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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Ⅰ<디스커버리>
첫 만남의 설렘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새 시즌의 시작에 맞춰 새로운 지휘자를 ‘발견’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첫 만남은 한국의 대표적 여성 지휘자 여자경이다.
악단의 대표 레퍼토리가 그의 음악적 해석으로 새 옷을 갈아입고 관객을 맞을 준비를 마쳤다.

오는 9월 1일, 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Ⅰ <디스커버리> 공연이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다.
2023-2024 레퍼토리시즌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첫 번째 공연이며, 지휘자를 통한 음악적 재발견을 꾀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나태주 ‘풀꽃’)던 유명한 시의 한 구절처럼, 레퍼토리는 끊임없이 다양한 관점으로 조명할 필요가 있다. 새롭게 탄생한 창작 작품은 마치 하얀 도화지 같아서, 여러 가지 해석의 색깔을 입을 준비를 한 상태다. 역사에 남는 명곡은 그렇게 덧칠의 연주로 거듭나 오색찬란한 관점을 갖출 때 비로소 진정 ‘명작’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그동안 국립국악관현악단을 통해 창작되고 레퍼토리가 된 유수의 작품들에도 이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 새로운 시선의 지휘자 ‘발견’에 나섰다. 그 첫 번째 바통을 지휘자 여자경이 잡았다.

도전의 연결고리

여자경과 국립국악관현악단이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중에게는 2020년 TV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개그맨 유재석의 하프 연주 도전기에 등장한 지휘자로 친숙하다.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 및 상임지휘자를 역임하고, 올해 대전시립교향악단의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여자경은 활동 최전선에 있는 음악가다.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중견 지휘자로 자리 잡아 가고 있지만, 국악관현악단과의 연주는 그에게도 새로운 도전이다. ‘도전.’ 여자경이 걸어온 지휘의 여정에는 편견을 넘어선 도전의 스토리가 이미 내포되어 있다. ‘동양에서 온 작은 여자.’ 국내에서 작곡과 지휘를 전공하고 오스트리아 빈 국립예술대학에서 유학 생활을 한 그를 지겹도록 따라다니던 수식어였다. ‘여성 지휘자’도, ‘한국인’도 낯선 오스트리아에서 그는 ‘한국인 여성 지휘자’로 성과를 거뒀다. 재학 중에는 매 학기 한 명에게만 주어지는 ‘야나체크 장학금’ 등을 받았고, 2008년 프로코피예프 국제 지휘 콩쿠르 3위에 올랐다. 프랑스 브장송 지휘 콩쿠르에서는 오케스트라가 뽑은 지휘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며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상트페테르부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 체코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비롯해 국내에서 KBS교향악단, 국립심포니, 경기필하모닉, 광주·대구·대전·부산·강릉·수원 시립교향악단 등 다수의 단체와 호흡을 맞췄다. 그가 자신을 둘러싼 수식어를 걷어내기 위해 기울인 노력이 있다. 충분히 준비한 뒤 포디엄에 설 것, 연주자들에게 예의를 다할 것, 지루하지 않은 리허설을 할 것. 연주자에게 초점을 둔 그의 전략은 음악적으로 성공을 거뒀다. 오는 9월, ‘국악’이라는 새로운 도전 앞에 놓인 여자경의 전략이 이번에는 어떻게 성공을 거두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장점을 부각할 최선의 작품

최근 서양 오케스트라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포디엄을 자유롭게 오간 사례로는 지휘자 김덕기·장윤성·정치용·최수열 등이 있다. 이번 공연은 여자경이 이 성공 사례를 이을 다음 주자가 될 출발선일지도 모른다.
최성환의 국악관현악 ‘아리랑 환상곡’은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공연의 상징 같은 작품이다. 1976년, 북한의 작곡가 최성환이 서양 관현악과 국악관현악이 섞인 배합 관현악을 위해 작곡한 이 작품은, 본조 아리랑의 선율을 바탕으로 하는 변주 형식을 띤다.
2008년, 이 작품은 한 외국인 지휘자에 의해 우리 민족의 심지에 더욱 강력하게 꽂혔다. 세계적인 지휘자 로린 마젤이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북한의 동평양대극장 무대에서 ‘아리랑 환상곡’을 연주했다. 이 순간은 ‘아리랑 환상곡’을 남북한 공통의 정서를 담은 대표작으로 올려놓았다. 현재는 국악관현악을 위한 편곡 버전도 만들어져, 서양 관현악과 국악관현악에서 모두 사랑받는 레퍼토리다. 서양 관현악 버전이 아리랑 선율의 매력을 극대화해서 보여준다면, 국악관현악 버전은 아리랑 음악의 본질적 정서를 건드리며 더욱 긴 여운을 남긴다. 여자경 또한 서양 관현악단과 이 작품을 선보인 바 있어 가용할 수 있는 해석의 폭이 넓다.

