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의 기원>
관현악을 위한 입체적 프로그램북
왜 관현악일까. 각 악기군을 따로 떼어내 온전히 솔로로 즐길 수 있음에도 함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악관현악의 기원과 흐름을 살피고 가상공간에서 국악관현악의 새로운 감각을 체득하며
그 답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오케스트라Orchestra는 서양음악에서 현악·관악·타악 등 다양한 악기군이 포함된 기악 합주 형태를 의미한다. 오케스트라를 번역한 용어인 ‘관현악단’은 서구 문명의 수입에 적극적이었던 근대 일본에서 만들어진 뒤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한국과 일본을 포함해 동아시아 전통음악에는 서양식 관현악 편제나 그에 따른 악곡이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용어가 필요했다.
국악관현악은 문자 그대로 국악기를 서양 오케스트라처럼 배치해 관현악곡을 연주하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인 1940년대 국악계는 서양음악의 영향 아래 전통악기 합주를 꾸준히 시도했다. 그리고 국악의 현대화 담론이 거셌던 1960년대 들어 국악예술학교(현 국립전통예술학교) 부설 국악관현악단을 모태로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현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1965년 출범하면서 국악관현악단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후 여러 국공립 국악관현악단의 탄생으로 이어지면서 국악관현악은 한국 창작 음악의 중요한 축이 됐다. 이와 함께 다양한 형태의 악기 배치가 시도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국악관현악 편성이 등장하게 됐다. 가야금에서 해금으로 주선율 악기가 이동함과 함께 아쟁을 중심으로 한 저음악기의 보완이 두드러진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1995년 창단 이후 국악관현악의 최전선에서 다채로운 시도를 해왔다. 무엇보다 국내외 작곡가와 활발히 협업해 다양한 레퍼토리를 축적한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성과다. 전통을 재해석하거나 동서양의 경계를 허무는 것은 물론 실험적 음향까지 도입하는 등 국립국악관현악단은 넓은 포용력으로 ‘한국 창작 음악의 산실’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제 도입 이후엔 관객의 시선을 끄는 기획을 자주 선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관현악시리즈’는 화려한 테크닉과 섬세한 표현을 동시에 발산하는 국악관현악의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2021-2022시즌부터 ‘관현악시리즈’ 가운데 1회는 테크놀로지와의 협업을 통해 국악관현악의 미래를 고민하는 자리로 만들고 있다. 2022년 6월 관현악시리즈IV <황홀경>은 국악관현악에 미디어아트를 결합해 현대적인 멋을 관객에게 선사했다. 당시 전통악기로 편성한 관현악 고유의 소리를 담아내는 연주를 위한 필수 무대장치인 음향 반사판을 캔버스 삼아 프로젝션 매핑을 펼쳤다. 그리고 2023년 6월 관현악시리즈IV <부재>는 안드로이드 로봇 에버6와 인간 지휘자 최수열이 번갈아 가며 지휘하는 모습을 보였다. 로봇의 관현악단 지휘는 해외에선 이미 여러 차례 시도됐지만 국내에선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큰 화제를 모았다.

이번 시즌, 관현악시리즈의 두 번째 무대인 <관현악의 기원>은 처음으로 가상현실VR을 활용하고 나섰다. 11월 26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라이브 공연을 선보이는 한편 공연에 앞서 11월 23~24일 VR을 활용해 관현악의 다양한 구성 요소를 탐구하는 관객 체험형 전시 <관현악의 기원: 이머시브 1인 관람극>을 준비한 것이다.
<관현악의 기원>은 국악관현악의 기원과 흐름을 살펴보는 공연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앞서 작곡가에게 위촉한 곡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는데, 스펙트럼이 다양하면서도 국악관현악의 본질을 잘 드러내고 있다. 공연 프로그램을 보면 전통예술의 원시적 원형인 굿을 소재로 한 이고운 작곡 ‘마지막 3분, 무당의 춤’, 고려 시대부터 연주된 대규모 관현악 편성의 ‘문묘제례악’과 서양음악의 파사칼리아Passacaglia 형식을 접목한 임준희 작곡 국악관현악을 위한 ‘음양陰陽-문묘제례악 주제에 의한 파사칼리아’, 궁중 의식이나 왕의 행차 등에서 연주되던 연례악 중 하나인 취타의 선율과 장단을 바탕으로 한 김창환 작곡의 국악관현악 ‘취(吹)하고 타(打)하다’, 민요 ‘새야새야 파랑새야’의 주제선율을 활용해 생과 사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황호준 작곡의 새야새야 주제에 의한 ‘바르도Bardo’는 앞서 초연이 이뤄졌던 작품들이다. 그리고 이번에 초연되는 이재준의 ‘구성構成’은 시김새와 장단을 구성하는 작은 동기(음악 형식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를 발전시켜 거대한 관현악이 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굿부터 현대음악 어법까지 전통의 원형과 현대적 진화를 동시에 제시하는 레퍼토리를 선정한 것이 눈에 띈다. 국악 단체 정가악회를 이끌며 건강한 국악 생태계 구축을 위해 노력해 온 천재현이 음악감독을 맡았으며, 2015년 독일 베를린에서 한국 창작 음악을 알리기 위해 만든 프로젝트 그룹 ‘NMK(한국으로부터 새로운 음악)’의 대표 겸 지휘자 윤현진이 지휘를 맡았다.

