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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 <나부코>
경계를 허무는 노예들의 합창
대비와 합창으로 베르디만의 독창성을 보여준 오페라 <나부코>가 공연된다.
베르디 인생의 개막이자 피날레가 된 작품에 이탈리아의 거장 스테파노 포다가 한국적 색채를 가미했다.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의 초기 히트작 <나부코>는 구약성서에 기록된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이탈리아어 이름인 ‘나부코도노소르Nabuccodonosor’를 짧게 줄인 이름으로, 성서에서는 네부카드네자르 또는 네부갓네살이라고 표기한다. 이 인물은 기원전 6세기 바빌로니아의 왕으로, 전쟁에 승리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히브리인을 포로로 데려가 노예로 부린 ‘바빌론 유수 사건’의 주인공이다. 역사는 네부카드네자르 왕을 용장이자 덕장이며 탁월한 지략가로 기록하고 있다.
그의 왕비는 비옥한 땅에서 시집온 아미티스였다. 황량하고 건조한 바빌로니아에서 꽃향기 가득한 고향의 초원을 그리워하는 아내를 기쁘게 하려고 왕은 왕궁 옥상에 유프라테스강 물을 대어 그 유명한 ‘공중 정원’을 만들었다. 베르디의 오페라에는 나부코 왕의 두 딸이 등장해 왕관과 옥좌를 두고 겨루지만, 역사에는 아들 마르두크가 왕위를 계승했다고 적혀 있다. 네부카드네자르는 워낙 유명한 군주여서 소문과 낭설도 많이 따랐다. 구약성서 다니엘서에는 아라비아 원정 중에 그가 실성해 10년 동안 사막에서 들짐승처럼 살다가 이스라엘의 신에게 귀의했다는 내용이 있고, 베르디의 오페라는 이 극적인 스토리를 강조해 ‘실성한 나부코’를 보여준다.

아버지의 권력을 열망하는 바빌론의 공주

1842년 밀라노 라스칼라La Scala 극장에서 초연한 <나부코>는 <오베르토> <하루 동안의 왕>에 이은 베르디의 세 번째 오페라로, 테미스토클레 솔레라가 대본을 썼다. 1막은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에서 시작된다. 히브리의 대제사장 자카리아는 바빌로니아의 왕 나부코의 공격을 두려워하는 히브리 백성들에게 용기를 주려고 애쓴다. 예루살렘에 인질로 잡혀 온 나부코의 둘째 딸 페네나 공주는 히브리 왕의 조카 이즈마엘레와 사랑하는 사이다. 나부코의 큰딸 아비가일레가 등장해 “이즈마엘레가 나를 사랑한다면 히브리인들을 모두 살려주겠다”고 제안하지만 이즈마엘레에게 바로 거절당한다. 나부코는 바빌로니아 군대를 이끌고 들어와 예루살렘 솔로몬 성전을 파괴한다.
2막에서 아비가일레는 자신이 노예의 몸에서 태어났음을 알려주는 비밀문서를 발견하고, 나부코 왕이 자신이 아닌 페네나에게 왕위를 물려줄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바빌로니아의 대사제는 아비가일레의 왕위 찬탈을 부추기고, 아비가일레는 아리아 ‘한때는 나도 행복에 마음을 열었다’를 노래하며 아버지 나부코의 왕위를 빼앗기로 결심한다. 나부코가 등장해 자신은 ‘왕이 아니라 유일신’이라면서 자신을 영원히 숭배하라고 모두에게 명령하고, 그 순간 벼락이 내리쳐 나부코를 쓰러뜨린다.
3막에서 스스로 나부코의 왕관을 쓰고 왕위에 오른 아비가일레 앞에 실성한 나부코가 나타나 아비가일레를 비난한다. 아비가일레는 유대교로 개종한 페네나 공주가 포함된 히브리인들의 명단을 내밀며 나부코에게 이들의 처형을 승인하는 서명을 요구한 뒤 나부코를 감옥에 가둔다. 한편, 바빌로니아에 잡혀가 억압과 중노동에 시달리는 히브리인들은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잃어버린 고향을 그리워하며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날아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Va, pensiero, sull'ali dorate’를 노래한다.
4막에서 형장으로 끌려가는 딸 페네나를 감옥에 갇힌 채 보게 된 나부코는 무릎을 꿇고 히브리인들의 신에게 용서를 빌며, 자신이 파괴한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세울 것을 약속한다. 충신 압달로는 나부코가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에 기뻐한다. 나부코는 압달로에게 칼을 받아 반역자들을 처단하고 페네나를 구하러 출정하며 ‘유대의 신이여... 용사들이여, 나를 따르라’라고 노래한다. 딸을 구하고 바빌로니아의 신상을 파괴하라고 명한 나부코는 자기 백성들에게 히브리의 신을 찬양하게 한다. 한편 아비가일레는 독약을 마시고 나타나 페네나와 이즈마엘레에게 용서를 구하고, 히브리 신의 자비를 구하며 숨을 거둔다.