협주로 대변하는 목소리

운신의 폭을 넓힌 작품 선정은 협주곡에서도 돋보인다. 이번 공연에서는 피아노 협주곡, 첼로 협주곡을 각각 한 곡씩 선보일 예정이다. 두 곡 모두 서양 악기와 협업으로 무대에 오른다. 최지혜가 작곡한 첼로 협주곡 ‘미소’는 그중에서도 악기의 목소리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세기 말, 수난의 시기였던 한국에 의료 선교사이자 교육자로 활동한 ‘로제타 셔우드 홀’의 삶을 담아냈다. 작곡가는 “우리 선조들의 삶을 바꾸어준 위대한 분의 삶을 곡으로 써보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다. 첼로가 로제타 선교사님의 마음이 되어 곡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라고 밝혔다. 1장은 촉촉하고 습한 새벽, 제물포 항구에 도착한 선교사의 이미지와 당시 조선의 배경을 그리고, 2장에서는 조선에 대한 간절한 기도와 눈물의 헌신을 첼로의 선율이 노래한다. 3장에서는 청·일 점령으로 혼란스러운 조선의 상황 속에서 희생과 섬김의 삶을 다한 선교사의 마지막 미소를 그린다. 무대 위에는 선교사가 첼로로 변신해 무대 위에 오른 것 같아 보인다. 작품은 직관적 이해가 가능하다. 국악관현악단이 그려내는 조선의 분위기가 생생해서, 애절한 첼로 선율의 카덴차는 연극이나 영화의 독백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시각적 효과까지 지닌다.

악보에는 없는 새로운 영감을 찾아서

지휘자는 악보에 적힌 것을, 그리고 악보에 적히지 않은 것을 직시해 내야 한다. 악보에 적히지 않은 것은, 작품 전체를 조망하는 관점이다. 이는 지휘자에 따라, 또 연주 단체에 따라 다르다.
이번 공연에서 선보일 이해식 작곡의 ‘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은 앞서 설명한 곡들과 성격이 조금 다르다. 춤과 민속음악, 무속음악 등 우리나라 토속 음악의 요소들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동시에 현대음악적 표현법을 따르고 있어 징이나 자바라·장고·북 등의 전통 타악기는 물론이고 탬버린·우드블록 등 다양한 악기를 활용해 독특한 고유의 음향을 보유하고 있다. 악보 이면에 담긴 매력적 사운드를 찾는 과정은 연주자와 관객 모두에게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사실 기존의 레퍼토리에서 새로운 음악적 발견을 해나가는 작업은 무척 섬세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작품에 대한 연주자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한 아주 미세한 차이를 표현해 내는 테크닉 실행이 가능해야 한다. 지휘자와 연주 단체, 양쪽의 손발이 모두 맞아야 하기에 음악적으로도 난도가 높다. 그러나 이것이 성공하면 작품은 새 생명을 얻는다.
여자경의 지휘는 정통의 해석을 따르는 큰 틀을 제시한다. 눈에 띄게 선명한 바톤 테크닉은 관현악단을 아우르는 지붕처럼 움직인다. 그가 자주 선보이는 레퍼토리 중 하나는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이다. 선율의 흐름과 거대한 다이내믹의 매력을 살리는 것이 그의 장점이다. 이처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발견’은, 한 지휘자가 보유한 음악 세계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더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얻게 된 국악관현악의 새로운 매력을 만나볼 시간이다.

글. 허서현 『객석』 기자. 학부에서 음악을 전공했다. 예술과 대중 사이의 유쾌한 전달자를 꿈꾸며, 부끄럽지 않은 문장을 위해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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