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다섯

파크컴퍼니 <고도를 기다리며>
저녁의 게임, 기다림의 규칙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고도는 영영 오지 않으리란 걸.
다만 기다림을 선택한 이들을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1969년 한국에서 처음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하고 이 작품으로 한국 연극사의 한 획을 그은 임영웅은, <고도를 기다리며>가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벌이는 일종의 게임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석에서 그의 해석을 들었을 때는 노련한 연출가의 잠언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더랬다. 하지만 그가 한 말을 되새겨 보면, 그 말은 매우 적확한 분석이기도 했다.
사람에 따라, 공연자에 따라, 이러한 의견에 동의할 수도 있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고도를 기다리며>는 임영웅의 생각을 지지해 줄 많은 세부 장치를 거느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령 블라디미르를 보면, 그는 장난과 장난 사이에 그리고 사건과 사건 사이에 그냥 의미 없는 말장난으로 치부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조적인 대사를 섞어놓곤 한다. “시간을 보내기에 좋겠다”라거나 이미 “그들 모두는 알고 있는데 모른 척하고 있다”라는 투의 대사가 그것이다. 또한 에스트라공의 경우, 기다리고 기다리던 고도의 메신저(소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반가워하기는커녕 불같이 화를 낸다거나 결정적 대화를 하는 틈에 잠을 청하기도 한다. 그리고 항상 어제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해서 블라디미르의 논박을 받곤 하지만, 실제로 어제 자신들이 같은 장소에 왔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에스트라공이다.

에스트라공우린 어제도 왔잖아.

블라디미르무슨 소리야? 또 헷갈리는구나.
(···중략···)

에스트라공내 생각으로는 우린 분명 여기 왔었다.

블라디미르(주위를 둘러보며) 이 자리가 눈에 익은 모양이지.

―사뮈엘 베케트, 오증자 역, 『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2000, 19~20면(이하 면수만 표기)

에스트라공은 블라디미르에 맞서, 오늘이 어제의 연장임을 넌지시 알려준다. 물론 그 증거도 제시한다. 그는 블라디미르의 의심이 잘못된 것임을 분명히 알 정도로 분별력이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손바닥 뒤집듯 자신의 말을 바꾼다. 주목되는 것은 그 순간, 블라디미르의 역할이다. 블라디미르는 에스트라공의 진술이 앞뒤가 모순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그에게 에스트라공의 변덕은 ‘따짐’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받아줌’의 조건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에스트라공이 어제 왔었다고 하면 정말 어제 왔었느냐고 받아주어야 하고, 그것이 어제가 아니라고 하면 어제일지도 모른다고 말해 주어야 한다.
이것은 두 사람이 일종의 게임을 하고 있다는 전제이자 증거다. 그들의 만남과 기다림 그리고 약속과 게임은, ‘고도’를 기다리기 위해 시간을 보내야 하는 그들의 전략이기도 하다. ‘기다림의 게임’은 저녁이 깊을수록 더해간다. 그것은 ‘포조’와 ‘럭키’가 등장해 새로운 게임으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포조는 럭키를 학대하는 포악한 주인으로 형상화된다. 게다가 럭키의 순종적 태도나 몸에 난 상처는, 먼저 온 그들에게 그 부당성을 알려야 한다는 의지를 자극한다. 두 사람(특히 블라디미르)은 포조에게 반감을 표시하며 그 표시로 그들이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그러자 포조는 다음과 같이 만류한다.

포조아직 날도 저물기 전인데 지금 떠난다고 합시다. 어쨌든 아직은 날이 저물기 전인데 말야. (셋은 하늘을 쳐다본다) 좋아요. 그렇다면 어떻게 된다? ······ 그렇다면 당신들의 약속 말이오······ 그 고데인지, 고도인지, 고뎅인지 하고 했다는······ (침묵) ······ 내가 누구 얘기를 하는지 아시겠지? 당신들의 미래가 달려 있는 그 사람 말이오. (침묵) ······ 장차 닥쳐올 미래가 달려 있는 ······ (44면)

