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가치 만드는 국립극장 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 시연회
판소리를 위한 헌정곡
사람들의 마음에 창극이 크고 작은 감정으로 닿는 그 순간을 떠올려 본다.
그러곤 이토록 많은 사람을 매혹한 힘이 무엇인지 질문해 본다. 음악을 이야기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일까.
이야기를 음악으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기존의 장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음악과 이야기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무엇이기 때문일까.

<작창가 프로젝트>를 위한 지도 네 개

지난해 시작된 <작창가 프로젝트>는 판소리와 새로운 서사의 접합을 다각도로 고민하며 창작 판소리의 참조점을 조금씩 이동시키고 있다. 올해도 네 명의 작가, 네 명의 작창가가 함께한 긴 여정의 결과물이 무대에 오른다. 이번에는 ‘오래된, 오늘의 이야기’라는 주제를 관통하는 네 편의 작품을 선보인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의 동화, 신화, 설화를 두루 포함해 작품의 소재도 예년보다 다양해졌다. 네 팀은 새로운 창극을 만들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을까. 그들이 켜켜이 쌓아 올린 시간의 단면을 들여다보자.

시대를 관통하는 판소리 <금도끼 은도끼>
작 이철희, 작창 이연주

누구에게나 친숙한 이야기는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뻔한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삶의 중요한 본질을 꿰뚫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이철희 작가는 지난해 <작창가 프로젝트>에서 ‘무숙이타령’을 <게우사>라는 2인 창극으로 풀어낸 바 있다. 올해는 전래동화 <금도끼 은도끼>를 가져와 물질에 집착하다 소중한 것을 잃지 말자는 삶의 가치를 그려낸다. 그는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이 동화가 이 시대와 어떻게 닿아야 하는지”에 역점을 두고 원작을 각색했다. 작창가로서 이연주가 마주했던 고민은 판소리 장단과 말의 관계다. 그는 “작창가의 분석과 의도에 따라 이야기 전달이 완연히 다른 색으로 디자인”될 수 있기 때문에 판소리가 지닌 고유의 문법을 어떻게 해체해 재조직할 것인지가 관건이었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음악적 기교와 화려함에 집중하기보다는 이야기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편안하고 재미있는 소리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효과적 도구로서 소리의 역할을 세심하게 고민한 것이다. 이 밖에 멘토링을 통해 말붙임의 중요성, 창본이 무대화될 때 고려해야 할 점 등을 깊게 고민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작창가 이연주, 작가 이철희

상상력의 빈 공간들 <두메>
작 김도영, 작창 이봉근

<두메>는 마주치는 사람을 돌로 만들어버리는 그리스 신화 ‘메두사’를 소재로 한다. 동굴에 갇혀 살면서 사람을 그리워하던 메두사가 절대 눈을 뜨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밖으로 나가 겪는 일련의 사건을 그려내는 독특한 설정의 작품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처음 창극 작업을 한 김도영 작가는 판소리의 구조와 장단 체계에 익숙하지 않아 “어디서 말로 뱉고, 어디서 소리로 뱉어야 하는지, 또한 소리는 이야기로 진행시켜야 하는지, 감정으로 풀어야 하는지” 고민되는 지점이 많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작창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연극이든 창극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떠오르는 날것의 아이디어는 작창가 이봉근과 함께 주고받으며 수정하고 발전시켰다. 이봉근은 상황에 따라 감정 전달이 극대화되는 창극의 문법이 흥미로우면서도 1인 전통 판소리와는 사뭇 달라 많은 공부가 필요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장단의 새로운 배치를 고민하고, 긴 서사를 30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압축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를 고안하는 작업도 함께 진행했다. <두메>는 두 예술가가 발휘하는 상상력의 빈 공간을 하나둘 채워 넣으며 탄생했다.

