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한 마디

표트르 차이콥스키
고독 안에서 피어난 예술가
아버지는 아들이 소질보다 안정적인 삶에 더 집중하길 바랐다.
하지만 그는 때를 기다려 음악가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루며 살았다.

크리스마스 시즌 전 세계 극장가의 단골 공연 중 하나는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호두까기 인형의 모습과 한 번만 들어도 귀에 익을 정도로 쉽고 경쾌한 선율이 어우러진 이 작품은 오늘날의 독일·프랑스·러시아를 대표하는 세 작가의 합작품이다. 발레 <호두까기 인형> 원작은 독일의 대문호 E. T. A. 호프만Ernst Theodor Amadeus Hoffmann, 1776~1822이 쓴 소설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대왕』이다. 프랑스의 대문호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 1802~1870가 호프만의 원작을 발레 작품용으로 각색했고, 러시아의 위인으로 존경받는 음악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yotr Il’ich Chaikovskii, 1840~1893가 이야기에 어울리는 음악을 작곡했다.
미국 작가 에이모 토울스의 장편소설 『모스크바의 신사』에는 “차이콥스키가 없었다면 <호두까기 인형>은 프로이센(현재 독일 지역)에나 있었겠지!”라는 대사가 있다. 이 말이 오늘날 차이콥스키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 중 하나로 평가받는 만큼 차이콥스키의 선율이 없는 <호두까기 인형>은 상상할 수 없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사랑받는 음악가 차이콥스키는 <호두까기 인형> 이외에도 <백조의 호수>, ‘교향곡 6번(비창)’, ‘피아노 협주곡 1번’ 등 수많은 히트곡을 쓴 작곡가다. 그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동시대의 의미 있는 호응을 얻으며,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수백 년 세월이 흘러도 사랑받는 음악을 창작했지만, 그가 음악가로 활동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차이콥스키는 5세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음악에 소질이 없다고 판단했고, 당시 안정적인 직업이던 공무원이 되길 바랐다. 이러한 환경 탓에 차이콥스키는 체계적인 음악 공부를 할 수 없었고, 1850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법률 학교에 입학했다. 졸업 후에는 그의 아버지가 희망한 대로 공무원이 되었고 러시아 법무성의 서기관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재미있게도 그는 때를 기다렸다는 듯, 직장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음악가로 나아갈 길을 구체적으로 찾았다. 1862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첫 번째 입학생이 된 것이다. 다른 음악가에 비해 늦은 감이 있었지만, 그는 결국 바라던 음악을 하며 살게 됐다.
이때부터 그가 발표한 작품들은 당시 러시아뿐만 아니라 유럽 곳곳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당시 악보 출판술이 발달해 그의 작품이 이전 시대보다 더 빨리 대중에게 알려질 수 있었던 것도 큰 역할을 했다. 이렇게 그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로 재직하며, 음악가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루며 살았다.

하지만 그는 성공한 음악가의 이면에 감추고 숨겼던 사생활도 있다. 동성애, 사랑하지 않는 여성과 형식상 결혼한 일 등이다. 당시 러시아의 사회적 통념과 국교이던 러시아 정교회법은 “사랑은 오직 남성과 여성에게만 허락된 감정이며, 그 외의 것은 부정한 것”이라고 못 박았던 시절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차이콥스키는 유명 음악가로 활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사람을 피하며 살았다. 그가 쓴 편지나 일기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점은 그의 성격이 온순하지 못했고, 감정 기복이 무척 심했으며, 가족 이외의 사람과 맺는 관계에 두려움을 느꼈다는 점이다. 그가 자주 울었다는 기록도 많다.

그는 마음속 고민을 수많은 편지에 담아 동생과 믿을 수 있는 친구에게 보냈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수백 통이 넘는 편지 중 1878년 차이콥스키의 동생 아냐폴리에게 보낸 편지 내용은 지금 우리도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다. “과거를 돌아보고, 내일을 꿈꾸며, 현재에 결코 만족하지 않는 것, 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라는 말이다.
인생이라는 길고 긴 시간을 우리는 저마다의 감정으로 채워간다. 평범하지만 일부러 꺼내어보고 곱씹어보면 좋을 그의 말에 잠시 마음을 기대어본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시작하는 아름답고 슬픈 <호두까기 인형>처럼, 국립극장의 무대에서 지나온 이야기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사람의 마음을 따듯하게 지펴주길 바란다.

※ 참고 문헌
에이모 토울스, 『모스크바 신사』, 현대문학, 2023.
차이콥스키 리서치(https://en.tchaikovsky-research.net)

글. 정은주 음악 칼럼니스트. 서양 음악가들의 음악 외(外)적 이야기를 발굴해 소개하며 산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 『발칙한 예술가들』(추명희·정은주 공저), 『나를 위한 예술가의 인생 수업』을 썼다. 현재 예술의전당·세종문화회관 월간지, 『월간 조선』 등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부산mbc <안희성의 가정 음악실>에 출연하고 있다.

일러스트. romantic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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