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을
주는 곳

아케이드 서울
도시인들의 감각적인 배회지
공간은 움직인다. 옛 흔적을 머금은 채, 공간을 찾는 이들과 호흡하며 ‘지금, 우리’를 기록해 나간다.
아케이드 서울은 공간의 다음 주인을 기다리며 조용히 숨을 고르는 중이다.

오래된 철공소를 품고 현재의 우리를 기록한다

아케이드는 ‘축소된 도시’로 여겨지는 건축물이다. 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는 당시 신재료로 여겨지던 철과 유리로 지어진 공간으로, 백화점처럼 새로운 상품이 전시되는 장소인 동시에 첨단 유행을 걷는 선도자와 귀족들의 집합 장소였다고 한다. 아케이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시대의 이야기를 담는 기록자가 되고, 사람들은 공간을 자유로이 배회하며 공간에 색을 덧입히고 의미를 부여한다.
문래동에 자리한 아케이드 서울은 현재의 우리를 기록하는 아케이드다. 자유롭고 다양한 도시의 감수성을 즐길 수 있는 배회자의 콘셉트로 탄생했다. “한 걸음 떨어진 산책자의 시선에서 도시인의 다양한 욕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소”라는 윤여울 큐레이터의 설명에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 스멀스멀 차오른다.
아케이드 서울을 얘기하자면, 이 공간이 기억하는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케이드 서울은 오래된 철공소를 리모델링한 공간이다. 두 친구가 문래동 초입에 나란히 철공소 문을 연 것이 공간의 시작. 할아버지로부터 아들, 손자까지 3대에 걸쳐 철을 연마하던 공간은 이제 ‘이 시대의 예술을 담아내는 공간’으로 재탄생했지만, 담 하나를 사이좋게 공유한 옆 공간은 여전히 철공소로 운영되고 있다.
아케이드 서울의 1층은 최대 높이 6미터로 이루어진 50평(약 165㎡) 규모이며, 슬로프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작은 방과 한 그루 나무가 보이는 작은 테라스로 연결된다. 나무는 철공소에 뿌리를 두고 아케이드 서울의 공간까지 가지와 잎을 드리우고 있는데, 바람을 타고 넘어오는 쇳소리와 담장 너머로 얼기설기 쌓여 있는 철재와 목재의 조우가 공간의 매력을 더한다.
지금은 지난 프로젝트와 다음 프로젝트 사이, 공간이 잠시 쉬는 시간. 짙은 나무색 문을 열고 들어선 공간으로 늦가을 햇살이 스며든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발견되는 옛 철공소의 흔적과 담을 타고 들리는 망치 소리에 과거와 현재가 오묘하게 교차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전시의 성격에 따라 공간을 대여하는 사람들의 다채로운 생각에 맞춰 변해야 하는 것이 이 공간의 숙명. 전시나 공연 등을 위해 공간을 재정비할 때마다 철공소 사장님의 손길이 더해진다. 이 시대를 기록하기 위한 다양한 색채의 콘텐츠가 예술의 영역이라면, 담 너머 철공소에서 들려오는 망치 소리는 숭고한 노동의 기록. 아케이드 서울을 찾는 창작자와 관람자가 쇳소리를 소음이라 여기지 않고, 예술의 한 조각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그리하여 오래도록 옆자리를 지켜온 철공소는 여전히 사이좋은 이웃이다.

자유로운 시선으로 공간을 채우는 도시의 배회자들

아케이드 서울은 다양한 콘텐츠를 위해 열려 있는 ‘오픈 사이트Open Site’라는 철학 아래 패션· 브랜드·디자인·전시·팝업 등 다양한 콘텐츠와 함께 확장된 의미의 큐레이팅 실험과 전시를 진행한다.
올해는 2회의 기획전시가 아케이드 서울에서 열렸다. 봄에는 김선익 사진전 <임시정원, Temporary Garden>, 여름에는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해 온 몬킴 사진전 <VIEW FROM MY WINDOW>를 통해, 아케이드 서울을 찾는 도시 배회자와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봄, 김선익 작가는 아케이드 서울을 특정 콘텐츠가 뿌리내릴 수 없는 ‘임시적인 공간’으로 바라보며, 가장 가벼운 인쇄 및 배포 방식인 포스터로 전시를 구성해 사진이 가진 유동성을 실험했다. ‘도시’라는 울타리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임시적인 존재인 ‘인간’과 영원할 존재인 ‘자연’의 아이러니한 상호작용을 그의 사진 속에서 엿볼 수 있었다.
몬킴 작가는 아케이드 서울의 구석구석을 처음으로 기록해 준 작가다. 아직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은 빈 공간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담아냈는데, 시선의 방향이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넘나드는 문지방 같은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아케이드 서울의 지향점과 꽤 닮아 있었다. 그렇게 지난봄, ‘우리 공간을 기록해 준 첫 작가와의 기획전시’가 열렸다.
몬킴 작가는 보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도시의 방식으로 자신을 들여다본다. 작가의 사진 속 존재인 남성과 도시는 사진 찍히는 수동적 대상이면서, 동시에 작가를 바라보는 능동적 주체로 존재한다. 또한 그들은 관객을 존재시키는 창조자가 되기도 한다. 몬킴 작가는 아케이드 서울 안에서, 지금, 이 순간 자신을 둘러싼 감각들을 더 적극적으로 파편화하고 교차시키며 그가 바라본 남성의 몸과 도시 풍경을 더 자유롭게 기록할 수 있었다.

  • 몬킴 사진전 <VIEW FROM MY WINDOW> 포스터
    사진 제공: 아케이드 서울
  • 김선익 사진전 <임시정원, Temporary Garden> 포스터
    사진 제공: 아케이드 서울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의 기록자

아케이드 서울이 메시지를 풀어내는 주된 방법은 전시이지만, 공간은 ‘이 시대의 도시를 기록한다’는 전제하에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열려 있다. 전통적 전시 공간이 아닌, 철공소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요철이 많은 공간이다 보니, 기존의 전시를 가져와도 다르게 표현되는 장점도 있다. 콘텐츠의 주된 메시지를 제대로 담아내기 위해 바닥을 새로 칠하거나 구조물을 설치하는 등 공간은 언제든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 실제로 팝업과 디제잉 파티, 아트 토크 등 다양한 형태와 색채를 지닌 콘텐츠가 아케이드 서울과 함께했다.
그렇다고 ‘거창한 예술적 의미’를 가지고 공간을 재해석할 이들에게만 공간이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상업 촬영이나 간단한 작업, 소규모 프로젝트 등을 위해 2~3시간 정도 공간을 대여해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누가 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지금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를 기록하는 것 역시 아케이드 서울의 역할이다.
도시는 변한다. 쇳소리 가득했던 철공소는 자유로이 ‘현재의 도시, 지금의 우리’를 기록해 나가는 특별한 아케이드가 되었다. 아케이드 서울은 다양한 시선으로 그 기록을 읽어줄 더 많은 도시 배회자를 기다리고 있다.

아케이드 서울 https://www.instagram.com/arcade.seoul

취재. 편집부 사진. 김성재 SSSAUN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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