽』을 모티프로 한다. 꿈이라는 세계는 현실의 질서와 동떨어진 공간이다. 질서와 무질서, 차안과 피안,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무엇이든 가능한 것처럼 여겨지는 이 꿈의 공간에서 무엇보다 중요해지는 것은 각자가 꿈속에서 보고자 하는 ‘환상’들이다. 사실 음악 또한 현실의 질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하나의 공간이고, 그 안에 음악가들의 환상이 투영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꿈과 음악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음악가 천지윤은 전통과 현대음악을 넘나들며 다양한 도전을 서슴지 않는 해금 연주가다. 실상 그는 장르와 장소를 불문, 다양한 음악 현장에서 해금을 연주해 왔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탤 수 있다면, 그는 음악이 줄 수 있는 환상, 그리고 삶과 음악 속에서 마주할 수 있는 근사한 순간을 잡아채기를 주저하지 않는 음악가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그가 이번 <비몽사몽>에서는 음악가 상흠과 함께한다. 상흠은 싱어송라이터이자 그룹 무드살롱의 멤버, 그리고 재즈·크로스오버·EDM 등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지닌 아티스트다. 그는 때로 명시적인 가사로 무언가를 이야기하지만, 때로는 그 음향이 주는 감각만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특히 이번 공연은 『구운몽』의 세계를 표현한 비디오 설치 작업과 영상이 함께하며, 이들이 함께 만든 음악은 공연 당일 앨범으로도 발매될 예정이다. 이 두 음악가가 <비몽사몽>에서 우리를 어떤 세계로 초대할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살펴보자.

긴 여정을 나서며 밤 새 Baum Sae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철새는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새를 말한다. 철이 바뀔 때마다 긴 여정을 떠나는 일은 자신에게 꼭 맞는 환경을 찾아가는, 적극적인 삶의 방식이다.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철새도 많지만 어떤 철새는 큰 바다를 건너기도 할 정도로 먼 길을 날아간다. 그 도착지에 가본 적이 없더라도, 철새는 자신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 본능적으로 알고 움직인다.
밤 새 Baum Sae라는 이름은 “컴컴한 어둠 속에서도 가야 할 길을 바로 알고 이동하는 철새들의 움직임을 정답을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도약하는 젊은 아티스트에 비유한 이름이다. 이들은 어떠한 장르적 범주에 속하지 않는 음악을 만들어낸다.” 창작 음악가이자 드럼 연주자인 서수진, 거문고 솔리스트이자 창작가인 황진아, 다양한 장르와 협업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소리꾼 김보림이 만나 결성한 밤 새는 서로의 이동 경로를 함께 맞춰보려 한다.
그들의 첫 공연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은 각자의 소리가 서로에게 의미 있는 음악으로 연결되기까지의 과정을 풀어낸다. 나눔과 전달, 접속이라는 세 가지 소주제로 구성된 이번 공연은 큰 의미의 ‘Communication’ 아래에서 세 음악가가 마주했던 음악적 소통 방법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는 듯하다. 물론 이번이 첫 공연인 만큼 이들의 음악이 어떤 모양일지는 상상의 몫이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듯이, 매일의 날씨가 다르듯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언제고 달라지듯이, 이들이 수많은 변화를 유연한 태도로 맞이하리라는 것만큼은 추측할 수 있다. 어디로든 향할 수 있을 그들의 첫 비행을 따라가 보려 한다.

장단과 그루브의 순환 지혜리 오케스트라 <너나:음양>

본래 노래를 하던 음악가가 재즈 작곡가·편곡가가 되고,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 시작한 것은 미국 뉴욕에서였다. 다양한 예술적 시도가 이루어지고 여러 문화가 교차하는 뉴욕에서 그는 재즈를 통해 대담한 활동에 훌쩍 발을 내디뎠고, 동시에 그곳에서 한국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게 됐다. 그가 체화해 왔던 재즈의 그루브에 ‘장단’을 조금씩 겹쳐보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특히 지혜리에게 새로운 영감이 된 것은 그 음악의 표면적인 움직임만이 아니라 그 내부에 담긴 순환하는 힘이었다.
“가장 깊은 어둠에서 새벽이 태어나고, 화려함의 절정에서 꽃이 지고 씨앗이 되어 다시 새로운 생명이 피어나듯 두 극단에 서 있는 음과 양은 순환하며 맞닿아 있다.” 이런 그의 생각이 담긴 이번 공연의 제목은 <너나:음양>이다. 장단을 기본으로 창작된 곡들과 재즈로 편곡된 전통음악이 무대에 펼쳐지는 이번 공연에서는 특별히 타악 연주가 황민왕이 단원으로 참여하게 된다.
이 공연에서 음과 양의 자리, 그리고 ‘너’와 ‘나’의 자리는 계속해서 뒤바뀐다. 재즈의 그루브 대신 장단을 그 출발점에 놓아보는 음악, 그리고 재즈의 어법으로 전통음악의 멋을 구현해 보는 곡 등. 이번 공연은 재즈 오케스트라라는 편성을 프리즘 삼아 서로 다른 땅에서 만들어온 시간 감각을 서로 맞교환해 보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 사이에서 어떤 새로운 감각이 생겨날 수 있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자.

글. 신예슬 음악 비평가, ‘헤테로포니’ 동인. 서양음악학을 공부했고, 『음악의 사물들』을 썼다. 필자·편집자·기획자로 일한다.
<월간 국립극장> 구독신청 <월간 국립극장> 과월호 보기
닫기

월간지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 구독 신청

뉴스레터 구독은 홈페이지 회원 가입 시 신청 가능하며, 다양한 국립극장 소식을 함께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또는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편리하게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회원가입 시 이메일 수신 동의 필요 (기존회원인 경우 회원정보수정 > 고객서비스 > 메일링 수신 동의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