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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무용단 <더블빌>
두 갈래로 흐르는 이상 세계
국내외 무용계에서 주목받는 ‘핫’한 안무가와 국립무용단이 만났다. 새롭지만 한국적이고, 신선하지만 공력 있는 움직임으로 어떤 놀라움을 선사할지 기대되는 <더블빌>의 작품 두 편을 만나보자.

자연의 풍경이 아닌 개별적인 존재로서 보여주는 생명의 아름다움 차진엽 안무 <몽유도원무>

차진엽의 <몽유도원무>는 제목에서 조선 시대 화가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떠올리게 한다.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어느 날 무릉도원 꿈을 꾸고 꿈에서 본 것을 화가 안견에게 설명했고, 안견은 3일 만에 그림을 완성했다는 전설적인 후일담이 따라붙는 조선 초기 시서화의 걸작이다. 현실 세계는 부드러운 형태의 토산(土山)으로, 이상향인 도원(桃源) 세계는 가파르게 경사진 암산(巖山)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차진엽은 <몽유도원무>라는 제목에 대해 ‘몽유도원도’에서 표현된 것처럼 산지가 많은 한국의 지형을 묘사할 때 흔히 사용하는 부사인 ‘굽이굽이’에서 안무의 모티프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차진엽 안무가

신작이 <몽유도원무>인데, 차진엽의 안무작을 좋아하고 공연을 많이 본 사람들에게는 매우 궁금증을 유발하는 작품일 것 같다.

제목에서 알아차리게 되는 것처럼 ‘몽유도원도’가 모티베이션이 되긴 했지만 그림에 대한 해석을 무대로 옮기는 것은 아니고 안무에 들어가기 전 한국적이라는 걸 생각했을 때 처음 떠오른 단어가 ‘굽이굽이’였다. 한국 산세가 갖고 있는 그런 ‘굽이굽이’의 형상이 자연으로 바라볼 때는 아름답지만 인간의 삶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매우 굴곡지고 힘든 여정이다. 보릿고개를 넘기거나 자연을 개척하며 살아가고자 했던 선조들의 노력이 ‘굽이굽이’의 굽이진 형상을 보여주는듯했다. 그리고 그것은 내게 매우 한국적인 것으로 다가왔다. 그 ‘굽이굽이’를 아름답게 표현하고자 하다가 ‘몽유도원도’에 이르게 됐다.
‘몽유도원도’에 나타나 있는 이상 세계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힘든 상황에서 이 현실을 벗어나고자 꿈꾸는 세계와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전에 말했듯이 우리가 멀리서 자연 풍경을 바라봤을 때 매우 아름답지만 그걸 미시적으로 가까이 들여다보면 멀리서 본 것과는 다른 무수한 존재의 이야기가 있을 거다. 그러니까 풍경화처럼 아름다운 형상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가까이 다가갔을 때에야 볼 수 있는 그 개별적인 존재들이 가진 다양성·생명력·존재감 등의 가치를 미세하고 작은 움직임을 통해 찾아내고 부여하려고 한다.

국립무용단은 예전에 신창호·김설진 등의 현대무용가와도 작업한 경험이 있다. 그때는 안무가의 색깔을 국립무용단 무용수들에게 입히는 작업으로 봤는데 설명을 듣다 보니 <몽유도원무>는 반대 방향의 작업처럼 느껴진다. 국립무용단 무용수들이 갖고 있는 한국무용의 정체성이 차진엽이라는 안무가의 색깔로 드러나는 작업이라고 해야 하나. 결국 차진엽의 기존 작업과도 만나는 결과물이 나올 것 같다.

두 방향이 다 맞다. 내 작업의 색깔이 묻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고 국립무용단에서도 그런 점에 대한 기대가 있었으니까 나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의 재료가 되는 무용수들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나의 작업 방식이나 안무 스타일이 입혀진다고 하더라도 결과물에서는 국립무용단 무용수로서의 정체성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국립무용단 하면 대극장 무대에 올라가는 규모가 큰 작품을 많이 해왔고, 군무로 획일화된 모습도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앞서도 설명한 것처럼 미세하고 작은 움직임을 통해 개별성과 다양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용수도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했다. 무용수 각자가 가지고 있는 다름을 발견하고 최대한 이끌어내려고 하고 있고 무용수들도 저마다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내 안무 방식대로 훈련해서 무용수가 수행하는 식으로 차진엽 스타일이 그대로 입혀졌다기보다 국립무용단 무용수의 한국적인 춤사위가 차진엽 스타일로 나타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의상이나 무대장치 등 다른 요소들에 대해서도 들려달라.

