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다섯

무대디자이너 박은혜가 말하는 <여우락 페스티벌>
확장하는 여우락,
그 뒤편의 이야기
축제를 떠올릴 때면 그 그림의 가운데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정해진 기간 열기가 가라앉을세라 자신의 열정으로 불을 지피는 사람들이 있기에 축제는 계속된다. <여우락 페스티벌>과 함께하는 열두 번째 여름을 준비하고 있는 무대디자이너 박은혜와 만나 익숙하고도 새롭게, 이야기를 나눠봤다.
무대디자이너 박은혜

“제 기억이 맞다면 첫해만 빼고 11년간 <여우락 페스티벌>(이하 여우락)에 참여했어요. 2011년부터네요.”
국립창극단과 국립무용단, 국립극단 등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 숱한 공연의 크레디트 시퀀스에서 그의 이름을 찾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학부에서부터 대학원까지 무대디자인 한길만 바라보고 스승인 이태섭 선생과 동행하며 부지런히 걸어온 박은혜는 “제일 좋아하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무대미술뿐” 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여우락과의 만남도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국립창극단이었나, 국립극장에서 무대 작업을 하던 때였는데 당시 공연기획부 권혜미 부장이 말을 꺼내시더라고요. 올해 이런 걸 할 건데, 함께해 주면 좋겠다고요. 그게 여우락이었어요. 첫해에는 무대디자이너 없이 진행했는데, 다소 매끄럽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원 세트(one set)’로 처음부터 끝까지 갈 테니 부담 없이 한번 해 보자는 거였죠.”
2010년 9월 열흘간 진행하며 성공적으로 시작을 알린 여우락은 이듬해 일정을 7월로 옮기고 프로젝트 멤버로 참여했던 장재효가 음악감독으로 축제를 이끌었다. ‘여름’ 하면 ‘여우락’을 각인시킨 시작점이다. 많은 공연 무대를 만들어왔지만 여우락만큼은 본인에게도 새로웠다고, 박은혜는 당시를 기억했다.
“이전까지는 사실 국악을 그렇게 다양하게 접할 기회가 없었어요. 국악 공연이라고 하면 보통 돗자리 깔고 참하게 등장해 가야금을 연주하는 장면을 떠올렸죠. 그런 제가 여우락 무대를 봤으니, 일단은 ‘이것도 국악인가?’ 싶었죠. 새로웠어요. 아니, 사실 좀 충격이었어요. 이런 사람들이 정말 음악가구나, 싶더군요. ‘국악하는 사람’ 말고 ‘음악하는 사람’들이요.”

2010 <여우락 페스티벌>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라는 카피처럼 여우락은 국악이라는 규정을 넘어선 한국음악, 나아가 ‘우리 음악’으로 불리는 음악 세계를 포용한다. ‘월드뮤직’ ‘크로스오버’ ‘컬래버레이션(협업)’ ‘융복합’ 등 여우락을 수식하는 다양한 표현은 그 시간 동안 여우락이 펼쳐온 도전과 실험, 교감과 접속의 노력을 대변한다.
“초기에 했던 잼 콘서트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다들 무척 바쁜데도 불구하고 시간을 쪼개 다 같이 모여 연습했죠. 여우락이 ‘한국음악은 이런 것이다’라고 소개하는 중요한 무대라면, 잼 콘서트는 진정한 축제예요. 한국음악 안에도 각자 선호하는 음악이 다 달라요. 누구는 굉장히 전통적인 음악을 추구한다면, 또 누군가는 이렇게 연주할 수도 있구나 싶을 만큼 실험적이죠. 그런데 잼 콘서트에서만은 이런 걸 다 떠나서 ‘합주’를 해요. 종종 잼 콘서트에 대해 합주 연습이 덜 됐다든지 음악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건 별로 의미가 없다고 봐요. 그냥 즐기는 거예요. 관객 모두 앙코르를 외치며 객석에서 내려와 춤추고, 노래하고, 열광하고… 모두가 축제의 주인공이 돼 마지막을 함께하는 것, 그게 여우락에서 가장 좋았어요. 또 2012년인가 2013년인가 문화광장에서 야외 공연을 열었는데, 공연을 하던 중에 비가 쏟아졌죠. 부랴부랴 관객들에게 우비를 나눠주고 무대에서는 물 쓸어 내리고, 비 멈추면 다시 연주하고, 아주 전쟁터가 따로 없었죠. 그런데 재밌었어요. 올해 다시 야외 공연을 한다고 하니 기대가 되네요.”

박은혜 무대디자이너가 이토록 여우락에 애정을 드러내는 것은 참여 예술가들과 같은 마음으로 무대를 창작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우락 무대에는 “창작이 기본”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는 예술가들이 이 무대를 위해 새로운 음악을 만들기 때문에 자신 또한 그 창작의 지점에서 디자인 영감을 받는다고 한다. 일반적인 극 작업의 경우 종일 연습실에서 수많은 장면을 관찰하며 디자인을 수정해 나가지만, 여우락은 그보다 예술가와 소통하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초기에는 장재효 감독과 출연자들의 연습실을 전부 쫓아다녔고, 지금은 신곡이 나오면 음악을 들어본 뒤 대화를 나누며 디자인을 결정하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참여 팀이 많은 데다 10년 넘게 지속해 온 축제의 기조를 매년 만드는 것이 어렵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답했다.
“쉽지 않죠, 그런데 그게 제 직업이니까요. 올해 여우락 주제는 ‘확장’ ‘증폭’ ‘팽창’이에요. 무언가 퍼져나가고 증폭되는 이미지를 기반으로 해서 음악적으로 지향하는 부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시각적 이미지를 만들어보려고 해요. 작은 것에서 점점 넓혀가거나 어두운 지점이 점점 밝아지는 느낌을 주는 데 초점을 맞춰 디자인을 준비했어요. 달오름극장은 잘 짜인 프로시니엄 극장이기 때문에 어떤 디자인을 가져다 놓아도 정리된 느낌이 들고, 각 공연팀이 원하는 분위기를 잘 살릴 수 있는 여러 조건이 갖춰져 있죠. 그래서 가급적 형태는 안정적으로 잡은 다음, 가운데에 서는 연주자가 돋보이도록 작업하고 있어요. 하늘극장은 삼면에서 바라보는 형태라 객석의 시야가 너무나 넓기 때문에 ‘쇼(show)’ 느낌을 살리려고 해요.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든 신나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그래서 상대적으로 좀 더 과감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편이에요. 집중력 있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볼거리가 있어야 하거든요.”

