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보기
하나

팬데믹 이후 2023년 공연계
빈 무대를 채우는 상상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올해 공연계를 결산하는 움직임이 서서히 일고 있다.
2023년은 엔데믹 이후 공연계가 정상적으로 운영된 첫해다.
긴 암흑은 그 자리에 어떤 상흔을 남겼을까.

2020년 3월 11일, 팬데믹이 선언되면서 코로나19는 대면을 기본으로 하는 공연계에 깊은 상처를 주고, 2023년 5월 공식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팬데믹 시절 대한민국은 한 번의 셧다운Shut Down도 없이 공연을 이어갔다. 정상적일 수는 없었다. 공연은 감염자 증가세에 따른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띄어앉기 좌석 조정을 다시 해야 했고, 코로나 환자 발생으로 공연이 중단되기 일쑤였다. 국가의 지원을 통해 공연영상 사업은 공연인들에게 일자리를 공급하며 아쉬운 대로 공연 관객들의 관심을 유지시켰다. 2020년 코로나19 첫해 공연 시장은 전년도의 20%대로 주저앉았다. 국가 지원이라는 산소호흡기를 달고 근근이 버틴 기간이었다.

팬데믹 시기 공연계의 가장 큰 걱정은 팬데믹 기간 중 공연 관람을 멈춘 관객이 다시 돌아올까 하는 것이었다. 팬데믹이 끝나도 새로운 유흥 문화를 찾은 관객들이 공연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엔데믹을 맞은 첫해인 2022년 공연시장 티켓 판매액은 5,589억 원(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 자료, 대중음악 제외)으로 팬데믹 이전 수준을 넘어섰다. 2020년에 비해 218%, 2021년에 비해서도 82% 성장한 수치였다. 특히 뮤지컬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2018년 뮤지컬 시장은 3,800억 원대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022년 뮤지컬 시장은 4,253억 원으로 처음으로 4천억 원대에 진입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팬데믹 기간 중 OTT 등에 익숙한 관객들이 영화관으로 돌아오지 않은 것에 견주어 공연 관객은 공연장을 다시 찾아주었다. 스마트폰을 통한 일대일 접촉이 많아지고, 비대면 사회로 변해갈수록 아날로그적 정서와 대면의 기쁨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메타버스와 챗GPT, 인공지능AR과 가상현실VR 등 기술의 발달 역시 아날로그적 공연을 위협하는 요소였다. 현실과 사이버 공간이 더는 분리되지 않는 세상에서 정해진 시간에 어두컴컴한 공연장을 찾아가야지만 볼 수 있는 공연은 원시 유물같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공연은 아무런 기술적 장치를 설치하지 않아도 연극적 약속에 의한 상상력으로 빈 무대를 비행기를 타고도 몇 시간이나 걸리는 이국으로, 수백 년 시간 여행을 한 과거로, 상황에 따라서는 우주로도 옮길 수 있는 그 자체가 메타버스이자 가상세계다. 우리는 젊은 배우가 무대 위에서 어린아이가 되기도 하고, 나이 든 왕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성性의 사람이 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무대와 관객이 마음을 합치고 상상력을 더해 완성되는 자연스러운 연극적 판타지를 아직까지 기술이 따라오지 못한다.

팬데믹은 공연의 힘, 공연의 잠재력을 다시 확인하는 기회였다. 올해 시장 역시 지난해의 기록을 넘어서 더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엔데믹 이후 아날로그 공연의 가파른 성장은 공연 시장의 청신호를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러나 수치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2022년 공연 시장의 성장을 이끈 것은 상업예술인 뮤지컬이었고, 전체 공연시장의 76%(대중음악 제외)를 차지했다. 기타 장르는 2023년에야 예전 시장을 회복하고 있다. 2023년 공연 시장 규모는 더욱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뮤지컬 시장만 거의 5천억 원에 가까울 것으로 예상한다. 연극이나 클래식 시장의 성장도 두드러졌는데, 연극과 클래식 시장을 주도한 작품을 보면 상업극의 색채가 강한 작품이었다. 클래식 시장에서는 TV 프로그램 <팬텀싱어> 출신 팀들의 콘서트가 매달 상위권을 차지했고, 연극 분야에서도 흥행작을 보면 정소민·김유정·정문성·김성철 등 스타들이 포진한 <셰익스피어 인 러브>, 유인촌·박해수 출연의 <파우스트>, 손석구의 <나무 위의 군대>, TV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이후 주목받은 이주승과 아이돌 그룹 빅스의 정택운(레오)이 출연한 <테베랜드>가 판매 상위권에 위치한다.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장르 안에서도 스타의 유무에 따른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시장규모는 커졌지만 실질적인 공연 생태계는 건강하지 못한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국가의 올바른 정책과 지원이다. 미래에도 아날로그 공연의 경쟁력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장 논리로 자생할 수 있는 작품은 상업성과 자본력이 결합된 일부일 뿐이다. 공연의 공공성과 역할을 이 자리에서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좀 더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공생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기초예술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지원에 더 신경을 써야 할 때다.

글. 박병성 공연칼럼니스트이자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의 편집장을 지냈다. 아르코웹진 ‘A SQUARE’와 ‘세종 문화 N’ 편집위원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동국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매력이 영원할 것이라 믿으며 이를 기록하고 나누는 일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뮤지컬 탐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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