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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국립창극단 <패왕별희> ②
알고 보면 재미있는 키워드 넷
4년 만에 돌아온 <패왕별희>를 기념하며,
알아두면 쓸 데 있는 패왕별희와 관련한 네 개의 관람 팁을 살펴본다.

1. <패왕별희> 탄생시킨 원작

역사를 바탕에 두고 만들어진 작품을 접할 때면, 으레 그 역사적 사실이나 원작에 대한 궁금증을 갖기 마련이다. 특히 <패왕별희>의 배경이 되는 『초한지』는 장기 말로, 현존하는 수많은 성어로 세대를 뛰어넘는 존재감을 지니고 있어, 이야기의 시작에 더욱 궁금증을 갖게 된다.
국립창극단 <패왕별희>는 2019년 초연한 작품으로 대만의 유명 극작가 린슈웨이가 집필했다. 그는 대본 초입에 “『사기史記』 및 경극 <홍문연鴻門宴>과 <패왕별희>를 참고했다.”라고 밝히고 있다. 즉 <패왕별희>는 『초한지』를 배경으로 하되, 『사기』와 경극 작품을 참고해 홍문지회(홍문연)를 추가해 완성한 작품인 셈이다. 그렇다면 『초한지』가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된 건 언제일까? 책 이름은 『초한지』가 맞을까?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야기의 원작은 『서한연의西漢演義』라는 설이 유력하다. 17세기 일본에서 먼저 유행하다 임진왜란 이후 수용됐고, 1612년 견위가 『서한연의전』이란 이름으로 완역하기도 했다. 즉 <패왕별희>의 배경, 『초한지』의 원문을 보고 싶다면, 『서한연의』를 보면 된다. 참고로 중국 4대 기서에는 『서한연의』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의외의 사실! 더불어 『초한지』라는 명칭은 사실상 고우영 화백이 1984년부터 2년간 스포츠지에 동명으로 연재하면서 시작됐다는 설이 있다. 이후에 책으로도 출간됐지만 지금은 절판돼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책으로 알려져 있다.

2. 작품 속 고사성어 4개

국립창극단 <패왕별희>에는 경극 <패왕별희>에 없는 장면이 포함돼 있다. 바로 홍문의회 장면이다. 홍문지회 혹은 홍문연으로도 불리는 홍문의회는 중국사에서도 주요한 장면으로 꼽힌다. 『사기』에는 홍문의회에 등장하는 인물의 표정까지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다고 전하는데, 린슈웨이도 이를 기반으로 홍문의회 장면을 창극 <패왕별희>에 추가했다.

홍문의회는 진나라 말기에 항우와 유방이 셴양(함양) 쟁탈을 둘러싸고 홍문에서 회동한 술자리로 이 자리에서 비롯된 고사성어도 있다. 바로 ‘두주불사斗酒不辭’다. 두주불사는 “말로 퍼 주는 술도 마다치 않는다.”라는 뜻으로 항우가 내린 술과 고기를 먹어 치운 엄청난 주량의 번쾌에게서 유래했으며, 지금도 주량이 엄청난 사람을 일컫는다. 이외에도 『초한지』에서 유래했거나 관련 있는 고사성어가 무수히 전해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두주불사와 같이 <패왕별희>에는 익히 알려진 고사성어가 무수히 존재한다. 이 가운데 극 중 내용과 연관된 주요 고사성어 4개를 살펴보자.

파부침주破釜沉舟: 결심을 내리고 돌이키지 않는다
항우가 항량의 원수를 갚기 위해 2만의 정예부대를 끌고 진나라 왕리와 장한을 공격할 때, 강을 건넌 배를 침몰시키고 밥을 지어 먹을 솥을 부순 후 단 3일 치의 건량으로 싸운 데서 유래한 것으로 <패왕별희> 제2장 홍문연에서 항우가 언급하는 거록 전투가 그 배경이다.

약법삼장約法三章: 법은 간단해야 한다
한나라 고조 유방이 진나라의 가혹한 법을 폐지하고 이를 세 조목(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에 처하고, 사람을 상해하거나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처벌하고, 나머지 진나라의 법은 폐한다)으로 줄인 것으로 작품에서 범증(아부)이 열거하는 첫 번째 죄목이기도 하다.

사면초가四面楚歌: 아무에게도 도움받지 못하는, 외롭고 곤란할 지경에 빠진 형편
항우가 사면을 둘러싼 한나라 군사 쪽에서 들려오는 초나라 노래를 듣고 초나라 군사가 이미 항복한 줄 알았다는 데서 유래했다.

권토중래捲土重來: 흙먼지를 일으켜 다시 돌아옴
항우가 패전의 좌절을 딛고 훗날을 도모했다면, 다시 한번 패권을 얻을 기회가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에서 유래했다. 창극 <패왕별희> 역시 합창으로 “영웅은 어째서 강동으로 건너지 않고 죽음을 택했나!”라며 마지막을 장식한다.

3. 경극의 검보와 의상

경극 <패왕별희>는 역사적, 이야기적 의미뿐만 아니라 공연예술로도 의미를 지닌다. 먼저, 경극이 청나라 8대 황제 즉위 기간인 1820~1850년 사이를 실질적 형성 시기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200년이 채 되지 않은, 길지 않은 역사를 지녔음에도 전 세계에 영감을 주는 장르가 됐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20세기 초, 메이란팡이 미국과 유럽 순회공연에서 호평받은 데 이어 첸카이거의 영화 <패왕별희>(1895) 등의 성공이 큰 역할을 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영화 <패왕별희>가 꾸준히 재개봉하는가 하면, 최근 월극 <패왕별희>(국립국악원 우면당, 2023. 9. 20~21)가 공연됐고, 창극 <패왕별희>(국립극장 해오름극장, 2023. 11. 11~18)도 4년 만에 재공연돼, 각기 다른 매력의 <패왕별희>를 즐길 기회가 마련됐다.

