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을
주는 곳

화이트스톤 갤러리
도심 속 자연에 스며들다
도심을 멀리 떠나지 않고도 자연의 한적함을 누리고 싶다면 높이 올라가 보자.
숨이 조금 찰 만큼 발품을 팔다 보면,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 자리 잡은 멋진 공간을 마주할지도 모를 일이다.

풍경에 녹아든 새 얼굴

최근 몇 년 새 국내 미술 시장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면서 세계 3대 아트페어인 프리즈FRIEZE를 비롯해 글로벌 화랑들의 한국 진출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일본의 화이트스톤 갤러리가 지난 9월 한국에 상륙했다. 1967년 설립된 화이트스톤 갤러리는 아시아의 대표 화랑으로, 서울점은 일본(도쿄·가루이자와), 중국(베이징·홍콩), 대만(타이베이), 싱가포르에 이은 아시아 7번째 지점이다.
화이트스톤 갤러리 서울은 용산구 후암동의 꽤 가파른 오르막길에 자리 잡고 있다. 갤러리가 대개 종로의 삼청동·북촌·서촌과 강남의 신사동·청담동, 용산의 한남동 일대에 몰려 있는 반면 이곳에 터를 잡은 이유가 무얼까.
옛 힐튼호텔을 등지고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백범광장공원으로 향하는 성곽길을 마주 보고 서 있는 검은색 건물이 보인다. 갤러리는 유리로 된 정면 외관을 캔버스 삼아 검은색 선을 여러 개 붙여둔 모양새를 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의 단색화를 모티프로 삼은 것이다. 지하 1층, 지상 4층에 700㎡ 규모로 전시장 세 곳과 옥상정원을 갖췄다. 유리창으로 하늘과 가로수, 지나가는 사람들이 비치는 갤러리는 마치 풍경 속에 숨은 듯 주위와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남산의 끝자락으로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고, 수도 한복판임에도 자연이 느껴지는 곳. 서울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길 바랐다는 화이트스톤 갤러리에 이보다 적합한 장소가 있을까.

지역·공간·미술의 조화

검은 외관은 내부로 들어가면 새하얀 큐브로 반전을 꾀한다. 삼각 계단을 중심으로 연결된 전시 공간은 지하의 대형 메인 전시실에서 시작해 두 개 층을 복층 구조로 연결한 2-3층 전시실, 소규모 작품이 있는 4층 전시실과 마지막으로 설치 작품이 있는 옥상으로 연결된다. 층마다 달라지는 높이와 불규칙한 모양의 벽면은 전시를 더욱 다이내믹하게 즐기도록 한다. 이러한 ‘공간의 입체적인 연속성’은 세계적인 건축가 구마 겐고의 작품이다.
그는 화이트스톤 갤러리 서울의 리노베이션을 맡으며, 단순히 자연적 물성 이상으로 기존 건축물이 간직한 장소의 기억을 존중하고 이를 계승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건물을 필요 이상으로 변형하지 않고 기존의 요소 및 소재를 활용하며, 재료는 가까운 곳에서 수급해 탄소발자국을 최소화했다. 구마 겐고가 내세운 조건은 과정을 까다롭게 만들었을 테지만, 그 결과는 이토록 미니멀하며 유연하다.
갤러리를 방문한 무렵에는 개관 기념 전시 <We Love Korea>가 한창이었다. 동아시아 전후 아방가르드 작가와 유망한 차세대 작가들이 참여한 그룹전으로, 특히 ‘핫’하게 떠오르는 일본 작가 미와 고마쓰의 라이브페인팅 퍼포먼스를 선보인 것으로 주목받았다. 전시 공간 곳곳에는 이우환 작가를 비롯해 한국 작가의 작품도 여러 점 볼 수 있다. 화이트스톤 갤러리는 한국의 숨은 작가를 발굴해 세계에 소개하고, 각국의 컬렉터를 한국 시장으로 이끌어오는 ‘교두보’로 기능하겠단 포부를 내세운다.
지하에서부터 한층 한층 올라와 문을 열고 나서니 마침내 바깥의 햇빛이 얼굴에 내린다. 씨앗이 싹을 틔워 흙을 뚫고 나오면 이런 기분일까. 갤러리의 하이라이트인 옥상정원에서는 남산의 N서울타워와 후암동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경치를 감상하면서 전시의 여운을 충분히 누리길 바라는 갤러리의 작은 선물인 셈이다.
멀지 않은 곳에서 도심의 번잡스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조금 높이 떨어져 왔을 뿐이니 도로 내려가는 길이 가뿐할 것 같다. 옥상 난간에 기대 숨을 깊이 들이마셔 본다. 창공을 가르는 바람에 가을 냄새가 묻어난다. 또 한 계절이 가고 있다.

화이트스톤 갤러리 www.whitestone-gallery.com

취재. 편집부 사진. 김성재 SSSAUN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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