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2023-2024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 | 국립국악관현악단 시즌 프리뷰
시도를 거듭하겠다는 출사표
‘국악’은 그 시작을 논할 수 없는 장르지만, ‘국악관현악’은 이제 막 반세기를 조금 넘은 역사를 지닌
비교적 현대의 장르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창단 이래 선봉에서 장르의 발전을 꾀해 왔다.
이번 시즌 어떤 실험과 시도를 담았을까.

새로운 시즌을 앞두고 또다시 ‘발전’의 과제를 풀고자 하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을 보며 생각해 본다. ‘과연 무엇이 오늘날 단체를 성장시키는 가장 좋은 방안일까?’ 조직을 성장시키는 데는 여러 방안이 있겠지만, 주로 뛰어난 리더의 선구자적 안목과 디테일까지 완벽한 청사진이 중요한 요인으로 여겨져 왔다. 국악관현악의 길지 않은 역사를 돌아봐도 그러하다. 박범훈·이상규처럼 이 장르를 대표하는 음악적 리더가 있었고, 작곡과 지휘를 병행하는 실연의 형태가 낯설지 않던 시기가 분명 존재한다. 최근 사회적으로 높은 성과를 내는 조직의 특성을 보면, 다소 리스크를 안더라도 즉각 실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목표를 바꿔가며 성장하는 조직이 더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누구보다 다양하게 시도하고 그 결과를 다음 시도에 반영하는 발 빠른 조직이 경쟁력을 갖추는 시대. 즉 오늘날에는 다양하게 시도하고 기민하게 대처하는 민첩한 조직력이 생존에 핵심적인 키가 된 것이다.
2023-2024 레퍼토리시즌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공연 스케줄은, 예술감독이 부재한 가운데 이번 시즌 또한 부단히 ‘시도’해 보겠다는 출사표로 읽힌다. 바로 이 점에서 여느 시즌보다 이들의 행보에 주목하게 된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위기를 기회로, 나아가 계속되는 ‘시도’로 얼마나 성장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최전선의 실험이 담긴 관현악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빼곡한 공연 캘린더에서 가장 먼저 찾아보게 되는 것은 역시나 메인 디시라 할 수 있는 ‘관현악시리즈’이다. 총 4개의 공연이 진행되는 ‘관현악시리즈’는 올해 장르의 본질에 대해 더욱 철저히 고민하는 가운데 타 예술 분야에 국악으로 향하는 진입로를 만드는 기획이 돋보인다. 그 첫 번째 공연 <디스커버리>의 지휘봉은 여자경(현 대전시향 예술감독 및 상임지휘자)이 맡았다. 여성 음악인의 불모지와 다름없던 지휘계에서 꾸준히 뚜렷한 성과를 보여온 여자경과 떠나는 새로운 음악적 탐험에 단체는 물론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의 기대가 모이고 있다. 시리즈는 11월 26일 <관현악의 기원>으로 이어지는데, 지난 시즌 마지막에 로봇을 지휘자로 등장시켜 화제를 모았던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이번 시즌에는 체험형 음악회라 할 수 있는 독특한 연출과 구성으로 이목을 집중시킬 듯하다. 전시적 요소를 더한 장소 기반 퍼포먼스로서 음악을 ‘경험’하게 하는 이 기획은 장소 특정적 퍼포먼스를 연출해 온 서현석이 참여한다. 서현석 또한 여자경과 마찬가지로 국악 분야와의 컬래버레이션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험으로서 음악회에 접근하도록 하는 이 기획은 관객이 작품을 일방향으로 수용하게 하던 것에서 자기 주도적이고 참여적으로 즐기게끔 하는 것으로, 달라진 오늘날 관객의 특성을 고려한 시의적절한 시도로 보인다. 이어 내년 봄으로 이어지는 시리즈는 <한국의 숨결>이라는 타이틀로 시대의 석학 고 이어령 선생이 남긴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담은 ‘천년의 노래, REBIRTH’, 이영조 작곡의 국악관현악과 합창을 위한 곡 ‘시조 칸타타’를 통해 오늘날 창작음악에서 돋보이는 한국적 색채에 대해 조명하며, 국립합창단이 협연한다. 마지막 시리즈에서는 ‘작곡’에 대한 시도에 주목해 본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비정기적으로 ‘상주작곡가’ 제도를 운영한 바 있다.
이 제도를 통해 많은 창작 국악관현악곡이 탄생했다. 창작곡이 동시대에 사랑을 받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 제도를 통해 탄생한 많은 곡 중에서 현재까지 연주되며 그 가치가 회자되는 곡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 가운데서도 수작으로 꼽히는 작곡가 김성국·최지혜의 곡과 해당 작곡가들의 새로운 초연곡을 시리즈의 마지막 공연인 <탄, 명작의 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입단 25년이 된 여미순 악장은 단체의 터줏대감으로서 이 곡들의 탄생 과정을 다시 떠올리며 김성국의 ‘영원한 왕국’과 최지혜의 ‘감정의 집’을 “정말 좋은 작품이라 난도가 높아 힘듦에도 불구하고 연주자로 하여금 잘 해내고 싶게 만드는 곡”이라고 소개하는 한편, 창작음악에서 드러나는 연주와 작곡 간 상관관계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했다.

미래 비전을 향한 꾸준함

국악에 대한 관객의 문턱을 낮추며 국악 대중화에 기여해 온 <정오의 음악회>도 계속된다. 본래 연주자 중심에 장단으로 음악적 합을 맞췄던 전통음악의 특성상 관현악의 ‘지휘자’라는 역할은 언제나 그 해석이 이목을 집중시키는데, 올해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지휘자 프로젝트’에 함께한 세 명의 지휘자, 채길룡·김지수·최동호가 참여하니 젊은 지휘자의 저력에 주목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올해도 해설에는 방송인 이금희가 함께한다.
어린이 음악회 <나무가 노래하면 별들은 춤을 출까>(가제)는 ‘자연’을 주제로 체험적 요소로 오감을 일깨우는 공연을 양혜정 연출과 함께하며, 청소년을 위한 공연인 <소소 음악회>는 미래의 주요 관객인 10대들에게 그들의 눈높이에 알맞은 음악적 접근을 시도할 예정이다.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애주가愛酒歌>에서는 전통주를 함께 즐기며 자연 속 풍류를 경험할 수 있다. 그 외 연말연시를 위한 특별한 공연도 준비하고 있다. 연말 <2023 윈터 콘서트>는 음악감독 김문정이, <2024 신년 음악회>는 지휘자 정치용이 음악으로 풍성하고 아름다운 시즌을 장식한다. 국립창극단 김수인이 멤버로 있는 남성 4중창단 ‘크레즐’, 하피스트 황세희 등이 신년의 첫 협연자로 나선다.

‘지휘’ ‘연출’ ‘작곡’ 등 국악관현악을 타 장르와 구분 짓는 핵심 요소에 고루 접근하고 시도하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이번 시즌이 주목된다. 다양한 시도와 기민한 대처가 국립국악관현악단을 경쟁력 있는 조직으로 만들고, 국립 기관으로서 추진하는 이러한 다양한 점검과 검증의 시도가 유관 단체들의 창작 활동을 자극하는 긍정적 기폭제가 되기 바란다.

글. 김정은 음악 칼럼니스트. 월간 『객석』 음악기자, 제일기획 마케팅 플래너로 예술과 대중 사이의 접점을 만들어왔다. 현재 라이브러리 대표로 문화예술계 플랫폼을 기획하고 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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