경극은 주로 『수호지』 『삼국지』 등의 소설, 전설과 전기 등에서 소재를 따 각본으로 하는데, 600가지가 넘는 ‘검보’라는 분장법과 의상·손짓 등에 다양한 의미를 담아 인물을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먼저 검보는 크게 눈화장에 연지를 바르는 기초 분장과 색조 분장이 있다. 색조 분장에서 붉은색은 충성과 강직, 혈기를 상징하고 검은색은 엄숙하고 강직한 성격, 혹은 무모한 용기를 의미한다. 그래서 고집 있게 자신의 성격을 드러내는 항우의 검보는 흰 바탕에 검은색을 주 색상으로 쓴다. 창극 <패왕별희>에서도 항우 이마에 검은색 경극 분장을 추가해 간소하게나마 검보를 표현했다. 의상은 극 중 인물의 신분이나 지위·나이·성격 등을 표현하는데, 황제나 장군이 명·청 시대의 망포를 변형한 의상을 입고, 망포의 소매나 색에 따라 성격과 신분을 구분했다.

창극 <패왕별희>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의상 중 하나는 ‘고’인데, 이는 갑옷에 기반해 만든 무인의 의상으로 명망 있는 노장이 갈색을 입고 젊은 무사는 백색이나 홍색을 입는다. 그리고 위엄과 기상을 보여주기 위해 동작을 과장해 웅장함을 주는데, 이를 위해 의상 역시 잘 움직일 수 있도록 디자인되는 것이 특징이다. 창극 <패왕별희>에서는 유방·번쾌·범증 등의 의상에 갈색이 쓰였다. 항우는 붉은색과 검은색 중심의 옷을 입었지만, 황금색 실을 사용해 항우의 고귀함과 위용을 표현했다. 또한 고를 입고 등 뒤에 꽂는 고기靠旗는 용과 봉황 등을 수놓은 네 가지 군기로, 깃발 하나로 천만 군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서 고를 입고 고기를 꽂은 인물이 등장했다면, 이는 전쟁 상태임을 알리는 것이다. 창극 <패왕별희>의 항우는 붉은색에 황금색 실로 자수를 놓은 고를 입고 무려 6개의 고기를 달고 전쟁을 표현하는데, 굉장한 대군을 이끌고 전쟁 중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4. 경극과 창극, 어느 것에 중심을 두었을까

창극은 판소리에 기반한 장르다. 판소리가 한 사람이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 소리와 아니리를 통해(물론 재담을 섞기도 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라면, 창극은 다양한 악기를 바탕으로 한 현대식 반주에 연극처럼 여러 배역을 나눠 맡은 배우가 대사와 판소리조의 노래를 더해 완성하는 종합예술극이라 할 수 있다. 전통예술을 바탕으로 창조된 종합예술극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경극 혹은 홍콩의 월극과 유사하다 할 수 있으나, 창극은 비교적 근대에 형성된 공연 장르로, 반주 음악과 분장이 한결 더 현대적이고, 소리로 이면을 표현하는 판소리에 기반해 노래하되 자유로운 형식에 따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같은 창극과 경극의 만남은 ‘만남’ 자체만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과연 두 개의 축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었을지가 관건이었다. 우싱궈 연출은 경극이 분장이나 동작에 큰 의미를 둠에 따라 ‘동작은 경극’에, 기반을 둔 창극의 특징에 따라 ‘노래는 창극’에 중심을 두는 것으로 균형을 맞췄다. 그렇다면 귀는 익숙할 테지만 눈은 다소 어색할 수 있겠다. 하지만 발을 드는 위치에 따라 위엄의 정도가 달라지고, 손끝으로 캐릭터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경극 동작의 의미를 몇 가지를 짚어보며 어색함 속에서 새로움과 즐거움을 발견해 볼 수도 있을 거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동작 = 근심이 있음을 나타냄.

말채찍을 들고 있다 = 말을 타고 있다.

발을 들어 걷는 것 = 위엄 있는 모습을 표현, 하지만 발 높이가 지나치면 오만함을 표현.

숫자 4 = 많다는 의미. 즉 고기를 4개 꽂거나, 손가락 4개를 펼쳐서 표현. 창극 <패왕별희>에서 고기 6개는 ‘많다’를 넘어 엄청난 대군을 이끌고 전쟁한다는 의미다.

손의 엄지와 중지를 구부리고 나머지는 편다 = 전통적인 미를 의미. 우희의 정체성.

의자를 탁자 뒤에 둔다 = 이 공간은 공적인 장소, 즉 궁중이나 관청 혹은 법정.

의자를 탁자 앞에 둔다 = 이 공간은 사적인 장소, 즉 집 안.

4년 만에 돌아온 창극 <패왕별희>가 경극에서 숫자 4가 의미하는 것과 같이 대규모로 변화했다는 점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4년 전 중극장 규모인 달오름극장에서 초연한 작품을 대극장인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하고, 그에 따라 배우와 연주자가 추가 편성됐다.
대극장에서 대규모로 대인원의 관객과 나누게 될 <패왕별희>, 알아두면 쓸 데 있을 재밌는 네 가지 팁과 함께 즐겨보면 어떨까.

글.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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