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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024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국립무용단 시즌 프리뷰
가치에 깊이 더하는 한국춤
국립무용단은 새 시즌을 맞아 신작 다섯 편, 레퍼토리 한 편 등 여섯 편의 작품을 공연하고,
댄스필름 제작과 해외 공연까지 계획해 국립극장은 물론 그 너머로 확장된 무대에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국립무용단의 이번 시즌 슬로건은 ‘전통과 실험을 오가며 미래로 나아가는 한국 춤 미학’이다. 김종덕 예술감독 취임 후 첫 시즌이기에 김 감독의 비전을 엿볼 수 있는 슬로건이다.
다섯 편의 신작이 모두 기대되지만 그중 큰 관심을 끄는, 김종덕 신임 감독의 첫 신작은 2024년 4월에 편성됐다. <사자死者의 서>는 티베트의 전설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파드마삼바바가 남긴 경전 『티베트 사자의 서』를 모티프로, 죽음을 건너 고요의 바다에 이르는 여정을 망자의 시선으로 따라가는 작품이다. 안무를 맡은 김종덕 감독은 “2018년 우연히 들른 전시회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삶과 죽음을 단절로 보지 않고 죽음을 삶이 축적된 하나의 결과물로 본다. 이러한 정서는 태극 안에 담겨 있다. 두 면의 대칭은 상대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순환이고 서로 보완해야 온전한 하나가 될 수 있다. 음과 양, 삶과 죽음도 그러하다.”라고 이번 작품의 구상 동기를 밝혔다. <사자死者의 서>에는 국립무용단 전 단원이 출연한다고 하니 오랜만에 대작의 웅장함을 기대해 본다.

안무가의 역량을 더하는 무대

지난해 더블빌로 한 무대에 오른 <신선>과 <몽유도원무>는 60분의 장편으로 독립해 이번 시즌 마지막 작품으로 공연된다. 고블린파티 안무의 <신선>과 차진엽 안무의 <몽유도원무>는 각각 ‘권주가勸酒歌’와 ‘몽유도원도’를 모티프로 한 작품으로 현대무용 안무가가 참여해 관심을 끌었으며 두 작품 모두 관객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초연 당시 해외 진출에 초점을 둔 제작 방향에 따라 규모와 구성을 의도했었는데, 이번 확장된 무대에서는 어떤 형태로 재탄생될지 궁금하다. 더욱이 이 공연을 재안무나 확장판이 아닌 신작으로 구분한 만큼 새로운 무대를 선보이리라 기대한다.
단원의 안무작으로 이뤄진 신작도 눈에 띈다. 국립무용단은 2001년 시작한 <바리바리 촘촘 디딤새>부터 안무가 육성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해 왔으며 전통춤의 동시대적 해석을 공통 미션으로 유지했다. 최근 기획된 ‘홀춤’ 시리즈는 겹춤으로 발전, 응용되기도 했는데 이번 시즌에는 3년간 개발해 온 ‘홀춤’ 프로젝트의 레퍼토리를 집대성해 <온춤>을 기획했다. 1인무에서 2인무로 또 군무로 작품의 규모를 키워나가는 것은 안무가 육성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장기적 체계를 세워나간다는 방증이다. 무용수에게 안무 기회를 주는 것에 대해 김종덕 예술감독은 “과거의 무용수는 주어진 동작을 구현하는 도구적 존재였지만 지금은 안무 의도를 이해하고 움직임을 개발하는 역할까지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춤>과 같은 경험은 단원 역량 강화를 위해 필요한 것이고, 앞으로도 지속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온춤>은 이번 시즌 문을 여는 공연인 만큼 알찬 구성으로 관객을 만난다. 바라춤에 뿌리를 둔 ‘바라거리’(안무 김은이)와 살풀이 형식에 밀양·진도 북춤이 더해진 ‘보듬고’(안무 박재순), 구음검무에 예인의 마음을 담은 ‘단심_합’(안무 김회정), 칠채장단과 짝쇠 기법에 기반한 ‘너설풀이’(안무 정관영)를 비롯해 ‘산산수수’ ‘심향지전무’ ‘다시살춤’ ‘월하정인’ ‘산수놀음’까지 총 아홉 편을 한 무대에서 감상할 수 있다니 이런 만찬이 또 있을까 싶다.

