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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국립극장 기획공연 <세종의 노래 : 월인천강지곡>
세 가지 시선: 거장들의 만남
국립극장 남산 이전 50주년을 기념해 50년 전에나 지금이나 현역으로 활동하며
한국 공연예술계에 한 획을 긋고 있는 세 명의 거장이 한자리에 모였다.

11월의 늦은 저녁, 국립극장 로비에 손진책·박범훈·국수호가 모였다. 연극·국악·무용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그들 중 단 한 명의 섭외도 어려운데, 이렇게 셋이 모이니 뭔가 판이라도 벌여야 할 것 같았다. 그래, 이 셋을 무대 위에 딱 올린다면 아마도 한국 예술사를 돌아보는 토크 콘서트 하나가 ‘뚝딱’ 나오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꺼내는 기억마다 적고 싶은 역사의 조각들이다. 무엇보다 함께했던 기억이 즐거울 때는 농담도 섞이는 법. 그래서 “세 분이 아예 마당놀이 한번 해보시지요.”라고 농담을 건네니 “박범훈이 무대에 올려봐요. 아마도 윤문식이보다 더 잘할 거요.”라며 국수호가 거든다. 깊어가는 가을 저녁이었다.

정을 쌓고, 예술을 낳으며

손진책은 1947년생으로 셋 중 맏형이다. 종이에 담긴 희곡과 배우가 놓인 무대를 조율하듯 판을 조율한다. 역시 연출가답다. 박범훈은 1948년생이다. 국악관현악 지휘자이자 작곡가로 보낸 시간이 사반세기. 흥을 넣을 줄 알고, 판을 끌어갈 줄도 안다. 국수호는 박범훈과 동갑내기다. 그 역시 국립무용단의 간판 무용수로 활약했으니, 두 사람의 틈새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낼 줄 안다. 이들은 굵은 농담에 섬세한 맞장구를 치는 친구로 오랜 세월 함께 했다. 각자의 영역에서 맹수와 야수 같은 맹금류의 습성으로 자신만의 작품과 세계관을 끌고 온 이들이니, 기 싸움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기억의 조각들을 꺼내 회고하는 동안에 농담이 끝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들이 한 작품에서 만나 서로의 주장과 의견을 내세우면서도 우정을 지켜낼 수 있었던 비밀이 아니었을까. 하여 “세 분이서 이렇게 함께해 올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가요.”라고 물으니 분위기는 역시 농담의 물길을 타고 흐른다. 박범훈이 “아니에요. 많이 싸웠어요. 수도 없이 싸웠어요.”라며 질문의 물꼬를 트니, “맞아. 안 싸우면 작품이 안 나왔지.”라며 국수호가 틀어진 물길을 넓히고, “사실 내가 박 선생한테 무리한 주문도 많이 했어. 작품 같이 할 때마다 매번 음악 고쳐 달라고 하질 않았나. 애써 써 온 음악 덜어내질 않았나. 아니면 여기에 음악 하나 들어가면 좋겠으니 내일까지 써 달라며 무리한 부탁을 하질 않았나.”라며 참회의 물길을 내고, “나도 그랬어. 이러면 춤 못 춘다면서 이런저런 주문도 많이 했지.”라며 다시 물길을 넓힌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했느냐고 박범훈에게 물으니 돌아온 답변에 셋이 폭소가 터진다. “지휘봉 던지고 나갔지. 니들끼리 잘 해보라면서.” 하여 “그럼 왜 모이세요?”라고 다시 물으니 손진책이 답한다. “아직 우리 셋이 함께한 대표작이 안 나왔거든.(웃음)”

기념작 위해 세종의 노래 빌려오다

세 사람이 모인 것은 12월에 선보일 작품 회의 때문이었다. <세종의 노래 : 월인천강지곡>이다. 곡이니 선율 짓는 박범훈이 나섰고, 하나의 달이 천 개의 강을 비추는 낭만적 드라마가 녹아 있으니 손진책이 흐름의 연출을 맡았고, 달과 밤에 춤이 빠질 수 없으니 국수호가 함께한다. 셋을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게 한 이 작품은 1973년, 그러니까 국립극장 남산 이전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작품이다.
작품은 세종이 지었다는 ‘월인천강지곡’을 모티프로 삼았다.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유교를 건국이념으로 삼고, 전대 왕조인 고려의 국교 불교를 억압한 정책)과 학자들의 한글 창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세상을 먼저 떠난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한 찬불가로 이 곡을 직접 짓고 한글로 썼다. 박범훈은 이 일화에서 영감을 받고 2년에 걸쳐 작곡했지만, 미발표곡으로 고이 간직했다. 형식은 국악관현악과 노래가 어우러진 교성곡.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선율을 연주하고, 국수호가 안무한 몸짓을 국립무용단원들이 풀어낸다. 국립창극단원들은 세종과 소헌황후 등을 맡아 노래한다. 국립극장 측이 ‘아무에게나’ 이 작품을 위촉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역사적 상징성에 있다. 즉 국립극장의 역사와 유기적으로 함께해 온 산증인들의 작품으로 지난 50년을 기념하고 장식하고 싶었던 것. 그래서 일명 ‘1973년 남산 동기’ 세 사람이 이번 작품을 위해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1973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1973년 국립극장 개관작에 참여한 세 사람

