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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국립극장 <송년판소리>
세말에도 덩실덩실
안숙선 명창을 필두로 한 <송년판소리> 무대에 국립창극단원이 함께한다.
매해 새로운 창극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국립창극단, 그들이 모두 참여해 한바탕 신명 나는 소리판을 벌일 예정이다.

한결같은, 그러나 새로운

벌써 또 한 해가 저문다. 어김없이 다가오는 세말歲末은 모두의 마음을 산란케 한다. 누군가는 아직 가지 않은 ‘올해’를 붙잡고 자꾸만 돌아보고, 또 누군가는 다가올 ‘내년’을 서둘러 맞이할 준비를 한다. 마음은 누구나 다르지만, 공통된 한 가지는 “올해도 모두 애썼다”는 사실이 아닐까. 그러니 세말을 그저 보낼 수가 있으랴. 수고한 서로를 칭찬하며, 격려하는 잔치를 베푸는 것이 마땅할 수밖에. 국립극장은 매년 12월 안숙선 명창의 <송년판소리>로 한 해를 마무리한다. 그녀가 12월 <송년판소리>의 주인공이 된 지도 어느덧 13년이 다 돼간다. 혼자 이끌어간 완창, 제자와 함께한 완창 등 매년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한결같이 판소리로 한 해의 마무리를 장식하게 해준 명창이 새삼 존경스럽다.

안숙선 명창과 제자들의 ‘심청가’

올해 <송년판소리>는 총 2부로 구성된다. 1부는 안숙선 명창과 그녀의 제자들이 함께 꾸리는 ‘심청가’다. 안숙선은 아홉 살 어린 나이로 판소리에 입문해, 강도근·김소희·박귀희·정광수·박봉술·정권진·성우향 등 20세기의 뛰어난 명창을 두루 사사하고, 이젠 그녀 자신이 20세기와 21세기를 대표하는 명창으로 우뚝 섰다. 판소리 전승 5가를 모두 섭렵했을 뿐 아니라, 한 작품에서도 여러 바디를 해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명창이다. 안숙선은 타고난 재주를 바탕으로 판소리를 향한 예술적 탐색을 끊임없이 해왔다. 그뿐만 아니라 가야금병창과 창극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판소리의 다양성과 대중화를 위해 평생을 몸 바쳤다.
안숙선은 1997년 ‘가야금산조 및 병창’ 부문의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되어 오랫동안 해당 분야의 전승을 위해 애썼다. 이후 2022년 판소리 부문의 발전 공로를 인정받아 판소리 ‘춘향가’의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되었다. 안숙선은 청아하면서도 애원성이 깃든 성음으로 힘 있는 고음을 잘 구사하는 명창이다. 또한 국립창극단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다진 연기력과 남다른 예술적 감각으로 판소리를 누구보다 재밌고 맛있게 표현하는 창자다.
이번 무대에서 안숙선이 들려줄 소리는 강산제 ‘심청가’다. 서편제의 시조 박유전이 말년에 전라남도 보성군 강산리에서 완성했고, 성음과 장단의 붙임새에서 기교가 많아 동적動的 매력이 풍부한 소리다. 제자 박성희·김지숙·허정승·박민정·박자희가 그녀와 함께한다.
박성희·김지숙·허정승은 각각 2010년 제12회 장흥가무악전국제전, 2017년 제44회 춘향국악대전, 2022년 제49회 춘향국악대전에서 판소리 대통령상을 받아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 박민정은 창작판소리 작업으로 국악의 대중화에 힘을 쏟고 있으며, 박자희는 MBN <조선판스타>(2021)에서 ‘감성소리꾼’으로 판소리를 대중에게 알리는 데 이바지했다. 박자희는 올해 제31회 임방울국악제 판소리 명창부 대통령상을 차지하며 실력까지 인정받았다.
뛰어난 기량과 각각의 개성을 겸비한 이들이 함께 꾸밀 3시간 남짓의 ‘심청가’. 음악적으로 완성도 높은 강산제를 각기 다른 성음을 가진 여섯 명창이 어떻게 표현하는지 귀 기울여 들어보면 어떨까. 홀로 오롯이 이끌어가는 완창과는 다른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할 것이다.

