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보기
하나

국악관현악의 쟁점과 딜레마 ②
국악관현악의 진화와 과제
국악관현악단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양적·질적 성장이 가시적이며
동시대 예술로 중요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시기별 성장 과정과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

국악계가 현대적으로 제도화하는 시기에 국악관현악 역시 양식과 연행의 두 축에서 ‘국악계 음악 만들기’ 한복판에 있었다. 첫 국악관현악단인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창단한 1965년부터 지금까지 터닝포인트가 된 주요 담론과 상징적 사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먼저, 1965년은 국악 제도화의 시작을 알리는 시기로 신국악, 작곡, 악기 개량, 무대 양식화 등 국악의 현대화 담론을 견인했다. 1985년은 국가 중심의 민족국가주의와 연동되어 전통과 현대를 동시에 상징했다. 대중문화도 국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국악의 대중화 담론은 KBS 국악관현악단의 창단으로 연결된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전국적으로 국공립 국악관현악단이 설립되는 등 확장의 시기였다. 1995년은 국악의 세계화와 생활화가 주류 담론으로 떠올랐다. 국악관현악의 역사는 국악 제도화의 역사를 그대로 담을 만큼 국악계 주류로 부상했다. 2015년은 국악관현악에 있어 특별한 해였다. 역사적으로 최초의 국악관현악단인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은 창단 50년을 맞았고, 1985년에 설립된 KBS 국악관현악단은 30주년을, 1995년에 시작된 국립국악관현악단은 20주년을 맞으며 국악관현악을 성찰하는 여러 행사가 있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23년 여름, 국립국악원에서는 신진 연주자를 주축으로 한 국악관현악축제가 개최됐고, 세종문화회관은 올가을 대한민국국악관현악축제라는 전국 규모의 국악관현악단 축제를 신설한다. 국악관현악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양적·질적 성장이 가시적인 동시대 예술 연행으로 중요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국악관현악의 성장은 국악관현악을 둘러싼 쟁점과 딜레마에 대한 해답 찾기의 과정을 담고 있다. 국악관현악의 진화를, 국악관현악의 세 가지 쟁점인 작품·연행·운영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첫 번째 쟁점인 ‘작품’은 국악관현악의 ‘양식’에 대한 탐색이다. 국악관현악은 전통을 잇기 위한 창작인가, 창작을 위한 전통인가, 국악관현악곡에서 명곡은 어떠한 미학을 추구하는가 같은 질문을 담고 있다. 국악 작곡과 신국악이 시작된 국악관현악 태동기에는 작곡가와 작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50년간 다양한 배경을 가진 작곡가의 시도로 국악관현악이 만들어졌다. 작곡가는 전통음악의 선율과 장단에 새로운 형식과 편성을 입히거나 서구 음악의 조성 체계와 오케스트라 양식을 차용하거나, 조성과 양식을 파괴한 현대음악 기법을 얹는 등 다양하게 시도했다. 작품의 주체를 작곡가에서 연주자로 설정하며 국악관현악 양식을 실험하는 가장 도전적인 시도까지 이어졌다. 국악 작곡가뿐 아니라 양악 작곡가, 외국인 작곡가에 이르기까지 국악관현악 양식은 다양한 주체를 통해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확장됐다. 이들의 작품은 전통과 동시대, 정통과 혁신의 스펙트럼 위 어딘가에 위치했다. 지난 50여 년간 레퍼토리가 축적되면서 작품의 수준과 작곡 기법에 대한 질문은 더욱 예리해지고 있다. ‘작품’에 대한 논쟁은 국악관현악 양식의 미학과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두 번째 쟁점인 국악관현악의 ‘연행’은 지휘와 지휘자, 예술가의 연주 기량, 극장과 음향, 악기 개량 등의 문제를 포괄한다. 국악관현악 초기 국악 전문 지휘자의 부재는 국악관현악의 성장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지휘 전공이 따로 있지 않던 초창기, 지휘를 전문적으로 학습하지 않아도 경험을 통해 국악계 남성 리더들은 지휘자의 지위를 획득했다. 초기 국악관현악단의 작곡 공모사업은 점차 차세대 지휘자 양성 프로젝트 등으로 확장됐는데, 작품 못지않게 지휘의 기술과 작품의 해석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근래에는 이렇게 육성 발굴된 신진 지휘자와 국내외에서 지휘를 전공한 전문 지휘자의 등장으로 전문 영역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최근 국악관현악을 지휘한 로봇 지휘자 에버6의 실험(국립국악관현악단 <부재>, 2023년 6월 30일)은 예술과 기술이 만나는 지점에 대한 성찰을 던진 흥미로운 작업이다. 국악관현악이 만들어낸 마케팅 이슈로도 유의미했지만, 무엇보다 지휘를 둘러싼 국악계의 논의를 끌어내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게 해석할 수 있다.
국악관현악단의 예술가가 지닌 연주 기량은 작품의 난이도와 함께 점차 높아지고 있는데 개별 예술가들의 실력뿐 아니라 음화(앙상블)의 수준도 높아져, 이제 주요 국악관현악단의 음색과 음화는 악단별로 구분이 가능할 정도가 됐다. 국악관현악을 담는 극장과 전기음향의 문제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과 국립국악원 우면당이라는 자연음향 극장의 탄생으로 한 단계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국악관현악의 음화와 음향은 악기 개량 문제와 깊이 연동돼 있다. 1960년대 중반 국립국악원에서 시도한 바 있는 악기 개량은 성과를 보지 못하다가 개인의 악기 개량 시도가 일부 성공했지만 국악계 전반의 악기 개량에 대한 시각은 오랫동안 보수적이었다. 1995년 국립국악관현악단 설립 시 개량 악기를 둘러싼 국악계의 논쟁이 이를 잘 보여준다. 국악관현악 양식이 서구적 현대화를 지향할수록, 작곡가 작품 중심으로 전개될수록, 국악기의 음고·조율·표준음고·음량·음향·기보법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고, 이를 연주 기량으로만 커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공적 담론에서 해결되지 못한 악기 개량 문제는, 2000년대 이후 다양한 경로로 유입된 북한 악기, 사적 개량악기, 서양 악기 활용 등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악기 개량 논쟁 한복판에 놓인 ‘음색’과 악기 제작 문제는 국악관현악에서 여전히 미학과 정체성 이슈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미완의 과제임이 분명하다.