구성이 복잡하진 않지만 그래도 요소들이 많은 편이라 신경 쓸 게 많다. 의상 얘기를 먼저 하자면 작품이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두 파트가 의미상으로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의상도 달라진다. 무용수들이 다 같이 움직이는 첫 장면에서는 같은 의상을 입었다가 개별적으로 움직이며 각각의 개체임을 보여주는 후반으로 가면 각자의 다른 생명력을 보여주는 의미로 다 다른 의상을 입는다.
영상도 사용하는데 보는 시각에 따라 ‘몽유도원도’를 형상화한 걸로도 볼 수 있겠지만 그림을 영상으로 그대로 구현하는 건 아니고 ‘굽이굽이’의 형상을 몸으로 표현하고 있고 영상으로도 표현하면서 작품 전체로 보면 각각의 요소들이 접목되고 결합되어 유기적인 연결성을 가지고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게 된다. 그래서 그렇게 연결된 총체로서 거시적으로 볼 수 있는 장면들이 있고, 또 그 안에서 미시적 관점으로 섬세함을 볼 수 있는 장면들도 있는 복합적인 그림이 나올 것 같다.

차진엽 안무 <원형하는 몸> ⓒBAKI

현대무용가나 해외 안무가들과 활발한 협업을 하는 국립무용단 작업에 대해 한국무용이 아니라는 식의 비판도 있다. 창작하는 입장에선 신경이 쓰일 것 같은데.

의식을 안 할 수는 없다. 현대무용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한국적인 것, 한국성이라는 건 고민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주제다. 이번 작품에서도 한국성을 작품에 어떻게 녹여내고 어떤 부분에서 드러낼까가 가장 고민을 많이 하는 지점이다.
그렇다고 오방색을 사용한다거나 전통에 대한 어떤 해석을 보여준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작품에서 자연스럽게 한국적인 무언가가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작업하고 있다. 그러니까 한국무용을 하는 단체와 작업하기 때문에 한국무용에 걸맞은 어떤 결과물을 만들고자 하는 게 아니라 이것도 한국무용이 될 수 있다, 우리가 한국무용이라고 하는 그 범주 안에 들어가는 춤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우리가 규격화해서 알고 있는 한국무용을 좀 더 확장해서 사고하고 싶은 거다.
사실 한국 음악이든 무용이든 한국 고유의 예술이 갖고 있는 특징은 포용력이 무척 크다는 거다. 이 <몽유도원무>가 한국무용수들과 하는 작업이라고 해서 내 전작들과 완전히 다른 작업이 되는 것은 아니고, 전작인 <원형하는 몸>과도 자연의 순환 같은 통하는 지점들이 있다. 내 작품을 한국무용으로 봐달라 이런 것은 아니지만 한국적이라는 의미를 전통을 해석하는 것으로만 좁혀서 생각하지 말고 우리 자신이 한국인으로 가지고 있는 한국성이라는 보편적 의미로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이번 작품도 그렇게 열린 마음으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

한국무용의 정중동에서 찾아낸 신선놀음 고블린파티 안무 <신선>

고블린파티의 세 안무가 임진호·지경민·이경구가 준비하는 작품은 <신선>으로, 한국인의 음주가무(飮酒歌舞) 중에서 주(酒), 즉 술을 작품의 중심에 놓았다. ‘술’은 상고시대부터 제례를 비롯한 의식이나 생애 주기에 따른 주술적 혹은 사회적 행위에 빠지지 않는 주요한 요소다. 그러나 민요나 시가 등으로 다수의 권주가가 전해 내려오는 것과 달리 춤에서는 이렇듯 술을 즐기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의식무용이 발달해 있고 의식에 술이 빠지지 않는 점을 떠올리면 의외의 사실이다. 고블린파티는 춤에서는 보기 드문 이 소재를 과감하게 사용했는데, 세 안무가 중 임진호와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임진호 안무가

술과 춤의 만남이라니 색다른 조합이다. 한국무용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무대가 될 것 같다.

