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엔톡 라이브 플러스 <오셀로> <메디아> <갈매기>
모던함으로 길어 올린 고전
흔히 고전을 새롭게 해석한 작품을 놓고 “전통을 거부한다”고 표현하지만
엔톡 라이브 플러스에서 준비한 세 작품은
전통을 거부한다기보다는 전통의 완전한 이해 위로 새로운 해석을 덧붙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실제 관객이 없는 극장에서 촬영한 영상을 스트리밍으로 상영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관객이 공연 영상과 만나는 일에 조금 더 익숙해졌다. 국립극장의 엔톡 라이브 플러스NTOK Live+는 관객이 공연 영상에 익숙해지기 훨씬 전부터 영국 국립극장의 공연 실황 프로그램 NT Live와 파격적이고 모던한 작품으로 각광받는 네덜란드 인터내셔널 시어터 암스테르담의 공연 실황 프로그램 ITA Live 등의 상영을 통해 시공간을 뛰어넘어 현대 유럽 동시대 연극의 흐름을 관객에게 전하는 귀한 역할을 하고 있다.
2023년 11월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상영되는 세 작품은 고전을 현대화한 작품으로 연극 특유의 현장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영상의 장점을 매끄럽게 조율한 촬영이 돋보인다. 무대 공연을 완전하게 재현할 수는 없지만 최근 엔톡 라이브 플러스를 통해 해외 공연 영상을 보면 무대 요소를 시각적으로 배열하고 조직해 내는 솜씨가 점점 발전하고 있음을 부쩍 느낀다. 사실 고정된 좌석에 앉아 한정된 시야각에 갇힌 관객의 눈이 줌인과 줌아웃이 될 리 없지만 관객의 시선 대신 마음이 가닿는 곳에 카메라의 시선이 움직이기 때문에 우려하는 이물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서늘해진 계절, 유럽 극장에 앉아 있는 것 같은 마법의 시간을 국립극장에서 느껴보길 권한다.

가정폭력의 멜로드라마
NT Live <오셀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참 묘하다. 새로운 것이 더는 나올 것 같지 않은 순간에 다시 새로운 작품으로 돌아온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는 질투와 의심이 빚어낸 비극으로 알려져 있지만 더 내밀하게 들여다보면 성차별, 가부장제, 인종차별의 문제 등 해결되지 않은 현재와 극복해야 할 미래의 이슈를 여전히 담고 있다.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다층적인 은유와 성별·인종·나이로 차별하지 않고 다양한 차이를 인정하는 원작의 깊이 때문에 시대가 바뀐 지금에도 현재화할 수 있는 작품이다.
흑인 배우 클린트 다이어가 연출한 <오셀로>의 무대가 열리면 그동안 영화와 연극으로 만들어진 <오셀로>의 포스터가 계단 무대 위에 영상으로 차르르 흘러간다.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쥐고, 아름답고 정숙한 아내 데스데모나와 결혼한 승자처럼 보이지만, 오셀로는 백인들 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흑인이라는 입장 때문에 인종차별을 느끼고 묘한 열등감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965년 로런스 올리비에의 <오셀로>이다. 원작의 오셀로는 무어인이었지만 흑인 배우를 주인공으로 쓰지 않는 전통 때문에 백인 배우가 검은 칠을 하고 무대에 등장했다고 한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담은 원작을 훼손하는 인종차별이라는 비판 때문에 주인공 오셀로를 백인으로 바꾼 무대도 있었지만 대부분 백인 배우가 흑인 분장을 하고 등장했다. 1825년 흑인 배우 아이라 알드리지가 흑인 최초로 오셀로 역을 맡은 인물로 기록되었으니, 셰익스피어의 원작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 1604년에서 220년 만의 일이다. 클린트 다이어는 첫 장면을 통해 그동안 <오셀로>의 차별적인 역사를 딛고 흑인 배우가 주인공인 자신만의 <오셀로>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오셀로가 무어인이라는 설정과 차별을 강조하기보다는 빛과 영상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모던한 오셀로를 그린다. 계략에 속고 의심에 미쳐 만들어진 비극보다는 깊은 사랑 때문에 파국에 이르는 격정 멜로에 가깝다. 의처증을 오셀로증후군이라 할 만큼 오셀로는 의처증을 대표하는 인물인데, 클린트 다이어는 <오셀로>에 인종차별로 인한 열등감보다는 의심과 질투에 더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숨이 멎을 정도로 격정적인 클라이맥스는 오셀로가 결함이 있는 영웅이라는, 비극의 근본적인 조건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을 계속 상기시킨다.
인종차별보다는 가정폭력의 요소를 비극의 중심에 두면서, 오셀로의 열등감만큼이나 남성들의 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중심에 둔다는 점이 새롭다. 오셀로를 포함한 극 중 남성은 모두 통제적이고 지독한 가해자로 그려진다. 자칫 원작에서 피해자의 역할로 해석될 수 있는 여성들을 단순한 피해자로 두지는 않는 연출이 새롭다. 원작에서는 크게 강조된 적이 없지만 데스데모나의 하녀 에밀리아는 극 중 학대받는 또 다른 주인공 여성으로 한쪽 눈에 피멍이 든 채로 등장하는데 폭력 앞에서 비굴하지도 겁먹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새로운 해석이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극 중 여성이 그 이상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NT Live <오셀로>