“1973년 10월 17일 장충동 국립극장 신축 이전 기념 공연으로 국립극단은 대하 역사극 <성웅 이순신>(이재현 작, 허규 연출)을 상연하였다. 장충동 신축 이전 기념 공연에 걸맞게 출연 배우가 무려 120명에 달하는 국립극단 사상 초유의 대작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극장을 찾아 관람할 정도로 신축 이전 기념 공연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장충동 국립극장의 신축 이전과 성웅 이순신 추앙 연극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높은 관심을 보여준 공연이었다. 국립무용단은 극장 신축 이전 기념 공연으로 <별의 전설>(서항석 원작, 안제승 대본, 박범훈 작곡, 송범 안무)을 공연하였다. 이 작품은 <성웅 이순신>처럼 과거 공연과 달리 스케일이 큰 무용극이었고, 조명과 무대 전환의 역동성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국립극장 70년사』 107면)”

박범훈과 국수호는 각각 국립무용단 <별의 전설>의 작곡가와 무용수로, 손진책은 <성웅 이순신>의 조연출가로 참여했다. 당시 20대이던 그들에게 국립극장은 예술의 터를 닦던 곳이었다.

  • 1973년 <성웅 이순신>에서 조연출을 맡은 손진책(인물 이미지 1980년대)
  • 1973년 <별의 전설>에서 작곡을 맡은 박범훈(인물 이미지 1980년대)
  • 1973년 <별의 전설>에서 사슴 역을 맡은 국수호(인물 이미지 프로그램북 발췌)

“지금은 남산의 나무들이 국립극장 주위를 둘러싸고 있지만, 새로 개관한 1973년에는 주위가 황토 절벽이었어요. 지나가던 사람들이 극장을 이렇게 황폐한 곳에 지었다고 뭐라 하기도 하고. 당시 남과 북의 냉전이 심할 때였는데, 평양에 대형 극장이 들어선 것을 보고, 이를 의식해서 남한에도 대형 극장이 있어야 한다고 하여 지은 게 바로 국립극장이었어요.(손진책)”
“내가 국립극장에 내 음악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송범 선생 덕분이었어요. 1973년에 선생이 <사의 승무> 안무를, 문일지 등이 출연하며, 당시 명동에 있던 국립극장에서 올렸어요. 이 작품을 계기로 송범 선생과 함께할 기회가 많아졌는데, <별의 전설>을 개관작으로 할 예정이니 무용음악을 맡아달라고 하셨어요. 국악기와 양악기(호른과 트롬본)를 함께 사용한 기억이 납니다. 당시 서양 악기는 국립교향악단 단원들이 함께했죠.”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별의 전설>은 많은 화제를 낳았어요. 무엇보다 송범 선생이 고안한 ‘무용극’이라는 것에 이목이 집중되었죠. 당시 국립무용단 단원이 35명이었는데요. 나는 남성 1호 단원이었어요. 월급은 3만 원.(국수호)”
“그때 국 선생은 사슴 역할을 했었죠. 지금보다 더 곱상해서 정말 사슴 같은 남자였어요. 하하.(박범훈)” “내가 조연출을 맡았던 <성웅 이순신>은 허규 선생이 연출을 맡으신 작품으로, 장민호 배우가 이순신 역이었어요. 당시에는 허규 선생도 젊은 연출가진에 속할 때였죠. 선생의 연출은 꽤 파격적이었어요. 서사의 흐름을 깔끔하게 정리했고, 국립극장의 회전무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장면전환을 했어요. 무엇보다 당시 연극계에는 리얼리즘 경향이 지배적이었는데, 이와 달리 허규 선생은 노량해전 장면에서는 파도를 무용수들의 춤으로 표현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시연회를 본 원로 연극인들로부터 “어떻게 사람의 움직임이 파도를 대신할 수 있느냐”라며 핀잔을 듣기도 하셨어요. 파격적이었지만, 그들의 지적에 그러한 연출 기법은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손진책)”

1천 개 강을 비출 달을 띄우며

그렇게 그들은 명동에서 남산으로 이전한 국립극장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다. 꾼은 같은 꾼을 알아본다고, 서로를 알아본 세 사람은 이후 여러 작품을 함께 해왔다. “이후 품앗이를 하듯 서로 작품을 도와주었어요.” 이처럼 품앗이를 한 이유를 묻자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돈을 적게 주어도 되었거든!”이라며 웃는다.
품앗이. 당시를 회상하는 기억과 묻어나온 이 말을 오늘의 말로 바꾸면 아마도 ‘협업’, 즉 컬래버레이션이 아닐까 싶다. 세 사람은 그렇게 총체적으로 놀며 총체극을 만들고, 한 마당에 연극·무용·음악을 쏟아부어 마당놀이판을 이끌어왔다.

“서로 다른 셋이지만, 공통점은 각자 장르의 ‘온리 원’이라는 거죠. 각자의 영역에서 수성守城을 하며, 고목처럼 언제든 그 자리에 있어요. 바쁘게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죠. 그래서 이번 작품에는 세 그루의 노송老松이 뿜어내는 범상치 않은 기운과 매력을 느껴볼 수 있을 겁니다.(국수호)”

이처럼 <세종의 노래 : 월인천강지곡>에는 이들의 만남과 국립극장에서 지켜온 시간이 배어 있다. 깊어가는 가을 저녁이었다. 세 사람은 천 개의 강을 비추는 하나의 달을 띄우기 위해 회의실로 향했다.

왼쪽부터 연출 손진책, 안무 국수호, 작곡 박범훈
글. 송현민 음악평론가이자 월간 『객석』 편집장. 급변하는 음악 생태계에 대한 충실한 ‘기록’이 미래를 ‘기획’하는 자료가 된다는 믿음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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