물론 이번 <관현악의 기원> 하이라이트는 본공연에 앞서 열리는 관객 체험형 전시 <관현악의 기원: 이머시브 1인 관람극>이다. 관객은 VR 장비를 착용하고 가상공간에서 하늘극장의 객석·무대·분장실 등을 둘러봄으로써 국악관현악을 새로운 감각으로 체화하게 된다. 체험이 가능한 입체적 공연 프로그램북으로 간주해도 좋을 듯하다.
전시는 <관현악의 기원> 본공연에서 연주될 황호준의 ‘바르도’를 활용해 국악관현악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바르도는 원래 티베트에서 망자가 환생하기 전까지 이승의 삶을 되돌아보며 머무는 중간 상태를 지칭한다. 2016년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베스트 컬렉션-민요>에서 위촉 및 초연된 ‘바르도’는 2019년 황호준에게 대한민국 작곡상을 안기는가 하면 여러 국악관현악단에서 꾸준히 연주될 만큼 높은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이번 전시에선 원곡의 약 절반 길이인 12분 정도 사용된다. VR 고글을 착용한 관객은 혼자서 ‘바르도’의 조각들을 감상하며 악기·연주자·지휘자 등 관현악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를 새롭게 경험하게 된다. 관객은 본공연을 통해 이들 조각과 요소가 모여 탄생한 하나의 완결된 관현악곡을 비로소 마주하게 된다.

이번 전시의 연출은 장소 기반 퍼포먼스와 전시를 선보이며 관람과 체험의 경계를 끊임없이 탐구해 온 서현석 작가가 맡았다. 서 작가의 작업은 관객에게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어디에 둘 것인지 고민하게 하면서 자신의 감각에 집중하도록 고립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2017년 남산예술센터에서 선보인 <천사-유보된 제목>부터 VR을 활용해 그동안 알아왔던 공간을 다른 관점에서 돌아보는 시간으로 만드는 작업을 즐겨 하고 있다. <천사-유보된 제목>의 경우 물리적 공간에 디지털 미디어를 통한 가상 이미지가 덧입혀지면서 남산예술센터에 새로운 장소성을 부여했다. 실제에 속하는 동시에 가상에서도 존재하는 관객은 혼자 극장을 누비는 독특한 경험을 했다. ‘오직 나만을 위한 관람’이라는 사치스럽지만 고독한 방식을 통해 관객은 자신의 경험을 올곧이 마주하며 독립적으로 사유하게 된다. 2021년 국립극단 기획으로 서울로7017과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선보인 <코오피와 최면약> 역시 이상의 소설 <날개>를 모티프로 1930년대를 재구성하고 현재와 중첩한 작품으로, 비슷한 맥락이다.

<관현악의 기원: 이머시브 1인 관람극> 역시 관객이 객석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기존 형태에서 벗어나 공연의 개념을 무대가 아닌 곳에서 재정립하도록 만든다. 관객은 평소 접하기 어려운 하늘극장 내 다양한 공간을 이동하면서 낯선 국악관현악의 세계로 몰입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약 40분으로 구성된 <관현악의 기원: 이머시브 1인 관람극>은 아쉽게도 이틀간 오후 1시부터 9시 40분까지 10분 간격으로 한 명씩만 관람할 수 있다. 하루에 40명씩 총 80명에게만 관람 기회가 돌아간다. 이들은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얼마나 다양한 분야와 결합하고 국악관현악의 확장을 꾀하는지 직관하는 증인이 될 전망이다.

2016년 ‘바르도’가 초연된 국립국악관현악단 <베스트 컬렉션-민요>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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