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2022 <여우락 페스티벌>_터뜨려 신나는
아련함 따위 집어던지는 K-파티
빌드 업과 폭발은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에만 있는 게 아니다.
허슬과 플렉스는 힙합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세상 누구보다 잘 놀고 잘 먹고 잘 마시는 우리 아니던가!

그렇다. 웅크리기만 한 한(恨)의 민족이 아니다. 삼키며 족했던 아련한 사람들이 아니다. 여기 우리의 터뜨림이 있다. 여기 우리의 흥이 있다. <여우락 페스티벌>의 세 번째 챕터는 이른바 ‘터뜨려 신나는’ 장이다. K-팝, K-콘텐츠 운운하는 요즘 트렌드에 굳이 빗대 말하자면 K-폭발, K-파티다.
자, 이제 관점을 바꿔보자. 누가 고개를 들어 대한해협과 태평양 건너를 보며 시티 팝의 소재를 묻거든 서도를 가리킬 일이다. 주술과 광기의 질펀한 교향악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가 아니라 팎과 이일우에게 주문할 메뉴다. 디지로그의 가장 격렬한 화학반응을 보려거든 스위스 취리히의 연구소 대신 공명과 이디오테잎을 무대로 소환해야 한다. 올해 <여우락 페스티벌>을 총망라한 한바탕 난장을 원한다면? 여우락 아우트로도, 여우락 에필로그도 아닌, 그 이름도 원대한 <여우락 익스텐션(Extension)>에 들러봐야 맞다.

정한(情恨)과 시티 블루(city blue)의 결합 서도밴드 <조선팝 지도>

감히 ‘조선팝’의 창시자를 자처했겠다. 서도밴드의 등장은 이날치, 악단광칠 등 근년에 흥을 앞세운 국악 퓨전 밴드들의 백가쟁명 속에 또 다른 결의 신선한 바람 한 줄기를 불어넣었다. 서양 실용음악을 전공한 멤버들의 탄탄한 연주, 그리고 무엇보다 리더 서도의 보컬이 한몫을 단단히 했다. R&B에 기반한 서구 팝의 플로(flow)가 첫인상이지만 우리 전통 창의 시김새가 아이스크림 위 체리처럼 살포시 얹히면 서도밴드만의 지도가 완성된다. 지난해 낸 데뷔 미니앨범 「Moon : Disentangle」, 특히 타이틀 곡 ‘City Lights’ ‘뱃노래’를 들어보면 이들이 주장하는 조선팝의 실체가 윤곽을 드러낸다. 마치 서울 지하철 2호선 합정역 인근의 고층 주상복합 건물에서 한강을 굽어보되 증강현실 기법으로 조선 시대 마포나루 정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형국이다.
서도는 일찍이 다섯 살 때부터 판소리를 익혔다. 국악중학교에서 정식으로 우리 음악을 배웠다. 뜻한 바 있어 서양음악으로 전향해 동아방송예술대 실용음악과(작곡 전공)에 들어갔지만 국악과 대중음악을 결합하는 작곡과 가창 실험을 어려서부터 꾸준히 했다. 영국 솔(soul) 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1983~2011)와 지드래곤을 동경하며 자랐다고 한다. 철저히 서양음악에 기반한 나머지 멤버들 역시 서도를 만난 뒤 국악 고유의 음악적 특성을 익혀 현재의 ‘화학식’을 완성했다. 홀수 박에 강세를 주는 국악적 그루브를 연구하고 있다. 서도는 “우리 소리와 솔의 창법을 결합하는 황금비율을 연구해 거의 완성 단계에 왔다”라고 자부한다. 지난해 JTBC <풍류대장> 우승은 이 음악적 기대주가 대중을 향해 내딘 한 걸음일 뿐이다. 뜨거운 정한(情恨)과 차가운 시티 블루(city blue)를 결합한 이들만의 조선팝이 한양 한복판에서 이번엔 또 어떤 판을 벌여낼지 기대해 볼 일이다.

환각의 사운드트랙 팎(PAKK)×이일우(EERU) <고요한 씻김>

아마도 이번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가장 헤비한 밤이 되리라. 팎(PAKK)의 음악 장르를 살풀이 록이라 풀이해도 될까? 굵은 입자로 증폭된 전기기타에 왜곡되고 난타되는 베이스기타와 드럼…. 이 대담한 3인조가 펄펄 끓여내는 록의 전골엔 붉은 한국적 샤머니즘이 한 국자, 뒤틀린 음계에 휘감겨 의외로 치솟는 친근한 마이너 멜로디가 세 숟가락 동동 떠다닌다. 지글지글 타오르는 지옥도에는 사이키델릭 록의 주술성, 그런지의 염세, 익스트림 메탈의 분출이 뒤섞인다.
이일우(EERU)라고 질쏘냐. 장르의 경계, 악기의 한계를 깨고 부수며 일찌감치 한국 음악의 전위로 떨쳐나간 밴드 잠비나이의 리더가 바로 그다. 잠비나이 밖에서 이일우가 몸담은 밴드 49몰핀즈, 컴배티브 포스트는 국악기를 배제하고 순수한 헤비 록의 극한값을 두고두고 실험했더랬다. 그가 오른손으로 전기기타의 낮은 개방현을 가격하면서 품었던 피리나 태평소를 꺼내 왼손으로 쳐들 때 어떤 일이 또 일어날까.
“인두겁을 걸치고 사람인 척 흉내 내고/ 세 치 혀를 놀리며 사람을 갈갈이 갉아먹네”(팎 ‘충(蟲)’ 중)
팎이 지난해 낸 앨범 「칠가살(七可煞)」은 어지러운 세상, 염치없는 인간들을 향한 강력한 록의 철퇴이자 사자후였다. 세계에 여전히 불만 가득한 두 록 아티스트를 통해 우리는 어릴 적 설화에서, 동화에서 읽었던 도깨비와 귀신, 저주와 처형 이야기에 관한 환영을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머나먼 꿈의 뒤안길에 버틴 악몽과도 같던 그런 감각들이 실은 바로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의 오감도이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이 무대를 앞에 두고 우리는 위장크림을 바르고 탄창을 챙겨야 한다. 삶을 지켜내는 하루하루의 투쟁이 육화하고 현현하는 밤이다. 파괴하고 탈주하려는 자들을 위한 환각의 사운드트랙이 멀리서 울려온다.