전통에 깊이 뿌리내린 무대

2024년 갑진년 새해를 열며 모두의 행운을 비는 우리 춤 한마당 <축제祝·祭>도 펼쳐진다. 매년 하늘극장에서 열리는 명절 공연이 <새날> <설 바람> <추석 만월>에 이어 이번 시즌에는 새 이름 <축제>를 달았다. 김종덕 예술감독은 우리 전통 춤이 때와 장소, 대상에 따라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는데 그동안의 명절 공연에는 궁중·민속·종교의 춤이 혼재하고 있어 아쉬웠다며, 이번 <축제>에서는 새로운 한 해를 잘 보낼 수 있게 기원한다는 의미에서 무속 춤으로 영신迎神-오신娛神-송신送神의 스토리텔링을 만들었다. 매년 콘셉트를 정해서 통일된 연출과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고 하니 내년에는 <축제>가 아닌 다른 제목의 명절 공연을 만날 수도 있겠다.
국립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 <묵향>은 4년 만에 해외 공연에 나선다. 2023년 10월, 한국·캐나다 수교, 한국·미국 동맹을 기념해 캐나다 오타와 국립예술센터와 미국 워싱턴 케네디센터에서 현지 관객을 만날 계획이다. 2013년 초연 후 국내는 물론 다양한 해외 무대에서 호평을 받아온 <묵향>은 윤성주 안무가가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재직 시절 창작하고, 디자이너 정구호가 연출을 맡은 작품으로, 신무용의 대가 고 최현의 ‘군자무’를 바탕으로 매란국죽의 장면마다 세련된 미장센이 돋보였다는 평을 받아왔다. 북미 투어를 마친 후, 12월에는 해오름극장에서 국내 공연도 펼친다.

앞으로의 가치를 여는 무대

가치 만드는 국립극장 ‘안무가 프로젝트’는 올해에 이어 2024년에도 계속된다. 올 연말, 서류 심사와 인터뷰 심사를 통해 2기 참가자를 선발하며, 선발된 안무가들은 국립극장의 창·제작 시스템하에서 30분 내외 길이의 작품을 창작하게 된다. 이들이 만든 작품 중 우수작은 향후 장편 작품으로 발전시킬 기회도 주어진다. 올해 1기 ‘안무가 프로젝트’에서 우수작으로 선정된 ‘메아리’(안무 정보경)는 댄스 콘셉트 필름 제작을 앞두고 있으며 완성 후에는 국내외 영화제에 출품할 계획이라고 한다. 공연장을 찾지 못한 관객에게 또 다른 방법으로 작품을 만날 기회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국립무용단의 활동 범위를 넓히는 작업이라 여겨진다.
김종덕 예술감독은 “창단 61주년을 맞은 국립무용단은 제2의 도약을 위해 창작 활성화에 집중해야 한다. 그동안 전통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 많은 사랑을 받아왔지만 동시대적, 즉 컨템퍼러리 댄스로서 이슈화할 만한 작품은 부족했다. 공공재로서의 역할을 올바르게 수행하려면 한국 창작 춤의 방향을 제시하는 창작 활성화가 최우선 과제이고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국립무용단의 비전을 밝혔다. 2012년 시즌제 도입 후 열두 번째를 맞는 2023-2024 레퍼토리시즌을 통해 김종덕 감독의 바람대로 국립무용단이 국민의 사랑을 받는 단체, 공감대를 형성하는 단체가 되기를 바라며, 전통과 실험의 균형을 잡아가며 한국의 춤 미학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글. 김예림 무용평론가. 무용수와 안무가로 활동했으며 평론가로 등단한 후 여러 매체에 춤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현장성 있는 평론가를 지향하며 오늘도 극장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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