남을 망쳐서라도 살고자 한 여성
ITA Live <메디아>

<메디아>는 에우리피데스가 기원전 431년에 쓴 희곡으로 왕의 딸 메디아가 남편에게 버림받고 자식들을 죽이는 그리스 비극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신화에서 모티프를 따왔지만 신들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인간의 비열함과 이기심을 녹여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질투에 눈이 멀어 스스로 제 자식을 죽이는 여성의 이야기로 비인간적 대우에 고뇌하는 여성의 이야기로 볼 수 있지만 이제까지의 <메디아>는 ‘여성의 질투’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로 표현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2022년 엔톡 라이브 플러스에서 <입센의 집>을 통해 입센의 여러 작품을 활용해 집을 떠나지 못하는 가족 구성원들이 한 지붕 아래 공존한다는 기막힌 대서사를 보여주었던 사이먼 스톤은 ITA에서의 첫 연출작으로 <메디아>를 선정하고, 완전히 새로운 현대적 비극 드라마로 만들었다. 에우리피데스의 원작 희곡에서 경멸을 당한 여성이 자신의 아이를 살해한다는 줄거리만 남겨두고 거의 새로운 작품으로 연출한 것이다. 여기에 1995년에 남편을 독살하고 집에 불을 질러 두 자녀를 죽인 의사 데보라 그린의 실화를 덧붙여 지금 세대와 조금 더 맞닿아 있는 여성의 문제를 드러낸다.
극은 아나가 정신병원에서 퇴원하면서 시작된다. 남편 뤼카스가 어린 여성과 바람을 피웠던 과거가 아나가 분열되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설정되어 있다. 사이먼 스톤의 극 속 주인공은 단순히 질투에 눈이 먼 여성이 아니라, 그동안 남편과 자신이 쌓아왔던 가정과 사회적 관계를 모두 망쳐버린 남편이 자신의 삶을 무너뜨린 현실에 분노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뤼카스로 인해 망가지기 전에 아나는 사회적으로 훨씬 더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가정의 문제와 함께 주인공 아나가 마주하는 사회적 관계와 그 맥락을 덧붙인다.
새하얀 무대는 클라이맥스에 사용된 잿가루와 피의 향연을 더욱 강조한다. 그리고 그 위에 고스란히 노출된 배우들은 달아날 곳이 없어 보인다. 영상을 통해 배우들의 클로즈업된 표정이 무대 위를 가득 채우며 이 표정이 만들어내는 극적 긴장감은 기대 이상이다. 천장에서 비처럼 검은 재가 쏟아져 내리는 장면은 아나의 검은 영혼이 다른 사람의 세계를 침범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 여러 차례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폭발적인 무대를 보여준 사이먼 스톤의 연출은 어느 순간에는 즉흥극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제되지 않은 장면도 보여주는데, 이는 산만하다기보다는 오히려 극적으로 폭발적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가정과 직장을 동시에 잃은 아나를 통해 사회적 맥락에서 그녀의 존재가 사라지는 현실과 모욕의 상황을 들여다본다. 그 과정에서 여성이 가정과 사회에서 어떻게 이용되고 버려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아나는 타인을 망쳐서라도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인물로 보인다. 결국 아나의 살인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망친 주체를 소멸시켜 자신의 주체성을 다시 찾으려는 노력처럼 보인다. 내밀한 연출과 배우들의 진심 어린 연기를 통해 이 파격은 충분히 설득이 된다.

