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한 마디

리하르트 바그너
바그네리안과 불멸의 예술가
획기적 무대를 선보인 음악가와 그를 열렬히 지지하는 이들의 연대는
예술가가 영면한 지 140년이 되도록 단단하게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타인의 비난에 대응하는 자세나 타국 예술을 존중하는 태도가
지금의 사회적 이념과도 잘 맞았기 때문은 아닐까.

올해 탄생 210주년을 맞았고 또 영면한 지 140년 된 독일 작곡가 빌헬름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팬덤을 몰고 다니는 예술가다. 특히 바그너의 음악을 사랑하다 못해 열렬히 지지하는 바그네리안을 보면 예술가의 삶은 불멸이란 생각도 든다. 바그네리안의 존재는 세계 곳곳의 공연장에서 바그너의 곡이 자주 연주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바그네리안은 독일 바이로이트에 가보는 것을 일종의 소원으로 품는다. 메카로 향하는 순례자의 마음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언젠가 결국 꿈을 이룬 바그네리안은 바그너가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만든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에서 바그너의 예술을 감상한다. 바그너가 잠든 곳을 지나 바그너가 바라보던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다.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나 9세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바그너는 젊은 시절 간직했던 극작가의 꿈을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작품을 발표하며 독일 오페라의 역사를 썼다. 그리고 1876년 당대 오케스트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고, 웅장한 (문학) 구성이 무대에서 돋보이도록 오케스트라를 무대보다 낮고 깊게 배치하는 등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오페라 공연장 ‘리하르트 바그너 축제 극장’을 세웠다. 극장의 첫 공연으로 4일간 16시간에 걸쳐 <니벨룽겐의 반지> 전막을 공연했는데, 어쩌면 이때부터 바그네리안이 시작된 것일지 모른다. 이때 공연한 <니벨룽겐의 반지>는 처음으로 전막을 공개한 것이기도 하고, 이것이 독일 서사문학을 결합한 음악극 양식의 총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공연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긴 공연 시간과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식의 획기적 무대로 손꼽힌다. 이때를 시작으로 바이로이트 축제는 거의 매년 여름에 열린다. 올해도 어김없이 7월 23일부터 8월 29일까지 약 한 달간 바그너의 모든 것을 느끼고 볼 수 있는 축제가 열리는데, 매진으로 표를 구하기 어려운 축제로 유명하다.

바그네리안은 과거에 그랬듯 현재와 미래의 클래식 음악계에 활기를 더하는 존재다. 물론 서양 음악사의 여러 음악가 중에서 팬덤을 끈 인물이 없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전설의 비르투오소 프란츠 리스트, 루트비히 판 베토벤, 조아치노 로시니, 구스타프 말러 등이 팬덤을 이끌었다. 하지만 오직 바그너의 음악을 듣고 그의 발자취를 좇기 위해 1년 전부터 축제 방문 계획을 준비하는 바그네리안에 비할 수 있을까. 덕분에 바그너는 바그네리안 안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쉰다.

사실 바그너의 삶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도 많다. 아돌프 히틀러와 친밀했던 관계, 수많은 부채, 체포 수배, 국경을 넘은 불법 도주, 복잡한 사생활까지 이루 다 말할 수도 없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바그네리안 현상을 의아하게 바라본 적도 있다. 하지만 바그네리안에게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판단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그의 위대한 음악이 바그너 자체이며, 그가 남긴 작품 세계는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운 유일한 안식일 테니까. 아이러니한 상황의 답은 바그너라는 이유밖에 없을 것이다.

수많은 음악가가 그러하듯 바그너 역시 베토벤을 존경했다. 그는 “독일 사람의 심장을 움직이는 것은 오직 베토벤의 음악”이라 굳게 믿었다. 재미있는 점은 그가 도덕적 이상이 높았던 베토벤과 정반대의 캐릭터에 가깝다는 점이다. 나와 다른 사람에게 끌리는 경우였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음악인의 우상이던 베토벤을 흠모한 그는 한 가지 이벤트를 꾸몄다.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후 열리는 대형 추도회에서 스스로 연설할 기회를 만들었다. 평소 그는 글 쓰는 일을 즐겼고, 쇼맨십도 있었다. 아쉽게도 그가 쓴 연설문은 베토벤의 추도식에서 발표하지 못했지만 어렵게 쓴 글을 차곡차곡 보관했고, 자기 생각을 더 자세히 글로 적어 간직했다. 훗날 그의 글들이 『리하르트 바그너의 베토벤』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몇 번의 과정을 거쳐 출판됐다. 책의 내용 중 흥미로운 대목을 소개한다. 바그너가 후배 예술가에게 청중 혹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조언한 부분이다. 바그너의 강단을 짐작해 볼 수 있고, 또 예술가로서 그가 가진 자신감도 엿볼 수 있다.

같은 책에서 바그너는 “음악은 항상 정확한 답을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담아, 각자의 마음 깊은 곳에서 다정한 멜로디로 들려온다.”라며 “시인이 쓰는 언어는 시인이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음악의 언어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말하는 절대적 언어”라고 적었다. 이는 독일 음악과 이탈리아 음악이 달라 보일지 몰라도 결국 하나의 언어임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가 쓴 글에서 20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는 사회적 이념이 느껴진다. 유럽의 역사에서 오랜 세월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가 낮았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바그너의 말처럼 다른 사람의 무의미한 비난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고민해 보자. 끝으로 바그너의 창의로운 시선이 우리 모두의 마음으로 이어지길 바라본다.

※ 참고 자료
· 『Richard Wagner’s Beethoven』 Richard Wagner 저, Roger Allen 번역, Boydell Press 펴냄(2014)
· 『The Art-Work of the Future and Other Works』 Richard Wagner 지음, William Ashton Ellis 번역,
    University of Nebraska Press 펴냄(1994c)
· 『Richard Wagner: New Light on a Musical Life』 John Louis Di Gaetani 지음, McFarland Press 펴냄(2013)
    바이로이트 페스티벌(www.bayreuther-festspiele.de)

글. 정은주 음악 칼럼니스트. 서양 음악가들의 음악 외(外)적 이야기를 발굴해 소개하며 산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 『발칙한 예술가들』(추명희·정은주 공저), 『나를 위한 예술가의 인생 수업』을 썼다. 현재 예술의전당·세종문화회관 월간지, 『월간 조선』 등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부산mbc <안희성의 가정 음악실>에 출연하고 있다.

일러스트. romantic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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