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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무용단 <온춤>
전통춤, 새 페이지를 열다
<홀춤> 시리즈로 전통춤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온 국립무용단이 그동안의 성과를 집대성하는
무대를 마련한다. ‘홀춤’과 ‘겹춤’의 형태로 전통춤의 기본과 오늘의 시대정신을 착실히 결합해 보려 한
실험은 이번 무대에서 ‘온춤’이라는 머리말을 달고 더 진일보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독백의 무대에서 출발한 춤과 그 춤이 여럿이 함께하는 형태로 확장된 무대의 만남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볼거리가 된다. 동시에 이 무대는 ‘새로운 전통 쓰기’의 가능성을 입증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꽉 채우고 더 완전해진 춤의 미학

9월 1일부터 3일까지 달오름극장에서 선보이는 신작 <온춤>은 그동안 홀춤과 겹춤으로 무대에 올랐던 단원들이 한층 농익은 기량과 춤사위로 총출동하는 무대다. 단순히 지난 작품을 다시 보여주는 무대가 아니다. 기존의 독무와 이인무는 더 성숙한 몸짓으로 돌아오고, 특히 독무를 군무로 확장한 새로운 버전의 작품이 이번 공연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이런 점에서 <홀춤> 프로젝트는 독무-이인무-군무라는 춤 형태의 차이로, 한 작품을 변주하는 실험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매 시즌 선보인 작품을 엄선해 발전시키는 형식이라는 점에서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실험 이상의 완성도를 지향하는 사업에 가깝다. 실제로 매번 선정된 우수작은 시즌을 거듭할수록 진화하며 안정된 레퍼토리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정체성은 이번 <온춤>에도 잘 담겨 있다. 앞서 세 편의 시리즈 연작이 ‘홀춤’이라는 기준점을 지니고 있었던 반면, 이번엔 그 기준점을 제목에서 생략하고 새로운 이름으로 나선 것부터가 그렇다. 이는 특정한 춤의 형태에 얽매이기보다 그런 차이를 통해 전통춤의 미감을 다채롭게 알리겠다는 포부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어쨌든 ‘홀춤’이라는 기본형으로 시작해 지난 시즌 ‘겹춤’으로 파생된 여정은 이제 막바지에 이르게 됐다. 그리고 독무에서 이인무로 변형된 시점에서 군무로 확장될 것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춤 형태의 차이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제목이나 형식이야 어떻든 결국엔 이런 무대를 통해 이 시대의 새로운 전통춤의 의미를 발견하고 이를 동시대 감수성과 미적 감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지난 세 차례의 공연은 춤꾼의 흥미로운 아이디어와 출중한 안무 역량으로 색다른 전통춤을 만나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사실 이 모든 과정이 ‘전통춤’이라는 이름으로 이 시대에 수용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그것은 이름에 걸맞은 완성도다. 오늘날의 공연 환경에 맞춘 형식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결국 ‘전통춤’이라는 문화유산이 지닌 깊이와 성숙함은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자격 조건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여러 차례의 공연과 반복된 보완을 통해 또다시 <온춤>의 무대에 오르는 작품 아홉 편은 단순한 레퍼토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거기에는 전통춤에 대한 춤꾼의 생각과 경험, 21세기의 공연 환경과 미감에 대한 고민이 고루 담겨 있다. 아울러 수년에 걸쳐 숙성된 춤 철학과 동작의 섬세함도 녹아 있다. 즉 <온춤>에서는 ‘온’이라는 접두사가 지닌 뜻처럼 프로젝트의 첫 무대보다 더 충만하고 한층 완성에 가까워진 새 전통춤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산산수수>
<심향지전무>
<다시살춤>
<월하정인>
<산수놀음>