풍성한 소리 잔치

올해 <송년판소리>는 완창판소리 뒤에 특별한 프로그램을 덧붙였다. 바로 국립창극단의 기악부와 창악부가 선보일 무대다. 그간 국립창극단은 매년 새롭고 흥미로운 창극 무대로 대중과 호흡해왔다. 전승 5가를 전통 판소리의 어법으로 충실히 구현하는 작품은 물론 실전 판소리를 새롭게 해석한 작품, 해외 고전을 창극으로 풀이한 작품 등 국립창극단의 도전과 변신은 끝없이 이어졌다. 올해도 창극 <리어> <정년이> ‘심청가’ <패왕별희> 등을 선보이며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국립창극단의 성공은 실력파 기악연주자와 성악가들 속에서 이뤄졌다. 그러니 이들이 들려줄 소리가 어찌 아니 좋겠는가.
2부 공연은 국립창극단 기악부의 시나위 연주와 창악부의 민요, 그리고 작은 창극 <뺑파전>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시나위는 전라도 지역의 무속음악에서 유래한 것으로 피리·대금·해금·징·장구 등의 악기를 중심으로, 때론 가야금과 거문고, 아쟁 등을 사용하면서 연주하는 기악 합주곡이다. 여러 악기를 사용해 즉흥적으로 연주되는 시나위는 전통 국악기의 개성을 자유롭게 드러내면서도 화려하고 신명 나는 합주가 특징이다.
창악부가 들려줄 민요는 ‘화초사거리’ ‘육자배기’ ‘개구리타령’ 등이다. 남도소리는 계면조를 주된 악조로 소리를 길게 뻗어 굵게 떨거나, 흘러내리거나, 굴리며 내는 시김새를 특징으로 한다. 이는 판소리 발성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판소리 창자가 남도민요 특유의 진한 슬픔과 신명을 잘 표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창극으로 관객을 울리고 웃긴 창악부는 남도민요의 매력을 충분히 관객에게 나누어줄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또한 2부에는 국립창극단원 서정금과 최용석이 작은 창극 <뺑파전>을 공연한다. <뺑파전>은 1980년대 후반 판소리 명창 김영자와 김일구가 ‘심청가’의 등장인물 뺑파(뺑덕어멈)를 주인공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희극적으로 구성해 선보인 단막 창극이다. 심술궂은 뺑파가 심봉사를 유혹해 그의 전곡을 알알이 빼내고, 황봉사와 눈이 맞아 도망가는 부분을 극대화한다. 이 작품은 1987년 1월 공간사랑에서 초연됐고, 이후 같은 해 7월 마당세실극장에서 재공연할 때 연일 만원을 이루며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뺑파전>은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이어지는 단막 창극의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로, 이번 <송년판소리>에서는 뺑파와 황봉사의 이야기를 15분 남짓의 공연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희극 연기의 달인으로 오늘날 최고의 뺑파로 불리는 서정금과 다양한 창작 판소리를 보여주며 자신만의 연기와 소리 색을 구축해 나가는 최용석의 호흡이 기대된다.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무대로 준비된 국립극장의 <송년판소리>는 올해도 고생했을 우리 모두에게 2023년을 즐겁고 유쾌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참고자료
「익살-해학 넘치는 古典 唱劇 두 国樂人부부 합동무대 <뺑파전> <놀부전>」, 『조선일보』, 1987.1.10.
「破格 창극 <뺑파전>에 예상밖 人波」, 『조선일보』, 1987.7.9.

글. 송소라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20세기 창극의 음반, 방송화 양상과 창극사적 의미」(2017)로 박사 논문을 제출하고 판소리와 창극 관련한 연구를 꾸준히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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