세 번째 쟁점인 국악관현악단 ‘운영’은 악단의 존립과 자생, 자율성, 관객의 무관심, 단원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국악계 졸업생의 일자리 문제를 포괄한다. 현재 40인에서 70인 정도의 규모로 운영되는 전국 국악관현악단 가운데 민간이나 재단법인 형태는 매우 소수이며 대부분 국공립·시립·군립으로 운영되고 있다. 국가 지자체 재원과 행정제도 안에서 운영되다 보니 안정적인 재원 확보와 이에 따른 자생력을 갖추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부족한 예산에 더해 2~3년의 임기제 예술감독직은 악단의 자율성과 장기적 안목의 정체성 구상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다시 단원의 무기력함으로 연결돼 악단 전체의 활력이 떨어지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 정년제 단원과 후속 세대의 일자리 문제는 세대 간 갈등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운영체계 전반은 궁극적으로 국악관현악의 경쟁력을 떨어뜨려 관객의 외면을 받는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현대 국악 제도화의 중심에 서 있던 국악관현악의 쟁점은 지난 50여 년간의 시도와 실천을 통해 진화했음을 목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악관현악의 딜레마로 남아 있는 여러 쟁점은 미래를 위한 과제가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쟁점과 딜레마는 국악의 미학과 정체성이다. 국악관현악을 구성하는 악단·지휘자·작곡가·예술가·평론·기획·관객이 각각 자신 몫의 과제를 인지하고 성찰함으로써 미래의 한국 음악이 국악관현악을 통해 탄생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글. 김희선 국민대학교 교수이며 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을 맡아, 학술과 현장의 소통을 이끄는 매개자로 활동한다. 국악의 현대화 과정에 관심을 두고 국내외 학술지와 매체에 다양한 주제의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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