  • 에스트라공(고고) 역 신구
  • 블라디미르(디디) 역 박근형

포조는 고도와의 관계(약속)를 이미 소상하게 알고 있다. 지금 게임을 그만두면 어떻게 될지도 알고 있다. 이야기를 훌쩍 뛰어넘어, 포조와 두 사람이 헤어질 때 블라디미르가 한 말, 그러니까 포조와 럭키를 두 사람이 전에도 만난 적이 있다는 설정을 미리 당겨와도, 이 대목에서 포조의 태도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포조는 기다림의 게임이 일정한 규칙에 의해 진행되고 있음을 이미 파악하고 있으며, 지금 블라디미르의 태도가 규칙에 위배된 것임을 은밀하게 지적하고 있다. 결국 그들은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의 시간을 달래주기 위한 일종의 게임에 참여했는데, 그 게임에 시비를 걸고 게임의 규칙을 이탈하는 것은 잘못된 일임을 넌지시 암시하는 셈이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뿐만 아니라, 포조 역시 기다림의 게임에 동참하는 자다. 적어도 이 셋은 매일 계속되는 게임에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어느 때 자기의 주장을 펼쳐야 하고 어느 때 자신의 주장을 거두어야 하는지, 어느 때 남의 주장에 시비를 걸고 어느 때 그냥 넘어가야 하는지, 그리고 어느 때 게임의 규칙이 무너질 수 있는지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기다림의 게임 규칙을 위반하려는 절차조차 짜인 게임의 일부일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도 이해하고 있다.
이제 시간이 흘러 임영웅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이어 또 다른 <고도를 기다리며>가 등장한다. 그렇다고 임영웅이 그어놓은 그 맥이 사라지거나 퇴색하지 않겠지만, 새로운 <고도를 기다리며>가 가져올 파장을 구경하는 일은 여간 기대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기대는 저녁의 게임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무대에 풀어놓을지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될 전망이다.
국립극장과 공연제작사 파크컴퍼니가 공동 주최하는 2023년 <고도를 기다리며>는 근 석 달에 걸친 공연으로 기획되어, 올 12월 19일부터 내년 2월 18일까지 이어질 계획이다. 장기 공연하는 것도 놀랍지만, 배우들의 면모 역시 놀랍다. 신구와 박근형이 고고와 디디를 나누어 맡아 두 사람이 저녁의 게임을 시작할 예정이고, 김학철이 포조를, 그리고 박정자가 럭키를 맡아 4인 게임으로 확대할 작정이다.
신구와 박근형이라는 한국 연극의 뚜렷한 거목이 앙상블을 드러내는 점도 흥미롭지만, 생전 베케트조차 반대했던 여성 배역 금지에 도전하며 박정자가 럭키를 지원한 점도 매우 흥미롭다. 박정자가 <고도를 기다리며>를 오랫동안 기다렸으며 이 기다림을 실현하기 위해 럭키 배역을 자원했다는 후문은, 이 작품이 가진 매력과 흥미를 다시 한번 방증한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인간을 이야기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럭키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박정자의 해석은 이 작품의 숨은 묘미를 다시금 일깨운다.

  • 럭키 역 박정자
  • 포조 역 김학철
  • 소년 역 김리안

저녁의 게임이 다시 시작되면 그 규칙을 따라 두 사람이 먼저 게임을 시작할 것이고 이어 두 사람이 게임에 뛰어들 것이며 어쩌면 규칙에 따라 하루라는 시간이 끝나면 그 규칙은 일시적으로 중단될 것이다. 하지만 다시 다음 날이 되면 규칙은 다시 기다림을 가져올 것이다. 이러한 광경은 그 게임을 매일같이 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은근히 기대되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신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렇게 게임에 임해 룰을 지키면서 상대와 실랑이 같은 순간을 이어가며 그렇게 하나의 생을 살아내고 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확신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기다리게 하기도 하고 실망하게 하기도 하는 한 존재(고도)에 대한 막연하지만 두려운 믿음도 가늠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리고 베케트가 숨긴 그림대로 하면, 그렇게 인간은 하루를 살 수 있다.
2023년의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고도를 기다리는 게임에 뛰어든 이들(출연진)은 묵직한 연기로 평소에도 인간에 대한 진중한 생각을 함부로 내려놓지 않았던 이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저녁의 게임, 삶의 기다림을 충분히 이해하는 이들이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가 여태까지 보지 못한 색다른 게임을 통해 누군가를 기다리며 살아야 하는 우리네 인생의 한 단면을 지금까지와는 충분히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 그들 역시 누군가를 충분히 기다려보았고, 무언가를 만나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에, 그들이 겪은 삶의 기다림과 기다림의 규칙, 그 규칙의 저녁을 연쇄적으로 <고도를 기다리며>에 펼쳐놓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제한된 지면과 한정된 시간이라 그들의 연극에 공감을 표하기에는 제약이 따르지만, 그들이라면 저녁의 게임이 왜 삶의 규칙인지 알려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 역시 고도를 기다리는 하나의 게임에 참여하는 이유라서다.

글. 김남석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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