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하나

<여우락 페스티벌>_확장해 실험하는
매번 새롭게 그려지는 한계선
엔데믹 시대에 박차를 가하는 <여우락 페스티벌>.
무엇으로부터 ‘확장’하고, 어떻게 ‘증폭’하며, 어디로 ‘팽창’하는가.

<여우락 페스티벌>이 엔데믹 여파로 3년 만에 완전한 축제로 관객을 맞이한다. 극장의 모든 객석을 열고, 야외 공연까지 재개해 코로나19 이전의 모습을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21년부터 예술감독과 음악감독의 이원화에서 벗어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1인 체제를 구축했다. 축제의 큰 방향성을 설정하고, 기획 프로그램에 일관성을 부여하기 위한 시도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거문고 연주자이자 무토(MUTO)의 멤버인 박우재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아 축제를 이끈다.
올해는 ‘확장’ ‘증폭’ ‘팽창’을 키워드로 총 12편의 공연을 선보인다. 세 키워드는 맹렬한 기세로 발산하는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이러한 이미지는 미지의 영토를 개척하고 때론 점령하며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도전과 모험의 정신을 함축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전혀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진원지를 알 수 없는 무한한 분산, 매번 새롭게 그려지는 한계선, 누구도 온전히 장악하지 못한 중립지대와 같은 불안정성을 암시할 수도 있다. 오히려 흥미를 끄는 것은 후자다. 만약 후자에 무게를 둔다면, 올해 <여우락 페스티벌>은 어딘가에 정주하지 않고 계속 미끄러지는 과정 속에서 무언가를 찾겠다는 선언을 한 셈이다. 이들은 무엇으로부터 ‘확장’하고, 어떻게 ‘증폭’하며, 어디로 ‘팽창’할까.

공간을 장악하는 무토(MUTO) <그라운드(GROUND)>

페스티벌의 첫 무대는 무토(MUTO)가 꾸민다. 무토는 ‘광활한 대지’라는 뜻으로, ‘보이는 음악(VIEWZIC)’을 표방하는 그래픽 아티스트 박훈규, ‘팀노드(teamNode)’를 이끄는 그래픽 디자이너 홍찬혁, <여우락 페스티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거문고 연주자인 박우재, 이디오테잎(IDIOTAPE) 프로듀서 신범호가 2016년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이다. 한국의 전통음악을 토대로 새로운 공연예술을 고민한다는 방향성 아래 압도적인 사운드와 입체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페스티벌의 개막작이었던 <두 개의 눈>은 판소리 ‘심청가’를 맹인 심학규의 관점에서 해석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개막작으로 공개될 <GROUND>는 지난 6월 발매된 무토의 첫 정규 앨범 「VAST PLAINS」음악의 일부를 무대로 옮겨 온 작품이다. 이번 공연에서도 무토 특유의 몽환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할 예정이다. 장엄하면서도 기하학적인 자연 풍경, 무채색의 폐허를 연상케 하는 웅장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미지의 것에 대한 불안과 독특한 긴장, 경이로움을 가로지르며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것이다. 이번 작품을 위해 고수연(대금)·김보림(판소리)·박예정(가야금)·채수현(경기소리)·DR(드럼)이 협연자로 참여한다. 5명의 음악가와 무토가 어떤 협업을 보여줄지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거문고와 가장 밀착된 박다울 <거문고 패러독스:거문고는 타악기가 아니다>

