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보기

음향 컨설턴트 임재선 칼럼
해오름극장 건축음향의 비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의 리모델링은 건축음향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싸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년여에 걸친 리모델링 끝에 수준 높은 자연음향을 구사할 수 있게 된 해오름극장, 그 건축음향의 비밀을 들여다본다

해오름극장 리모델링 기간에 건축음향 계획을 다시 검토해 재설계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초기 리모델링 설계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국립극장 일은 늘 극장의 역사성과 상징성에 따른 심리적 부담이 적지 않았다. 김철호 극장장님은 ‘리모델링의 핵심은 건축음향’이라는 강조와 함께 원하시는 방향이 명확했고,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극장장님은 소리 에너지를 최대한 잘 보존해 국악관현악과 전통예술, 그리고 순수예술이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음*으로 공연할 수 있는 성능을 확실한 목표로 세웠다. 또한 김호성 무대기술팀장과 지영 책임음향감독은 자연음향과 더불어 스피커를 사용하는 음향 환경에 대해서도 충분한 검토를 부탁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후 많은 의견 교환을 통해 극장에서 원하는 방향에 대해 인지하고 하나씩 풀어서 접근하는 단계로 진행했다. *스피커를 사용하지 않고 연주음만으로 객석에 음악을 전달하는 음원을 표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나 오페라극장처럼 자연음 공연이 주를 이루는 전용 홀은 관객이 들었을 때 긴 울림과 풍성한 자연음을 요구한다. 하지만 해오름극장은 판소리를 바탕으로 하는 창극과 연극, 배경음악을 사용하는 한국무용과 발레 등 스피커를 사용하는 공연의 비중 또한 적지 않다. 다양한 공연 장르를 수용해야 하는 극장은 잘못하면 이도저도 아닌 결과물이 나올 수 있어서 목표 성능과 음향의 방향을 계획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전자음향 위주의 건축음향 설계를 자연음향 중심으로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다. 우선 자연음 공연에서 국악관현악 연주가 객석 구석구석 잘 들리게 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본 단계를 거치고, 스피커를 쓰는 공연의 확성 환경에 대한 문제점을 최소화하는 상호보완적인 방식으로 접근했다.

기존 1,563석에 1.3초 내외이던 잔향시간을 리모델링 후 1,221석에 1.6초 내외로 확보해야 극장 측이 원하는 적절한 울림과 공간감을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벽 마감재의 대부분을 반사재로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반사벽체에 스피커를 사용할 경우에는 과도한 반사음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음향 에너지를 잘 보존하면서 스피커 반사음을 확산할 방법을 찾기 위해 벽체 구조를 연구했다. 잘린 실린더 형태의 벽체를 구성하고 작은 단풍나무 몰딩을 사용해 저음부터 고음까지 확산 및 반사 처리가 가능한 구조를 적용했다. 이러한 구조는 스피커의 직접음을 제어해 주기도 하지만 소리가 잘 확산돼 1·2·3층 객석의 음향을 균일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해오름극장 객석 후벽 해오름극장 객석 후벽

객석의 후벽은 음향이 확산하더라도 다시 무대로 돌아가는 특성이 있어 무대 위 연주자들에게 불편한 반사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 따라서 과감한 흡음 구조를 통해 스피커 사용 시 나타나는 음향적 문제점들을 개선했다.

해오름극장 발코니 전면 해오름극장 발코니 전면

설계 단계에서 가장 많은 고민을 한 구간은 발코니 전면의 구조다. 말발굽 형태의 발코니 전면은 시각적으로나 음향적으로 중요한 설계 요소 중 하나다. 발코니 면에 의해 반사되는 초기 반사음은 관객에게 측면에서 반사되는 소리를 전달해 공간감을 개선할 수 있는 반면 스피커를 사용하는 상황에서는 불필요한 반사음을 유발한다. 다른 공연장에서 문제가 된 사례들을 조사해 발코니 전면 구조가 객석 방향으로 반사음을 보내되, 스피커에 의한 반사음은 분산할 수 있는 구조를 적용했다. 이에 따라 불필요한 반사음은 최소화됐고, 측면 반사음의 밀도 또한 확보할 수 있었다. 객석 측벽의 확산 반사 구조나 발코니 전면의 확산 구조는 모두 북미산 단풍나무 원목을 적용해 충분한 밀도를 유지하며 천연 목재의 질감을 드러낼 수 있게 했다.

해오름극장 객석 2층에서 본 무대 해오름극장 객석 2층에서 본 무대
지난 6월 개최된 해오름극장 재개관 시범공연 중 국립국악관현악단 소소음악회 지난 6월 개최된 해오름극장 재개관 시범공연 중 국립국악관현악단 소소음악회

해오름극장 건축음향의 주목할 만한 점은 1~3층의 잔향시간 평균값이 1.65초로 거의 같다는 점과 전체 객석의 잔향시간 또한 대부분 1.6~1.7초 이내로 어느 자리에서나 비슷한 울림을 청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측정 결과로 나타나는 숫자를 보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첫 테스트 공연이 끝난 후 양손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을 정도로 긴장했다. 리모델링을 마치고 해오름극장 음향에 매우 만족해하시던 극장장님과 관계자들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듣고서야 4년 넘게 껴안고 있던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향후 리모델링을 계획하고 있는 여러 공연장이 자연음향을 설계하는 데 있어 참고 사례가 되기를 기대한다. 해오름극장 리모델링 건축음향 설계에 참여한 것이 개인적으로는 큰 영광이었다.

글. 임재선 음향기술과 건축음향을 전공했으며 (주)게누인컨설팅에서 음향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월간 국립극장> 구독신청 <월간 국립극장> 과월호 보기
닫기

월간지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 구독 신청

뉴스레터 구독은 홈페이지 회원 가입 시 신청 가능하며, 다양한 국립극장 소식을 함께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또는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편리하게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회원가입 시 이메일 수신 동의 필요 (기존회원인 경우 회원정보수정 > 고객서비스 > 메일링 수신 동의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