상반된 요소의 대비를 강조한 음악

무대 위에서 공연되는 극은 무대와 객석 사이에 있는 ‘제4의 벽’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규모가 큰 합창을 할 경우에는 그 벽이 사라지면서 무대 위의 합창단이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과 하나가 된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지배하에 있던 북부 이탈리아의 독립에 대한 민중의 열망을 베르디는 바로 이 대규모의 합창으로 표현했다. <나부코>뿐만 아니라 <1차 십자군의 롬바르디아인들> <맥베스> <아틸라> 등 베르디의 ‘리소르지멘토(‘부흥’을 뜻하는 단어로, 19세기 이탈리아 통일 및 독립운동을 의미)’ 오페라는 합창을 비중 있게 사용하면서 민족의 집단적 성격과 통일성을 강조했다.
아내와 아이를 차례로 잃은 슬픔에 이어 희극 오페라 <하루 동안의 왕>(1840) 초연 실패까지 겪으며 깊은 좌절의 늪에 잠겨 있던 베르디는 <나부코> 대본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가사에서 받은 벅찬 감동으로 다시 일어나 작곡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베르디는 “이 작품으로 나의 본격적인 예술가 인생이 시작되었다”라고 말했다. 초연 때 이탈리아 관객들은 이 합창에 열광해 극장에서 “베르디 만세, 이탈리아 만세!”를 외쳤고, 그때부터 오페라 <나부코>는 민족해방과 독립을 위한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1901년 베르디 장례식 때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연주되었으니 <나부코>는 베르디 인생의 개막이자 피날레가 된 셈이다.
관객이 기대하는 익숙한 방식의 음악을 사용하면서도 베르디만의 독창성을 그 안에 적절하게 융합한 <나부코>는 확실한 성공작이었다. 오페라 초반에 관객은 음악에서 친숙함을 느끼지만 음악이 점점 진행될수록 기대 수준을 뛰어넘는 낯선 새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느림과 빠름, 평온과 격정, 익숙함과 낯선 느낌 등 상반된 요소의 대비를 강조하는 것은 <나부코> 음악의 핵심이다.

빛과 회심, 희망과 한의 드라마

11월 30일부터 12월 3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를 <나부코>는 국립오페라단 2021년 프로덕션의 리바이벌 공연이다. 이탈리아의 거장 스테파노 포다가 연출·무대·의상·조명을 담당했고, 지휘자 홍석원이 클림오케스트라와 위너오페라합창단을 이끈다. 연출가 포다는 이 오페라를 “빛과 회심, 희망과 한을 이야기하는 영성적 작품”으로 해석했다. 한국의 전통 문양을 사용했을 뿐 아니라 한국의 역사적 상처를 무대 위에 표현해 화제가 된 프로덕션이다. 정신적·심리적 위기 상황을 겪을 뿐 아니라 광기를 숭배하던 낭만주의 벨칸토 시대의 ‘실성한 주인공’ 역할까지 하는 나부코 역은 바리톤 양준모와 노동용이 맡았다. 베르디의 두 번째 아내가 된 소프라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를 위한 고난도 배역인 아비가일레 역은 소프라노 임세경과 박현주가 소화한다. 이 역은 오페라에서 성악 못지않게 극의 비중을 강화한 베르디 오페라의 특색을 잘 드러내고 있다.

글. 이용숙 음악평론가. 독문학과 음악학을 공부했고 공연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합뉴스 문화부 객원기자로 공연 리뷰를 하며, 서울대학교 및 여러 공연장 아카데미에서 강의한다.

사진. 황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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