국립무용단에서 안무 제안이 왔을 때 무용수들을 만나기 전에 뭔가 전통의 소재를 먼저 정해 놓고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블린파티에서 기존에 해온 작업 중에도 전통을 재해석한 작품들이 있지만 국립무용단에 맞는 새로운 걸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해보지 않은 게 뭐가 있었나 생각하다 보니 한국이 음주가무의 나라인데 춤에서 술이나 술에 대한 문화를 보여주는 게 별로 없더라. 그래서 이걸로 한번 작업해 보자 하고 조사를 시작했는데 술만 가지고 작품 하나를 만드는 건 또 너무 작은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한국무용과 술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좀 더 큰 범주를 생각하다 신선이라는 단어에 이르게 됐다. 한국무용을 하는 무용수를 보면 너무 예쁘고 아름다워서 감히 다가갈 수 없는 선녀들 같지 않나. 선녀들의 신선놀음과 술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목을 <신선>으로 정하고 작업에 들어갔다.

고블린파티 안무 <초상달> ⓒ장재훈

무용수들에게도 술이라는 소재가 신선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반응이 어떤가.

좋아하시더라. 연습할 때 술 사올까요 하면서 농담하는 분도 있었다. (웃음) 술과 신선, 이 두 가지를 하나의 작품으로 잘 섞어야 하는데 그 핵심이 한국무용의 움직임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용수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움직임, 흔히 정중동이라고 하지 않나. 어르고 푸는 그 한국무용의 움직임이 우리가 술에 취해서 몸을 가누려고 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균형감을 잘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무용의 움직임 안에서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찾아가는 거다.
조금 다른 얘기를 하자면 한 해 한 해 몸이 약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어서 요즘은 작업할 때도 몸을 효율적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예전에는 패기로, 악으로, 깡으로 그런 표현을 쓰면서 무리했다면 지금은 그러면 다음 날부터 바로 몸에 신호가 온다. 그런데 한국무용의 움직임은 그런 효율 면에서도 뛰어난 점이 있다. 안무가가 힘을 빼고 움직이라는 식으로 추상적 디렉션을 주면 이걸 어려워하는 무용수가 많다. 그런데 한국무용수는 어떤 체계를 이미 갖고 있는 것 같고, 내가 생각하는 움직임의 방향과도 잘 맞는 것 같아서 재밌게 작업하고 있다.

음악을 지경민 안무가가 맡았던데….

음악에 대한 고민은 한 3년 전부터 한 것 같다. 작업하면서 기존 음악을 사용하기도 하고 외부 전문가에게 맡겨보기도 했는데 두 가지 방법이 다 효율 면에서는 좋지 않았다. 우리가 원하는 정박자 하나도 우리가 직접 만들지 않으면 구하기가 쉽지 않더라. 그래서 차라리 좀 부족하더라도 우리가 만들자, 멋이 없으면 어떻고 좀 단순하면 어떤가, 음악이 부족하면 움직임으로 메우지 뭐, 하는 생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경험이 쌓이면서 우리한테 제일 잘 맞고 방법론 면에서도 효과적이라는 걸 확인하게 됐다. 작품을 만들 때 먼저 음악 없이 안무에 들어가서 작업하다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오면 음악을 입혀가면서 완성하는 식이다.

의상이나 무대장치 같은 다른 요소들도 궁금하다.

움직임 중심이라 장치는 많지 않다. 술잔이나 술상 같은 오브제가 있는 정도이고 의상은 개량 한복 스타일이다. 무용수가 움직일 때 옷자락이 치렁치렁하게 따라 움직이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라 선이 단정하게 떨어지면서 한국적 느낌이 나는 의상이다. 직접 보시면 멋있다는 생각이 드실 거다.

관객들이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면 좋을지 조언도 듣고 싶다.

현대무용가가 와서 안무 작업을 하고 있지만 관객들은 한국무용을 보러 오는 분들이다. 한국무용이 뭘까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데, 점심이면 막걸리 한잔 드시고 함께 일하시는 분들과 춤도 추고 그러신다. 한국무용을 배운 적도 없는 분이지만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시는 그 모습이 어쩌면 한국무용의 근본 같은 게 아닐까 한다. 그러니 한국무용이다 현대무용이다 장르를 구분하거나 전통을 가지고 재해석한다거나 하는 장르적 관점이 아니라 현대를 살고 있는 한국 안무가가 한국무용수들과 만든 창작품으로 작품을 온전히 바라봐 주시면 좋겠다.

글. 윤단우 작가·칼럼니스트·인터뷰어. 주로 공연을 보고 글을 쓰고 여성들을 만난다. 쓴 책으로는 여성주의 공연비평집 『기울어진 무대 위 여성들』과 무용 현장 에세이 『여성, 신체, 공간, 폭력』 등이 있다.
사진. 황필주(STUDIO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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