박다울의 거문고는 언제나 그를 몰입의 순간으로 이끈다. 그의 공연은 다른 어떤 연주자들보다 거문고와 밀착돼 있다는 느낌을 준다. ‘거문고의 대중화’라는 기치 아래 다양한 음악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박다울은 지난 한 해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JTBC <슈퍼밴드2>에서 3등을 차지한 뉴메탈 밴드 ‘카디(KARDI)’의 멤버이자 방지원(동해안 별신굿)·박다울(거문고와 춤)·김용성(아쟁, 가야금)이 모여 만든 ‘방울성’의 멤버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미술, 영상 등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과 지속적으로 협업하며 거문고 연주자로서 활동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거문장난감’은 박다울의 대표곡으로 자리 잡았고, 다음 행보를 궁금해하는 팬층도 두터워졌다.
올해 <여우락 페스티벌>에서는 지난해 온라인으로 공개한 박다울의 <거문고 패러독스:거문고는 타악기가 아니다>를 대면 공연으로 진행한다. 이 공연의 제목은 파이프 그림 밑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대표작 ‘이미지의 배반(La trahison des images)’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 <거문고 패러독스:거문고는 타악기가 아니다>는 제목과 달리 거문고의 타악기적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작품이다. 창작자이자 연주자로서의 자아와 그것을 소비해야 하는 자아의 충돌과 갈등을 거침없이 보여주려는 의도다. 박다울은 항상 새로운 무대장치와 연주법을 고민하는데, 이번에는 도넛 형태의 회전무대에 여러 대의 거문고와 오브제를 놓아 거문고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담아낼 예정이다.

전통악기 소리가 가진 가능성에 집중하는 임용주 <울릴 굉(轟)>

월드뮤직그룹 공명의 멤버이자 모듈라서울(Modular Seoul)의 오거나이저로 활동하는 임용주는 타악 연주를 비롯해 다양한 전자음악, 실험음악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임용주의 <울릴 굉(轟)>은 2020년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전통예술 분야 지원작으로 선정된 작품으로, ‘변치 않는 돌’로서 전통 음률의 표준을 상징하는 악기인 ‘편경’에 주목한다. 편경(編磬)은 2층으로 이루어진 걸이에 ‘ㄱ’자 모양의 돌을 매달아 각퇴(角槌)라 불리는 방망이로 치는 타악기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종묘제례악에 사용되며 청아한 소리가 특징적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귀중한 악기이지만 오늘날 악기로서의 입지는 점차 위축되고 있다.
<울릴 굉(轟)>은 아날로그 모듈러신스를 이용해 전통악기의 고유한 사운드와 전자음악 사운드를 교차시켜 전통악기가 지닌 다양한 소리의 질감을 보여준다. 이번 <여우락 페스티벌>에서는 기존의 공연을 확장해 편경을 비롯한 다양한 한국 전통악기를 잘 조명할 수 있도록 무대를 재구성한다. 임용주는 “편경이라는 악기의 이미지와 소리를 매치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라는 질문을 던진 바 있다. 이번 공연을 통해 한국 전통악기의 생김새와 본연의 소리에 집중하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면면을 발견해 보는 것은 어떨까.

깊은 내면을 응시하는 차승민×장진아 <베이스 이즈 나이스(Base Is Nice)>

<Base Is Nice>에서는 대금 연주자 차승민과 푸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장진아가 만난다. 장진아 대표가 운영하는 비건 식당에서 시작된 기획으로, 두 예술가의 삶을 차분하게 응시하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한다. 장진아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라 도쿄와 뉴욕에서 거주하면서 매일 먹는 음식이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베이스이즈나이스’라는 식당의 이름도 이러한 지향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두 예술가의 공연도 식당의 이름처럼 각자의 시간을 지탱해 온 근간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차승민은 대금 연주자, 작곡가, 인터넷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여행작가 등으로 활동하는 다재다능한 예술가다.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project 詩路(프로젝트 시로)’를 이끌며 음악 활동을 하던 차승민을 기억할 것이다. <Base Is Nice>는 사고로 대금을 내려놓은 그가 2년 만에 오르는 무대로, 그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볼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그간의 시간을 통과하며 삶에는 무엇이 자리 잡았는지, 공연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무척 궁금하다. 이번 공연을 위해 차승민의 오랜 동료들이 함께한다. 김희영(정가)·심운정(타악)·오연경(가야금)·이태훈(기타)의 연주, 최강희 감독의 다큐멘터리 필름이 무대 위에 펼쳐진다. 두 예술가의 깊은 내면이 어디서 어떻게 공명할지 함께 지켜보자.

글. 성혜인(비평가) 전통예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는다. 음악비평동인 ‘헤테로포니’ 필진, 비평지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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