작창가 이봉근, 작가 김도영

협업의 의미 <눈의 여왕>
작 진주, 작창 강나현

협업은 여러 개의 세계가 충돌하고 갈등하며 뒤섞이는 과정이다. <작창가 프로젝트>가 “한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보려고 하는지” 이해하기 위한 여정과도 같았다는 진주 작가는 작창가의 창작 방식을 최대한 존중하는 협업을 택했다. “작창가의 장점과 개성이 잘 살아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작창가가 원하는 음악적 시도와 이야기를 바라보는 관점을 이해하고 작품에 반영했다.
작창가 강나현은 진주 작가의 든든한 조력을 토대로 자신의 음악적 지향점을 작품에 고스란히 집약했다. 그는 “소리와 장단만으로도 완성도 있는 소리를 만드는 것”을 핵심 목표로 설정했다. 다른 외부적 장치에 의지하기보다는 소리의 힘만으로 극의 분위기를 조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더욱 전통 판소리에 몰두했다. 한편, 1인 전통 판소리와는 다른 창극의 문법을 익히고 그 과정에서 ‘판소리 합창’을 시도해 작품에 녹여내기도 했다. 두 예술가의 긴밀한 협업으로 재탄생하는 안데르센의 동화 원작 <눈의 여왕>은 진정한 사랑의 방식과 영원한 것의 참된 의미를 관객에게 질문한다.

작창가 강나현, 작가 진주

생동감 있는 소리 <도깨비 쫄쫄이 댄스복 아줌마!>
작 윤미현, 작창 신한별

쓰기만 하면 투명 인간이 된다는 ‘도깨비감투’를 소재로 아줌마의 욕망을 유쾌하게 풀어낸 <도깨비 쫄쫄이 댄스복 아줌마!>는 이면을 그려내기 위한 탐구의 결과물이다. 어느 때보다 창작의 과정이 재미있고 유쾌했다는 작가 윤미현은 자신의 언어를 그 자리에서 바로 작창가가 작창을 해 들려주던 생생한 시간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가 “언어의 생동감”과 “생동감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캐릭터”에 심혈을 기울인 이유이기도 하다.
작창가 신한별은 창작 과정에서 끊임없는 자기 설득 과정이 중요하다는 멘토링을 기반으로 이번 프로젝트에서 두 가지 목표를 설정했다. 첫째는 인물을 대표하는 아리아Aria를 만드는 것이고, 둘째는 관객이 함께 부를 수 있는 판소리 훅Hook을 만드는 것이다. 창본이 가진 유쾌함을 바탕으로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주요 넘버인 ‘곗돈 부어’가 관객의 귀와 입에서 맴돌기 바란다는 기대를 드러내기도 했다.

작창가 신한별, 작가 윤미현

작창가는 자신의 신체에 오랜 기간 누적된 전통음악의 조각들을 질료로 삼아 이야기에 새로운 안무를 부여한다. 작창이 본질적으로 원전인 판소리에 다는 주석이면서 판소리를 위한 헌정곡인 이유다. 작창을 통해 판소리를 동시대에 호명하는 작업은 ‘현대적인 레퍼토리’를 발굴한다는 명분을 훌쩍 뛰어넘는다. 오히려 작창은 판소리가 존재하는 방식 그 자체다. 전통과의 어떤 단절을 의미하기보다 끊임없이 과거를 참조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과정인 것이다.
<작창가 프로젝트>는 작창 과정에 수반되는 숱한 시행착오와 날것 그대로의 착상을 모두 환대했다. 올해 <작창가 프로젝트>에 참여한 네 명의 작가와 네 명의 작창가는 새로운 창극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그 과정에서 음악과 이야기의 관계를, 둘의 접합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사유했다. 또한 창극이 오페라나 뮤지컬과 어떻게 다른지 고민하고 그 나름의 답을 찾으려 하기도 했다. 네 개의 무대가 관객의 마음에 무엇으로 가닿을지 궁금하다.

글. 성혜인 음악평론가. 음악비평동인 ‘헤테로포니’ 필진, 비평지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편집위원이다. 한국 전통공연예술 현장에 관한 관심을 바탕으로 글을 쓰며 기획, 강의, 방송, 자문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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