2022 <여우락 페스티벌> 중 <너나:음양> 무대디자인
2022 <여우락 페스티벌> 중 <조선팝 지도> 무대디자인
2022 <여우락 페스티벌> 중 <Base Is Nice> 무대디자인

10여 년간 여우락 무대에 오른 음악이 실험과 도전을 거듭하고 꾸준히 변화한 것처럼 무대디자인 역시 변화의 물결에 올라 있다. 관객이 체감하는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아마도 영상미디어의 사용이 아닐까. 공연만큼이나 화려한 영상이 눈을 사로잡는 시대이니 말이다.
“미디어 사용은 근 몇 년 사이 많이 늘어났죠. 최근의 변화는 정말 놀라워요. 이번 여우락 오프닝을 장식하는 무토(MUTO)처럼 음악적 요소를 전부 미디어에 끌어넣어 활용하는 팀도 있고, 단순한 배경으로 사용하거나 공연 흐름에 따라 원하는 이미지를 수용해 음악을 좀 더 풍성하게 보완하기도 하고요. 영상을 위해 스크린을 사용해야 한다면 무대에서 좀 더 효과적으로 발현할 방법을 고민해요. 영상과 음악이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죠.”

매여름 축제에 함께하며 첫 만남이 두 번이 되고, ‘쿵’ 하면 ‘짝’ 할 만큼 지음(知音)이 된 예술가도 있지 않을까. 해를 거듭해 만나는 반가운 얼굴 가운데 새로운 변화가 있었는지 질문했다.
“두 번 세 번 만난 분도, 간격을 두고 다시 만난 분도 있지만 재차 본다고 해서 음악적으로 미묘한 변화까지 다 알아채긴 어려워요. 하지만 박우재 감독의 변화는 좀 놀랍죠. 처음에 연주자로 만났는데, 놀라운 발전상을 보여준 이도 있죠. 박우재 감독이요. 처음에는 거문고 연주자였다가 무토라는 미디어아트 프로젝트 그룹을 이끄는 리더로, 또 지난해부터 여우락의 음악적 방향성을 결정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함께하고 있잖아요. 이런 변화를 보면, 음악가가 자신의 연주만 하는 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예술가들과 소통하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발전하기를 기대하고 희망한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예술가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느낌이랄까요. 저는 박우재 감독과 연극 작품에서 처음 만났는데, 거문고에서 미디어로, 또 이제는 미디어에 본인의 음악을 완전히 흡수시키는 걸 보며 성장, 발전, 확장한다고 느껴요. 그러고 보니 올해 키워드이기도 하네요.”

박우재가 연주자로 참여한 2020 <여우락 페스티벌> 중 <포박사실> 공연
박우재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한 2021 <여우락 페스티벌> 중 <두 개의 눈> 공연

여우락 무대와 예술가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 박은혜 무대디자이너가 사뭇 진지하게 운을 뗀다. 모두가 꼭 알아주면 좋겠다며 차분하게 잇는 말, 무대 뒤 어둠 속에서 일하는 수많은 제작진에 대한 이야기다.
“여우락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다름 아닌 국립극장 스태프들이에요. 언제나 ‘용의를 가지고’ 곧바로 시작할 ‘준비’가 돼 있어요. 그래서 저는 ‘여우락은 국립(극장)이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초창기 여우락이 자리를 잡는 데에는 권혜미 부장과 오지원 프로듀서의 역할이 상당했어요. 저는 사실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기술에 관해서는 잘 몰라요. 구현 과정에 어려움이 있다면 국립극장 스태프들이 조언하고 해결해 주시죠. 무대기술팀과 무대미술팀은 여우락 전 무대에 참여하는데, 조명 스태프들은 직접 디자이너 역할을 하기도 해요. 음향팀 역시 필요에 따라 음향 디자이너로 들어오기도 합니다. 기술 능력은 기본이고, 디자인 능력까지 갖춘 거예요. 더불어 여러 편의 공연이 계속 진행되기에 셋업(set-up) 기간이 무척 짧아요. 이틀, 길어야 사흘, 기본적으로 주어진 시간은 겨우 하루 반이라고 하더군요. 극장의 모든 감독이 함께 움직여서 하루 반 만에 그 무대들을 만드는 거예요. 어마어마한 거죠. 어쩔 수 없이 예술가를 위한 축제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이렇게 무대 뒤에서 많은 분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지금의 여우락이 있다는 게 많이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글. 김태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발레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무용이론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춤으로 시작해 전통예술·연극·시각예술까지 범위를 넓혀가며 예술을 글과 책으로 엮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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