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보기

세계의 국립극장
극장, 의미 또는 쓰임
극장이라는 말의 범주는 국가마다 상이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용 극장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아서
극장이라는 공간에서는 여러 장르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며,
실제로 대부분의 극장이 다목적 극장으로 계획됐다.

해외 대도시의 경우, 도시를 대표하는 극장은 대부분 퍼포밍 아트센터Performing Art center의 역할을 주로 하며, 클래식 연주가 열리는 콘서트홀과는 구분된다. 콘서트홀은 나라에 따라서 오디토리엄Auditorium, 콘체르트하우스Konzerthaus, 콘세르트헤바우Concertgebouw, 필하모니Philhamonie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극장과 공연장을 마냥 대칭으로 놓을 수 없는 경우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오페라극장이라는 명칭도 영미Opera House와 독어권Oper에서 주로 쓰이지, 실제 종주국인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경우는 대개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극장과 같은 의미인 Teatro, Théâtre 극장이라고 불리는 공간에서 오페라가 열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영국에서 극장Theatre은 연극이나 뮤지컬 작품을 올리는 무대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
‘세계의 국립극장’이라는 주제를 받고, 극장이라는 다소 포괄적이고 국가별로 무대에 오르는 장르가 상이하게 해석되는 용어의 경계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손쉽고 간단한 상식의 문제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필자의 경우 전 세계 500개 이상의 도시에서 만난 극장은 조금씩 그 의미와 용도가 달랐다. 결국 고민 끝에 극장보다는 국립National이라는 의미에 더 주안점을 두고 예시를 찾아보기로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독일의 경우 공공극장의 규모에 따라 국립과 주립, 시립으로 구분된다는 점이다. 국립극장National Theater은 550명 이상의 관객을 수용하는 대형 극장을 의미하는데, 이 경우 또 다른 의미의 국립오페라극장Staatsoper과 혼용된다. 전자도 오페라가 오르기 때문에 그러하다. 참고로 400~500명 규모의 경우 시립극장Stadttheater, 그 이하는 주립극장Landestheater으로 구분된다. 우리와 다르게 연방제로 말미암아 확실한 지역 구분을 하기 때문이다. 결국 연방을 대표하는 대형 극장에도 국립이라는 타이틀이 부여된다. 잘 알려진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가극장Bayernstaatsoper이 대표적이다.
프랑스의 경우 문화예술의 지나친 중앙집중을 해소하고 전 국민이 문화예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주요 도시마다 국립 공연장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기에 국고 지원을 받는 국립극장이 프랑스 전역에 수십 개가 있다.

극장이 전문적인 역할을 가진 개별적인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무렵, 대다수의 극장은 크고 작은 전제군주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고, 일부 국가의 주요 극장은 왕립Royal의 형태를 띠고 있다. 오늘날에 와서야 전제군주국가는 몇 없거나 상징적인 경우가 많아서 국립이라는 의미와 상당수 겹치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하기로 한다.

케네디 센터John F. Kennedy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 - 워싱턴DC, 미국

존 F. 케네디 공연예술센터는 미국 국립문화센터로 일반적으로는 케네디 센터라고 불린다. 1971년 9월 8일 개관했으며 워싱턴DC를 가로지르는 포토맥강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다.
케네디 센터는 2,347석의 오페라하우스Opera House와 2,465석의 콘서트홀Concert Hall 그리고 1,161석의 아이젠하워 극장Eisenhower Theater이 메인이며, 그 외 패밀리 극장Family Theatre, 밀레니엄 스테이지Millennium Stage, 테라스 극장Terrace Theater 등의 크고 작은 공연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National Symphony Orchestra와 워싱턴 국립오페라단Washington National Opera이 상주한다.
1958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수도인 워싱턴DC에 국립문화센터National Cultural Center를 설립하는 초당적 법안에 서명했고, 1962년 케네디 대통령 부부는 센터 건설을 위한 3천만 달러의 기금 모금 캠페인을 시작했다. 케네디 대통령 서거 두 달 후 존슨 대통령이 서명한 의회법에 따라 1964년 미국 국립문화센터는 케네디 대통령을 기념하는 존 F. 케네디 공연예술센터로 이름이 바뀐다. 연방정부가 공연예술 전용 공간에 자금을 지원한 미국 최초의 건물이기도 하다.
1958년 국립문화센터법National Cultural Center Act of Congress에 의해 승인된 케네디 센터는 민간 자금을 통해 유지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공공-민간 파트너십을 대표하는 미국의 문화공간이다.
케네디 센터의 사명은 승인 법령에도 정확히 언급되어 있는데, “미국과 기타 국가의 클래식·현대음악·오페라·드라마·무용 등의 예술 공연을 올리며, 교육 및 지원 프로그램이 최고 수준을 충족하고, 미국의 문화적 다양성을 반영하도록 노력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또한 국립문화센터법은 다음과 같은 기본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데, 센터 건립과 다양한 고전 및 현대 공연을 선보일 예술적 의무, 센터의 교육적 사명을 명시한다.
메인 건물은 건축가 에드워드 듀렐 스톤Edward Durell Stone이 디자인했고, 이 설계안은 『워싱턴 포스트』 『워싱턴 스타』 등 언론매체의 호평을 받으며 미국 미술위원회·국가자본계획위원회·국립공원관리청의 승인을 받아 최종 확정된다. 최초 설계안에서는 워터게이트 단지와 유사하게 우주선에서 영감을 받은 곡선 형태의 건물이었으나, 몇 차례 수정 끝에 현재 모습이 되었다.
눈에 띄는 프로그램은 ‘PAFEPerforming Arts for Everyone’라고 하는 ‘모두를 위한 공연예술’이다. 케네디 센터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365일 매일 오후 6시(12월 24일의 경우 정오) 무료 공연을 펼친다. 1997년 만들어졌으며 센터 내 밀레니엄 스테이지Millennium Stage에서는 댄스와 재즈부터 실내악과 포크·코미디·스토리텔링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공연예술을 선보이고 있다.