철(鐵)과 죽(竹)과 요(窯)의 한바탕 축제 공명×이디오테잎 <공테잎:안티노드(공TAPE:Antinode)>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다. 자연과 인공의 충돌이다. 아니다. 어쩌면 불꽃과 불꽃의 조화다. ‘월드뮤직 그룹’이라는 수식어에서 엿보이듯 공명은 국악에 두 발을 딛되 세계 민속음악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에 문을 열어두고 음악을 만들어왔다. 우리 악기와 남의 악기를 조합하고 때로는 새로운 악기를 만들어가면서 존재하지 않으나 상상할 수 있는 조화를 꾀해 온 것이다. 우리 전통의 타악기, 관악기를 전진 배치하되 호주 원주민 악기인 디저리두, 국악기 훈을 직접 개량해 음역을 넓힌 송훈 같은 여러 악기를 더해 그들만의 울림을 만들어왔다.
이디오테잎의 끓는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1990년대에 빅 비트(big beat)라는 장르가 음악계를 집어삼킨 적이 있다. 영국의 프로디지와 케미컬 브라더스, 그리고 미국의 크리스털 메서드 같은 팀이 말 그대로 거대한 비트를 들고나와 록 장르의 파괴력과 전면전을 벌인 것이다. 수많은 기타리스트, 드러머가 DJ 장비를 사고, 전자음악에 맞춰 헤드뱅잉을 하기 시작했다. 이디오테잎을 그에 빗댄다면 ‘비거 비트(bigger beat)’라 칭해야겠다. 호러 영화의 빌런처럼 반복된 움직임으로 다가서는 자극적 샘플,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DR이 두드려 패는 무자비한 드럼은 록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도 손색없는 온도를 자랑한다.
이제 공명과 이디오테잎의 만남, 이른바 공테잎을 상상해 보자. 전남 담양군 어딘가에 푸르게 펼쳐진 대나무 숲, 그리고 도자기 굽는 장인…. 이 평화로운 정경 위로 문득 옵티머스 프라임만큼 거대한 덩치의 강철 변신 로봇이 쿵쾅대며 진격해 온다. 피리·태평소·대금·소금과 북·꽹과리·양금·디저리두·송훈…. 자연의 재료가 일어나 로봇을 너른 품으로 감싸 안고, 자칫 위태로워 보이는 철(鐵)과 죽(竹)과 요(窯)의 한바탕 축제가 전개된다.

얽히고설키며 섞여든다 합동 공연 <여우락 익스텐션(Extension)>

아우트로라며 끝을 흐리지 않는다. 에필로그라며 눈물이나 짜지 않는다. 제목부터 익스텐션. 막판에 또 확장을 선언한다. 그렇다. 피날레는 갈라 쇼로 준비된다. 페스티벌의 대장정을 마친 9개 팀, 16인의 음악가가 최종의 무대에서 서로 얽히고설키며 섞여든다.
무토(MUTO), 리마이더스×달음, 천지윤×상흠, 밤 새 Baum Sae는 앙코르 무대로 앞선 공연의 감흥을 복기한다. 임용주·이일우(EERU)·차승민은 앞서 선보이지 않은 각각의 특별한 독주 무대를 선보일 계획이다.
갈라는 갈라이되 뻔한 나열성의 ‘히트곡 모음집’은 아니다. 16인이 서로 교차하며 새로운 조합과 변형된 구성으로 합동 무대를 엮어낸다. 이 화려한 피날레의 피날레는 무토(MUTO)와 천지윤×상흠이 새롭게 작곡한 곡을 모두 함께 연주하는 대화합의 장으로 꾸민다.
2022년 우리 음악은 어느 때보다 더 스펙트럼을 넓히며 안팎의 경계를 부수고 있다. 마지막 무대에 내건 익스텐션이라는 모토가 지향하는 바가 거기에 적절히 조응할 것이다. 거인의 호흡처럼 내쉬며 확장하고 들이쉬며 흡수하는 우리 음악의 세계가 2023년에는 어디까지 품을 수 있을지 벌써부터 슬슬 기대가 된다.

글. 임희윤 기자 일간지에서 국악과 대중음악을 다룬다.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한국힙합어워즈 선정위원, 국립국악원 운영자문위원. 북유럽과 한국의 문화, 필터 커피에 심취했다. 몸속에 꿈틀대는 바이킹과 도깨비를 느낀다.
<월간 국립극장> 구독신청 <월간 국립극장> 과월호 보기
닫기

월간지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 구독 신청

뉴스레터 구독은 홈페이지 회원 가입 시 신청 가능하며, 다양한 국립극장 소식을 함께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또는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편리하게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회원가입 시 이메일 수신 동의 필요 (기존회원인 경우 회원정보수정 > 고객서비스 > 메일링 수신 동의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