전통춤의 새로운 재미를 만나는 시간

<온춤>은 이름처럼 이제까지의 시리즈 중 질적·양적으로 가장 풍성한 전통춤의 향연을 보여준다. 우선 앞서 세 차례의 공연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세 편의 독무와 두 편의 이인무가 구성돼 있어 기대를 모은다. 물론 새로운 전통춤의 등장을 기다리는 관객에게는 독무에서 파격적으로 확장한 네 편의 군무 작품이 기존의 독무와 확실히 비교되는 재미를 줄 것으로 보인다.
홀춤으로 두 시즌에 걸쳐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낸 세 편의 작품은 그새 더 농익은 춤꾼의 기량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다. 풍류를 즐기는 사내의 모습을 한량무로 담아낸 윤성철의 <산산수수>는 여전히 기품 있는 춤사위를 선보인다. 남성 춤 고유의 절제된 동작과 의연함이 거문고 산조의 밀고 당기는 즉흥적 선율과 만나 그려내는 자연의 이치를 이번에도 기대해볼 만하다. 무속에서 유래한 신칼대신무의 특성에 정현숙만의 호흡과 몸짓을 담아낸 <심향지전무>는 이번에도 등장과 함께 시선을 사로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신칼대신무와는 다른 동작과 구성의 변화는 여전히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또 살풀이춤에 소고를 결합한 <다시살춤> 역시 또 한 번의 이색적인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세상살이의 고달픔을 무구로 표현하는 내용인 만큼 1년 동안 더 깊어진 정소연의 내면을 확인하는 무대가 될 것이다. 한편 지난 시즌에서 화제를 모은 두 편의 겹춤도 돌아온다. 신윤복의 동명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월하정인>은 박기환과 박지은이 기존 전통춤 소품작 ‘사랑가’와 ‘태평무’를 바탕으로 재구성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독무인 한량무를 이인무로 바꾼 황태인 안무의 <산수놀음> 역시 다시 무대에 오른다. 지난해 최연소 안무가이던 황태인이 이도윤과 함께 꾸미는 무대는 MZ세대가 그리는 오늘의 선비상을 접할 기회다.

무엇보다 이번 <온춤>에서 특히 기대를 모으는 것은 독무 또는 이인무에서 군무로 확장된 네 편의 작품이다. 먼저 남성독무, 혼성 이인무가 두 편의 남성 군무로 탈바꿈했다. 승무의 북 가락과 진도북춤을 접목해 <홀춤> 첫 시즌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은 <보듬고>는 5인의 춤꾼으로 새 무대를 꾸린다. 박재순의 존재감이 다섯 명의 몸짓으로 대체될 때 어떤 변화가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지난 시즌에서 혼성 겹춤으로 시선을 끈 <너설풀이>는 이번에는 남성 4인무로 재편됐다. 여성 춤꾼과 연주를 주고받으며 농악 짝쇠 기법의 매력을 한껏 드러냈던 정관영은 남성 춤꾼과 새롭게 호흡을 맞추며 한층 강렬하고 역동적인 무대로 돌아온다.
<온춤>에서 주목을 받는 또 다른 시도는 여성 독무에서 대규모 혼성 군무로 재해석한 두 작품이다. 바라를 치는 행위와 울림의 본질을 고민한 김은이의 <바라거리>는 홀춤 중에서도 유독 춤꾼의 독백 같은 인상이 강한 작품이었다. 이번 무대는 여성 춤꾼 5인과 남성 춤꾼 1인이 함께 만들며 치유와 정화에 대한 각자의 태도를 인상적으로 그려내게 된다. 한편 김회정의 <단심_합>은 프로젝트 전체를 통틀어 가장 특징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홀춤II>에서 독무로 시작해 <홀춤Ⅲ: 홀춤과 겹춤>에서 이인무로 변신했고, 이번 <온춤>에서는 여성 6인 남성 4인의 대규모 혼성 군무로 거듭 확장했기 때문이다. ‘합’이라는 소제목을 더해 그 의미를 다진 이 작품은 여성과 남성 춤꾼들이 따로 또 같이 재현하는 검무의 매력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다.

‘온춤’ 안에서 추구하는 오늘의 전통춤

다양한 형태의 춤이 아홉 편의 작품으로 구성돼 무대에 펼쳐지는 동안 관객은 비로소 부분적으로 감상해 오던 전통춤의 다양한 영역을 고루 파악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전통춤의 참맛은 외형적 특징에만 있는 게 아니라 그에 내재한 춤꾼의 고민과 수련의 흔적을 발견하는 데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프로젝트는 다분히 교육적이기도 하다. 홀로 추거나 둘이 짝을 지어 추는 작품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여럿이서 어울려 추는 장관을 통해서는 무대 전체로 관객의 시야를 넓히기 때문이다. 의상이나 도구, 음악 또는 몸짓으로 나눠진 감상의 기준은 이러한 ‘온춤’ 지향의 장기적 전략을 통해 관람의 내공으로 이어지게 된다.
시대 변화에 따른 전통춤의 과제와 무용단이 숙성시켜 온 내적 고민의 여정은 이번 <온춤>을 통해 반환점을 돈 듯하다. 전통춤이 과거의 것이 아닌, 동시대와 소통하는 연속된 시간의 산물임을 입증하면서 이 프로젝트는 이미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그렇다면 무용단이 선보일 전통춤의 다음 페이지에는 무엇이 있을까. <온춤>은 그 힌트를 알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다.

<보듬고>
<너설풀이>
<바라거리>
<단심_합>
글. 송준호 공연 저널리스트. 대학원에서 무용미학과 비평을 전공하고,『주간한국』과『한국일보』『더뮤지컬』을 거쳤다. 공연예술의 다양한 변화를 주시하며 대학에서 춤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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