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한 마디

안토닌 드보르자크
흑인 음악가의 위대한 스승
지난 6월 29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하버드 등 미국 명문대 입학 전형에서 유색인종을 위해
특별 가산점을 부여하는 것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원장과 대법관 등 총 9명이 참여, 6명의 찬성표가 이끈 판결이다.

존 로버츠 미국 연방대법원장은 판결문에서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학생이 서로에게서 배운다는 다양성이 교육의 목표다. 모든 학생은 인종이 아닌 한 사람의 학생으로 동등하게 평가받아야 한다.”라고 밝혔다. 그동안 ‘인종 특별 가산점’을 받았던 입학생이 인종을 이유로 오히려 차별을 받았다고도 했다. 하지만 반대표를 던진 대법관과 미국 정부 측은 오히려 이번 판결로 인해 백인과 아시아계 입학생이 흑인 입학생의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찬성이든 반대든 모두가 원하는 것은 피부색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세상일 테다. 체코의 국민 음악가로 추앙받는 안토닌 드보르자크Antonin Dvorak, 1841~1904. 그는 미국에서 살던 아프리카계 흑인 학생에게 차별 없이 서양음악을 배울 수 있게 도운 스승으로 꼽힌다. 체코 및 유럽에서 명성을 떨치던 그는 1892년부터 약 3년간 미국 국립음악원 교수로 재직했다. 이 시기 그가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유색인종의 음악원 입학 허가다.

이는 당시 미국에서 상당한 화젯거리였다. 클래식 곡을 연주하는 흑인에 대한 반감이 지배적이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미국에서는 쇼팽과 베토벤을 연주하는 흑인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흔치 않았다. 드보르자크가 미국에서 활동하던 시절보다 대략 60년이 지난 후 미국과 유럽에서 활동을 시작한 소프라노 제시 노먼은 “젊은 시절에는 피부색에 따라 오페라 배역을 받아야 했다.”라는 회고담을 밝히기도 했다. 이것이 비단 클래식 음악계만의 일이 아니기에 더욱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드보르자크가 유색인종 입학을 허가하면서 주장한 것은 피부색이 음악을 배우는 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1893년 5월 21일 자 『뉴욕 헤럴드』와 인터뷰하던 중 “미국의 흑인 멜로디에서 나는 위대하고 고귀한 음악 학교에 필요한 모든 것을 발견합니다. 그들의 음악은 부드럽고 열정적이며 우울하고 엄숙하며 종교적이며 대담하고 명랑합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은 백인과 흑인의 평등한 분리가 ‘짐 크로 법’으로 보장되던 20세기 초의 미국에서 수많은 흑인이자 예비 음악가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가 흑인 학생과 가까워질 수 있었던 여러 요인 중 하나는 가난하던 어린 시절 어렵게 음악 공부를 이어간 자신의 지난날을 반추한 데 있다. 흑인 학생을 지도하며 자연스레 그들이 가진 고유의 문화와 전통음악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되었고, 이는 그의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의 대표작,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와 현악 4중주 제12번 ‘아메리카’ 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이름과 함께 따라다니는 명작이 음악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그의 깊은 신념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드보르자크는 오늘날의 체코 프라하 근교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도축업을 했지만, 음악에 남다른 애정이 있었다. 어린 드보르자크는 음악에 재능을 나타냈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에 일찍 공부를 시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주변의 도움을 받으며 그는 성실하게 음악 교육을 마쳤다. 비올리스트, 오르가니스트 등 연주 활동으로 돈을 벌다가 결국 작곡가의 길에 접어들었다. 요하네스 브람스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당시 유럽에서 유명하던 짐 로크 출판사에서 드보르자크의 작품을 출판할 기회도 제공했다. 마침 유럽의 악보 인쇄술 발달로 그의 작품은 대량 인쇄돼 유럽 곳곳에서 팔렸다. 이렇게 그는 인기를 얻었다. 형편상 남들보다 늦게 음악 공부를 시작했지만, 지금 그는 체코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잠들었다. 동시에 피부색으로 음악 공부의 기회를 차별하지 않은, 흑인 음악가의 스승으로 존경받는다. 현재 그는 체코 프라하에 잠들어 있다. 그의 묘비에는 “흑인의 특별한 눈물이 드보르자크를 추모한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인종차별의 역사가 깊다. 20세기 여성 음악가의 역사와 비교해 본다면 흑인 연주자에 대한 차별이 더 심한 편이다. 오늘날 세계 유수의 교향악단이나 기타 여러 연주 단체의 단원 중 아시아계를 포함한 유색인종 비율은 여전히 낮은 편이다. 여성 지휘자를 정식 지휘자로 계약한 연주 단체의 비율과 엇비슷하다. 그런데도 고무적인 건, 매년 우리나라의 연주자가 세계 여러 교향악단이나 오페라단 등에 입단했다는 소식이 들린다는 것. 불과 10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앞으로 어느 시대이든 어느 세상에서든 피부색이든 성별이든 어떤 이유로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길 희망한다.

※ 참고 자료
드보르자크 미국 유산 사업회(https://www.dvoraknyc.org)

글. 정은주 음악 칼럼니스트. 서양 음악가들의 음악 외(外)적 이야기를 발굴해 소개하며 산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 『발칙한 예술가들』(추명희·정은주 공저), 『나를 위한 예술가의 인생 수업』을 썼다. 현재 예술의전당·세종문화회관 월간지, 『월간 조선』 등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부산mbc <안희성의 가정 음악실>에 출연하고 있다.

일러스트. romanticize
<월간 국립극장> 구독신청 <월간 국립극장> 과월호 보기
닫기

월간지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 구독 신청

뉴스레터 구독은 홈페이지 회원 가입 시 신청 가능하며, 다양한 국립극장 소식을 함께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또는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편리하게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회원가입 시 이메일 수신 동의 필요 (기존회원인 경우 회원정보수정 > 고객서비스 > 메일링 수신 동의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