존 F. 케네디 센터 내 콘서트홀 무대

국립콘서트홀National Concert Hall - 더블린, 아일랜드

국립콘서트홀은 국립문화기관으로 아일랜드 음악의 본류와도 같은 곳이다. 매년 1,000개 이상의 공연과 행사가 열리는 국립콘서트홀에는 현재 아일랜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국립합창단이 상주한다. 1865년 제품 전시회를 위해 건축된 이 건물은 1908년 아일랜드 국립대학교 설립 당시 더블린 대학교UCD: University College Dublin의 중앙 건물로 개조되었다. 이후 맥주회사 기네스Guinness 가문에서 이 건물을 사들여 대중을 위한 예술 공연 목적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간헐적으로 연주회 등이 이어졌다. 1960년대에 이르러서 UCD는 새로운 캠퍼스로 이전하는 데 합의하고, 1978년부터 3년에 걸친 공사 끝에 1981년 현재의 국립콘서트홀로 개관한다.
상주 단체인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National Symphony Orchestra는 1948년에 창단되었으며 아일랜드의 주요 클래식 음악 단체 중 하나이다. 2018년 아일랜드 정부는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국립콘서트홀 소속으로 병합했다. 이 밖에도 17~18세기 음악을 연주하는 단체인 아일랜드 바로크 오케스트라Irish Baroque Orchestra와 아일랜드 체임버 합창단, 크래시 앙상블이 국립콘서트홀에 상주한다.
국립 문화기관인 국립콘서트홀은 현재 아일랜드 정부의 관광·문화·예술 및 미디어에 대한 후원과 함께 아일랜드 정부 보조금을 지원받고 있으며, 아일랜드 정부가 지정한 이사회를 갖춘 법정 법인체로 존재한다.

아일랜드 국립콘서트홀 전경

국립극장Národní divadlo - 프라하, 체코

체코 프라하에 있는 국립극장은 체코 오페라의 본산이자 체코 역사와 예술을 관장하는 국가 기념비적 건물이다. 현재 국립극장은 오페라·발레·드라마 등 세 가지 장르를 관장하고 있다. 특별히 체코어와 체코 음악, 체코 오페라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중심적으로 하고 있다.
국립극장의 초석은 1868년 5월 16일에 놓였지만, 극장을 짓겠다는 계획은 1844년 가을 프라하의 애국자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체코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1845년 보헤미안 의회에 체코 국립극장의 ‘건축, 설비, 유지 및 관리 권한’을 요청하는 신청서를 제출했고, 6년 후인 1851년 체코 국립극장설립협회가 만들어졌으며, 프라하성 전경을 바라보는 블타바강 유역에 극장 부지를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동시에 비좁은 공간에 사다리꼴 형태의 건축은 건축가에게 어려운 숙제였다. 프라하 공대 건축과 교수인 요제프 지텍Josef Zítek이 설계 초안을 만들었고, 1881년 오스트리아 루돌프 왕세자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처음 개관했다. 한 차례 화재 때문에 전소되었다가 1883년 재개관했는데 이후 개조 없이 사용되다가 1977년 재건축이 시작되었고, 100주년이 되던 1983년 지금의 형태로 완성되었다.
앞서 케네디 센터가 미국 및 기타 국가의 공연이 열리는 장소인 데 반해, 체코 국립극장은 체코어로 하는 오페라와 연극이 주로 무대를 채운다. 이는 드보르자크, 스메타나, 야나체크와 같은 체코 국민악파를 이끈 보헤미안 작곡가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서구 주요 오페라 작곡가들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는 스테이트 오페라Státní Opera 극장과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가 초연된 에스타테 극장Stavovské divadlo이 공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외 국립극장의 사례를 통해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들을 살펴보았다. 다르게는, 미국 케네디 센터의 경우 기타 국가의 예술까지도 국립 문화센터 법에 명시함으로써 다양성을 중시하는 반면, 체코 국립극장의 경우 체코 음악과 체코어로 된 체코 오페라라는 범주에 국한하면서 자국의 문화를 보호한다는 점이다.
공통적으로는 해당 국가의 수도에 위치하며, 그 나라의 예술과 교육을 관장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이는 국립극장이 그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올해로 남산 이전 50주년을 맞은 국립극장이 대한민국 대표 공연기관으로서 공연예술 생태계의 균형과 조화를 견인하기를 바란다.

체코 국립극장 무대
글. 이상훈 건축가, 공연 칼럼니스트, 예술 여행작가, 아트 컨시어지(Art Concierge) 대표
<월간 국립극장> 구독신청 <월간 국립극장> 과월호 보기
닫기

월간지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 구독 신청

뉴스레터 구독은 홈페이지 회원 가입 시 신청 가능하며, 다양한 국립극장 소식을 함께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또는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편리하게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회원가입 시 이메일 수신 동의 필요 (기존회원인 경우 회원정보수정 > 고객서비스 > 메일링 수신 동의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