ITA Live <메디아>

날지 못하는 새의 무거움
NT Live <갈매기>

안톤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는 작가가 되고 싶은 콘스탄틴과 배우가 되고 싶은 니나를 통해 예술계의 신구 갈등과 젊은이들의 고민을 그려낸 작품이다. 실제로 체호프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평가될 만큼 작가로서의 고뇌를 진지하게 담아냈다. 1896년 첫 공연의 처참한 실패 이후, 1898년 모스크바예술극장에서 사실주의극으로 부활하면서 극찬을 받았다. 사실주의극의 전통에 따라 체호프의 작품은 이제까지 시대를 재연하는 무대, 의상과 소품 하나하나가 세밀하게 중요한 작품인 경우가 많았다.
<시라노 드베르주라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호평받은 제이미 로이드는 대사와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무대장치를 모두 제거했다. 주인공 시라노의 시그니처인 커다란 코도, 17세기 파리를 연상시키는 어떠한 의상이나 무대장치도 없었다. 그의 전작처럼 <갈매기> 역시 관객이 체호프의 무대에 기대하는 모든 것을 가볍게 날려버린다. 물론 극을 보고 있자면 체호프의 무대가 구식이어서 날려버린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게 된다. 오히려 제이미 로이드는 체호프의 희곡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방식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불필요한 시각적 장치를 버린 것처럼 보인다.
사실 체호프의 희곡은 사건이 없고 상황만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선명한 갈등은 없고, 실제 사건은 무대 밖에서 벌어지고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묘사된다. 의자라는 소품 대신 아무것도 없는 무대는 낭독극에 가까워, 행위보다는 대사로 사건을 기술하는, 체호프 희곡의 열린 상상력을 관객에게 더 활짝 열어주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 예술, 권력, 세대 갈등, 사회문제 등 모든 것은 배우의 대사만으로 전달된다. 어떠한 시각적 자극도 받지 않기 때문에 살짝 긴장감이 떨어지는 순간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제이미 로이드는 결국 연극이라는 것이 배우의 예술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배우의 역할을 전면에 내세운다. 때로 배우들은 나무 상자 앞에 놓인 인형처럼 보인다. 배우의 발성이나 연기도 사실적이지 않다.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꿈속에서 자신의 대사만 쏟아내는 것 같은 순간은 몽환적 느낌을 준다.
전혀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특별한 무대장치 변환도 없이 1막이 이어져서인지, 살짝 뒷 무대를 치운 2막에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배경 위로 인물이 덩그러니 방치된 것처럼 보인다. 심연처럼 어두운 무대의 깊이를 통해 모든 인물이 날지 못하는 갈매기처럼 바닥 위로 와르르 무너지는 결말로 이르는 과정이 더 심도 있게 다가온다. 우리에게는 <왕좌의 게임>으로 알려진 에밀리아 클라크가 니나가 돼 무대에 오른다. 다른 배우와 균형을 깨지 않고 단순화된 연기에 집중하는 모습이 잔잔한 폭발력을 보여준다.

NT Live <갈매기>

고전은 단순히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고전 그대로를 연출해도 동시대의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그 가치가 이어져온 것이다. 올해 엔톡 라이브 플러스에서 상영하는 <오셀로> <메디아> <갈매기>는 고전 작품을 각각의 방식으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영상과 조명으로 모던함을 강조하거나, 극의 해체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또 오히려 극적 장치를 모두 걷어내면서 극의 본연에 집중하려는 해석도 현대적이다. 새로움을 위해 원작의 가치를 절대 훼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들이다. 모던함은 고전의 대척점이 아니라, 서로를 비추는 거울 같은 것이다. 고전이 충분히 숙성된 후 발현되는 모던함은 우리가 놓친 오래된 예술의 가치를, 오랫동안 이어져온 이야기의 의미를 현재로 툭 솟아 올린다.

글.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을 졸업하고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영화·공연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저서로 영화 에세이집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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